생생후기

기대와 달랐던, Meschede 워크캠프

작성자 안선영
독일 IJGD 2344 · ENVI/ CONS 2012. 08 - 2012. 09 Meschede

Create Forest Experience Area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보고서는 유일무이하게 워크캠프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을 담은 글이 될 것이다. 나는 총 3주의 캠프 기간 중 2주하고 하루가 되던 날 중도하차를 선택하고 급하게 한국 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내 소개를 먼저 하자면, 지금 독일의 한 학교에서 교환학생의 자격으로 공부하고 있으며, 7월에 독일에서 섬머스쿨(계절학기) 수업을 들었다. 섬머스쿨과 학기 시작 사이 5주동안 여행 계획을 짜던 중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고 네다섯 번의 지원 끝에 본 워크캠프에 합격할 수 있었다. (자기소개는 가급적이면 진심을 가득 담아 성의 있게 써야 합격할 수 있다.) 워크캠프 일정에 맞춰 여행 일정을 조정했고, 참가보고서를 읽으며 나름의 기대를 키워갔다.
주옥 같은 보고서들을 읽으며 너무 큰 기대를 한 것도 잘못이었고, 참가 초기부터 너무 큰 실망을 하게 된 것도 잘못이었다. 우리 캠프는 금요일에 처음 만나 주말을 보내고 월요일부터 본격적인 활동들이 시작됐는데, 처음 모인 그 순간부터 월요일 아침 눈 뜨기 직전까지, 캠프기간 21일중 첫 3일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미리 봐둔 식재료로 끼니를 해결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어색하고 지루하게 둘러앉아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다 자연히 삼삼오오 갈려버렸는데, 그런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 에리카는 가족 문제가 있다는 핑계를 대고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그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에리카의 중도귀국에 대한 공식적인 안내조차 없었고, 3일만에 떠나가는 참가자를 붙잡아보려는 사람은커녕, 마지막 인사조차 할 기회도 없었다. 아무리 개인주의적인 사회라지만, 무언가 잘못 굴러가고 있단 생각에 리더 조지에게 우리 모두 뭉칠 구심점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지만, 조지는 월요일부터 일이 시작되면 괜찮아질 것이며, 오늘 밤 술을 마시며 게임을 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술을 마시며 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도 물론 있지만, 이를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날마다 술자리가 만들어지자 구성원이 갈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시작된 조지 외 5명의 Drinking Team은 캠프 마지막 날까지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사실, 가장 큰 문제는, 캠프 리더 조지가 Drinking Team에서도 리더였다는 사실이다). 이들이 일으킨 몇 가지 사건들을 돌이켜보자면, 새벽 3시에 만취한 조지나 부카신이 숙소에서 이틀 밤을 연이어 고성방가를 하며 모두를 깨운 건 시작에 불과하다. 동네에 작은 축제가 열리던 주말, 축제장에서 포도주스에 보드카를 잔뜩 섞어 물처럼 마시던 크리스티나는 1시간만에 몸을 못 가눌 정도가 됐다. 아스팔트에 드러누운 크리스티나와 그녀를 둘러 싼 우리들을 본 한 독일인이 119를 불러 앰뷸런스가 왔지만, 극구 괜찮다는 본인의 뜻대로, Non Drinking Team과 다른 리더 베르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크리스티나를 뺀 나머지 Drinkiong Team은 클럽에 가야 한다며 쏙 빠졌는데, 베르나는 조지의 무책임함에 매우 화가나 있었다. 게다가 그날 새벽, 잔뜩 취해 돌아온 조지와 엘리스가 여자 숙소 파티션에 기대어 뜨거운 스킨십을 나누다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며 파티션을 무너뜨렸는데, 다시 세우지 못한 관계로 그날 이후 여자숙소의 절반은 공개적인 장소가 되어버렸다. 보다 결정적인 사건은 그 다음 주말, 캠프의 마지막 주말에 벌어졌다. 다같이 쾰른으로 여행을 떠나 각자 관광을 하고 돌아가는 기차 시간에 맞춰 역에 모였다. Drinking Team은 양손에 맥주 한 병씩을 들고 나타나 오후 4시부터 펍 3개를 돌며 술을 마셨노라고 벌게진 얼굴로 이야기했다. 판단력을 잃은 조지의 지휘아래 단체로 우왕좌왕 하다 숙소로 돌아가는 막차를 놓쳤고, 우리 모두가 밤을 새고 다음날 첫차를 타고 돌아와야 했다. 5명씩 짝을 지어 그룹티켓을 샀는데, 짝이 맞지 않아 혼자 남은 조지는 티켓을 사지 않고 기차 화장실에 숨어 가는 계획을 짰다. 하지만 조지가 화장실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환승역에서 내리지 못했고, 독일 북단 함부르크를 찍고 8시간만에 돌아왔다. 사실 우리에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숙소 키가 조지한테 있었다는 것이었는데, 하는 수 없이 본부에 연락을 취했고, 덕분에 본부에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됐다. 회의에 회의를 거쳐 본부에서 캠프에 감시원을 보냈는데, 2일만에 술을 마시다 걸려서 결국 리더 조지는 캠프 마무리를 3일 남겨두고 귀가조치를 당했다.
술과 관련된 사고 말고도 크고 작은 (좋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우리는 주로 근처 지역을 돌며 공공의 용도로 사용될 것들과 관련해서 주로 Construction쪽의 일을 했는데, 일이 일인만큼 때때로 해머, 전기톱과 같은 장비를 사용하고, 무거운 돌이나 건축자재들을 나르기도 했다. 하루는, 베르나가 자기 키보다 훨씬 큰 통나무를 나르다가, 다른 사람이 실수로 놓친 통나무를 어깨로 받아 부상을 입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헬멧과 같은 기본적인 안전장치와,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교육조차도 없었던 것이 이상하다.
내가 결정적으로 귀국을 선택한 사건은 따로 있다. 쾰른에서 돌아온 날 오후, 우리는 계획대로 맥주공장 투어에 갔다. 전날 밤을 샌 것이 너무 피곤했던 나와 애나는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하러 간다던 애나가 불이 났다며 헐레벌떡 달려왔다. 숙소 앞 텐트에 누군가 불을 질렀다. 급하게 119를 부르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취하는 사이 애나는 텐트 한 켠에서 건조중인 옷들을 끄집어냈다. 소화기를 찾아 불을 끄려고 했는데, 숙소에 있던 소화기 2대가 모두 10초만에 죽었다. 불이 번지며 텐트 접근이 불가능해졌고 둘이 발을 동동 구르는 사이 소방차와 아이들이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소방관 아저씨가 불을 끄고 나와 애나는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고 안정제를 받아왔다. 숙소에 도착해서 약을 먹고 잘 준비를 하는데, 그제서야 축제에서 돌아온 조지는 연락을 받지 못해 늦었다며 곧바로 텐트에서 건져낸 옷 바구니 사이에서 자신의 옷들을 찾았다. 그리고는 애나에게 옷이 이게 다냐며, 자신의 50파운드짜리 축구복이 사라졌다며, 혹시 기억이 나지 않느냐며 애나에게 물었다. 정말 머리를 망치로 맞은듯한 기분이었다. 불을 보고 놀랐던 것의 몇 배는 더한 충격이었다. 조지는 최소한 애나와 나에게 옷을 찾기 전에 Are you ok? 한마디 정도는 물어봤어야만 했다. 그 순간 그 동안 캠프 내 암묵적 룰이었던(또한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Self-organization에 대한 불만, 내 의견과 제안을 문화차이에 적응하지 못한 불평 정도로 받아들였던 조지, 리더간의 불협, 지나친 개인주의 등에 눌렸던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왔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을 결심했다. 나에게 화재의 기억과 그 잔해가 트라우마로 남기도 했지만, 그런 삭막하고 지나치게 개인주의적인 곳에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었다.
물론 좋지 않은 기억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활동 첫날, 다른 아이들이 숲에 표지판을 설치하는 사이, 나는 나무에 페인트로 표시해 둔 방향지표를 긁어냈다. 또 캠프 중반에는 Insect Hotel이라 불리는 곤충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나름의 방법으로 자연을 아끼고 위하는 활동들이 나에게는 새로웠고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이 나와 성윤이가 만든 부침개를 맛있다며 먹어줬을 때의 뿌듯함과, 어설프게 내 흉내를 내며 공깃돌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느끼는 흐뭇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내가 떠나기 전날 밤, 별이 빛났던 밤, 애나, 베르나, 성윤이와 언덕 잔디밭에 모여 앉아 돌림노래를 부르던 그날 밤은, 꽤나 로맨틱한 밤이었다.

이쯤 돼서, 어떻게 마무리를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속했던 워크캠프는, 분명 최악의 워크캠프였다. 부상자가 나오고, 화재사건에, 앰뷸런스를 2번이나 불렀으며, 리더는 잘려버린 워크캠프였다. (얼마 전 베르나한테 들은 얘기지만, 본부에서 매긴 평가지에도 우리 캠프의 평가는 최악이었단다.) 하지만 Fire Friend 애나를 비롯한 너무 좋은 친구 베르나와 성윤이를 만났고, 내가 한 학기 동안 지내게 할 독일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그리고 안좋았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명 좋은 추억이 될 거란 것을 확신한다. 그렇기에, 난 이 보고서를 읽는 당신이 누가됐건 워크캠프에 참가하길 희망한다. 다만, 큰 기대는 큰 실망을 안기게 될 지도 모르니, 내 보고서로부터 기대와 그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이다. 더불어 만약 서구의 한 캠프로 가게 된다면, 그들의 지나친 개인주의에 나처럼 상처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