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에서 시작된 뜻밖의 인연, 폰디체리
Pondicherr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새벽 02시 인도 첸 나이 공항 도착. 언제나 그랬듯 홀로 당당히 떠났다. 그리고 내가 마주하게 된 인도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고 쫓아다니는 내가 오히려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이륙한지 한 시간도 채 안되어 했던걸 보면.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바꿔준 나의 인연의 고리는 바로 그날 그때 공항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공항 앞을 서성거리는데 운 좋게 짐을 4개씩이나 가지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혼자 앉아계시던 한 중년의 인도여성분을 만나게 되었다.“Can you speak English?” “Of course”…… 그렇게 나는 Bella Rage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수다를 떨면서 긴장되었던 마음을 조금 풀어내며 연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40여분이 지났을까. Rage의 남동생이 픽업하러 나왔고 나의 사정을 듣고는 bus stand가 자신의 집에 가는 길이라며 날 데려다 주겠다고 했다. “I am so lucky to meet you guys!”를 계속 연발하며 캠프가 끝나고 꼭 다시 첸 나이로 돌아와 연락하겠다고 하고는 배웅을 받으며 Good-bye 인사를 했다……
시작이 좋았다. 그렇게 무사히 미팅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고, 캠프리더들과 지원자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외워크캠프를 시작한다는 설렘에 가득 차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완전 편하지만은 않았던 나의 마음은 인도에서의 아침을 하루, 이틀 맞이하면서 꽁꽁 얼었던 얼음이 따사로운 햇살에 녹아 시냇물이 되어 졸졸 흐르듯 바뀌어갔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매일매일을 보내면서 나 자신 또한 변해갔다. 원래도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터라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캠프에 지원했던 것이었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보살핌이 더 많이 필요한 특별한 아이들이었기에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고 그들이 지내고 있는 환경을 둘러보고 나서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최대한 도움이 될까? 과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첫 주 반을 그렇게 심적으로 버겁게 보낸 것 같다.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갔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력부족으로 한 명 한 명 모든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가능한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현지선생님들과 캠프참가자들은 2주의 기적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쳐도 지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이를 드러낸 그 순수한 웃음이 나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고 오히려 그들이 나의 엔도르핀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10시, 학교로 들어가는 골목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안띠~ 안띠~”하고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런 아이들과 우리는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그전까지는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춤을 추거나 이해하기 쉬운 공놀이, 동물 흉내 내고 맞추기 등 간단한 게임을 하고, 그 후에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텃밭을 가꾸거나, 아이들이 잠 자는 방을 청소하고 벽에 깨끗하게 페인트 칠을 했다. 사실 정신, 육체적으로 지체인 아동들을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나 위생교육을 하면 되겠구나 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일단 처음부터 아이들과, 심지어는 현지 선생님들과 의사소통부터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기에 뭔가‘교육’이라고 하기보단 함께 마음을 교류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주가 다 되어 갈 즈음엔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충분히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만한 수준이 되어있었다. 그만큼 눈빛으로 몸짓으로 우리는 소통을 했고,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어주는 것, 나를 바라봐주는 것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더 행복했다. 최소한의 생활여건, 그것조차도 사치인 환경 속에서 더욱 행복해 보이는 Baby Sarah’s home 아이들이 내 가슴속에 별이 되어 콕 박혔다.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갖고 싶어했던 나의 소유욕이, 물질만능적이었던 태도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지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정 중요한 가치의 기준이 바뀌게 되었고 영원히 그 별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공놀이를 하며, 손을 잡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었던 그 2주간의 정은 무엇보다도 끈끈했다고 믿는다. 행복의 정의는 누군가가 내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고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도와줌으로써 보답하고 싶다. 그 아이들이 그 곳에서 자라는 동안 수많은 봉사자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모두가 그 깨끗한 눈망울 속에 자리해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밝고 희망찬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시작이 좋았다. 그렇게 무사히 미팅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고, 캠프리더들과 지원자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해외워크캠프를 시작한다는 설렘에 가득 차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완전 편하지만은 않았던 나의 마음은 인도에서의 아침을 하루, 이틀 맞이하면서 꽁꽁 얼었던 얼음이 따사로운 햇살에 녹아 시냇물이 되어 졸졸 흐르듯 바뀌어갔고, 무엇보다도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매일매일을 보내면서 나 자신 또한 변해갔다. 원래도 아이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터라 기쁘고 벅찬 마음으로 캠프에 지원했던 것이었는데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보살핌이 더 많이 필요한 특별한 아이들이었기에 적응기간이 필요했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을 도와준다는 것은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고 그들이 지내고 있는 환경을 둘러보고 나서 이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최대한 도움이 될까? 과연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고 첫 주 반을 그렇게 심적으로 버겁게 보낸 것 같다. 시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갔다. 열악한 환경에서 인력부족으로 한 명 한 명 모든 아이들을 돌봐주지 못하는 상황이 정말 안타깝게 느껴졌지만 가능한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고 현지선생님들과 캠프참가자들은 2주의 기적을 이끌어내기 위해 지쳐도 지칠 수 없었다. 아이들의 맑은 눈동자와 이를 드러낸 그 순수한 웃음이 나의 빈 공간을 채워주었고 오히려 그들이 나의 엔도르핀이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오전 10시, 학교로 들어가는 골목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은 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는“안띠~ 안띠~”하고 손을 흔들며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그런 아이들과 우리는 점심시간을 기준으로 그전까지는 음악을 틀어놓고, 함께 춤을 추거나 이해하기 쉬운 공놀이, 동물 흉내 내고 맞추기 등 간단한 게임을 하고, 그 후에는 학교 가까이에 있는 텃밭을 가꾸거나, 아이들이 잠 자는 방을 청소하고 벽에 깨끗하게 페인트 칠을 했다. 사실 정신, 육체적으로 지체인 아동들을 실제로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어나 위생교육을 하면 되겠구나 라고 단순히 생각했었다. 일단 처음부터 아이들과, 심지어는 현지 선생님들과 의사소통부터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기에 뭔가‘교육’이라고 하기보단 함께 마음을 교류하는 그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주가 다 되어 갈 즈음엔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충분히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짐작할 만한 수준이 되어있었다. 그만큼 눈빛으로 몸짓으로 우리는 소통을 했고,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누군가가 자신의 옆에 있어주는 것, 나를 바라봐주는 것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나중에는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더 행복했다. 최소한의 생활여건, 그것조차도 사치인 환경 속에서 더욱 행복해 보이는 Baby Sarah’s home 아이들이 내 가슴속에 별이 되어 콕 박혔다.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더 갖고 싶어했던 나의 소유욕이, 물질만능적이었던 태도가 너무나도 부끄러워지면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진정 중요한 가치의 기준이 바뀌게 되었고 영원히 그 별은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공놀이를 하며, 손을 잡고, 안아주고 쓰다듬어주었던 그 2주간의 정은 무엇보다도 끈끈했다고 믿는다. 행복의 정의는 누군가가 내려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준 아이들에게 너무나도 감사하고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을 도와줌으로써 보답하고 싶다. 그 아이들이 그 곳에서 자라는 동안 수많은 봉사자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할 것이다. 모두가 그 깨끗한 눈망울 속에 자리해있을 것이기 때문에 더욱 밝고 희망찬 세상이 오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