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앙카라, 벽화로 마음을 잇다
WITH MENTAL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사실 워크캠프는 우리누나의 권유로 시작되었다. 나는 6개월간의 중장기여행을 준비 중이였다. 그 사이 다양한 체험을 알아보던 나는, 예전에 누나가 이태리에서 워크캠프를 했던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정을 마추다보니. 터키 앙카라에서 하는 GEN-07, 주제는 정신지체 아이들과 학교에서 벽화를 그리며 그들의 사회성을 길러주고 지역사회에서 교류를 하는 뭐 그런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터키로 가기전 미리 연락했던, 한국인 캠퍼와 연락을 주고 받아 우리는 같이 이스탄불에 들어갔다. 다음날 genctur 사무실에서 우리는 모든 캠퍼를 만났고 그들은 멕시코, 캐나다, 그루지아에서 온 친구들이였다. 우리는 그날로 캠프가 열리는 앙카라로 떠났다. 모두들 엄청난 기대를 품고 우리는 야간 버스에서 잠들었다. 앙카라에 도착하니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2명의 학교 선생님들이 동참했다. 우리는 개최지인 학교로 갔다. 거기서 우리의 캠프리더를 만났다. 하지만 곧 우리는 우리의 워크캠프 프로그램이 Farmhouse 공사로 바뀌었다는 말을 들었다. 사실 약간 불안했지만. 누구를 도우러 와서 일을 가리는거는 아니라는 생각에 우리 모두 OK를 외치고 Farmhouse로 떠났다. 이것이 우리의 2주동안 숙소가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하니 어느시골에 폐가(?) 비슷한 곳으로 도착했다. 이곳이 우리가 묶을 숙소며 고칠 장소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농담을 하는지 알았다. 뭐 결국 그곳이 숙소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바로 화장실을 수리하고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페인트칠도 하고 외부 때도 없애고 침대도 설치하고 몸은 고단하지만 우리가 묶을 장소니까 깨끗이 깨끗이 마인드로 5명이 힘을 합쳐 어느정도 사람 살 정도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2명의 캠프리더가 있었다. 사실 처음에 정해진 캠프리더는 그 학교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선생님이였다, 하지만 그분은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와 같이 생활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우리 캠프에 가장 큰 문제점인거 같았다. 그분대신 온 2명의 선생님은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고, 우리는 의사소통에 문제점을 느꼇다. 하지만 초반에는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오픈마인드이고 다른 문화를 체험한다는 대의적 명분아래 이것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바뀐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했고, 정확한 계획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답답햇고 그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원래의 캠프리더에게 전화를 통해서 우리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직접적인 의사소통인 아닌 3자를 낀 의사소통으로 인해 답답했다. 또한 급작스럽게 바뀐 프로그램과 그들의 첫번째 워크캠프이기 때문에 명확한 스캐줄이 없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고, 그들이 알려준 일을 대충하고 저녁을 하고 잘 뿐 이었다. 이 공사가 어디에 쓰이는지, 누굴을 위해서 하는건지, 내일은 무엇을 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채 그냥 아침에 그들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였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모든 문제는 확실한 캠프리더의 부재에서 온듯하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서로가 오해를 하고 남에 생각을 상상하게 되니, 일이든 캠프 생활이든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불굴의 캠퍼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 타냐 기오, 산드라, 수빈 그리고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중 1~2번 가는 지체장애학교로 가서 그곳에 친구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가졌다.
그들에게 우리는 최초의 외국인이였다. 비록 어디 한부분 부족하고 힘든 친구들이긴 하지만, 그들은 내가 6개월간 만난 그 누구보다 나를 배려해주고 친절했다. 그러한 모습에서 사회에 너무나 물들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또한 우리는 캠퍼들은 우리가 스스로 쇼핑을하여 자국음식을 뽐내었다. 나는 기오라는 그루지아 친구가 해준 낑깔리라는 그루지아 음식이 가장 기억에남는다. 마치 우리나라 만두와 비슷한데 음…훨씬 만두피가 두껍고, 육즙이 나오는게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우리는 양념갈비소스를 이용해서 찜닭을 만들었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무슬림의 영향 때문에 치킨을 사용했다. 아 참고로 터키는 무슬림 국가이다.
하지만 대인기는 주메뉴인 찜닭보단 김!!! 내 친구들은 퐌타스틱을 연발하면 신기해하였다.
중간 중간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 의한 마찰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갔다. 갈등이후에는 더욱 끈끈해지고 우리는 캠프이후 이스탄불을 같이 여행하며 우정을 다졌다.
비록 워크캠프리더의 부재, 정확하지않은 프로그램등으로 인해 불만이 많았던 우리였지만, 그런 불만을 서로 토로하다 보니 캠퍼들간에 더욱더 정이 들었던거 갔고, 터키이후에 난 인도여행을 갔는데 이미 최악의 숙소를 경험해서 인도 적응에 도움을 주었고, 대화를 많이하다보니 타국의 문화를 더 이해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꼭 나쁜점이 나쁜점은 아니였던거 같다. 이제 끝난지 거의 2달이 다되어가고, 항상 캠프중 불만이 많았던 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미소를 지을수 있었던 유쾌한 추억 중 일부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국제워크캠프기구에 감사드리며, 다음번에는 조금더 세심한 프로그램에 대한 배려로 다음 참가자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30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하니 어느시골에 폐가(?) 비슷한 곳으로 도착했다. 이곳이 우리가 묶을 숙소며 고칠 장소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농담을 하는지 알았다. 뭐 결국 그곳이 숙소였지만 말이다.
우리는 바로 화장실을 수리하고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페인트칠도 하고 외부 때도 없애고 침대도 설치하고 몸은 고단하지만 우리가 묶을 장소니까 깨끗이 깨끗이 마인드로 5명이 힘을 합쳐 어느정도 사람 살 정도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2명의 캠프리더가 있었다. 사실 처음에 정해진 캠프리더는 그 학교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는 선생님이였다, 하지만 그분은 가정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와 같이 생활을 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것이 우리 캠프에 가장 큰 문제점인거 같았다. 그분대신 온 2명의 선생님은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고, 우리는 의사소통에 문제점을 느꼇다. 하지만 초반에는 문제가 없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오픈마인드이고 다른 문화를 체험한다는 대의적 명분아래 이것도 즐기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바뀐 프로그램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했고, 정확한 계획을 요구했지만 그들은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답답햇고 그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서 결국 원래의 캠프리더에게 전화를 통해서 우리는 의견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직접적인 의사소통인 아닌 3자를 낀 의사소통으로 인해 답답했다. 또한 급작스럽게 바뀐 프로그램과 그들의 첫번째 워크캠프이기 때문에 명확한 스캐줄이 없었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 아침밥을 해먹고, 그들이 알려준 일을 대충하고 저녁을 하고 잘 뿐 이었다. 이 공사가 어디에 쓰이는지, 누굴을 위해서 하는건지, 내일은 무엇을 해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채 그냥 아침에 그들이 오기를 기다릴 뿐이였다. 내 생각에는 이러한 모든 문제는 확실한 캠프리더의 부재에서 온듯하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서로가 오해를 하고 남에 생각을 상상하게 되니, 일이든 캠프 생활이든 순조롭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불굴의 캠퍼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 타냐 기오, 산드라, 수빈 그리고 나는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주중 1~2번 가는 지체장애학교로 가서 그곳에 친구들과 정신적인 교감을 가졌다.
그들에게 우리는 최초의 외국인이였다. 비록 어디 한부분 부족하고 힘든 친구들이긴 하지만, 그들은 내가 6개월간 만난 그 누구보다 나를 배려해주고 친절했다. 그러한 모습에서 사회에 너무나 물들어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를 삼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
또한 우리는 캠퍼들은 우리가 스스로 쇼핑을하여 자국음식을 뽐내었다. 나는 기오라는 그루지아 친구가 해준 낑깔리라는 그루지아 음식이 가장 기억에남는다. 마치 우리나라 만두와 비슷한데 음…훨씬 만두피가 두껍고, 육즙이 나오는게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돈다. 우리는 양념갈비소스를 이용해서 찜닭을 만들었다. 돼지고기를 못 먹는 무슬림의 영향 때문에 치킨을 사용했다. 아 참고로 터키는 무슬림 국가이다.
하지만 대인기는 주메뉴인 찜닭보단 김!!! 내 친구들은 퐌타스틱을 연발하면 신기해하였다.
중간 중간 우리는 문화적 차이에 의한 마찰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그들을 이해하고 대화를 통해서 풀어나갔다. 갈등이후에는 더욱 끈끈해지고 우리는 캠프이후 이스탄불을 같이 여행하며 우정을 다졌다.
비록 워크캠프리더의 부재, 정확하지않은 프로그램등으로 인해 불만이 많았던 우리였지만, 그런 불만을 서로 토로하다 보니 캠퍼들간에 더욱더 정이 들었던거 갔고, 터키이후에 난 인도여행을 갔는데 이미 최악의 숙소를 경험해서 인도 적응에 도움을 주었고, 대화를 많이하다보니 타국의 문화를 더 이해할수 있었다는 점에서 꼭 나쁜점이 나쁜점은 아니였던거 같다. 이제 끝난지 거의 2달이 다되어가고, 항상 캠프중 불만이 많았던 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미소를 지을수 있었던 유쾌한 추억 중 일부이다.
이런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국제워크캠프기구에 감사드리며, 다음번에는 조금더 세심한 프로그램에 대한 배려로 다음 참가자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