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ISSOIRE, 설렘 안고 떠난 첫 워크캠프
NATURE RESERVE ≪ ROCHER DE LA JAQUETTE ≫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7월16일 걱정을 한 가득 들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비행기에서 옆자리 앉은 한국인 학생. 혼자여행하는 것 같아서 말을 붙여보니 워크캠프가는 친구!!! 서로 얘기도하고 워크캠프 끝나면 파리에서 꼭 보자는 약속을 하고 우리는 프랑스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하였다. 혼자서 미팅포인트까지가 가는 것이 너무 걱정이돼 파리에서 하루묵고 캠프 전날은 Clermont-ferrand에서 하루 또 묵기로 하였다.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미팅시간은 오후5시…12시에 체크인을하고 Clermont-ferrand구경하고 기차타고 30분도 안걸렸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어째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몇 명 어리둥절 있는 친구들이 워크캠프가는 것 처럼 보이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리더가 오고 몇 명의 친구들이 더 왔다. 러시아에서온 Natalya는 먼저 어디서 왔는지 물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모인 친구들과 함께 캠프장소로 갔다. 캠프장소는 ISSOIRE역에서 좀 떨어진 산속이었다. 인포싯을 어기고 캐리어를 들고 간 나는 우리 텐트있는 곳까지 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는 그래도 숙식을 할 수 있는 건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텐트였다.
첫날은 서로 어색하기도하였지만 Natalya는 이미 캠프도 먼저 해보았고 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하였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식사를 하며 서로 소개도하였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고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힘들기도 했다. 모두 유럽에 속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라 서로 문화도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아 친구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만 있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첫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 이런 곳에서 자는 것은 처음이었고 너무 추웠다. 나와 같은 텐트속에서 지낸 Valerina는 단단히 무장을 하고왔다. 대부분 친구들이 두꺼운 침낭과 여분의 이불까지 준비하고 왔지만 나는 전혀 이런 추위를 기대하지 못하였다. 첫날은 샤워실과 화장실이 다 완성되지 못해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이튿 날 까지도 우리는 씻지 못하였다. 둘째날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마져 짓기로 하였다. 이런일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다. 남자친구들이 정말 애썼다. 둘째 날에는 샤워실과 화장실도 어느정도 마무리를 하고 식사당번, 설거지당번 등 스케줄을 짰다. 다음날은 Lionel이 와서 등산을 하며 곤충, 식물, 나비등에 설명도 해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첫 주말에는 또 등산이다. 사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 가기도 싫었지만 이런데 까지 와서 싫다는 이유만으로 빠지기 싫어서 등산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작은 폭포를 보고 온 후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먹었다. 먹은 후 몇 명 친구들은 올라 가지 않고 밑에서 기다리고 나머지는 산 정산까지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명이 뒤쳐지면 다른 친구가같이 올라가주는데 여기선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등산에선 조금 힘들기도 하였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따라가기엔 내가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역시 등산은 정상을 가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자연의 모습. 등산화를 준비한 친구들에 비해 나는 일반운동화를 신었는데 일하고 등산할 때마다 후회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우리는 일을 시작하였다. 우리의 일은 나무 잘라내기. 가시가 많은 나무들의 가지를 잘라내고 나무를 베다 보니 팔 다리에 상처가 많이 남았다. 우리는 영광의 상처라며 상처 날 때 마다 아파하기보단 자랑스러워 했다. 점점 자연속에서의 삶도 적응해가고 친구들과도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작은 마을 축제가 있어서 우리 채소들도 가져가서 공연도보고 다같이 soup도 끓여 마시고 피자도 사먹었다. 이런 시골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은 나 혼자 이다보니 다들 신기해 하는 모습이었다. 직접 피자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하였다. 나름 축제라고 가져온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리스 리더evi가 나는 없는데 하고 슬퍼 하길래 내가 하나 더 있어서 빌려줬더니 이래서 자기는 한국인을 좋아한다면서. 그러나 마을축제를 즐기다보니 너무 추워졌고 우리의 원피스로는 더 즐길 수가 없어 텐트로 돌아오고 다른 친구들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가서 축제를 마져 즐겼다. 또 다른 축제도 있었다. 바로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이다. 독립영화제 같은 축제 같았다. 대부분의 영화가 60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자막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보니 영화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우리는 또한 이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하였다. 여기서는 기자분이 오셔서 한국인인 나와 우크레이나 Andrii를 인터뷰하셔서 다음날 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하였다. 하지만 그 닥 할 일이 없어 거의 영화를 많이 봤다. 그 축제를 주최하던 분 중 한 분은 대만출신이셨는데 한국인은 아니지만 아시아인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3일내내 이 축제에 와서 영화를 보고 싸가지고 간 음식들도 먹고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잔디밭에 누워서 자기도 하였다.
점점 얼굴, 팔, 다리는 까매져 갔다. 심심할까봐 여러가지 게임기구를 가지고 갔지만 전혀 필요가 없었다. 항상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딜가나 유행어는 생기는 것 같다. 핸드폰 속 뽀로로 사진을 보고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하니까 Evi와 Simon은 너무 좋아 하였다. 그 이후로 우리의 신은 뽀로로가 되었다. 무얼 하든 뽀로로!! 외치곤 하였다. 내가 음식당번을 하는 날에는 한국음식을 선보였다. 항상 파스타, 빵, 오믈렛등을 먹다가 새로운 소스 향이 나자 모두들 몰려들기 시작했다. 불고기소스를 가져가 고기가 없어 야채와 볶고 밥과 짜파게티를 먼저 요리했는데 너무 좋아 하였다. 특히 불고기소스!! 다들 너무 좋아했다. 그날은 소주도 함께 나눠 마셨는데 우리나라에서 하는 병뚜껑으로 하는 게임도 하고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너무 더워서 샤워실에서 씻기가 너무 불편해 계곡가서 씻기도 하였다.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우리는 벌써 5일 밖에 남지 않았었다. 마지막이라고 작은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 하루는 우리 캠프 관련 되는 분들 모두 모여서 파티를 했다. 이 날에는 영화축제 주최했던 대만분과 남편분도 왔다. Lionel은 우리에게 선물도 주었다. 꿀, 작은 술, 지도, 책, 연필, 과자. 우리는 너무 좋아 지도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각자 국기를 주고 지도에 꽂기도 하였지만 잘 꽂히지 않아 소개만 하였다. 여기서 가져온 지도에 sea of Japan이라 해서 내가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때 애국심발동! Lionel은 음식들도 많이 준비해와서 다같이 술과 음식을 즐기며 많은 얘기를 하였다. 특히 이 날 대만 여자분과 얘기를 많이 하였다. 나와 같은 전공을 공부하고 관련 일을 하고 계시고 미국에서도 일을 하고 오셔서 나에게 도움되는 얘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그분들도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다음날 점심에는 파전을 해 주었다. 간장이 별로 없어 고추장과 설탕, 식초, 물을 타서 소스로 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였다. 칠리소스 같다며 빵이 부어 먹기도 해서 깜짝 놀랐다. 스페인에서 온 Andrian은 하루 일찍 가야했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는데 울컥했지만 잘 참고 인사를 하고 떠난 뒤에 다 같이 껴안고 울기도 하였다. 나는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2주동안 같이 생활한 것만으로도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내일이면 우리도 헤어지는데 라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 마지막 밤은 끝이 나질 않았다. 이 날은 다같이 모닥불 옆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도 하였다. 와인은 2주동안 빠지질 않았다. 처음엔 술을 잘 못 마셔 안마셨는데 하루 마시다 보니 술기운에 따뜻해져서 잠자는 데 효과적이라 맨날 마셨다. 마지막밤 우리의 부엌(?)과 식당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날 아침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역시나…눈물이… 다들 정말 정이 많이들었나보다. 울면서 작별인사를 했는데 모두들 없는 좌석 만들어 차에 올라 기차역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Nina, Andrii, Simon, Evi는 파리에 와서 다음날 같이 파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나와 Gin, Alexandra, Nicola와 같이 기차를 타고 우리는 떠났다.
처음에 왜 많은 걱정을 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면서 2주동안 불편했지만 나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다. 자연속에서 살면서 그 동안 우리가 너무 기계속에 파묻혀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없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붙잡고 살았던 것 같다. 한번 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와서 이번 여름방학이 너무 뿌듯하다.
기차역에 도착하니 어째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몇 명 어리둥절 있는 친구들이 워크캠프가는 것 처럼 보이고 하였다. 조금 기다리니 리더가 오고 몇 명의 친구들이 더 왔다. 러시아에서온 Natalya는 먼저 어디서 왔는지 물으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리고 모인 친구들과 함께 캠프장소로 갔다. 캠프장소는 ISSOIRE역에서 좀 떨어진 산속이었다. 인포싯을 어기고 캐리어를 들고 간 나는 우리 텐트있는 곳까지 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는 그래도 숙식을 할 수 있는 건물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텐트였다.
첫날은 서로 어색하기도하였지만 Natalya는 이미 캠프도 먼저 해보았고 해서 어색한 분위기를 깨려 하였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식사를 하며 서로 소개도하였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이고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힘들기도 했다. 모두 유럽에 속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이라 서로 문화도 비슷하고 공통점이 많아 친구들이 하는 대화를 듣고만 있을 때도 많았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첫날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하였다. 이런 곳에서 자는 것은 처음이었고 너무 추웠다. 나와 같은 텐트속에서 지낸 Valerina는 단단히 무장을 하고왔다. 대부분 친구들이 두꺼운 침낭과 여분의 이불까지 준비하고 왔지만 나는 전혀 이런 추위를 기대하지 못하였다. 첫날은 샤워실과 화장실이 다 완성되지 못해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었다. 이튿 날 까지도 우리는 씻지 못하였다. 둘째날은 화장실과 샤워실을 마져 짓기로 하였다. 이런일을 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몰랐다. 남자친구들이 정말 애썼다. 둘째 날에는 샤워실과 화장실도 어느정도 마무리를 하고 식사당번, 설거지당번 등 스케줄을 짰다. 다음날은 Lionel이 와서 등산을 하며 곤충, 식물, 나비등에 설명도 해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첫 주말에는 또 등산이다. 사실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써.. 가기도 싫었지만 이런데 까지 와서 싫다는 이유만으로 빠지기 싫어서 등산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작은 폭포를 보고 온 후 싸가지고 온 음식들을 먹었다. 먹은 후 몇 명 친구들은 올라 가지 않고 밑에서 기다리고 나머지는 산 정산까지 올랐다. 우리나라에서는 한 명이 뒤쳐지면 다른 친구가같이 올라가주는데 여기선 전혀 그런 것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 등산에선 조금 힘들기도 하였다. 등산을 좋아하는 친구들을 따라가기엔 내가 너무 버거웠다. 하지만 역시 등산은 정상을 가야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자연의 모습. 등산화를 준비한 친구들에 비해 나는 일반운동화를 신었는데 일하고 등산할 때마다 후회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우리는 일을 시작하였다. 우리의 일은 나무 잘라내기. 가시가 많은 나무들의 가지를 잘라내고 나무를 베다 보니 팔 다리에 상처가 많이 남았다. 우리는 영광의 상처라며 상처 날 때 마다 아파하기보단 자랑스러워 했다. 점점 자연속에서의 삶도 적응해가고 친구들과도 친해지기 시작하였다. 중간에 작은 마을 축제가 있어서 우리 채소들도 가져가서 공연도보고 다같이 soup도 끓여 마시고 피자도 사먹었다. 이런 시골에서 유일한 아시아인은 나 혼자 이다보니 다들 신기해 하는 모습이었다. 직접 피자만드는데 참여하기도 하였다. 나름 축제라고 가져온 원피스를 입었는데 그리스 리더evi가 나는 없는데 하고 슬퍼 하길래 내가 하나 더 있어서 빌려줬더니 이래서 자기는 한국인을 좋아한다면서. 그러나 마을축제를 즐기다보니 너무 추워졌고 우리의 원피스로는 더 즐길 수가 없어 텐트로 돌아오고 다른 친구들은 옷을 갈아입고 다시 가서 축제를 마져 즐겼다. 또 다른 축제도 있었다. 바로 International film festival이다. 독립영화제 같은 축제 같았다. 대부분의 영화가 60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자막은 프랑스어로 되어 있다 보니 영화를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었다. 우리는 또한 이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하기도하였다. 여기서는 기자분이 오셔서 한국인인 나와 우크레이나 Andrii를 인터뷰하셔서 다음날 이 지역 신문에 실리기도하였다. 하지만 그 닥 할 일이 없어 거의 영화를 많이 봤다. 그 축제를 주최하던 분 중 한 분은 대만출신이셨는데 한국인은 아니지만 아시아인을 만나니 너무 반가웠다. 3일내내 이 축제에 와서 영화를 보고 싸가지고 간 음식들도 먹고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잔디밭에 누워서 자기도 하였다.
점점 얼굴, 팔, 다리는 까매져 갔다. 심심할까봐 여러가지 게임기구를 가지고 갔지만 전혀 필요가 없었다. 항상 웃음꽃이 피어났다. 어딜가나 유행어는 생기는 것 같다. 핸드폰 속 뽀로로 사진을 보고 아이들의 대통령이라고 하니까 Evi와 Simon은 너무 좋아 하였다. 그 이후로 우리의 신은 뽀로로가 되었다. 무얼 하든 뽀로로!! 외치곤 하였다. 내가 음식당번을 하는 날에는 한국음식을 선보였다. 항상 파스타, 빵, 오믈렛등을 먹다가 새로운 소스 향이 나자 모두들 몰려들기 시작했다. 불고기소스를 가져가 고기가 없어 야채와 볶고 밥과 짜파게티를 먼저 요리했는데 너무 좋아 하였다. 특히 불고기소스!! 다들 너무 좋아했다. 그날은 소주도 함께 나눠 마셨는데 우리나라에서 하는 병뚜껑으로 하는 게임도 하고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너무 더워서 샤워실에서 씻기가 너무 불편해 계곡가서 씻기도 하였다.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다. 우리는 벌써 5일 밖에 남지 않았었다. 마지막이라고 작은 레스토랑에 가서 저녁을 먹기도 하고 하루는 우리 캠프 관련 되는 분들 모두 모여서 파티를 했다. 이 날에는 영화축제 주최했던 대만분과 남편분도 왔다. Lionel은 우리에게 선물도 주었다. 꿀, 작은 술, 지도, 책, 연필, 과자. 우리는 너무 좋아 지도를 들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각자 국기를 주고 지도에 꽂기도 하였지만 잘 꽂히지 않아 소개만 하였다. 여기서 가져온 지도에 sea of Japan이라 해서 내가 잘 못된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이 때 애국심발동! Lionel은 음식들도 많이 준비해와서 다같이 술과 음식을 즐기며 많은 얘기를 하였다. 특히 이 날 대만 여자분과 얘기를 많이 하였다. 나와 같은 전공을 공부하고 관련 일을 하고 계시고 미국에서도 일을 하고 오셔서 나에게 도움되는 얘기들을 많이 해 주셨다. 그분들도 우리에게 선물을 주셨다. 다음날 점심에는 파전을 해 주었다. 간장이 별로 없어 고추장과 설탕, 식초, 물을 타서 소스로 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였다. 칠리소스 같다며 빵이 부어 먹기도 해서 깜짝 놀랐다. 스페인에서 온 Andrian은 하루 일찍 가야했다. 우리는 작별인사를 하는데 울컥했지만 잘 참고 인사를 하고 떠난 뒤에 다 같이 껴안고 울기도 하였다. 나는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2주동안 같이 생활한 것만으로도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내일이면 우리도 헤어지는데 라는 생각에 너무 슬펐다. 마지막 밤은 끝이 나질 않았다. 이 날은 다같이 모닥불 옆에 모여 와인을 마시며 이런 저런 얘기도 하였다. 와인은 2주동안 빠지질 않았다. 처음엔 술을 잘 못 마셔 안마셨는데 하루 마시다 보니 술기운에 따뜻해져서 잠자는 데 효과적이라 맨날 마셨다. 마지막밤 우리의 부엌(?)과 식당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날 아침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일찍부터 서둘렀다. 역시나…눈물이… 다들 정말 정이 많이들었나보다. 울면서 작별인사를 했는데 모두들 없는 좌석 만들어 차에 올라 기차역까지 배웅해주었다.
그리고 Nina, Andrii, Simon, Evi는 파리에 와서 다음날 같이 파리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나와 Gin, Alexandra, Nicola와 같이 기차를 타고 우리는 떠났다.
처음에 왜 많은 걱정을 했을까 하는 후회도 들면서 2주동안 불편했지만 나에게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된 것 같다. 자연속에서 살면서 그 동안 우리가 너무 기계속에 파묻혀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없이도 이렇게 잘 살 수 있는데 우리는 너무 붙잡고 살았던 것 같다. 한번 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하고 와서 이번 여름방학이 너무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