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터키, 낯선 친절이 건넨 용기

작성자 김경하
터키 GEN-17 · RENO 2012. 07 kocaile

VILLAGE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방학이 시작되고 출국일만을 기다리다가 드디어 터키로 떠나는 날, 마침 비행기 옆 자리도 비어서 편히 터키에 도착할 수 있었다. 터키의 첫 인상은 친절 이였다. 지도만 들고 서 있어도 도움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길을 물어보면 같이 가주겠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룻밤을 이스탄불에서 자고 다음날 트램을 타고 사무실에 찾아갔다. 탁심이라는 우리나라의 명동같은 곳에 위치해 있어 금방 찾아갈 수 있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간단한 활동 동영상을 보고 각자 자기소개 후, 교통비를 내고 트램을 타고 배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Izmit에 도착했다. 세르비아에서 온 친구들이 늦게 와서 우린 다섯 시간이나 그 친구들을 기다렸고 다시 버스를 타고 Kocaile라는 시골마을에 도착했다. 이슬람문화가 기반인 이 곳에서 여자는 카페에 들어갈 수 없으며 너무 짧은 옷을 입을 수 없었다. 라마단기간이여서 낮에는 모두들 금식 심지어 물도 마실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길에서 물 등을 마실 수 없없다. 음식을 먹는다고 죄가 되는 건 아니지만, 먹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먹는 것은 무례한 일이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기 위해 우리도 길거리에서는 먹지 않기로 했다. 숙소는 2층으로 되어서 2층은 여자가 3층은 남자가 쓰기로 했다. 다음 날 학교로 가서 교장선생님을 뵙고 우리가 할 일에 대해 들었다. 도서관 정리, 교실청소, 학교 안,밖으로 폐인트 칠하기, 담벼락, 교실 벽, 학교 바닥에 그림 그리기, 나무 심기가 우리의 주요 할 일 이었다.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해야했다. 하지만 아침에 가서 간단한 게임 후, 일을 시작하고 점심 먹고, 게임 그리고 휴식시간이 있어서 일을 힘들지는 않았다. 가장 힘든 일은 외벽 폐인트를 벗겨내는 일이었다. 덥기도 하고 벗겨내는 칼에 손이 베이기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나무 심기와 국기 그리기였다. 나무에 자기 이름을 붙여서 심을 수 있어서, 일을 마무리하고 내 이름도 남길 수 있어서 큰 의미로 다가왔다. 마지막 날의 일은 학교 담벼락에 국기를 그리는 일 이었다. 다들 우리나라 국기를 신기해 하고 예쁘다고 해주어서 기분이 좋았고, 몇몇 친구들은 우리나라 가운데 문양이 폡시라고 놀리기도 하고 각 문양의 의미를 궁금해 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학교 바닥에는 체스 판, 무지개, 구구단, 환영합니다라는 문구를 각 나라별 글자로 쓰기도 하고 학교 교실 벽에는 스누피, 스폰지밥 등 캐릭터를 그려서 교실을 꾸몄다. 일 시작 전, 게임으로 마니또를 했다. 각자 이름이 쓰여진 봉투를 학교 벽에 붙여놓고 자기 마니또에게 초콜렛 또는 편지를 넣기도 하고 아님 다른 친구에게 편지를 쓸 수 도 있었다. 내 마니또는 프랑스에서 온 아델이라는 친구였다. 이 게임을 통해서 아델과 많이 친해지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 둘다 일찍일어나고 걷는 것을 좋아해서 산책을 많이 다녔다. 마니또가 아니였다면, 몰랐을 텐데 관심을 가지다보니 나와 비슷한 점이 많은 친구였다. 프랑스에서 온 자비라는 친구와는 봉투에 서로 쪽지로 장난을 주고 받다가 친해지게 되었다. 마니또 게임은 어색함을 풀어주는데 매우 좋은 게임이였다. 일을 끝나면 모두들 바다에 놀러갔다. 파도가 높아서 파도타거나 선탠을 했다. 점심과 저녁은 터키 아주머니께서 해주셨다. 저녁은 우리가 할 때도 있었다. Spain night, Korean night 등등 이렇게 주제를 정해서 각 나라 요리를 저녁으로 만들고 각자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였다. 우리는 닭도리탕, 김밥, 감자전, 화채를 했다. 친구들이 김밥을 직접말았는데 너무 좋아하고 음식도 다 잘 먹어 주어서 뿌듯했다. 가끔 피곤한 날은 바다에 가지 않고 숙소에 남아 있으면 아주머니가 저녁을 하러 오셔서 그때마다 아주머니를 도와 드렸다. 마을에 사는 여자들은 모두 머리에 스카프를 써서 머리를 가려야 하는데, 아주머니가 스카프를 가져오셔서 나를 씌어주고 같이 빵도 만들고 파스타도 만들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정말 소중한 경험이였다. 아주머니 딸 후메이라는 우리 숙소에 자주 놀러왔다. 역시 말은 안통하지만, 손짓발짓으로 애기를 나누었다. 마을축제에도 같이가고 바다에 가서도 놀았다. 마을 아이들도 매우 살가워서 밖에 나가면 아이들에게 둘러 싸였다. 한 여자아이는 영어를 매우 잘해서 이 아이가 통역을 해주었다. 마을에 이장님께서는 매일 학교로 유기농 자두 땅콩 등을 간식거리를 가지고 오셨다. 카폐 주인할아버지께서는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만 공짜로 차이를 주시기도 하셨다. 저녁을 먹고 우리는 또 바다로 가서 맥주도 마시며 게임도 하고 애기도 나누었다. 시골이여서 그런지 하늘에서 별이 쏟아지고 별똥별도 볼 수 있었다.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이였다. 바다 모래사장에 누워서 별도 보고 애기도 하고 음악도 듣고 너무 아름답고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간이였다. 자유시간이 이틀이 있었다. 주말이라고 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쉬고싶은 날을 정해서 이틀을 쉬었다. 하루는 Izmit에 가서 점심을 먹고 항구에서 놀다가 쇼핑센터를 구경하고 왔고 하루는 보트를 타기로 했는데 포획이 금지된 기간이여서 아예 배 출항이 되지 않아서 그냥 숙소, 바다에서 쉬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마을사람들도 너무 친절하시고 같이 일했던 친구들도 착해서 좋은 추억으로 남을 캠프였다. 하지만. 우리 캠프에도 문제가 있었다. 우리 캠프의 리더가 자기 역할을 잘 수행해내지 못한 것 같다. 대부분의 친구들도 리더는 좋은 사람이지만, 좋은 리더는 아니야 라는 말들을 했다. 예를 들어 일을 할 때도 일 분담을 정확히 해주어야 하는데 오늘 이런일들 할꺼야 라고 말하고 분담해 주지 않아서 좀 어려운 일들은 사람이 부족해서 늦게 끝나거나 그 날에 다 마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9시에 아침을 먹고 10시까지 학교로 가기로 약속했지만, 몇 일이 지나자 리더가 늦잠을 자기 시작해 학교에 11시 까지 가기도 하고 10시 까지 가기도 하고 우리 계획이 리더의 기상시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싫었다. 리더는 자기 터키 친구들을 초대해 터키친구들을 우리에게 소개 시켜주지도 않고 우리 숙소에서 자고 식사도 같이하고 학교에 와서 놀다 갔다. 나중에는 대체 어떤 터키사람이 우리의 캠프 일원인지 알 수 없어서 리더에게 터키친구들을 소개 시켜달라고 했다. 리더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친구들이며 우리를 돕기 위해 왔다고 했지만, 도움을 받은 기억이 없다. 친구들은 one day one Turkish 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 터키친구들은 일하지 않고 놀고 있는 것에 대해 화난 스폐인 친구와 리더간에 다툼이 있기도 했다. 숙소에서 세르비아 친구의 돈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했지만, 리더는 알겠다고 한 뒤,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캠프 후반에는 물도 제공되지 않고 아제르바이젠 night를 위해 식재료를 사야 됬지만, 돈이 없다고 해서 아제르바이젠night는 할 수 없었다. 캠프를 통해서 리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 인지 느끼게 되었다. 리더에 관한 문제 빼고는 정말 좋은 캠프였다. 캠프 일원모두가 다들 친절하고 살가워서 모두 잘 지낼 수 있었고, 캠프가 끝난 후 대부분이 이스탄불에 남아있어서 이스탄불에서 저녁도 같이 먹고 여행도 같이하고 정말 꿈 같은 날들이였다. 좋은 추억도 만들고 좋은 여행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여서 다음 겨울에도 또 워크캠프에 참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