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파견, 프랑스에서 나를 찾다

작성자 허은상
프랑스 CONC 043 · RENO 2012. 08 ESCUROLLES

ESCUROLLES - BASSIN DE GANNAT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본인이 스스로 워크캠프 참가 동기를 가지고 신청해서 참가한 보통의 다른 지원자들과는 달리 나는 ‘대학파견’이라는 명목 하에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평소에 봉사활동에는 큰 관심이 없었던 나는 워크캠프 참가 전에 참석했던 오리엔테이션에서 건물이 아니라 텐트에서 침낭을 깔고 자야 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제대로 씻지도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경악했었다. 흔히들 말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마냥 곱게 자라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처음 보는 사람들과 (그것도 외국인들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3주씩이나 생활하는 데에 아무런 거부 반응도 일으키지 않을 만큼 강하게 자라지는 않은지라 프랑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파리에서 베이스 캠프까지 가는 기차표 값이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나의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갔다.
8월 3일, 같은 캠프로 배정받은 한국인 친구와 나는 베이스 캠프인 ‘GANNAT’역에 5시 20분쯤에 도착했는데 작은 시골 마을의 기차역 안에는 역무원도 이미 퇴근한 상태였고 마을 주민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팅 시간이 5시 30분이었기에 기차에서 내리면 같은 캠프에 배정받은 참가자들을 바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우리는 적잖이 당황했었다. 우리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역 안으로 한 명의 여자 아이가 캐리어를 끌고 들어와 벤치에 앉았다. 서로 마주보고 앉아 눈치를 살피던 나와 내 친구는 먼저 다가가 영어로 혹시 워크캠프에 참가하려고 왔느냐고 물었고,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옴과 동시에 우리가 ‘낙오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에 환호를 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러시아에서 온 ‘Masha’와의 첫 만남이었다.
Masha가 캠프 리더에게 전화를 걸어서 마을 이장님과 한국인 참가자 오빠가 우리를 데리러 온 덕분에 앞으로 3주 동안 지내게 될 숙소가 있는 ESCUROLLES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온 리더인 Maria와 프랑스식(싸바)으로 인사를 나누고 숙소를 소개받은 뒤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다른 참가자들이 이미 잔디밭에 텐트를 치고 있는 곳으로 가서 통성명을 하고 텐트 치는 것을 도왔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놀러 가면 항상 어른들이 텐트를 쳐줄 때까지 기다리기만 했기에 내 손으로 직접 텐트를 치는 건 처음이었는데 직접 해보니까 너무 힘들었다.
우리는 텐트에 침낭을 깔고 잤으며, 취사나 샤워 같은 일상생활은 마을 축구경기장 탈의실에서 해결했다. 화장실은 총 3칸이었는데 1칸만 제대로 작동하고 나머지 2칸은 망가진 상태였으며 남녀공용이었다. 샤워실 벽면은 곰팡이가 잔뜩 피어있었고 주방을 포함한 건물의 모든 천장은 온통 거미줄로 뒤덮여있어서 내가 여태껏 보아온 환경 중에 가장 위생상태가 최악이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3주 동안 생활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저 막막하고 눈 앞이 캄캄했다.
하루 일과는 언제나 비슷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시리얼과 바게트로 아침 식사를 때우고 바로 근처 교회로 나가 돌담 사이사이의 시멘트를 망치와 정으로 일일이 깨내야 했다. 테크니컬 리더가 시범을 보여줄 때에는 쉬워 보였는데 막상 해보니 망치가 너무 무거워서 하루 일하고서는 온 몸의 근육이 뭉치고 손에 물집이 잡혔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에 무조건 6시간을 일해야 한다는 소리에 절망했는데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면서 하다 보니 작업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금방 지나갔다. 첫 날에는 저 많은 작업량을 언제 다 끝내나 하고 한숨만 쉬었는데 하루하루 일이 진척되는 상황을 볼 때마다 뿌듯함이 커졌다. 물론 하루에 6시간씩 시멘트 가루를 마셔야 했던 건 비염이 있는 나에겐 지옥과도 같았지만 말이다.
일을 끝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면 바로 점심식사를 했고 조금 쉬다가 9시쯤에 저녁을 먹었다. 식사 준비는 두 명씩 요리 팀을 정해서 매일 우리가 만들어 먹었다. 각 국의 전통요리를 먹어볼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지만, 나와 한국인 친구가 야심 차게 준비한 불고기를 마늘냄새가 난다며 정색하고 한 입도 먹지 않았던 터키인 때문에 굉장히 기분이 상하기도 했다. 아무리 본인의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예의상 먹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한국인의 정서인데 외국인들은 정말 자기가 싫으면 남이 뭐라 하든 신경도 쓰지 않는 것을 보면서 신기했다. 항상 저녁을 너무 늦게 먹어서 속이 불편한 채로 잠을 자야 했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저녁을 10시 넘어서 먹는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던 적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캠프는 서로 엄청 친하지는 않았다. 일단 13명의 참가자 중에서 무려 9명이 흡연자였다. 담배연기를 싫어하는 나는 밥상에서도 담배를 피워대는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고, 참다 못해서 다른 곳에서 담배를 피워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무데서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때문에 정말 짜증이 났었다. 게다가 리더 Maria는 굉장히 권위적이고 수다스러워서 본인이 식사를 마치기 전까지는 절대 식탁에서 못 일어나게 했으며 언제나 사소한 것으로 정색하고 잔소리를 했다. 그래서 캠프 구성원들의 반발이 심했다. 이탈리아에서 온 Marzia와 터키에서 온 karam은 3일 만에 눈이 맞아서 연애를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둘이 한 텐트를 쓰겠다며 같이 쓰고 있던 다른 참가자를 다른 텐트에서 자게 했고 작업 시간에도 둘이서 조용히 사라졌다가 점심식사 때 숙소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온 Masha, 우크라이나에서 온 Olga, 스페인에서 온 Fran, 핀란드에서 온 Birgit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인 3명은 그나마 서로 친하게 지냈다. 우리는 영어로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얘기하고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자유시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가까운 도시로 나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위에도 언급했다시피 우리 캠프에는 불만요소가 많았기에 우리끼리 뒷담화(?)를 하며 공감한 것이 우리를 결속시킨 계기가 된 것이 아닐까 한다.
워크캠프를 마치고 다시 파리로 떠나는 날 기차역에서 참가자들이 써 준 쪽지들을 받았는데, 3주 동안 정말 힘들고 불만이 많아서 빨리 한국으로 가고 싶었는데도 그 걸 보니까 약간은 찡하고 아쉬웠다. 친하게 지냈던 몇몇 친구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가져온 조그마한 선물들을 함께 봉투에 넣어서 줬는데 나는 준비해 간 선물이 없어서 주지 못했기에 너무 미안하고 아쉬웠다. 그런데 한 명은 쪽지에 담배를 붙여놨고, 다른 한 명은 내가 사람들 많은 데서 담배 피우지 말라고 뭐라고 했던 것에 대해 비꼬는 말투로 써놓기도 했다. 그 당시에는 화가 났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들은 자기 마음대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고 당연한 것인데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기에 서로 좋지 못한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 많이 아쉽다.
워크캠프 참가로 인해 얻은 소중한 추억도 있기는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안 좋은 기억이 더 많다. 신체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생활환경도 적응하기 어려웠으며 무엇보다도 구성원들과의 교류나 동화가 가장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도 한 번쯤은 내 인생의 특별한 경험 삼아 참가해 볼 만한 프로그램이라 생각한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경험’은 많이 해보면 해볼수록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