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용감한 도전, 최고의 추억을 만들다
Rest House 3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해외에 혼자 나간다고 말을 하니, 주위에서는 나를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첫 번째 시선은 “너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어. 무섭지 않니? 용감하다, 용감해”라는 반응이었고, 두 번째 시선은 “해외 가서 고생 사서 한다고,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돈 주고 뭐 하러 그런걸 하러 가니, 사서고생이다.”라는 시선, 이렇게 두 가지 시선이 있었다. 모든 일에는 두 가지 상반된 견해가 존재하듯이 내가 무엇을 하려고 할 때에 그 일에 대해서 사람들의 의견이 모두다 좋을 순 없다. 나는 그런 점을 인지하고서 내가 하고픈 대로 해나가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는 달라졌다. 나도 처음에는 해외에 혼자 나간다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지만 워크캠프를 경험하고 나서는, 정말 못 잊을 생에 최고의 추억거리를 만들고 온 뿌듯한 장본인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사서하는 고생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되고, 해외에 처음 나가보는 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워크캠퍼들을 만나면서 마음도 많이 커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많이 자랐다. 그럼 이제 여기 나의 기적과도 같은 워크캠프 후기를 들어보지 않겠는가.
내가 워크캠프 리더를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는 다름아닌 버스였다. 이탈리아에 들어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온갖 “바디랭기쥐”를 통해서 워크캠프장소에 도착하려고 했던 나는, 워크캠프 리더와 우연히 말을 하게 되었다.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던 워크캠프 리더, 비비아나. 하지만 나에게 “왜 하루 일찍 왔냐?”고 물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원래 오늘까지 다 오는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 워크캠프의 시작은 내일부터라며 다른 멤버들은 내일부터 온다고 했다. 나는 워크캠프의 시작일부터 잘못 알고 온 것이다. 만약 비비아나를 버스에서 만나지 못했더라면, 혹시나 비비아나가 그때 워크캠프의 인수인계를 위해서 하루 일찍 오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나는 국제미아가 되었을 뻔 했다. 처음부터 기적과도 같이 나는 비비아나를 만나서 무사히 워크캠프의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워크캠프 장소로 가는 도중에 “십년감수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8월 6일이 워크캠프의 시작일이었었는데, 나는 당연히 8월 6일이 시작일이니깐 8월 5일에 워크캠프의 장소에 먼저 도착을 해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나중에 워크캠퍼들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들도 2주간의 워크캠프가 약간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단다. 월요일 날에 도착하면 실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은 화요일부터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개인시간을 주기 때문에 워크캠프로써의 의미가 주말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따진다면 월요일과 두 번째 주의 주말, 이렇게 총 3일 이나 빠지고, 또 워크캠프의 끝나는 날은 월요일이기 때문에(실제로 월요일에는 워크캠프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월요일 날까지 남아있다가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뜻 깊은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면서 워크캠프 활동을 했다.
하루 먼저 온 나는 본의 아니게 비비아나와 같이 전 워크캠프의 리더에게 여러 가지 시설과 활동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 워크캠프장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국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엄청 기뻤다. “한국인이 워크캠프에 있다니…!!” 같은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 워크캠프에 오기 2틀 전부터 이탈리아에 도착을 해 혼자 관광을 하러 다녔는데, 혼자 다니다 보니 한국사람이 너무 그리웠었다. 이탈리아의 큰 도시도 아닌데 워크캠프 장소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기쁜 마음을 가지고서 만난 한국 분.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리고 그 날밤은 한국말을 마음껏 써가면서 워크캠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여행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렇게 즐거운 워크캠프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그 다음날 한국 분은 떠났지만 그대신 우리 워크캠프에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처음이라 약간은 어색하고,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자기소개나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차적이지는 않았다. 우리 REST HOUSE 3 워크캠프의 참여멤버들은 총 8명인데 하루 더 늦게 도착하는 친구도 있었고, 어디인지 몰라 길을 잘못 들어서 찾으러 가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워크캠프 8명의 캠퍼들이 다 모여 워크캠프의 계획을 짰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계획을 짤 때에는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나와 주어야 그 중에서 마음 놓고 선별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회의에서 일어나는 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쉽사리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원만한 계획 짜기가 이루어지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우리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데에 제약이 많았다. 우연히 머리에 스치듯 떠오르는 것들을 모아 전체적인 계획을 짜고 나서 우리는 나중에 활동을 하면서 어떤 것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적합하고, 어느 것은 적합하지 않은지를 구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계획표는 유동성 있게 바꾸어나갔다. 노래 부르기, 체조활동, 그림 그리기, 돌을 붙여 그림 그리기, 파스타를 용해 형상 만들기, 풍선을 불어 공 던지기, 볼링, 빙고, 종이 접기 등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의사소통을 해나갔다. 계획을 워크캠프에 가서 캠퍼들과 함께 짜나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내가 조금 아쉬웠던 점은 미처 한국에 있을 때, 혹은 워크캠프에 가기 직전에 어르신들을 위한 캠프 활동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몇 가지만이라도 생각을 해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캠프 활동을 하면서 노래 부르기 같은 경우는 컴퓨터와 TV, 그리고 음향까지 모두 갖추어졌지만 어르신들께서는 가사를 잘 보시지 못하셨고, 또한 따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종류의 동요들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워크캠퍼들 위주로 활동이 이루어졌었다. 더군다나 노래가 이탈리아 노래라서 리더인 비비아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노래를 잘 몰라 우물쭈물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알 수 있는,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를 골라 함께 캠퍼들과 춤도 추고 어르신들께 호흥도 돋구는 박수치기와 재롱으로 즐거움을 선사해드렸다. 활동에 약간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캠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밥 드시는 것을 도와드리는 일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신체가 불편하시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힘드신 분 들이 많기 때문에 밥을 드실 때에는 보조가 필요했다. 우리는 11시 45분이나 30분 정도에 발코니에서 하던 활동을 멈추고 실내로 들어가서 밥 드시는 것을 보조해드렸다. 물론 이것도 처음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말하시는 어르신께 나는 영어로 되묻고,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하신 어르신은 무언가를 다시 말하시고, 우리는 그럼 비비아나를 찾을 수 밖엔 없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영어는 캠퍼들 사이에서나 의사소통이 될 뿐, 어르신들께는 오직 이탈리아어만이 통한다는 것을 인지를 못해, 캠프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워크캠프를 하면서 리더에게 많이 질문하고, 바디랭기쥐를 사용하면서 주위에서 들은 이탈리아 단어들을 사용하며 어르신들과 의사소통 하려고 노력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워크캠프 활동이 편해졌다. 어려움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듯이,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워크캠프 활동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워크캠프 하면 위에 제시했던 활동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워크 캠퍼들은 대부분, 여행을 하면서 병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해외에 처음 가는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많은 곳을 보고 싶었다. 물론 다른 워크 캠퍼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나 아니면 휴일일 때를 이용해서 워크캠프가 일어나는 장소 주변을 여행했다. 하지만 여행도 쉽지가 않았다. 워크캠프가 있는 장소는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활동을 하는 기구의 관리자 분께 부탁해 버스가 많이 다니는 정류장으로 이동을 해서 여행을 다녔다. 여행 중에는 시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다니기가 약간은 불편했지만, 이것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여름에 빠질 수 없는 바다도 가보고, 파도에 풍덩 들어가 보기도 하고, 케밥과 젤라또도 같이 사먹고, 워크캠프 하는 장소 근처에 위치한 산도 타보고, 슈퍼(BAR)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커피도 먹고,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나라에서는 ‘이렇다’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진도 많이 찍으면서 우리는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하나 둘씩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조그마한 선물들을 나누어 주면서 서로를 기억했다. 또한 편지와 연락처를 써주어서 캠퍼들 간에 연락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하였다.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에도 우리는 연락을 하고 있고, 그 동안 찍었던 사진들도 공유하면서 워크캠프의 추억들을 잊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워크 캠퍼들끼리 했던 여행과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하라면 (너무 많아서 손에 꼽을 수도 없지만) 나는 각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먹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8명의 캠퍼들 모두다 자신들 나라의 음식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맛있는 저녁식사를 풍요롭게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워크캠프에 가기 전에 불고기 소스를 이미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요리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불고기와 터키의 음식, 그리고 그리스의 샐러드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어가면서 신나게 준비를 했다. 불고기 소스를 준비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이 요리를 마친 나는 외국 친구들이 불고기를 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가장 궁금했다. 외국 친구들이 불고기를 먹고 난 뒤의 반응은 “최고야!”라며 소스를 남겨놓고 나중에 또 먹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다. 맵지 않고 새콤달콤한 맛에 사로잡힌 외국친구들은 불고기 라는 이름을 연신 외치며 저녁 식사를 성대하게 마쳤다. 물론 터키의 음식도 맛있었다. 토마토 소스와 감자의 절묘한 조화, 적절한 매운맛까지 갖추어진 완벽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샐러드 역시 일품이었다. 치즈와 토마토의 맛이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맛을 일구어 냈다. 음식을 준비를 하면서 우리들은 더욱 친밀해 질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우리는 더욱 뜻 깊은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워크캠프 활동을 끝낼 때에는 어르신들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어르신들의 눈매가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시는 어르신들도 계셨고, 다음 번에 또 오라며 손을 토닥거려 주시는 어르신도 계셨다. 2주가 체 안 되는 짧은 워크캠프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얻었고, 또한 많은 것을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워크캠프 했던 장소를 청소를 하면서 그 동안의 추억들을 생각했다. 나는 8명의 워크캠퍼들이 만들어낸 워크캠프 활동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여행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었던 일들. 등등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워크캠프 장소를 떠날 때에 다같이 “byebye”를 외치면서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워크캠프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서로 도와가면서,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이번 여름,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에는 발걸음이 약간은 주춤주춤 했었지만, 어마어마한 추억거리를 담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했다. 워크캠프,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경험이 편하고 쉬울 수 만은 없는 법. 이 점을 인정하고 자신이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아니, 캠퍼들과 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둘도 없는 소중한 경험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기억들, 그리고 캠퍼들과 함께한 기억들 모두모두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 되었다. 이 보물들은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환하게 웃게 해줄 수 있는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리고 또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웃게 될 것이다.
나의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되고, 해외에 처음 나가보는 거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지만, 워크캠퍼들을 만나면서 마음도 많이 커졌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 또한 많이 자랐다. 그럼 이제 여기 나의 기적과도 같은 워크캠프 후기를 들어보지 않겠는가.
내가 워크캠프 리더를 처음으로 만났던 장소는 다름아닌 버스였다. 이탈리아에 들어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온갖 “바디랭기쥐”를 통해서 워크캠프장소에 도착하려고 했던 나는, 워크캠프 리더와 우연히 말을 하게 되었다.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던 워크캠프 리더, 비비아나. 하지만 나에게 “왜 하루 일찍 왔냐?”고 물었다. 나는 무슨 소리냐며 원래 오늘까지 다 오는 것이 아니냐고 했는데, 워크캠프의 시작은 내일부터라며 다른 멤버들은 내일부터 온다고 했다. 나는 워크캠프의 시작일부터 잘못 알고 온 것이다. 만약 비비아나를 버스에서 만나지 못했더라면, 혹시나 비비아나가 그때 워크캠프의 인수인계를 위해서 하루 일찍 오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나는 국제미아가 되었을 뻔 했다. 처음부터 기적과도 같이 나는 비비아나를 만나서 무사히 워크캠프의 장소로 갈 수 있었다. 워크캠프 장소로 가는 도중에 “십년감수했다”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8월 6일이 워크캠프의 시작일이었었는데, 나는 당연히 8월 6일이 시작일이니깐 8월 5일에 워크캠프의 장소에 먼저 도착을 해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다. 나중에 워크캠퍼들의 말을 들어보니 자신들도 2주간의 워크캠프가 약간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단다. 월요일 날에 도착하면 실제적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은 화요일부터이다. 그리고 주말에는 개인시간을 주기 때문에 워크캠프로써의 의미가 주말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이렇게 따진다면 월요일과 두 번째 주의 주말, 이렇게 총 3일 이나 빠지고, 또 워크캠프의 끝나는 날은 월요일이기 때문에(실제로 월요일에는 워크캠프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 월요일 날까지 남아있다가 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나 뜻 깊은 많은 추억거리를 만들면서 워크캠프 활동을 했다.
하루 먼저 온 나는 본의 아니게 비비아나와 같이 전 워크캠프의 리더에게 여러 가지 시설과 활동에 대해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처음에 워크캠프장소에 도착했을 때에는 한국인이 있다는 말을 듣고 엄청 기뻤다. “한국인이 워크캠프에 있다니…!!” 같은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모른다. 실제로 워크캠프에 오기 2틀 전부터 이탈리아에 도착을 해 혼자 관광을 하러 다녔는데, 혼자 다니다 보니 한국사람이 너무 그리웠었다. 이탈리아의 큰 도시도 아닌데 워크캠프 장소에서 한국인을 만나다니, 기쁜 마음을 가지고서 만난 한국 분.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리고 그 날밤은 한국말을 마음껏 써가면서 워크캠프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리고 여행 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마음껏 털어놓았다.
그렇게 즐거운 워크캠프에서의 첫날을 보내고, 그 다음날 한국 분은 떠났지만 그대신 우리 워크캠프에 다른 외국인 친구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처음이라 약간은 어색하고, 영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게 있었지만, 그래도 서로의 자기소개나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으면서 우리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일이 순차적이지는 않았다. 우리 REST HOUSE 3 워크캠프의 참여멤버들은 총 8명인데 하루 더 늦게 도착하는 친구도 있었고, 어디인지 몰라 길을 잘못 들어서 찾으러 가는 데에도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우여곡절 끝에 워크캠프 8명의 캠퍼들이 다 모여 워크캠프의 계획을 짰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계획을 짤 때에는 아이디어들이 마구마구 나와 주어야 그 중에서 마음 놓고 선별할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회의에서 일어나는 일과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쉽사리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원만한 계획 짜기가 이루어지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우리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활동을 생각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데에 제약이 많았다. 우연히 머리에 스치듯 떠오르는 것들을 모아 전체적인 계획을 짜고 나서 우리는 나중에 활동을 하면서 어떤 것은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활동에 적합하고, 어느 것은 적합하지 않은지를 구분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의 계획표는 유동성 있게 바꾸어나갔다. 노래 부르기, 체조활동, 그림 그리기, 돌을 붙여 그림 그리기, 파스타를 용해 형상 만들기, 풍선을 불어 공 던지기, 볼링, 빙고, 종이 접기 등등 다양한 활동들을 하면서 어르신들과 의사소통을 해나갔다. 계획을 워크캠프에 가서 캠퍼들과 함께 짜나가는 것은 좋다. 하지만 내가 조금 아쉬웠던 점은 미처 한국에 있을 때, 혹은 워크캠프에 가기 직전에 어르신들을 위한 캠프 활동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 몇 가지만이라도 생각을 해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캠프 활동을 하면서 노래 부르기 같은 경우는 컴퓨터와 TV, 그리고 음향까지 모두 갖추어졌지만 어르신들께서는 가사를 잘 보시지 못하셨고, 또한 따라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빠른 종류의 동요들이 많았기 때문에 거의 워크캠퍼들 위주로 활동이 이루어졌었다. 더군다나 노래가 이탈리아 노래라서 리더인 비비아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노래를 잘 몰라 우물쭈물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최대한 알 수 있는, 익숙한 멜로디의 노래를 골라 함께 캠퍼들과 춤도 추고 어르신들께 호흥도 돋구는 박수치기와 재롱으로 즐거움을 선사해드렸다. 활동에 약간은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캠프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또한 밥 드시는 것을 도와드리는 일이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신체가 불편하시거나 혹은 정신적으로 힘드신 분 들이 많기 때문에 밥을 드실 때에는 보조가 필요했다. 우리는 11시 45분이나 30분 정도에 발코니에서 하던 활동을 멈추고 실내로 들어가서 밥 드시는 것을 보조해드렸다. 물론 이것도 처음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어로 무언가를 말하시는 어르신께 나는 영어로 되묻고, 못 알아 들어서 답답하신 어르신은 무언가를 다시 말하시고, 우리는 그럼 비비아나를 찾을 수 밖엔 없었다. 안타까웠던 점은 영어는 캠퍼들 사이에서나 의사소통이 될 뿐, 어르신들께는 오직 이탈리아어만이 통한다는 것을 인지를 못해, 캠프 활동에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워크캠프를 하면서 리더에게 많이 질문하고, 바디랭기쥐를 사용하면서 주위에서 들은 이탈리아 단어들을 사용하며 어르신들과 의사소통 하려고 노력 하다 보니, 시간이 지나자 자연스럽게 워크캠프 활동이 편해졌다. 어려움이 없으면 성장하지 않듯이, 이런 어려움이 있었기에 우리는 워크캠프 활동을 더욱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워크캠프 하면 위에 제시했던 활동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워크 캠퍼들은 대부분, 여행을 하면서 병행하려고 하기 때문에 해외에 처음 가는 나로서는 조금이라도 많은 곳을 보고 싶었다. 물론 다른 워크 캠퍼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주말이나 아니면 휴일일 때를 이용해서 워크캠프가 일어나는 장소 주변을 여행했다. 하지만 여행도 쉽지가 않았다. 워크캠프가 있는 장소는 작은 동네였기 때문에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활동을 하는 기구의 관리자 분께 부탁해 버스가 많이 다니는 정류장으로 이동을 해서 여행을 다녔다. 여행 중에는 시간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다니기가 약간은 불편했지만, 이것이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추억거리가 되었다. 여름에 빠질 수 없는 바다도 가보고, 파도에 풍덩 들어가 보기도 하고, 케밥과 젤라또도 같이 사먹고, 워크캠프 하는 장소 근처에 위치한 산도 타보고, 슈퍼(BAR)에 가서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커피도 먹고,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나라에서는 ‘이렇다’ 한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사진도 많이 찍으면서 우리는 잊지 못할 추억들을 하나 둘씩 만들어나갔다. 그리고 각자의 나라에서 가져온 조그마한 선물들을 나누어 주면서 서로를 기억했다. 또한 편지와 연락처를 써주어서 캠퍼들 간에 연락을 계속해서 할 수 있게 하였다.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에도 우리는 연락을 하고 있고, 그 동안 찍었던 사진들도 공유하면서 워크캠프의 추억들을 잊지 않고 생활하고 있다.
워크 캠퍼들끼리 했던 여행과 활동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이야기하라면 (너무 많아서 손에 꼽을 수도 없지만) 나는 각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먹었던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8명의 캠퍼들 모두다 자신들 나라의 음식을 만들지는 못했지만, 맛있는 저녁식사를 풍요롭게 마칠 수 있었다. 나는 워크캠프에 가기 전에 불고기 소스를 이미 준비를 해왔기 때문에 요리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불고기와 터키의 음식, 그리고 그리스의 샐러드를 준비하면서 우리는 노래를 틀어놓고 춤을 추어가면서 신나게 준비를 했다. 불고기 소스를 준비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이 요리를 마친 나는 외국 친구들이 불고기를 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가 가장 궁금했다. 외국 친구들이 불고기를 먹고 난 뒤의 반응은 “최고야!”라며 소스를 남겨놓고 나중에 또 먹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인기가 많을 줄은 몰랐다. 맵지 않고 새콤달콤한 맛에 사로잡힌 외국친구들은 불고기 라는 이름을 연신 외치며 저녁 식사를 성대하게 마쳤다. 물론 터키의 음식도 맛있었다. 토마토 소스와 감자의 절묘한 조화, 적절한 매운맛까지 갖추어진 완벽한 음식이었다. 그리고 그리스의 샐러드 역시 일품이었다. 치즈와 토마토의 맛이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맛을 일구어 냈다. 음식을 준비를 하면서 우리들은 더욱 친밀해 질 수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맛볼 수 없는 다른 나라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우리는 더욱 뜻 깊은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워크캠프 활동을 끝낼 때에는 어르신들에게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어르신들의 눈매가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지시는 어르신들도 계셨고, 다음 번에 또 오라며 손을 토닥거려 주시는 어르신도 계셨다. 2주가 체 안 되는 짧은 워크캠프 기간이었지만, 많은 것을 얻었고, 또한 많은 것을 공유했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작별인사를 마치고 우리들은 워크캠프 했던 장소를 청소를 하면서 그 동안의 추억들을 생각했다. 나는 8명의 워크캠퍼들이 만들어낸 워크캠프 활동들, 그리고 그간에 있었던 여행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었던 일들. 등등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워크캠프 장소를 떠날 때에 다같이 “byebye”를 외치면서 잊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워크캠프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 서로 도와가면서, 서로의 문화를 알아가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건 이번 여름,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에는 발걸음이 약간은 주춤주춤 했었지만, 어마어마한 추억거리를 담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나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당당했다. 워크캠프,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경험이 편하고 쉬울 수 만은 없는 법. 이 점을 인정하고 자신이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아니, 캠퍼들과 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간다면 둘도 없는 소중한 경험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르신들과 함께했던 기억들, 그리고 캠퍼들과 함께한 기억들 모두모두 나의 소중한 보물들이 되었다. 이 보물들은 두고두고 생각하면서 환하게 웃게 해줄 수 있는 크나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나는 다시, 그리고 또 다시, 도전할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웃게 될 것이다.
나의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