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선 떨림과 천사의 미소

작성자 구다솜
프랑스 CONC 185 · RENO/ENVI 2012. 07 St..Agnes , France

Sainte-Agn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7월 6일 프랑스의 날씨는 굉장히 이상했다. 대체적으로 흐린 날씨에 잔 비가 그쳤다 내렸다 계속 반복되었다. 미팅 포인트인 브리뉴 기차역에서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며 챙겨간 공기놀이를 하고 있었다. 브리뉴 기차역은 작았지만 그 뒤편 주차장엔 수시로 많은 차들이 드나들었고 차들이 올 때 마다 주의를 기울였다. 결국엔 리더 티펜이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처음 받은 인상은 프랑스인이지만 굉장히 미국인 같다는 것! 친절한 동네 주민 분들이 직접 차를 갖고 와서 우리를 역에서 태워가셨다. 우릴 태워주셨던 할아버지는 프랑스어밖에 하지 못해서 한마디 말도 없이 차를 타고 꽤 긴 거리를 꾸불꾸불 올라갔던 약간은 불편하고 떨리던 기억이 난다. 점점 올라가니 비가 꽤 거세게 오기 시작했다. 도착 후 상상과는 꽤 다른 풍경에 놀랐다. 흐린 날씨에 굉장한 폭우와 낡고 하얀 집, 맞은편 동산엔 빨갛고 파란 텐트가 옹기종기 있었다. 천사가 내려온 것만 같았던 리더 죠제프가 우릴 맞아주었고 속속들이 도착하는 다른 참가자들과 어색한 첫만남을 가졌다. 러시아에서 온 나에스탸와 아리나, 우크라이나에서 온 올랴, 벨라루스의 알리나, 스페인과 갈리시아의 올라쟈와 에바, 모로코에서 온 라시드, 파리 근처에서 온 퀀튼까지 처음엔 정말 낯설었다. 외국경험이 없어 외국인들과 소통해 볼 기회도 없었고 영어에 자신 있던 것도 아니라 꿀 먹은 병아리처럼 멀뚱거리고 앉아있었다. 서양사람들은 적어도 나보다는 다들 적극적이고 쾌활한 성격일거라는 당치 않은 편견을 갖고 있던 나는 너무나도 조용하고 어색한 분위기에 놀랐다. 그들도 각자 그들의 기질과 성격이 다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우리 중 가장 활발한 사람은 스페인 남쪽나라 갈리시아에서 온 에바였다. 에바는 정말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쳤는데 자기 주장만 강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배려를 정말 잘해주었다. 가만 보니 영어가 좀 되는 친구들은 어느 정도 서로 대화를 주고 받았고 나도 내 옆의 알리나와 간단한 얘기를 나눴으며, 나 말고도 영어가 서툰 다른 친구들을 보고는 크게 맘이 놓였다..! 하지만 캠프 생활에서 말은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우린 말 없이도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고, 다른 환경에서 자랐어도 같은 인간이니까 근본적으로 같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동생활에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이미 거실엔 우리가 따라야 할 식사시간, 기상시간 등이 써져 있었고 우리도 그에 동의했다. 규칙까지는 아니지만 화장실, 샤워실 빨리 쓰기가 미덕이었으며 집안일은 매일 역할을 바꾸어 모두 분담하였고, 각자의 식성을 배려하는 것부터 해서 서로간의 이해와 배려가 곧잘 행해졌다. 서로 다른 문화에서 나고 자란 열두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니 의견조정이 힘들었지만 되도록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 주며 함께 여러 활동을 이어나갔다.

우리 베이스캠프의 지리적 특성상 나와 친구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등산을 좋아했다. 다행히 난 산은 좋아했고, 우리는 일을 시작하기 전 날 여가시간에 등산을 가기로 결정을 봤다. 난 평소에 등산을 즐겨 하지 않았지만 한국산에서의 등산로 정도를 생각하고는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길에 나섰다. 심지어 리더 죠제프는 피크닉을 가는 거라고 했었다!!!!!
피크닉을 가면서 나는 내가 왜 제일 비싼 보험을 들고 오지 않았던가 하며 진지하게 후회했다.
아무리 올라가도 평지가 보이지 않았고 계속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는 가파른 능선만이 보였다. 이미 캠프에서 출발한지 다섯 시간도 넘어있었다. 우리 모두는 두 손, 두 발을 모두 써가며 정말이지 힘겹게 산을 탔다.. 나는 아.. 어쩌면 한국에 다시 못 갈수도 있겠구나.. 이 산에 묻힐 수도 있겠구나..이런 생각을 하며 산을 올랐다. 다행히 조금 더 가서 평범한 등산로를 찾을 수 있었고 나중에야 다들 웃으면서 굉장했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이날 이후로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친구는 등산에 다시는 참여하지 않았다..:) 이 엄청난 피크닉 뒤로도 주말마다 근처 해발 2,400미터 산으로 등산을 갔고 앞서 말한 친구들은 근처 도시로 관광을 갔지만 우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해주었다. 어쨌든 우리는 이 피크닉에서 살아남음으로써 앞으로 우린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일을 할 때건 게임을 할 때건 우리 캠프에서 우리의 구호는 항상 We can do it!! / Yes we can!! 이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그 자신감 효과 중 하나의 예로 우린 지역음악축제에 가서 즉석에서 나라별로 노래를 하나씩 정해 무대에 올라 6개국어로 6개의 노래를 불렀다.(우리나라를 대표했던 노래는 아리랑이었고 다들 아리랑의 멜로디를 좋아했다.) 일을 할 때에는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큰 불평 없이 긍정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전보다 훨씬 더 긍정적이고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친구들한테 워크캠프를 소개할 때 참가비가 있다고 말하면 되돌아오는 반응은 아니!! 돈을 벌러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러 가는데 돈을 내고 간다고?! 한다. 하지만 일종의 ‘농활’이라고 설명하면 쉽게 수긍하는 편이다. 마을 공동체를 위한 봉사와 문화교류를 같이 하는 것이니 엄청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워크캠프에서 정말 얻어가는 것이 많았다. 사소하게는 페인트칠을 꼼꼼히 잘하는 방법, 사포질 잘하는 방법에서부터 세계각국의 소중한 친구들, 우리가 함께 누리고 공유한 서로의 문화, 수많은 추억, 지역주민들의 따뜻한 관심, 프랑스의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까지 벌써 내 삶에 있어 보물이나 다름없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도 크나큰 자산이 되어줄 것 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많이 그립다. 가장 그리운 친구들, 한여름에도 살벌하게 추운 밤 날씨와 빼곡히 빛나던 별들, 추위에 떨며 자던 텐트 속 침낭, 맛있는 빵, 마지막 날의 신나던 파티, 헤어지던 날 눈물의 포옹까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