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낯선 곳에서 찾은 진짜 프랑스
CABREROLL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 장소를 배정받고 ‘여기가 어디야?’ 라고 생각하면서 정말 실망도 많이 하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캠프장소에 가보니 정말 깨끗하고 정말 살기 좋은 소박한 마을이란 것을 알았고 관광객들이 대부분인 큰 도시에서 보다 더 프랑스를 잘 이해할 수 있고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것이 유럽여행을 계획할 당시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여행강행군이 하루 이틀 계속되다보니 . . 여행을 계획하던 때의 포부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겁많고 앉기 좋아하는 평범한 중년 한국 관광객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솔직히 워크캠프는 3주동안 정착할 곳에 제공하고 밥까지 해결해 주는 정말 좋은 곳이었던 것 같다. 미팅포인트로 가기전 나말고 다른 한국 워크캠프 참가자에게서부터 연락이 와서 미팅포인트까지 같이 가기로 하였다. 무사히 민선이 누나와 만나서 미팅포인트로 잘 도착하였다. 처음 미팅포인트에서 다른 캠프원들을 만나서 정말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침묵속에 캠프로 이동을 하였다. 캠프에 도착하니 맛있는 프랑스음식인 라자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포도주 한잔과 선선히 부는 바람은 정말 최고였다. 아 그리고 그곳에 풍경은 온통 자연적인 것 뿐이었는데 건축물의 주재료는 자연그대로의 암석과 풀과 나무… 정말 최고였다. 우리 캠프에는 대부분 백인이었고 황인은 2명이었다. 그래서 인지 캠프동안 관심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South korea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행동, 말 하나하나가 한국의 이미지가 될 것 같아서 조심 또 조심 했다. 민선이 누나에게도 물어보니 자기도 조심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우리의 숙소는 CONCORDIA 봉사자 전용 숙소로 샤워장, 침대, 식당이 모두 잘 완비된 최고에 숙소였다.
그리고 우리에 일은 프랑스 전통방식으로 성곽을 보수하는 것과 오븐을 재 건축하는 일이었다. 건축공학이 전공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과제였다.
우리의 일과는 낮에 햇빛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찍 일을 시작해서 일찍 일을 끝내고 햇빛이 강할 때에 쉬기로 하여서 6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점심 식사당번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두팀으로 나누어서 작업을 하러 갔다가 1시나 2시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단체활동을 하던지 피곤할 때에는 낮잠을 자기도 하였다. 주로 자연암석으로 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 주된 작업이었는데 엔지니어 까지 포함하여 남자가 5명, 여자가 7명으로 남자 인원이 적은 것이 이해도 되지 않고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다만 우리나라식의 성차별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여자일 남자일이 아예 정해져 있지 않은 듯 여자아이들은 무거운 돌도 잘 나르고 남자아이들도 요리도 잘하고 청소, 빨래도 곧 잘했다.
하지만 역시 일은 한국인이 최고 인 것 같았다. 나는 군대에서 해보았던 콘크리트 믹스법과 삽질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고 시범도 보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군대에 대해 설명해 주니 ‘어떻게 그럴수 있냐’며 깜짝 놀랐다. 군대에 가야 하는 배경까지도 설명해주니.. 그제서야 이해를 했다. 안타까운 순간이 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다. 날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점 무조건 배려에서 서서히 화도 내고 날씨도 더우니 짜증도 서로 내기 시작하였다. 그것 또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사람사는 건 어디 똑같은 것 같다. 우리도 처음엔 서로 친해지고 친해지면 싸우고.. 더우면 짜증내고 ..
작업을 마치고 우리가 했던 활동중에는 주변도시 방문, 축제참가, 게임, 해수욕이 있었다.
우리는 마을파티2번과 인근 도시인 비지에 페스티벌, 페자냐와 나르본 도시 관광, 비지에 비치와 나르본 비치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인근 계곡에 2번 놀러 갔다 왔다.
문화 충격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물놀이 문화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물놀이 한바탕하고 먹고 다시 돌아오는 것인 반면 프랑스에서는 물놀이 하고 햇빛아래에서 5시간정도 태닝을 하고 물놀이하고 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민선이 누나는 피부가 뱀처럼 벚겨지고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스킨십에 정도도 동방예의 지국인 우리나라와도 정말 달랐다. 양볼에 뽀뽀를 하는 프랑스 인사법에 나중에는 익숙해 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워서 얼굴도 빨개졌다. 그래서 외국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막 낄낄대고 웃기도 하였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고 마음에 문이 열리고 이젠 완전히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그 때 외국인 친구가 했던 말이 ‘동양인들은 다 수줍고 내성적인 줄만 알았는데 너 같이 재밌고 활발한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리고 우리 엔지니어는 65세로 다소 연륜이 있는 분이었지만 18살인 인도아이와 서슴없이 대화하고 서로 친구라고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딱히 주제도 없고 축하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함께 음악에 몸을 맞겨 탱고와 블루스를 추시던 모습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워크캠프 친구들과 헤어질 때에 여운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 마을에 향과 석양 모든 것이 정말 그립고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가 볼 것이다. 정말 최고에 3주 였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것이 유럽여행을 계획할 당시 나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런데 여행강행군이 하루 이틀 계속되다보니 . . 여행을 계획하던 때의 포부는 온데 간데 사라지고 겁많고 앉기 좋아하는 평범한 중년 한국 관광객이 되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솔직히 워크캠프는 3주동안 정착할 곳에 제공하고 밥까지 해결해 주는 정말 좋은 곳이었던 것 같다. 미팅포인트로 가기전 나말고 다른 한국 워크캠프 참가자에게서부터 연락이 와서 미팅포인트까지 같이 가기로 하였다. 무사히 민선이 누나와 만나서 미팅포인트로 잘 도착하였다. 처음 미팅포인트에서 다른 캠프원들을 만나서 정말 어색하게 서로 인사를 나누고 침묵속에 캠프로 이동을 하였다. 캠프에 도착하니 맛있는 프랑스음식인 라자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기에 포도주 한잔과 선선히 부는 바람은 정말 최고였다. 아 그리고 그곳에 풍경은 온통 자연적인 것 뿐이었는데 건축물의 주재료는 자연그대로의 암석과 풀과 나무… 정말 최고였다. 우리 캠프에는 대부분 백인이었고 황인은 2명이었다. 그래서 인지 캠프동안 관심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것은 South korea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하는 행동, 말 하나하나가 한국의 이미지가 될 것 같아서 조심 또 조심 했다. 민선이 누나에게도 물어보니 자기도 조심하게 된다는 말을 했다.
우리의 숙소는 CONCORDIA 봉사자 전용 숙소로 샤워장, 침대, 식당이 모두 잘 완비된 최고에 숙소였다.
그리고 우리에 일은 프랑스 전통방식으로 성곽을 보수하는 것과 오븐을 재 건축하는 일이었다. 건축공학이 전공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인 과제였다.
우리의 일과는 낮에 햇빛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새벽부터 일찍 일을 시작해서 일찍 일을 끝내고 햇빛이 강할 때에 쉬기로 하여서 6시에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점심 식사당번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은 두팀으로 나누어서 작업을 하러 갔다가 1시나 2시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와서 점심을 먹고 단체활동을 하던지 피곤할 때에는 낮잠을 자기도 하였다. 주로 자연암석으로 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에 주된 작업이었는데 엔지니어 까지 포함하여 남자가 5명, 여자가 7명으로 남자 인원이 적은 것이 이해도 되지 않고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은 다만 우리나라식의 성차별적인 생각일 뿐이었다. 여자일 남자일이 아예 정해져 있지 않은 듯 여자아이들은 무거운 돌도 잘 나르고 남자아이들도 요리도 잘하고 청소, 빨래도 곧 잘했다.
하지만 역시 일은 한국인이 최고 인 것 같았다. 나는 군대에서 해보았던 콘크리트 믹스법과 삽질을 외국인 친구들에게 가르쳐 주고 시범도 보였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군대에 대해 설명해 주니 ‘어떻게 그럴수 있냐’며 깜짝 놀랐다. 군대에 가야 하는 배경까지도 설명해주니.. 그제서야 이해를 했다. 안타까운 순간이 었다.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 지 궁금했다. 날이 하루하루 지나면서 점점 무조건 배려에서 서서히 화도 내고 날씨도 더우니 짜증도 서로 내기 시작하였다. 그것 또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사람사는 건 어디 똑같은 것 같다. 우리도 처음엔 서로 친해지고 친해지면 싸우고.. 더우면 짜증내고 ..
작업을 마치고 우리가 했던 활동중에는 주변도시 방문, 축제참가, 게임, 해수욕이 있었다.
우리는 마을파티2번과 인근 도시인 비지에 페스티벌, 페자냐와 나르본 도시 관광, 비지에 비치와 나르본 비치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인근 계곡에 2번 놀러 갔다 왔다.
문화 충격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물놀이 문화였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물놀이 한바탕하고 먹고 다시 돌아오는 것인 반면 프랑스에서는 물놀이 하고 햇빛아래에서 5시간정도 태닝을 하고 물놀이하고 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와 민선이 누나는 피부가 뱀처럼 벚겨지고 정말 힘들었다.
그리고 스킨십에 정도도 동방예의 지국인 우리나라와도 정말 달랐다. 양볼에 뽀뽀를 하는 프랑스 인사법에 나중에는 익숙해 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워서 얼굴도 빨개졌다. 그래서 외국친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막 낄낄대고 웃기도 하였다.
서서히 시간이 지나고 마음에 문이 열리고 이젠 완전히 친한 친구가 된 것 같았다. 그 때 외국인 친구가 했던 말이 ‘동양인들은 다 수줍고 내성적인 줄만 알았는데 너 같이 재밌고 활발한 아이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 말을 해주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리고 우리 엔지니어는 65세로 다소 연륜이 있는 분이었지만 18살인 인도아이와 서슴없이 대화하고 서로 친구라고 이야기 했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딱히 주제도 없고 축하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소소하게 마을사람들이 모여서 파티를 열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함께 음악에 몸을 맞겨 탱고와 블루스를 추시던 모습도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워크캠프 친구들과 헤어질 때에 여운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그 마을에 향과 석양 모든 것이 정말 그립고 언젠가는 꼭 다시 찾아가 볼 것이다. 정말 최고에 3주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