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불가리아, 낯선 곳에서 찾은 따뜻한 마음
Plovdiv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어느 인터넷 까페에서 워크캠프에 관련된 후기를 접했던 순간부터 나는 워크캠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항상 있었다. 그러던 중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여행을 2달정도 할 기회가 생겼고, 그 때 바로 워크캠프!!가 떠올랐다. 봉사활동과 여행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일거 양득의 기회! 내가 아닌 남을 위해서 나의 시간을 한번 보내 보고도 싶었다. 그렇게 나름대로의 혹시 떨어질까봐 긴장했던 신청과 신청비 납부의 과정을 지나, 터키에서 버스를타고 그렇게 홀로 플로브디브 라는 불가리아의 생소한 제 2의 수도로 도착했다.
동유럽이 생소한 나는 터키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나 다른 발칸국가에 관해 물어볼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동유럽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접했었다. 러시아에서 건너간 무서운 조직도 있고, 부패한 경찰, 차가운 시민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시, 차가운 국민들 그리고 소매치기 등등...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기에 터키에서 불가리아로 넘어가는 버스 내내 걱정이 되었다. 국경심사대에서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가방이 도둑맞는건 아닐까.. 하지만 플로브디브에 도착한 순간, 내가 무언가를 물어 볼 때마다 친절했던 불가리아인들 덕분에 걱정은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캠프장소에 도착했는데 (그냥 인포싯에 적힌 대로만 찾아가면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 기다리니 캠프리더 불가리아 인 필립, 프랑스에서 온 줄리엣이 와서 인사를 하고 간단한 각자 소개를 했다. 우리 셋 다 나이가 비슷했기에 그냥 정말 금방 친해져 버렸다. 필립이 말하길 다른 참가자들은 미국여자애와 캐나다 남자애 그리고 중국 여자애 이렇게 세명이 있었는데 미국 여자애는 화요일 쯤에 도착할 예정이고 캐나다 남자애는 연락이 되질 않으며 중국 여자애는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는 소식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정말 소수의 인원으로 결국은 그날 당장은 3명에서 봉사를 하게 되버린거였다. 봉사는 내일부터 하면 되지만, 아이들이 궁금해서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갔는데 아이들이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였다. 나는 전혀 그런 정보를 받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말도 안통하는 게다가 장애까지 있는 아이를 돌본다는것이, 경험도 없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차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를 환영해주는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을 만난 후, 줄리엣에게 아이들의 장애에 관한 언급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줄리엣도 나랑 마찬가지로 전혀 이런 정보는 몰랐다고 했다. 그냥 우리는 고아아이들을 돌보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그렇게 첫 날을 보내고 둘째 날. 우리가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하는 날이 되었고, 아침 8시 쯤에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놀아주는데 어제 예상한대로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였다. 처음은 뭐든지 어렵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처음 했을 때도 그랬고, 영국에서 처음 적응 할 때도 그랬고, 처음은 그렇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몸으로 놀아주는 수 밖에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을 수도 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내내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한명 한명 다 신경을 써주면 모르지만 우리 3명에서 15명의 아이들을 통제할수는 없었다. 거기에 지도선생님이 있으면 아이들이 그나마 얌전했지만, 우리 봉사자들 셋과 아이들만 있을 때는 그야 말로 정글보다 더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이 서로 관심을 받으려고 아우성이었다.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 앞에서 내 몸이 하나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우리의 일과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 이었고, 운동장이나 지하실 청소, 음식 나르기 그리고 아이들이 낮잠자는 시간을 틈탄 휴식이 있었다. 첫 날을 힘들게 보내고 나니 그 다음날 부터는 적응이 됬는지 그렇게까지 힘이 들지는 않았다. 아이들과도 더욱 친해졌는데 이름도 외우고, 성향도 파악되고, 어떻게 다뤄야되는지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다른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거기에서 인솔자를 도와주던 한 10대 소년이 아이들을 너무 험악하게 다루는 점이 나와 다른 봉사자들의 방식과는 맞지 않았던 거였다. 아이들을 그렇게 고함으로 또 힘으로 제압하는게 너무 안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2주간만 머무는 봉사자고 그 친구는 거기서 몇년을 있었기에 그리고 몇년을 더 그렇게 인솔자를 도와주는 역활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치기에는 힘이 드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다른 봉사자 친구들과는 첫날부터 너무 친해져버려서 서로 뭐든 도와주고 하려고 배려해주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특히 캠프리더였던 필립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잘 이끌어 주었기에 더욱 더 즐거웠던 봉사의 시간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필립의 고향인 코로파 라는 산골마을에도 가서 지내고 계곡에서 다이빙도 하고, 식사도 초대받고 정말 불가리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봉사가 끝나고 항상 나가서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다니고 야외무대에서 오케스트라도 보고 춤도추고 정말 즐겁고 보람찬 시간들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일로는 고아원에 새로운 여자아이 1명이 들어왔는데 12살에 다리가 불편한 아이였다. 이전 고아원이 문을 닫게 되어서 12년동안 있었던 그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옮겨진 아이였는데 눈물을 계속 흘리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12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현실이었을거다. 내가 불평만 했던거 같은 어린시절들은 정말 행복에 겨웠던 나날들이였고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도와 봉사할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캠프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정말 우물안 배부른 개구리였을거다.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에는 울면 어떡하지?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여러 봉사자들을 겪었던 덤덤한 아이들 앞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 한명 한명과 포옹을 마치고 헤어지는 길목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헤어지는데도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필립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내년에 같이 여행하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며 정말 즐겁고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빨리 2주가 지났다는게 그때까지도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나는 소피아로 쥴리엣과 떠났다.
그 기간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새로운 모든 것들에서 나는 자극받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 정말 워크캠프를 모르거나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100% 추천해 주고 싶다.
동유럽이 생소한 나는 터키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사람들에게 불가리아나 다른 발칸국가에 관해 물어볼 때가 있었는데, 그 때마다 동유럽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접했었다. 러시아에서 건너간 무서운 조직도 있고, 부패한 경찰, 차가운 시민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집시, 차가운 국민들 그리고 소매치기 등등... 이렇게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기에 터키에서 불가리아로 넘어가는 버스 내내 걱정이 되었다. 국경심사대에서 혹시 잘못되면 어쩌나, 가방이 도둑맞는건 아닐까.. 하지만 플로브디브에 도착한 순간, 내가 무언가를 물어 볼 때마다 친절했던 불가리아인들 덕분에 걱정은 사라졌다.
버스를 타고 캠프장소에 도착했는데 (그냥 인포싯에 적힌 대로만 찾아가면 어렵지는 않았다) 조금 기다리니 캠프리더 불가리아 인 필립, 프랑스에서 온 줄리엣이 와서 인사를 하고 간단한 각자 소개를 했다. 우리 셋 다 나이가 비슷했기에 그냥 정말 금방 친해져 버렸다. 필립이 말하길 다른 참가자들은 미국여자애와 캐나다 남자애 그리고 중국 여자애 이렇게 세명이 있었는데 미국 여자애는 화요일 쯤에 도착할 예정이고 캐나다 남자애는 연락이 되질 않으며 중국 여자애는 사정이 생겨서 못 온다는 소식을 받았다고 했다. 이렇게 우리는 정말 소수의 인원으로 결국은 그날 당장은 3명에서 봉사를 하게 되버린거였다. 봉사는 내일부터 하면 되지만, 아이들이 궁금해서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아이들을 보러 갔는데 아이들이 정신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이였다. 나는 전혀 그런 정보를 받지 못했기에 처음에는 정말 당황스러웠다. 말도 안통하는 게다가 장애까지 있는 아이를 돌본다는것이, 경험도 없는 내가 감당하기에는 조금 벅차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우리를 환영해주는 귀여운 아이들 덕분에 기분이 좋았다. 아이들을 만난 후, 줄리엣에게 아이들의 장애에 관한 언급을 받은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줄리엣도 나랑 마찬가지로 전혀 이런 정보는 몰랐다고 했다. 그냥 우리는 고아아이들을 돌보는 줄로만 알았던 거다.
그렇게 첫 날을 보내고 둘째 날. 우리가 본격적으로 봉사를 시작하는 날이 되었고, 아침 8시 쯤에 아침을 먹고 아이들과 놀아주는데 어제 예상한대로 험난한 여정의 시작이였다. 처음은 뭐든지 어렵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처음 했을 때도 그랬고, 영국에서 처음 적응 할 때도 그랬고, 처음은 그렇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몸으로 놀아주는 수 밖에 없었기에 더욱 힘들었을 수도 있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내내 아이들을 통제하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한명 한명 다 신경을 써주면 모르지만 우리 3명에서 15명의 아이들을 통제할수는 없었다. 거기에 지도선생님이 있으면 아이들이 그나마 얌전했지만, 우리 봉사자들 셋과 아이들만 있을 때는 그야 말로 정글보다 더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 한명 한명이 서로 관심을 받으려고 아우성이었다. 이렇게 사랑을 갈구하는 아이들 앞에서 내 몸이 하나라는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우리의 일과는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 이었고, 운동장이나 지하실 청소, 음식 나르기 그리고 아이들이 낮잠자는 시간을 틈탄 휴식이 있었다. 첫 날을 힘들게 보내고 나니 그 다음날 부터는 적응이 됬는지 그렇게까지 힘이 들지는 않았다. 아이들과도 더욱 친해졌는데 이름도 외우고, 성향도 파악되고, 어떻게 다뤄야되는지 요령이 생겼다. 하지만 다른 것에서 문제가 생겼다. 거기에서 인솔자를 도와주던 한 10대 소년이 아이들을 너무 험악하게 다루는 점이 나와 다른 봉사자들의 방식과는 맞지 않았던 거였다. 아이들을 그렇게 고함으로 또 힘으로 제압하는게 너무 안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2주간만 머무는 봉사자고 그 친구는 거기서 몇년을 있었기에 그리고 몇년을 더 그렇게 인솔자를 도와주는 역활이기 때문에 우리가 고치기에는 힘이 드는 부분이였다.
하지만 다른 봉사자 친구들과는 첫날부터 너무 친해져버려서 서로 뭐든 도와주고 하려고 배려해주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특히 캠프리더였던 필립이 우리를 많이 도와주고 잘 이끌어 주었기에 더욱 더 즐거웠던 봉사의 시간이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에는 필립의 고향인 코로파 라는 산골마을에도 가서 지내고 계곡에서 다이빙도 하고, 식사도 초대받고 정말 불가리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봉사가 끝나고 항상 나가서 여기저기 구경도 많이 다니고 야외무대에서 오케스트라도 보고 춤도추고 정말 즐겁고 보람찬 시간들이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일로는 고아원에 새로운 여자아이 1명이 들어왔는데 12살에 다리가 불편한 아이였다. 이전 고아원이 문을 닫게 되어서 12년동안 있었던 그 곳을 떠나 이곳으로 옮겨진 아이였는데 눈물을 계속 흘리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않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12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현실이었을거다. 내가 불평만 했던거 같은 어린시절들은 정말 행복에 겨웠던 나날들이였고 내가 이렇게 아이들을 도와 봉사할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캠프가 없었다면 아마도 나는 정말 우물안 배부른 개구리였을거다.
아이들과 헤어지기 전에는 울면 어떡하지? 걱정도 많이 되었지만 여러 봉사자들을 겪었던 덤덤한 아이들 앞에서 마음이 뭉클했다. 아이들 한명 한명과 포옹을 마치고 헤어지는 길목에서 다른 봉사자들과 헤어지는데도 눈물은 나지 않았지만 갑자기 필립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내년에 같이 여행하는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하며 정말 즐겁고 고마웠다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렇게 빨리 2주가 지났다는게 그때까지도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그렇게 나는 소피아로 쥴리엣과 떠났다.
그 기간동안 겪었던 여러가지 새로운 모든 것들에서 나는 자극받고 긍정적으로 변화되었다. 정말 워크캠프를 모르거나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100% 추천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