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오칼둥가, 사람 냄새 가득한 첫 여행
School Development and Educat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언젠지 기억도 안나는 옛날부터 항상 내가 하던말이 있었다.
"나는 전역하고나면 꼭 여행갈거야! 관광이 아니라 진짜 여행 하고 올거야!!"
어디선가 굉장히 멋있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고 나도 그런사람이 꼭 되고 싶었었다. 그래서 세계일주를 계획했고 그 시작을 워크캠프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머리만 대면 잠을 자고 입으로만 들어가면 다 먹는다.
어딜 가든 사는대로 살아 갈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워크캠프는 굳이 유럽이 아니더라도 나의 세계일주 첫 시작점에서 하고싶었다.
어느나라의 사람이 오는지, 얼마나 오는지, 어떤 사람이 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그 예측할 수 없는 인연들이 어떻게 나의 여행을 꾸며주는지 너무 기대
"나는 전역하고나면 꼭 여행갈거야! 관광이 아니라 진짜 여행 하고 올거야!!"
어디선가 굉장히 멋있는 말을 듣고 감동을 받고 나도 그런사람이 꼭 되고 싶었었다. 그래서 세계일주를 계획했고 그 시작을 워크캠프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나는 머리만 대면 잠을 자고 입으로만 들어가면 다 먹는다.
어딜 가든 사는대로 살아 갈 수 있다. 그래서 나의 워크캠프는 굳이 유럽이 아니더라도 나의 세계일주 첫 시작점에서 하고싶었다.
어느나라의 사람이 오는지, 얼마나 오는지, 어떤 사람이 오는지 도저히 알 수 없지만, 그 예측할 수 없는 인연들이 어떻게 나의 여행을 꾸며주는지 너무 기대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현지활동은 오칼둥가라는 작은 마을에서 했다. 우선 그 곳에 가려고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아침일찍 지프차를 타고 끝이 안보이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도 저녁쯤 되야 도착할 수 있는 정말 산 속에있는 모든 문명과 떨어져 있는 곳이다.
그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할 일은 크게 두종류로 나뉘었다.
오칼둥가라는 마을 학교를 다니는 7~11세 정도 아이들의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수업을 우리 봉사자들만 들어가서 수업을 하는 것,
마을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 너무 멀어 오기 힘든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하나 만드는데 그 건물은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나게 거칠고, 사람의 손길이 너무나도 필요해 보이는 작은 공간이였다. 아이들이 마음껏 안에서 활동을 하기엔 위험하기도 하고 전혀 꾸며지지 않아서 삭막함까지 감도는 그곳을 꾸미는 일 두가지였다.
총 15명 이였고 들어가야 할 교실이 5개였다.
우리는 회의끝에 학교 부분을 2명씩 5팀 10명, 페인팅 작업을 현지리더 1명 나머지 5명, 3일씩 돌아가면서 했다.
우선 페인팅 작업은 장갑을 끼고 사포를 들고 철로 된 창문을 아이들이 손으로 문질러도 다치지 않을만큼 사포질을 하는것, 벽에 튀어나온 모든것들을 다듬는것, 벽의 밑부분은 더러워지기 쉬우니 어두운 갈색으로 페인팅하고 윗부분은 무엇이든 그려넣기 쉽도록 흰색으로 페인팅했다.
그리고 네팔어와 영어 알파벳, 네팔숫자와 그림 여러개를 그리고 현지 단체 로고까지 그려넣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심지어 우리는 잠깐 네팔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지만 우리가 배운 문장은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야.",
"나는 ~에서 왔어."
이정도였다 나를 소개하고 아이들의 소개를 이정도까지만 알아들을 수 있다. 다행히 우리또래의 현지 친구한명도 봉사활동 중이라 그친구가 교실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수업 진행히 막히는 교실에 통역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모두 첫날 수업하기 직전 전혀 갈피를 못잡고있었다. 봉사자중 1분이 체코에서 선생님을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분이 우리를 대표해서 학교측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고 학교측은 뭔가 딱딱하게 가르치기만 하는 학습보다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알려주고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렇게 학교수업이 끝나면, 곧 페인팅 팀들이 돌아오고 봉사자 친구들과 학교 아이들과 같이 해지기 직전까지 매일 축구를 하며 우리가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중학생 나이대 친구들까지 다 같이 놀았다.
그 작은 마을에서 우리가 할 일은 크게 두종류로 나뉘었다.
오칼둥가라는 마을 학교를 다니는 7~11세 정도 아이들의 교실에 들어가 아이들의 수업을 우리 봉사자들만 들어가서 수업을 하는 것,
마을에서 1시간 떨어진 곳에 너무 멀어 오기 힘든 아이들을 위한 교실을 하나 만드는데 그 건물은 정말 말 그대로 엄청나게 거칠고, 사람의 손길이 너무나도 필요해 보이는 작은 공간이였다. 아이들이 마음껏 안에서 활동을 하기엔 위험하기도 하고 전혀 꾸며지지 않아서 삭막함까지 감도는 그곳을 꾸미는 일 두가지였다.
총 15명 이였고 들어가야 할 교실이 5개였다.
우리는 회의끝에 학교 부분을 2명씩 5팀 10명, 페인팅 작업을 현지리더 1명 나머지 5명, 3일씩 돌아가면서 했다.
우선 페인팅 작업은 장갑을 끼고 사포를 들고 철로 된 창문을 아이들이 손으로 문질러도 다치지 않을만큼 사포질을 하는것, 벽에 튀어나온 모든것들을 다듬는것, 벽의 밑부분은 더러워지기 쉬우니 어두운 갈색으로 페인팅하고 윗부분은 무엇이든 그려넣기 쉽도록 흰색으로 페인팅했다.
그리고 네팔어와 영어 알파벳, 네팔숫자와 그림 여러개를 그리고 현지 단체 로고까지 그려넣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고 힘들었다. 심지어 우리는 잠깐 네팔어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지만 우리가 배운 문장은
"이름이 뭐니?",
"내 이름은 ~야.",
"나는 ~에서 왔어."
이정도였다 나를 소개하고 아이들의 소개를 이정도까지만 알아들을 수 있다. 다행히 우리또래의 현지 친구한명도 봉사활동 중이라 그친구가 교실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수업 진행히 막히는 교실에 통역을 도와주었다. 우리는 모두 첫날 수업하기 직전 전혀 갈피를 못잡고있었다. 봉사자중 1분이 체코에서 선생님을 하시는 분이 계셨다. 그분이 우리를 대표해서 학교측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물으셨고 학교측은 뭔가 딱딱하게 가르치기만 하는 학습보다는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알려주고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내달라는 답변을 받았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그렇게 학교수업이 끝나면, 곧 페인팅 팀들이 돌아오고 봉사자 친구들과 학교 아이들과 같이 해지기 직전까지 매일 축구를 하며 우리가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중학생 나이대 친구들까지 다 같이 놀았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가장 첫번째로는 자기네 나라로 여행을 오라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나는 세계일주 중이고 그 점은 나에겐 엄청난 것이다. 낯선 나라였던 수많은 나라들이 친구의 나라가 되고, 낯선 도시들이 나를 반겨주는 도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도 굉장히 바뀌었다.
항상 앞으로 무엇을 해볼까에 대한 고민이 많던 나는 외국에서 여행이 아닌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것 같다.
하지만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서 가까운 시간안에 꼭 워킹 홀리데이를 1년정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워크캠프로 다양한 나라의 다른 억양을가진 많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한국안에서만 영어를 배우는것 보다 훨씬 빠르게 다양한 억양을 이해할수 있었다.
이런 모든것들을 미리 기대하진 않았지만 사람들마다 프로젝트마다 느끼는게 다를테지만 나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캠프였고 최고의 기억으로 남을것이다.
나는 세계일주 중이고 그 점은 나에겐 엄청난 것이다. 낯선 나라였던 수많은 나라들이 친구의 나라가 되고, 낯선 도시들이 나를 반겨주는 도시로 바뀌었다.
그리고 나도 굉장히 바뀌었다.
항상 앞으로 무엇을 해볼까에 대한 고민이 많던 나는 외국에서 여행이 아닌 무언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것 같다.
하지만 이번 워크캠프를 통해서 가까운 시간안에 꼭 워킹 홀리데이를 1년정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워크캠프로 다양한 나라의 다른 억양을가진 많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고 한국안에서만 영어를 배우는것 보다 훨씬 빠르게 다양한 억양을 이해할수 있었다.
이런 모든것들을 미리 기대하진 않았지만 사람들마다 프로젝트마다 느끼는게 다를테지만 나는 사람들과 같이 어울리는 캠프였고 최고의 기억으로 남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