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크푸르트 옆 랑헨, 11명의 특별한 여름
Big city lights - Holiday camp for childre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어릴적부터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여러나라에서 해외 경험을 하였습니다. 10여년간 해외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문화도 접해보았고, 여러 문화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자연스럽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해외생활을 끝내고 국내 대학교에 진학한 뒤, 모든것이 달라졌습니다. 더이상 다양한 인종들을 만나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고, 영어로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던중, 학교를 통해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알게되었고, 망설임없이 지원하게되었습니다.
어릴적부터 해외경험이 많았던 나였지만, 유럽은 처음이었기에 매우 기대가 되었고 설
어릴적부터 해외경험이 많았던 나였지만, 유럽은 처음이었기에 매우 기대가 되었고 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독일 중서부에 위치한 프랑크푸르트 근교 작은 마을 랑헨에서의 3주는 매우 특별했다. 랑헨 청소년 시설에서 3주를 지냈다. 2층에 위치한 소강당이 우리의 숙소였고 건물 전부가 우리의 놀이터였다. 랑헨 청소년 센터에서 근무하는 "Teamers"라는 열댓명의 사람들이 3주간 우리를 도와주었다.
우리들이 한 일은 청소년 센터가 매년 여는 6~1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서머캠프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3주간 3군데의 다른 공원에 아침마다 가서 텐트와 테이블 등등을 설치하고, 서머캠프가 끝난 뒤에는 철수하는 작업을 하였다. 실질적으로 공원에서 설치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그리고 철수하며 보낸 작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7시간이었지만, 설치와 철수 각각 1시간씩을 제외한 5시간은 말그대로 아이들과 노는, 자유시간에 가까웠다.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나한테는 더할나위없는 3주였던것이다.
우리는 3주간 있으면서 지역 일간신문에 2번 실렸고, TV 뉴스에도 한번 나왔었다. 인구수가 3만명 조금 넘는 랑헨에서 7개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11명의 청소년들의 방문은 꽤나 큰 관심거리였다.
실제로 홍보가 제대로 안된 첫 3일은 아이들이 8~10명정도로 우리 참가자들이 더 많아서 꽤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소식이 마을 전체로 퍼진뒤에는 매일 30에서 많게는 50명의 아이들이 캠프를 찾았고 이로인해 매일 매일이 소란스럽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특별한 에피소드로는, R E W E 에서의 일이있다. '레베'라는 독일의 이마트에 가서 장을 볼때, 한 친구가 500그람짜리 쌀 봉지를 집어들고 손으로 저울질을 해보더니 "나이거 혼자 먹을수있을거 같아"라고 하였고, 그말을 철썩같이 믿은 우리는 1인당 500그람 쌀 하나씩, 5.5키로그램의 쌀을 구매하여 한번에 조리를 시작하였다. 조리시작 1분만에 애매하게 불려진 쌀들은 큰솥을 탈출하였고 주방은 온통 쌀 천지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3주동안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것은 자전거를 타고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로 여행을 간것이었다. 2명의 독일인 참가자들이 "여기 '근처'에 하이델베르크라는 큰도시가 있는데 거기는 여기보다 볼것이 많아! 자전거 타고 가자!"라며 우리를 꼬드겼고, 앞으로 닥칠일을 전혀 모른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그들을 따라 출발을했다. 우리는 그렇게 랑헨 '근처'에 있(어야하)는 하이델베르크에 5시간 20분의 바이킹 끝에 도착할수있었다. 그들이 알고있는 '근처'라는 개념에 의구심이 들었을 정도이다. 오전 8시에 출발한 우리는 중간에 이글스바흐라는 도시에서 아침을 먹고, 다름슈타드에서 점심을 먹고, 2시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할수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지칠데로 지쳐있었고, 결국 1시간 정도만 관광을 하고 DB 기차를 타서 랑헨으로 복귀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5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얘기도하고 웃기도하며 자전거를 탄 경험은 정말 특별했고 평생 잊지 못할것 같다.
우리들이 한 일은 청소년 센터가 매년 여는 6~15세 아이들을 대상으로한 서머캠프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3주간 3군데의 다른 공원에 아침마다 가서 텐트와 테이블 등등을 설치하고, 서머캠프가 끝난 뒤에는 철수하는 작업을 하였다. 실질적으로 공원에서 설치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그리고 철수하며 보낸 작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총 7시간이었지만, 설치와 철수 각각 1시간씩을 제외한 5시간은 말그대로 아이들과 노는, 자유시간에 가까웠다. 아이들을 특히 좋아하는 나한테는 더할나위없는 3주였던것이다.
우리는 3주간 있으면서 지역 일간신문에 2번 실렸고, TV 뉴스에도 한번 나왔었다. 인구수가 3만명 조금 넘는 랑헨에서 7개의 다양한 나라에서 온 11명의 청소년들의 방문은 꽤나 큰 관심거리였다.
실제로 홍보가 제대로 안된 첫 3일은 아이들이 8~10명정도로 우리 참가자들이 더 많아서 꽤나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소식이 마을 전체로 퍼진뒤에는 매일 30에서 많게는 50명의 아이들이 캠프를 찾았고 이로인해 매일 매일이 소란스럽지만, 즐거운 하루였다.
특별한 에피소드로는, R E W E 에서의 일이있다. '레베'라는 독일의 이마트에 가서 장을 볼때, 한 친구가 500그람짜리 쌀 봉지를 집어들고 손으로 저울질을 해보더니 "나이거 혼자 먹을수있을거 같아"라고 하였고, 그말을 철썩같이 믿은 우리는 1인당 500그람 쌀 하나씩, 5.5키로그램의 쌀을 구매하여 한번에 조리를 시작하였다. 조리시작 1분만에 애매하게 불려진 쌀들은 큰솥을 탈출하였고 주방은 온통 쌀 천지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3주동안 있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것은 자전거를 타고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로 여행을 간것이었다. 2명의 독일인 참가자들이 "여기 '근처'에 하이델베르크라는 큰도시가 있는데 거기는 여기보다 볼것이 많아! 자전거 타고 가자!"라며 우리를 꼬드겼고, 앞으로 닥칠일을 전혀 모른채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그들을 따라 출발을했다. 우리는 그렇게 랑헨 '근처'에 있(어야하)는 하이델베르크에 5시간 20분의 바이킹 끝에 도착할수있었다. 그들이 알고있는 '근처'라는 개념에 의구심이 들었을 정도이다. 오전 8시에 출발한 우리는 중간에 이글스바흐라는 도시에서 아침을 먹고, 다름슈타드에서 점심을 먹고, 2시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할수있었다. 하이델베르크에 도착한 우리는 이미 지칠데로 지쳐있었고, 결국 1시간 정도만 관광을 하고 DB 기차를 타서 랑헨으로 복귀했다. 힘든 여정이었지만, 5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얘기도하고 웃기도하며 자전거를 탄 경험은 정말 특별했고 평생 잊지 못할것 같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11명의 참가자들과 지낸 3주는 마냥 순탄치는 않았다. 첫주엔, 러시아에서 온 남학생이 한 프랑스 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혀 열차 티켓을 끊고 실제로 캠프가 끝나기도 전에 돌아 가려고한 일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다른 참가자들이 위로하고 도와주고 감싸줘서 3주동안 잘 지낼수있었다.
가해자인 학생은 3주간 워크캠프 활동에서 제외되었다. 잠도 1층 쇼파에서 혼자 자고 봉사활동에서도 제외되었고, 밥도 따로 먹는, 그냥 같은 공간에 있는 남처럼 3주를 지내게 되었다. 난 이러한 Work Camp측의 조치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가해자의 인권을 중요시여기며 사건이 일어나도 최대한 조용히 완만한 처리를 추구하는 한국과 달리, 신속하고 엄중한 독일 IJGD측의 처리를 보며, 문화의 차이를 다시금 느꼈었다.
일단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순수하였고, 모두가 진심을 다해 캠프에 임했으며, 3주간 무수한 추억을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이번 겨울, 유럽에 여행을 가게되면, 가서 호텔 숙박비는 아낄 수 있게되었다.
가해자인 학생은 3주간 워크캠프 활동에서 제외되었다. 잠도 1층 쇼파에서 혼자 자고 봉사활동에서도 제외되었고, 밥도 따로 먹는, 그냥 같은 공간에 있는 남처럼 3주를 지내게 되었다. 난 이러한 Work Camp측의 조치를 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가해자의 인권을 중요시여기며 사건이 일어나도 최대한 조용히 완만한 처리를 추구하는 한국과 달리, 신속하고 엄중한 독일 IJGD측의 처리를 보며, 문화의 차이를 다시금 느꼈었다.
일단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기분이었다. 친구들은 순수하였고, 모두가 진심을 다해 캠프에 임했으며, 3주간 무수한 추억을 만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덕분에 이번 겨울, 유럽에 여행을 가게되면, 가서 호텔 숙박비는 아낄 수 있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