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태국 시골 마을, 낯섦이 준 선물
Peace Village- Songkhl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친누나를 통해 8월 말 워크캠프, 라는 단체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는데 한 달여 정도를 남겨둔 상태였기 때문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일단 신청하게 되었다.
참가 신청을 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비행기 예매였는데 감사하게도 왕복으로 30여만 원 정도의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6KG 조금 넘는 수준으로 쌌고, 노트북도 가지고 갔다.
신청의 가장 큰 이유는 '영어'였는데 영어를 잘 못해 영어를 위해 영어를 준비했다. 한 달 정도 영어회화 전화를 하고 갔는데 이게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워크캠프라는 단체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아는 것이 없어 기대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적자면 한국에서 태국으로 가는 항공기 안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조금의 슬픔도 밀려왔었다.
참가 신청을 한 후 가장 먼저 한 것은 비행기 예매였는데 감사하게도 왕복으로 30여만 원 정도의 티켓을 구매할 수 있었다. 짐은 최대한 가볍게 6KG 조금 넘는 수준으로 쌌고, 노트북도 가지고 갔다.
신청의 가장 큰 이유는 '영어'였는데 영어를 잘 못해 영어를 위해 영어를 준비했다. 한 달 정도 영어회화 전화를 하고 갔는데 이게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다.
워크캠프라는 단체도 이번에 처음 알았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에 아는 것이 없어 기대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솔직히 적자면 한국에서 태국으로 가는 항공기 안에서 내가 지금 여기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조금의 슬픔도 밀려왔었다.
현지 활동 및 특별했던 에피소드
방콕에 도착해 다시 핫야이, 라는 태국 최남단 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을 한번 더 탔다. 내가 간 곳은 클렁호이콩 이라는 조그마한 시골 동네였는데 200여 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라고 했다. 할머니는 물론이고 초중고 학생들까지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재밌는 풍경과, 아름다운 하늘과 자연, 평화로운 분위기에 맛있는 타이 티와 현지 음식들까지. 사람들도 참 좋은 한적한 곳이었다.
외국인 봉사자는 나 혼자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와 한 주 정도만 하고 가려 했었는데 며칠 정도 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어 결국 끝까지 다 하게 되었다.
태국 현지 IVS 담당자는 피뚬이라는 푸근한 곰상의 남성이었는데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멋있는 남자였다. 그의 아들 떼이는 12살 남학생이었는데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듯싶었다. 지금은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건지 매 순간을 지루해했었는데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내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 그의 아내는 작가였는데 태국 IVS 책도 그녀가 썼다며 내게도 한 권 주었다. 꽤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여성이었다. 바로 옆집에 살았던 오토바이 정비공 기어, 그의 여자친구 챠챠(내가 wife라고 표현하면 그는 항상 girl friend라고 정정해 주었다), 현지 자원봉사자들도 많았다.
스무 살 킨은 내 앞집에 살았는데 나와 가장 많이 봉사활동을 한 친구이기도 하다. 해외에 나가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던 니아, 나와 동갑인 메이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시내에 사는 팝아이는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30여 분 정도의 거리였다) 느낌 있는 헬멧부터 도시락으로 싸오는 샐러드까지 뭔가 멋있는 친구였다. 그의 친구 싸도 현지 봉사자였는데 내 마지막 날 같이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게 그녀의 첫 수업이라고 했다. 막바지에 온라인 미팅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엘레나는 독일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8살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4명의 다른 독일인 친구들과 같이 1년 장기 봉사로 태국에 왔다고 했다.
나는 월~금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동네 안에 있는 불교사원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현지 학생들과 영어로 소통했다. 학생 수가 20~30명은 되어 피뚬과 나 2그룹으로 나눠 진행했는데 피뚬은 유튜브를 통해 문법을 가리켰고 나는 게임과 소통 위주로 진행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땐 현지 봉사자 친구들이 도와주었다.
모든 수업과 이후 방콕의 일을 제외하더라도 이곳의 에피소드는 참 많았다. 오토바이가 많고, 야자수 나무가 있다는 걸 제외하면 외나로도와 같은 곳(사실 외나로도 말고는 아는 시골이 없기도 하지만)이었는데도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아무도 없던 조용한 호수와 그 뒤로 저물던 노을,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고, Fish Fighting 도박장(닭과 소도 있었는데 보진 못했다), 늘 날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주셨던 동네 할아버지, 세븐일레븐 앞에서 간단히 식사하던 무슬림 가족들 옆에서 같이 빵을 먹고, 20~25바트밖에 하지 않았던 차이옌, 이라고 하는 Thai-Tea도 참 맛있었다. 킨과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고, 1년에 한 번 열리는 'Chak Phra' 축제(우리나라의 부처님 오신 날 같은)도 보고, 시내 핫야이 센터(우리나라의 스타필드와 거의 흡사했다), 폭포, 현지 교회에도 가보고, 샤부(샤부샤부) 뷔페와 morning glory(나팔꽃 음식), mango sticky rice, 카페에서 먹었던 로티도 참 맛있었다.
외국인 봉사자는 나 혼자였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걱정과 두려움이 밀려와 한 주 정도만 하고 가려 했었는데 며칠 정도 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어 결국 끝까지 다 하게 되었다.
태국 현지 IVS 담당자는 피뚬이라는 푸근한 곰상의 남성이었는데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멋있는 남자였다. 그의 아들 떼이는 12살 남학생이었는데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듯싶었다. 지금은 약간 매너리즘에 빠진 건지 매 순간을 지루해했었는데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다고 한다. 그냥 내가 재미가 없어서 그런 것도 같지만. 그의 아내는 작가였는데 태국 IVS 책도 그녀가 썼다며 내게도 한 권 주었다. 꽤나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여성이었다. 바로 옆집에 살았던 오토바이 정비공 기어, 그의 여자친구 챠챠(내가 wife라고 표현하면 그는 항상 girl friend라고 정정해 주었다), 현지 자원봉사자들도 많았다.
스무 살 킨은 내 앞집에 살았는데 나와 가장 많이 봉사활동을 한 친구이기도 하다. 해외에 나가 일하는 게 꿈이라고 했던 니아, 나와 동갑인 메이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 했다. 시내에 사는 팝아이는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왔는데(30여 분 정도의 거리였다) 느낌 있는 헬멧부터 도시락으로 싸오는 샐러드까지 뭔가 멋있는 친구였다. 그의 친구 싸도 현지 봉사자였는데 내 마지막 날 같이 수업을 진행했는데 그게 그녀의 첫 수업이라고 했다. 막바지에 온라인 미팅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 엘레나는 독일인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18살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4명의 다른 독일인 친구들과 같이 1년 장기 봉사로 태국에 왔다고 했다.
나는 월~금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동네 안에 있는 불교사원에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현지 학생들과 영어로 소통했다. 학생 수가 20~30명은 되어 피뚬과 나 2그룹으로 나눠 진행했는데 피뚬은 유튜브를 통해 문법을 가리켰고 나는 게임과 소통 위주로 진행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땐 현지 봉사자 친구들이 도와주었다.
모든 수업과 이후 방콕의 일을 제외하더라도 이곳의 에피소드는 참 많았다. 오토바이가 많고, 야자수 나무가 있다는 걸 제외하면 외나로도와 같은 곳(사실 외나로도 말고는 아는 시골이 없기도 하지만)이었는데도 매일매일이 새로웠다. 아무도 없던 조용한 호수와 그 뒤로 저물던 노을, 혼자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고, Fish Fighting 도박장(닭과 소도 있었는데 보진 못했다), 늘 날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주셨던 동네 할아버지, 세븐일레븐 앞에서 간단히 식사하던 무슬림 가족들 옆에서 같이 빵을 먹고, 20~25바트밖에 하지 않았던 차이옌, 이라고 하는 Thai-Tea도 참 맛있었다. 킨과 구글 번역기를 돌려가며 1시간 넘게 이야기를 하고, 1년에 한 번 열리는 'Chak Phra' 축제(우리나라의 부처님 오신 날 같은)도 보고, 시내 핫야이 센터(우리나라의 스타필드와 거의 흡사했다), 폭포, 현지 교회에도 가보고, 샤부(샤부샤부) 뷔페와 morning glory(나팔꽃 음식), mango sticky rice, 카페에서 먹었던 로티도 참 맛있었다.
참가 후 변화와 느낀 점, 하고 싶은 이야기
만났던 사람들도 참 다양했고, 저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영화 부산행을 보고 부산에 놀러 왔던 Thai-Chinese(태국은 중국계 태국인이 정말 많다), 박서준을 좋아하고(International husband라고 표현했다) 나도 안 가본 평창 스키장과 여의도 순복음교회에도 갔다 왔다는 그녀의 친구, 오토바이를 무서울 정도로 빨리 몰던 친구, 자신의 아픈 이야기를 해 주고 세상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하던 친구,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태국은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나라였다.
처음엔 단순히 '영어'를 위해 신청햇는데 막상 가 보니 세상이 참 넓고 다양하고, 그곳에서도 각자의 슬픔과 이야기가 있음을 보고 옵니다.
처음엔 단순히 '영어'를 위해 신청햇는데 막상 가 보니 세상이 참 넓고 다양하고, 그곳에서도 각자의 슬픔과 이야기가 있음을 보고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