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남부, 7명의 여자들이 만든 추억

작성자 신초혜
프랑스 JR12/214 · SOCI 2012. 06 - 2012. 07 FRANCE, VALENCE

EMMAUS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프랑스 남부에서의 일년 간의 꿈 같은 교환학생 생활을 정리하고 워크캠프 장소로 가는 발걸음은 가볍지 만은 않았다. 정들었던 친구들을 떠나야 했고 워크캠프가 끝나면 정말로 프랑스를 떠나야 했기 때문에 아쉬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새로운 삶과 사람들에 대한 약간의 우려를 안고 기차에서 내리자 밝은 인상의 리더 엘리안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나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금새 ‘아,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Valence라는 제법 큰 도시에 내려 차를 타고 이십 분 가량 가서 내린 곳은 이 그림 같은 집이었다. 이 건물에서 7명의 참가자들이 이주 동안 함께 생활했다. 캠프의 참가자는 미국인 두 명, 스페인, 캐나다 퀘백,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인 두 명, 프랑스인 캠프 리더로 모두 7명, 여자였다. 건장하고 훈훈한 유럽남자아이들과의 만남을 꿈꿨던 나로서는 약간 실망을 했었지만 어찌하겠는가. 이게 내 운명인 것을.
나의 영어는 간단한 인사와 안부를 묻는 정도의 수준으로 빈곤하기 때문에 가기 전 언어에 대한 걱정을 많이 했었으나 다행히 배려심 깊은 캠프리더는 나와 불어권 퀘백에서 온 친구를 위해 늘 두가지 언어로 설명을 해주어서 큰 문제가 없었다.

EMMAUS라는 기관은 프랑스에 백여 개 정도 퍼져있고 나는 그 중에 한 곳인 Etoile에서 일하게 되었다. 이 기관은 일자리와 집이 없거나, 과거 마약, 절도 등의 범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일자리와 숙소, 식사를 제공하고 시민들이 기부한 물건을 다시 되팔아 수익을 내고 그 수익으로 단체를 운영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캠프 참가자들의 업무는 어렵지 않았다. 벼룩시장이 열리기 전인 오전에는 창고에서 기부된 물건들 중에서 팔 수 있는 것들을 분류하고, 장이 열리는 건물을 청소하고 물건을 진열하는 일을 주로 하였다. 두시간의 점심시간 후에는 직접 손님을 맞으며 물건을 팔고 영수증을 내주는 일을 하였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는 시내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가거나 산책을 하고, 동네에서 열리는 축제에 참가했다. 일요일, 월요일의 휴무에는 다같이 차를 타고, ‘아비뇽’이란 도시를 방문하기도 했다.

캠프가 끝난 지 두 달이 되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캠프가 나에게 남긴 인상 혹은 추억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바로 이 곳에서 먹었던 환상적인 식사이다. 프랑스에서 일년 가까이 살면서 맛보았던 음식은 충분히 실망스러웠었다. 모두들 나에게 프랑스는 미식의 나라라고 온갖 산해진미를 맛볼 수 있을 거라고 했지만, 정작 학생 신분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늘 햄버거와 수북한 감자튀김, 그리고 파스타, 피자 정도였다. 그런데 살이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워크캠프에서 사 킬로나 얻어갈 줄이야! 그리고 잘 짜여진 프랑스 가정식을 코스로 점심, 저녁으로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쉐프 아저씨의 훌륭한 요리 솜씨와 건강한 식재료 덕에 치즈부터 프랑스 전통 가정식까지 많은 요리를 맛보게 되었고 아직도 그 맛은 내 입이 기억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 캠프의 운영방식이었다. 우리 나라에도 유사한 단체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 단체의 원동력은 백 퍼센트 시민들의 참여와 기부였다. 거의 새것에 가까운 아주 질이 좋은 가구, 가전제품 등을 기부하는 사람도 있었고 잘 입은 옷을 깨끗이 세탁해 내놓는 사람들도 많았다. 질이 좋은 제품은 중고라 할지라도 괜찮은 가격으로 팔 수 있었기 때문에 그 수입은 단체를 운영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나로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일을 위해 제 물건을 내놓는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 텐데 선뜻 주고 떠나가는 사람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사전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여기서는 근무자를 compagnon(동료)라 칭했다.) 함께 일하고 밥을 먹는 등의 생활을 함께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해서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 과거에 어떠한 사회적 문제들을 지녔던 사람들이었기에 그런 이들을 접해 볼 경험이 없었던 나로서는 솔직히 겁이 났었다. 하지만 딱딱한 첫인상과는 달리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매우 친절했고 루마니아, 아프리카 등에서 온 동료들은 불어나 영어에 서툴렀지만 우리와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캠프를 끝날 때쯤 헤어지기가 더 아쉬웠던건 오히려 봉사활동 참가자들보다 이 동료들일 정도로 우리에게 많은 애정을 쏟고 환대해주었다. 힘들게 암 투병 중이었으나 언제나 유머러스했고 나에게 작은 장난감까지 선물해주었던 장 폴 아저씨와, 사람의 애정이 그리워 밤마다 나에게 찾아와 산책하자고 했던 나디아, 옥수수 밭을 배경으로 나에게 탱고를 가르쳐 주었던 호세아저씨의 얼굴은 아직도 아른거린다. 과거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자신의 새로운 앞날을 위해서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하는 동료들의 모습은 아주 인상 깊었다. 동료들의 자생력과 독립심을 키워 다시 사회로 내보내는 것이 이 단체의 목적인 듯했다.
세 번째는 단 일곱 명 밖에 없었지만 제각기 달랐던 캠프참가자들이다.
완벽했던 우리의 캠프리더 엘리안, 괴짜 분위기 메이커였던 미국인 크리스티나, 우리 팀의 브레인이자 자신의 친구와는 정반대의 차분한 제이미, 스페인에서 온 유쾌하고 열정적이었던 알바, 위트 있고 냉소적인 퀘백소녀 미쉘, 조용하게 열심히 일을 했던 착한 한국 친구까지…..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성격의 친구들과 이주를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들에게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 지 궁금하다.
이처럼 나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기고 프랑스에서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장식하게 했던 워크캠프는 나에게 ‘한여름 밤의 꿈’이다! 달콤했지만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꿈
언젠가는 다시 꼭 뭉치자는 마지막의 우리의 약속처럼 모두들 청춘의 꿈을 간직한 채 또 한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