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봉사로 채운 나만의 여름 유럽에서 찾은 여행

작성자 서정화
이탈리아 Leg24 · ENVI 2012. 06 - 2012. 07 NOVARA

Novar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가 대학생이 되면 꼭 하려고 했었던 세 가지!! 여행, 아르바이트, 봉사활동.
국제 워크캠프는 나에게 이 세 가지 목표를 다 이룰 수 있게 해주었다. 학기 중에는 학업과 알바, 멘토링으로 늘 바쁘게 보내느라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이 무척 어려웠다. 막연하게 ‘언젠가 나도 유럽으로 여행을 가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지원해주는 배낭여행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었는데 2학년 때 과 학생회를 하면서 알게 된 선배언니가 워크캠프를 다녀온 후 적극적으로 추천을 해주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워크캠프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한 나는 친구와 함께 워크캠프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알고 보니 워크캠프는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 문화와 전통을 가진 사람들이 자원봉사활동을 목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며 지역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국제교류프로그램이었다. 해외봉사와 유럽여행을 동시에 할 수 있다니 나는 너무 설레었다. 그러나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었다. 가장 적절한 시기는 여름 방학이 분명한데 당장 한 달 밖에 안 남았고 지금 준비해도 충분할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또 비용부담은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용돈만큼은 스스로 벌자’란 다짐을 가지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알바로 모은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나는 엄마에게 말씀을 드렸고 엄마는 흔쾌히 지원을 해주셨다. 허락을 받은 후 국제워크캠프에 지원서를 내고 수현이랑 나는 매일 새벽 5시까지 워크캠프 일정과 여행 일정을 계획했다. 출발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우린 너무 분주했다. 운좋게 우리는 참가지역이 같은 곳으로 배정되어서 심리적으로는 일단 안심이 되었다. 이탈리아가 위험하단 얘길 하도 들어서 걱정했는데 둘이 함께 있으니 덜 무섭고 서로 의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6월 30일부터 7월 14일까지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일정이었는데 27일에 밀라노로 들어가서 먼저 3박 4일 동안 베네치아, 피렌체, 피사를 여행하고 우리의 워크캠프 미팅포인트인 노바라로 향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아주 위험한 것 같진 않았다. 밀라노 중앙역에서 캠프리더와 시간을 협의하려고 미리 문자를 보냈었는데 답이 오질 않아 조바심이 났다. 짐도 무겁고 캠프리더를 못만나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 노바라 역에 도착하자마자 세레나(팀 리더 마르찌아의 딸)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우리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다른 캠프참가자들은 이미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우리 팀은 초등학교 교사인 25살 그리스인 소피아, 세일즈 매니저인 22살 러시아인 발렌티나, 엔지니어이고 26살 터키인 푸르칸, 25살 체코인 하나, 학생인 스페인인 20살 다비드와 18살 오닌자, 그리고 한국인 22살 수현이와 나 이렇게 여덟 명이었다. 서로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하고 이름을 물었다. 그리고 우리를 도와줄 코디네이터 엘리사와 서포터 마이클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나랑 수현이는 러시아인 발렌티나와 셋이 한 방을 쓰게 되었다. 발렌티나는 만나는 순간부터 워크캠프를 종료할 때 까지 영어가 부족한 우리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다음날은 일요일이라 일을 하지 않는 날이었다. 오전 수영장에 가서 함께 수영을 하고 마르찌아(팀리더)의 집에서 점심을 먹은 뒤 식당으로 이동해 노바라 워크캠프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앞으로 2주 동안 우리가 어떤 일을 할 것 인지 안내도 받았다. 한국에서 오티를 할 때는 우리가 협의해서 계획을 짠다고 들었는데 이곳의 전체적인 일정은 짜여있고 세부일정만 우리가 조정했다.
드디어 봉사 첫 날 우리는 지역 공원을 정비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쓰레기를 줍고, 나무도 자르고, 훼손된 벤치도 고치고, 페인트칠도 했다. 일을 하면서 덥고 지칠 수 있는데 우린 항상 노래를 들으면서 즐겁게 일을 했다. 한국 노래를 아는 친구도 있었다. 봉사는 매일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이루어졌고, 점심식사를 한 뒤 쉬다가 시티투어를 나가거나 공연관람, 자전거 투어 등의 자유시간도 가졌다.
한 번은 free time 시간이 주어져서 우리가 다같이 계획을 짜고 토리노에 놀러갔다 오기도 했다. 원래 소피아와 푸르칸은 베네치아에 가고 싶어 했지만 다른 친구들이 베네치아는 멀고 비싸다는 이유로 호응을 해주지 않았다. 또 베네치아는 이미 수현이와 내가 여행을 다녀온 곳이기도 해서 친구들의 배려로 결국 토리노 여행이 결정 되었다. 나는 아쉬워하는 소피아와 푸르칸에게 조금 미안했다. 둘이 너무 베네치아를 가고 싶어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토리노로 향하는 날 아침 우리는 모두 들뜬 마음으로 토리노행 기차에 올랐고 봉사를 하면서 만난 지역서포터 리카르도와 마리아의 가이드에 따라 즐겁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늘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실 나는 하루에 한 번은 꼭 기분이 상했다. 바로 나와 당번을 같이 하는 스페인 친구 다비드 때문이었다. 다비드는 처음엔 나와 수현이에게 매우 친절하게 잘 대해주었고 한국문화에도 관심을 많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너네 한국인들은 개고기 먹지 않아?”라고 물었고 나는 “먹지만 모두가 먹는 것은 아니야. 나도 아직 못 먹어봤어”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이 일이 기분이 나쁘지 않았는데 매일매일 다비드는 ‘한국인은 개고기를 먹는다’고 비아냥거렸고, 지나가면서 길에 곤충이나 벌레가 지나갈 때마다 나를 보며 “너네 저것도 먹냐?”라고 묻곤 했다. 또 수현이와 나를 놀리듯이 늘 “Korean girl~~”하고 불렀다. 물론 우리 이름이 발음하기 어려운 것은 이해가 되었지만 우리가 동양인이라 다른 친구들 보다 우릴 더 무시하는 것 같이 기분이 나빴다. 당번을 할 때도 항상 나 혼자 설거지, 청소를 다하고 그는 단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았다. 몇 일 동안 이렇게 기분이 상해있었는데 룸메 발렌티나가 이것을 알아채고 다비드를 나무랐다. 다비드가 나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것조차도 진심으로 한 사과가 아니었다. 건성으로 “I'm really really sorry”라고 말했다. 기분이 나빴다. 여기서 그냥 사과를 받아주면 우릴 더 우습게 생각 할 것 같아서 나는 “나와 수현이는 지금 너 때문에 굉장히 화가 나있고, 그래서 미안하지만 네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했다. 그 때부터 다비드와 사이가 좀 어색해졌다. 다비드는 우리에게 간혹 말을 걸었지만 난 그와 상대하고 싶지 않아 그가 다가오면 피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늦게 세수를 하고 무심코 화장실 창문을 올려다보는데 창살로 손이 하나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다비드가 이제 미쳤구나... 나랑 정말 싸워보자 이거구나’라고 생각하고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눈이 마주친 순간 나는 그가 우리 팀원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백인이고 어두워서 잘 안보였지만 금발머리의 청소년으로 추정되는 그 남자아이는 나를 본 순간 도망갔다. 샤워를 하고 있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아찔했다. 그 날 우리 방에서 잠귀가 예민한 소피아와 발렌티나가 자고 있었다. 그들을 깨우기가 미안해서 수현이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마이클을 찾았지만 마이클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꼭 잡아서 혼내주고 싶었다. 옆 방에서는 다비드와 오닌자가 문을 닫고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수현이와 내 얘기를 하고 있어서 도움을 청하고 싶지 않았다. 긴 나무 장대를 들고 우리 숙소 정문과 후문을 돌아본 뒤 다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마이클과 마테오가 돌아왔다. 나는 영어로 “지금 누군가 이곳에 침입했고 십대로 보이고 금발머리에 백인이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모든 친구들이 잠에서 깨서 밖으로 나왔다. 우리는 경찰에 연락했지만 그들은 너무 늦은 새벽이라 올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 2시에 다같이 동네를 한 바퀴 돌며 순찰을 했다. 막내 오닌자는 너무 놀라서 계속 울기만 했다.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온 우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천막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친구들이 나에게 무섭지 않았냐고 물었지만 나는 무섭기보단 그들이 이곳에 침입한 목적과 잡아서 혼내주고 싶단 생각 밖에 들지 않아 그렇다고 이야기 했다. 친구들이 “Jeong-hwa, you very brave girl!!”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우리가 키도 작고 상대적으로 말라서 힘이 없을거라 생각했던 친구들인데 나는 그 날 한국인들이 얼마나 용감한지 보여주었다.
워크캠프 종료 전날 우리는 한국에서 가지고 온 식재료들로 친구들에게 한국음식을 맛보게 해주고 싶었다. 식사도 늘 레랄도가 준비해주셔서 우리는 음식을 한 적이 거의 없었다. 친구들에게 먼저 우리의 뜻을 전하고 마르찌아의 도움으로 장을 봐서 돼지갈비와 화채 그리고 푸르칸을 위해 소갈비도 준비했다.(그는 이슬람교를 믿기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었다.) 흰 쌀밥과 고기는 완전 인기 메뉴였다. 수박과 여러 과일을 섞은 화채를 수박 껍데기에 다시 담아서 선보였는데 어른들이 너무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식재료를 준비해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여러 나라가 있어도 먹는 음식이 비슷한데 친구들은 돼지 ․ 소갈비를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 좋고, 우리는 한국 음식을 알릴 수 있어서 좋았다. 소피아는 나에게 레시피까지 물어 적어갔다. 집에 가서 다시 한 번 만들어 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크캠프 마지막 날 우리는 공원에 모여 지난 2주간의 소감을 이야기 했다. 나는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들과 여기 이 공원 그리고 매일매일 탄 자전거도.. 정말 너무 많이 정들었고 당장 내일이면 떠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그리고 한 마디 더!! 나는 마지막인 만큼 다비드가 우리의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 사실 어떤 친구로 인해서 그동안 기분이 좀 상해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한국인을 무시하는 것 같아서 늘 마음이 불편했다고.. 마르찌아와 엘리사 등 캠프 리더들이 놀라고 미안해했다. 다비드도 그 날 저녁 파티 때 우리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와 수현이를 부를때 이름을 불러주었고 마지막으로 인사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말없이 서로 이해하고 화해를 했다.
떠나기 전 날 오후부터 밤까지 공원에서 파이널 파티를 가졌다. 많은 사람들과 음식들... 나는 이 장면을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 할 것이다. 우리가 정비한 이 공원에 손도장을 찍고, 짧지만 그리 짧지 만도 않았던 2주간의 우리 활동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보고했다. 엘리체가 만든 우리 사진이 담긴 영상도 보고, 우리의 테마곡인 'big big world'를 부르기도 했다. 2주동안 만난 사람들이 이 자리에 모두 모인 시간이었다. 우린 그들에게 찾아가 사진도 찍고, 포옹도 하며 한 명 한 명과 인사를 나누었다. 수현이와 한국에서 미리 준비해온 작은 선물들도 사람들에게 전달했다.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한국인”이라고 이야기 해 주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페이스북 아이디와 집 주소, 핸드폰 번호를 공유하고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다. 우리의 만남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생각된다. 워크캠프가 끝난지도 벌써 한 달이 넘어 가는 지금까지도 우리는 메신저, 페이스북 등을 통해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고 'See you again!!!' 나는 그들과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만나기를 절대적으로 바란다.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이여 Ad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