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베트남, 봉사와 여행 사이의 행복

작성자 김민희
베트남 VPV15-12 · KIDS/ MANU 2012. 08 Phu Ninh

Phu Ninh Community Renovat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3학년이 되어서 다시 시작되는 방학 동안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라는 생각에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지난 여름. 비슷한 또래의 사촌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번 워크캠프에 지원하게 되었다. 방학을 맞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기도 하고, 해외여행을 다녀오고 싶기도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방학을 보내자니 내 인생이 큰 도움을 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해외여행을 하자니 모아둔 돈이 거의 없던 터라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워크캠프를 통해서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사회적으로 봉사활동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해외 봉사활동은 나에게 새로운 경험과 해외여행의 갈증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 시켜줄 수 있는 기회였다. 다행히 사촌언니와 같은 워크캠프에 지원했고 함께 합격하여 해외여행에서의 위험을 덜 수 있었던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여행 비용을 최대한 절약하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했던 나라는 베트남이었다. 인천 국제공항을 떠나고 4시간쯤 후에 도착하게 된 하노이 공항은 생각보다 멋진 곳이었다. 그 동안에 베트남이라 하면, 농사를 짓는 모습이나 우리나라로 시집온 베트남 여인 밖에 떠오르지 않았으나 눈 앞에 펼쳐진 베트남의 모습은 한국의 80년대 정도의 도시의 모습이었다. 2일 정도의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는 본격적으로 워크캠프를 시작하기 위해서 미팅 포인트로 갔다. 미팅 포인트에 도착하자 많은 외국인이 사무실에 모여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노란 머리의 유럽인, 우리와 친숙한 모습을 하고 있는 아시아인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2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졌다. 우리 그룹은 팀원 중에 2명을 제외한 대부분이 여성이었고, 2명의 유럽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아시아계 사람들로 이루어져있었다. 워크캠프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팀 구성이 매우 아쉬웠다. 약간의 긴장감과 실망감 그리고 커다란 기대감을 가지고 우리는 실제 워크캠프 장소로 떠났다. 택시와 버스를 번갈아 타면서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푸친이라는 시골 동네였다. 하노이와는 다르게 주변의 풍경은 거의 논과 밭이었고 시골 할머니 댁이 생각나는 그런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고 우리는 큰 충격에 빠지게 되었다. 첫 번째는 학교 책상을 모으고 그 위에서 자야 한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화장실, 샤워실이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 사실은 금방 인정하고 적응할 수 있었지만, 화장실이 없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후에 적응이 되기는 했지만 돌아오는 날까지 느꼈던 불편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돌아오는 날쯤에서 nature toilet 이라는 애칭을 붙여 야외에서 용변을 해결했던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남긴 했다. 우리가 식사를 해결한 장소는 베트남의 한 가정집이었다. 우리가 현지인들 중에 가장 친해지고 가장 많이 정이 들기 된 집이어서 그곳 아주머니 아저씨를 마마, 파파라고 칭하면서 2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2주간의 워크캠프 동안 우리가 한 일은 화장실 건설과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는 일이었다. 원래는 오전에 건설 일을 하고 오후에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지만 베트남의 유치원은 새벽 일찍 문을 열어 점심쯤에 문을 닫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우리의 스케줄은 오전에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 건설 일을 하는 것이었다. 오전의 유치원은 전쟁터 같았다. 귀엽고 예쁜 아이들이 모여있는 천국일 것이라는 나의 상상과는 다르게 우리가 도착한 유치원은 엄마와 할머니를 찾는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귀가 멍멍했다. 그래도 일을 도우러 온 이상 선생님들을 도와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함께 춤도 추고, 마지막에는 벽화까지 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워크캠프 동안 가장 큰 어려움은 건설 일을 하는 것이었다. 해가 가장 쨍쨍한 2시부터 시작되는 건설 일은 6시가 되어서나 끝이 났는데 그 동안의 더위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날씨도 날씨였지만 건설 일도 매우 어려웠다. 첫날은 가시덤불로 가득한 화장실 주변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이 시작되었다. 가시가 가득한 가시덤불을 치워야 했기 때문에 여기저기 까지고 다치는 일이 빈번했다. 특히 현지 리더가 준비성이 좋지 않아서 장갑이 부족했었고 개인적으로 준비해온 장갑도 있었지만 항상 장갑 없이 맨손으로 일하는 팀원이 존재했다. 덤불을 치우고 나서는 언덕을 파내어 평평한 길을 만들었고 자갈과 벽돌을 옮겨서 화장실의 벽을 새로 지었다. 화장실의 벽이 완성되고 나서는 페인트 칠과 벽화를 마지막으로 건설 일도 끝이 났다. 다시 생각해보니 워크 캠프에서 한 모든 것이 어려웠고 힘이 들었던 것같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통해서 나 자신이 한 단계 더 성장한 기분이 든다.

우리가 돌아가는 마지막 날에는 마을 사람들과 송별회를 가졌다. 첫 번째 송별회는 술과 함께한 송별회였는데 그 지역의 높으신 분들과 학교 선생님들과의 송별회였다. 베트남 술이 30도 정도로 높은 도수를 가져서 몇몇 팀원들이 술에 취하는 경험을 했던 것을 빼놓고는 즐거운 송별회였다. 두 번째 송별회는 유치원 선생님들과의 송별회였다. 여러 가지 과일과 베트남 전통 떡을 즐길 수 있어서 매우 즐거웠다. 돌아오는 날은 정말이지 마음이 짠한 일이 있었다. 워크캠프 동안 우리와 만났던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우리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학교에 찾아왔고 마마와 파파 또한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학교를 찾았다.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우리가 버리는 페트병, 샴푸, 비누, 종이 등을 챙기며 즐거워하던 동네 아이들을 볼 때였다. 우리는 필요하지 않아서 버리는 것들을 그 아이들은 마치 보물인 것처럼 모으면서 즐거워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이번 계기로 봉사에 대한 생각도 더 많아지고 앞으로 이러한 기회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