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터키에서 시작된 특별한 한 달

작성자 배문경
터키 GEN-37 · RENO/ ART 2012. 08 - 2012. 09 ESKI PAZAR - KARABUK

DRAW ON THE WAL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 인생 첫 워크캠프를 기대하며 길었던 한달 동안의 유럽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워크캠프가 있을 터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난 정말 기대감에 설레었다. 그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얼마나 많은 추억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라는 설렘. 그러다 보니 금새 터키 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터키 공항에서 미리 연락하며 캠프리더가 가르쳐 준 길을 되새기며 탁심으로 향하는 버스를 찾아 탔다. 탁심이라는 터키 신 시가지로 가는 길은 굉장히 한국의 거리와 비슷해서 내가 마치 한국에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일 갈 캠프 사무소 근처의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일어나니 금새 다음 날, 친절한 터키 사람들 덕택에 별로 헤매지 않고 사무실을 찾아 갈 수 있었다.

원래 만나기로 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나는 캠프리더와 다른 터키 친구와 함께 터키 시내 곳곳을 구경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같이 2주를 함께 보낼 친구들의 학교도 가보고, 내가 관광객이라면 가지 못할 작고 평범한 터키의 일상적인 레스토랑에도 가보고. 그러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른 참가자들과 만날 시간이 되었있다.

사무실에 있는 사람은 9명 남짓.
나는 생각보다 꽤 적었던 캠프인원에 약간 실망하고 있었다. 15명은 될 거 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 곧 이어진 어색한 자기소개시간으로 인해 실망할 시간은 길지 않았다.
처음 하는 영어, 처음 나누는 대화, 지금은 그 때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도 그 들이 뭐라고 말했는 지도 기억나지 않는 워크 캠프 첫날 이었다. 첫날부터 우리는 에스키파자르에 있는 카라부크라는 작은 마을로 이동하는 긴 여정을 시작했다.

탁심 광장에서 한번, 버스 터미널에서 한번, 그리고 에스키파자르에서 또 한번, 3번의 버스를 갈아타면 우리의 목적지인 작은 마을 카라부크에 도착한다. 10시간이 넘게 심야버스를 탄 우리는 지쳐서 쓰러지듯 우리의 숙소인 학교 기숙사에 도착했다. 침낭을 준비해오란 인포짓 덕택에 최악도 각오하고 간 그 곳의 시설은 너무 좋아서 우린 쓰러지듯 침대로 기절해 잠들었다.

그렇게 다음날이 왔다. 포근한 침대에서 단잠을 잔 터에 모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우리는 식사를 하러 작은 봉고차를 타고 마을로 나갔다. 직접 취사하지 않고 하루 세끼를 전부 한 식당에서 먹게 되었는데, 알록달록 뷔페식으로 차려져 있는 지중해식 아침이 참 맛있었다.

아침을 먹자마자 우리는 우리의 작업 장소로 향했다. 빛바랜 분홍색 작은 건물. 우리는 지체하지 않고 근처 페인트 용품점으로 가 필요한 도구를 구입했고, 페인트칠이 벗겨진 부분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긁어내는 작업은 마스크를 끼고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이 맵고 목이 따가웠다. 작업속도는 빨랐지만, 우리가 작업해야 할 건물 주위로 다른 건물이 없어 그늘이 하나도 없어서 한낮에는 너무 더웠다. 그래서 매일 아침 7시면 일어나 밥을 먹고 오전에 일을 하고 가장 더운 오후 한나절 쉬고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작업했다.

처음에는 우리의 아이디어 만으로 벽화를 구성할 생각에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사실 우리 그룹의 대부분이 예술가였기에 많이들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청을 방문한 우리는 우리의 든든한 후원자인 시장님이 카라부크 근처에 있는 하드리아나 폴리스라는 고대 유적지를 소재로 우리가 벽화를 그리길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드리아나 폴리스의 특징은 섬세한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동식물을 주제로 한 벽화였다. 벽화의 디자인을 위해 시장님의 지원으로 하드리아나 폴리스를 직접 가볼 수 있었다.

약간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던 하드리아나 폴리스는 생각과 많이 달랐고, 유적인줄 모를 정도로 소박한 모습이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모자이크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 때 굉장히 실망했었는데, 알고 보니 유적지 복원 과정에서 보존을 위해 그 위에 흙 같은 것을 덮어놓은 상태여서 그랬다고 한다.

워크캠프라는 우리가 함께 만드는 프로젝트였기에 한두 사람 만의 프로젝트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각자의 디자인을 생각해 온 뒤 모여서 제일 좋은 디자인을 완성하기로 했다. 부족한 그림 실력이었지만 나역시 이런 저런 아이디어를 냈다. 학교 뒤뜰에서 몇 시간의 논의 끝에 최종 디자인이 결정 되었다.

분홍 페인트를 벗겨내 앙상해진 건물 벽에 베이스로 사용될 수성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직접 페인트를 섞어 보는 것도, 여러 가지 사이즈의 롤러를 이용하여 페인트를 칠해보는 것도 처음인 우리는 너무 묽게 만들어버린 페인트를 사용한 탓에 온 몸과 옷에 페인트가 튀어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갔다.
워크캠프 답게 정말 일(Work)만 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을 처음 보는 마음 사람들은 우리를 신기하게 생각했고, 환영했으며, 알고 싶어했다. 그래서 정말 많이 터키식 차인 Chai 마실래? 라는 제안을 들었고, 정말 많이 마셨다. 독특한 유리잔에 빨간 빛깔 차에 각설탕 두 개를 털어 넣고 살살 차 숟가락으로 저어 마시는 차이가 지금도 계속 생각이 난다.

한번은 저녁에 마을 결혼식에 초대 받았다. 터키식 결혼식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이 턱시도를 입는다는 것을 빼면 같은 점이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교 운동장 같은 곳에서 마을 사람이 모두 모여서 축하해줬고, 터키식 전통 음악에 맞춰 신랑과 신부가 춤을 춘 뒤, 마을 사람 모두가 함께 춤을 추는 것이 독특했다.

아이고 어른이고 마을사람들 모두 신나서 우리에게 사진을 찍자며 ‘picture?’’라며 핸드폰을 들이 밀었고 우리도 신나서 거기에 응했다. 히잡을 머리에 두르고 마을 여자 아이들에게 배운 춤을 따라 추니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다. 나도 절로 기분이 좋아 술 한잔 자유롭게 못하는 마을에서 술 취한 것처럼 밤새 놀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페인트 칠하기에 익숙해져 전문가처럼 페인트 칠을 하고 있었다. 열기가 넘쳤던 탓에 우리의 작업속도는 매우 빨라서 금새 아주 높은 부분에 위치한 벽을 빼고는 대부분의 벽을 베이스 페인트로 칠한 상태였다. 베이스 페인트를 바르고 메인 페인트를 바르고 스케치를 할지 그 반대로 할지 고민 하던 우리는 결국 의견차이로 메인 페인트의 색을 결정하지 못해 스케치부터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캠프리더가 우리에게 갑자기 원래 작업 건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확한 내용은 우리 모두의 영어실력 부족으로 잘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터키 정부의 실책으로 건물의 소유권이 사기업으로 넘어가면서 건물을 점검, 보수 하게 된 관계로 워크캠프에 건물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한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작업한 건물 조차 사라진 우리는 잠시의 휴식기간을 가지기로 했다. 우리의 첫 번째 휴가는 샤프란 블루라는 근방의 유명한 관광지였다. 매일 우리를 식당과 작업 건물까지 태워주던 기사님과 함께 떠난 그곳에서 우린 기사님으로부터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바로 터키식 전통요리! 맛은 계란 볶음면 같았는데 그 엄청난 양에 정성이 느껴져 약간 느끼했지만 고맙게 먹었다.

휴가를 다녀와서 우리는 작업을 제시간에 끝내기 위해 새로운 건물을 찾기 위해 고심했다. 캠프 리더가 이 사실을 시장님에게 알렸고 우리는 시의 도움을 받아 세 곳의 새로운 후보지를 받았다. 각 후보지는 제각기 장단점이 있었는데 일단 첫 번째 벽은 마을 중앙에 있어 모두가 보기 쉬우나 다같이 작업하기엔 면적이 좁았고, 다른 벽은 마을의 중심에 있으나 표면이 돌로 이루어져 울퉁불퉁해 페인트 칠을 하기가 쉽지 않았으며 면적 또한 매우 넓었다. 마지막 벽은 표면과 면적 면에서는 괜찮았지만 너무 마을의 외곽에 있어서 작업하기도 힘들고, 작업 후에도 볼 수 있는 사람이 적을 것 같아 고민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의견의 불일치를 좁히기 위해 무척 노력했지만, 정말로 쉽지 않았다. 공교롭게 모두가 원하는 벽이 달랐다. 우리는 사실 이 갈등을 현명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영국 참가자인 Ban과 러시아 참가자인 Stepan, Daniella가 원하는 벽이 달랐다. 우리는 둘 중에 한 벽만을 골라 함께 작업하길 원했지만 어느 한쪽도 양보할 수 없었던 탓에 결국 서로 원하는 벽에 나눠서 작업하기로 결정했다.

우리는 Ban을 도와 약간 외곽에 있었지만 적절한 면적의 벽으로 갔고, Stepan과 Daniella,, Angellina는 돌로 이루어진 긴 벽에서 작업하기로 했다. 다행히 Ban이 선택한 벽은 벗겨낼 필요가 없었지만, 근처가 잡초와 쓰레기들로 엉망이라 그것부터 손봐야 했다. 우리가 그렇게 고된 업무를 하는 동안 러시아 참가자들과 터키 참가자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 참가자들은 디자인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작업 장소에 오지 않고 Internet Café로 갔고, 터키 참가자인 Necibe와 Hakan은 대학교 수강신청을 해야 해서 Internet Café로 갔다. 뭔가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떄는 그것이 직접적으로 싸움이나 갈등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Ban의 벽이라고 불리게 된 벽에 우리가 베이스 페인트칠을 끝냈을 무렵, 터키team이 왔다. 우린 이때부터 서로를 터키팀, 러시아팀, 코리아팀 그리고 Ban 이라 불렀다. 모두 합심해서 애플 그린색으로 벽을 다 칠했을 때쯤 또 해가 졌다.

다음날 갈등의 전조가 시작되었다. 연일 잡초뽑기, 주변 치우기, 베이스 페인트 칠하기, 배경 페인트 칠하기 같은 힘쓰는 일을 도맡아 했던 터에 약간 열 받은 우리 앞에 캠프 리더인 Necibe가 러시아 팀의 벽에 이끼를 제거하는 일을 도와 달라고 말했다. 우린 진짜 화가 났다. 우리도 디자인도 하고 싶고 인터넷도 사용하고 싶은데 온갖 잡일만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던 것 같다. 하지만 Necibe 역시 우리만 쉬지 못하고 일하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생각했었기에 우리에게 쉬고 올 것을 권했다. 우린 고민 끝에 돕지 않고 쉬러 갔다.

Ban의 벽에 비해 러시아 팀의 벽이 몇배는 더 컸기에 우리는 러시아 팀을 돕기로 결정했다. Daniella의 스케치를 대신 칠해주기로 했는데 처음부터 삐걱 거렸다. 우리의 프로페셔널 하지 못함 이 걱정되었던 Daniella와 색상에 있어서 아무런 결정권 없이 수주받는 사람처럼 조용히 일만했어야 했던 우리의 2차 배틀. 우리는 이것이 워크캠프이고 잘하든 못하든 우리모두가 함께 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러시아팀은 완벽한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는 것 처럼 보였다. Necibe가 중재해 보려고 했지만 처음 캠프리더를 해보는 그녀가 감당하기엔 조금 벅찻던 문제였던 것 같다. 문화적 차이는 물론 언어적 부족함으로 우리 모두의 의도가 제 뜻대로 전달 되지 못하고 조금은 거칠게 전달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조금 유치하게 군 점도 있지만, 그 큰 벽에 우리와 전혀 논의하지 않은 러시아팀의 디자인만 채워 넣는 다는 것은 뭔가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터키팀도, 한국팀도 그 벽에 함께할 권리가 있었다. 러시아팀은 그럼 너네도 너네 디자인을 그려 넣으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각자의 디자인을 동의만 받는 다면 그 벽에 모두 그릴 수 있고 (충분히 넓었으므로), 되도록이면 조화가 이루는 디자인을 위해 색상은 협의에 의해서 결정하기로 하고 휴전했다.

우리는 가젤 모양과 날개 모양을 그리기로 결정했고, 터키팀은 새를 그리고 했다. 디자인을 하고 스케치를 하는 동안은 조용했으나 우리가 페인트 칠을 하게 되면서 또다시 갈등이 시작됬다. 너무 많은 색상을 쓰는 것은 복잡해 보일 것 같아 5가지 정도의 색으로 한정했는데, 러시아팀이 필요한 색이 너무 많아 우리에게 선택권이 너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또 우리의 권리를 주장하며 러시아팀과 한바탕했다. 그리고 결국 너네 그림은 너네 알아서 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지금에 와서 난 이런 결론이 문화적 차이와 서로 부족한 언어능력 탓에 소통을 통해서 해결하기를 포기해버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저런 갈등도 있었지만 완성된 벽은 굉장히 멋지고 아름다워서, 지나가는 사람마다 관심을 가지고 물어왔고 사진을 찍고 싶어했고, 우리 벽을 보기 위해 차도를 달리는 차도 속도를 늦췄다. 경찰관은 아들을 데려와서 자랑스럽게 사진을 찍었다. 우리가 다툰 일은 이미 잊혀져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벽화를 다 완성하고, 우리는 서로가 찍은 사진들을 보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지나간 모든 추억들이 1주일도 채 안된 것들인데 너무 오래된 것 같아서 기분이 이상했다. 마지막에 Hakan이 찍은 벽화 동영상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2주동안 힘든 일들도 즐거운 일들도 모두 그 벽화에 녹아 들어 있었다.

처음에 맛있었던 터키음식이 질릴만한 2주가 흘렀다. 우리는 다같이 흑해로 마지막 휴가를 떠났다. 마지막치곤 어울려 놀고 그런 것도 없이 각자의 휴식을 즐겼다. 그렇게 휴가가 지나고 캠프 마지막 날이 왔다. 먼저 떠나는 러시아팀들. 미운정 고운정이 어찌나 들었는지 마지막 떠나면서 끌어안을 때 아쉬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다. 이렇게 나의 첫 워크캠프가 공식적으로 끝났다. 시원 섭섭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