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낯선 곳에서 만난 따뜻한 사람들

작성자 오혜진
아이슬란드 SEEDS 106 · CONS/ RENO 2012. 09 - 2012. 10 Ísafjarðardjúp: Nature & Fun in the WestFjords

Ísafjarðardjúp: Nature & Fun in the WestFjords (4: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듣도 보도 못한 아이슬란드. 그래서 아이슬란드를 나의 세번째 워크캠프로 선택하였고. 거기서 본 풍경들은 지금도 잊지 못한 가장 큰 추억으로 남았다. 나라 이름 답게 정말 추웠다. 아이슬란드는. 그건 이미 예상해서 옷을 단단히 입고 갔었기에 괜찮았다. 문제는 항상 도착하자 마자이다.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봐 체코에서처럼 위험하느니 안전하게 택시를 타고 목적지로 가려고 했다. 아이슬란드는 물가가 워낙 비싼 곳이라 택시비도 기본이 8000은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목적지 이름을 알려주니, 이 근처라며 데려다 주었고 막상 내리니 그곳 어디에도 호스텔은 보이지가 않더라. 한창을 헤매고 있다가 만난 지역 주민 덕분에 내가 완전 정반대로 왔다는 것을 알았고, 그 분이 자기가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다며 다시 공항까지 태워다 주셔서 목적지까지 제대로 갈 수가 있었다. 그 덕분에 잠깐 아이슬란드의 가정집을 구경할 수가 있었는데, 겉에서 보이는 작고 단순한 집과 달리 너무나도 아담하고 넓고 이쁜 인테리어 구조가 너무나도 인상적이였다. 그리고 우리와 같이 거기는 신발을 신지 않는 점도 신기했다.
나의 실수 덕분에 저녁에 도착한 호스텔 앞. 그러나. 아무도 없다. 심지어 들어갈 수도 없다. 결국에 국제전화를 사용하였고, 거기 직원 말이 호스텔 이사해서 지금 거기에 아무도 없다며, 사람 보내서 데리러 가겠단다. 그렇게 밖에서 1시간을 기다렸다. 너무나도 추웠지만 그래도 짜증은 나지 않았다. 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주변 지역 주민들이 말도 걸어주고, 여기와서 기다리겠냐며, 걱정되서 다시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슬란드의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너무나도 좋았다.
그렇게 여차여차 간 호스텔은 너무나도 허름했지만, 거기에 앉아있는 다른 팀원들의 모습을 보아 너무나도 좋았다. 게다가 다들 어리고 잘생긴 남자들만 앉아있는데 너무나도 기대에 벅차게 하더라. 하지만, 이건 뭘까. 내가 아무리 인사를 하고 말을 걸려고 해도 다들 무시한다. 이 분위기에 당황한 나는 뭐지 하고 윗층을 보는데 이미 다른 한국인과 홍콩인이 있었고, 그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였다. 설마, 아시아인이고 영어 못한다고 그러는건 아니겠지. 낯을 가리겠거니 하고 그날은 그렇게 넘어갔다. 다음 날, 내가 이 사람들을 잡겠노라라고 다짐했건만, 무시는 계속 되었고 영어를 못한다는 이유로 대놓고 영어로 말을 하는데, 그들이 간과한 사실은 나는 지금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 중이라는 것이였다. 사실 포루투갈에서 워크캠프를 할 당시에는 영어를 하나도 못해서 의사소통이 안되어 같이 어울리고 싶어도 한계가 있어 힘들었었는데, 여기서는 영어가 되도 무시를 당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나이는 다들 어렸다. 그 남자아이들. 아직 철이 안들었겠거니 하고 생각을 해도, 들려오는 무시의 단어들은 계속 나를 힘들게 하였다. 아무튼 그렇게 5시간을 넘게 달려 아이슬란드에서 떨어진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하였고, 숙소와 음식을 보자마자 난 탄성을 질렀다. 숙소에 침대가 있었고 너무나도 안락하고 깨끗하였으며, 음식 또한 기가 막혔다. 따뜻한건 당연했고. 체코에서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에 있었던 나에겐 최고의 장소였다. 그래, 첫날이라 다들 어색하고 낯설으니까 그렇게 행동하는구나 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그렇게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이렇게 깨끗한 환경에서 일하면 뭐든 다 할 수 있겠거니 라는 생각은 일 하자마자 와르르 무너져버렸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엄청난 무게의 나무들과 돌들을 날랐으며 일은 체코보다 더 고되었다. 안그래도 춥고 바람 부는 환경 속에 비를 맞으며 돌 길을 만드는데, 그 관리자가 보더니 그 옆에 시멘트를 깔아야 한다고 다시 겨우 박아놓은 돌들을 빼란다. 오,, 이런,,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줄 알았다.
그 뒤로도 다시. 다시해, 다시 갖다놔, 삽질해, 날라, 하는 명령식의 일은 계속 되었고, 아무리 긍정적으로 일을 하려고 하여도 그들이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내 힘으로는 도저히 어려운 일들을 계속 시켰다. 내가 너무 끙끙대고 있으니까 이걸 못하냐면서 자신들이 해보더니, 잘 안되니까 기계를 쓰자면서 그때서야 지게차를 들고 오는데 정말 난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들은 체계적이지 않았고, 계획도 없고 그냥 눈에 보이는 일만 시켰다. 우리 팀원들은 점점 그 일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 시작했고 왜 우리가 이런 단순 막노동을 당하며 있어야 하냐며 따지자고 했지만, 결과는 똑같했다. 결국은 다시였다. 겨우 날라 놓은 것들을 다시 그 자리에 갖다놓으라 해서 다시 갖다 놓으면 다시 다른 곳에 갖다 놓으라 하고, 이 일의 결론은 원래 그자리로 다시 다 갖다놓는 것이였다. 그것이 이 곳 워크캠프에서 한 우리의 역할이였다.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덕분에 나의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던 이야기도 제치고, 사람관계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하려고 한다. 그렇게 나와 다른 한국인과 홍콩인, 즉 아시아인들을 무시했던 그 철없는 남자아이들. 처음에는 그게 겁이 나서 못들은 척하고 그냥 조용히 있으려고 했으나, 내 성격에 그게 되질 않아 밤마다 되뇌었었다. 그래봤자 나보다 어려, 아직 어린 아이들이야. 그러다 보니 어느날 아침에 그 아이들이 정말로 동생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같이 어울릴 수가 있었고 같이 장난도 치고 일 안하고 뺀질 거리면 당장 나와서 일하라며 큰소리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괜히 겁먹었던 나 자신과 이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그들 중 한명이 나한테 잔소리 듣고는 열심히 일하더니 나한테 와서 ‘나 오늘 열심히 일했어’ 하고 지나가는데, 어찌나 귀엽던지. 그리고 다른 아이는 ‘아시아 인들은 영어 못하는 줄 알았다. 너가 내가 만난 사람중에 영어를 할 줄 아는 유일한 아이다’ 라며 같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말을 했다. 순간 영어공부에 대한 소중함도 간절히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워크캠프를 하면서 느낀 건데, 가장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영어를 못해서도, 환경이 척박해서도, 일이 힘들어서도, 사람 때문도 아니다. 내 마음가짐이 날 힘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내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그대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는 순간 모든 것들은 힘들다가 아닌 값진 경험이다, 즐겁다, 재밌다로 바뀐다.
그렇게 마음가짐이 바뀌고 나니 모든 아이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고,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도 멋진 곳이다 아이슬란드는. 저녁마다 날이 좋으면 light라는 오로라 같은 밤하늘도 볼 수 있었고 화산지대 올라가기, 폭포 등반, 빙산 하이킹, 카야킹 타기, 야생에서 말타기, 매일밤 즐길 수 있는 온천 그리고 각국 친구들과 공사장 막노동과 온갖 각국의 욕설들은 절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으니.
아 한가지 더,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 에이브리라는 소설가 였는데 일을 하며 이곳에 지내고 틈틈히 책을 쓰는 사람이였다. 하루는 내가 허리가 너무 아파 밖에서 일하는 대신 집안일을 하고 있는데 에이브리가 옆에 와서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대화를 하는데, 에이브리가 이 곳이 어떤것 같냐고 물었고 나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여기 관계자 사람들이 너무나도 불친절하다고 얘기했다. 조직적이지도 않고 무의미한 일만 계속 시키면서, 우리는 봉사활동하는 사람들이지 노동자가 아닌데도 최소한의 것도 지원하지 않고 화만 낸다고.. 그렇게 계속 불만을 이어나갔다. 체코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잘하고 있다고 힘내라고 서로 볼때마다 칭찬하기 바빴는데 왜 여기서는 화만 내는지 모르겠다고 그렇게 불만을 토로 하고 있는데 갑자기 에이브리가 ‘너 빨래 잘한다’ 라고 말을 하지 않는가. 내가 너무 생뚱맞아서 아니 나 잘 못하고 있는데 지금 무슨 얘기하냐니까, ‘내말을 잘 들어. 넌 정말 잘 하고 있어’ 라면서 웃어주는게 아닌가. 순간 아 이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응원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나만 보면 잘했어, 힘내와 같은 응원가득한 말을 해주기 시작하였다. 덕분에 나는 웃으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겠지만 이 사람의 책이 출판되면 꼭 보리라.
이렇게 나의 워크캠프는 정말로 끝이 났다. 다른 사람이 보면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 나라면 그 돈으로 그냥 여행을 하겠다 라고 하는 사람이 간혹 몇 있지만,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이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알 수 없다고. 얼마나 값지고 멋졌는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었는지.
어찌보면 내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도 짧은 순간들이지만, 평생 기억될 너무나도 좋은 경험들이었다. 워크캠프 그리고 다음에 만날 다른 기회와 인연들,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나의 워크캠프 이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