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독일 Bellheim, 서툰 영어로 시작된 용기
Bellheim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된 계기는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1년 휴학 후 학과 생활 보다는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아졌고 대학생활 중 어떤걸 할 수 있을까 하다가 워크캠프에 대해 알아봤고 해외봉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기 때문에 참가 신청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준비과정이 미흡했고 자세한 정보를 획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학기가 끝나자 마자 가게 되어 걱정이 많은 상태에서 외국으로 출국을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영어를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며 독일어는 하나도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미팅포인트에 어떻게 갈지도 걱정되었지만 워크캠프에 합류해서도 어떻게 해야할지 걱정되었다. 더군다나 워크캠프전 일주일 가량 여행을 하고 캠프에 합류했기 때문에 살짝 지쳐있었다. 또한 캠프에 합류하는 날 4시간이나 늦게 도착을 하게되었고 분위기 또한 굉장히 조용했기 때문에 뻘줌 그 자체였다.
첫 째주 – 비행기를 타다.
해외라고는 아니 비행기라고는 제주도 갈 때 한 번밖에 타보지 못한 촌놈으로써 해외에 나간다는 자체는 설레임 그 자체였다. 부푼 기대와 달리 워캠 및 여행을 준비한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상 출국을 하려고 하니 설레임 보다는 걱정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나 자신도 엄청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긴 시간 비행을 하여 유럽에 도착했다. 영어는 물론 유럽지역의 언어를 거의 못하는 나로써는 안내표지판 및 지도에 의존할 수 밖에없었지만 유럽 또한 사람사는 곳 아니던가, 나는 적응기간 하루를 제외하고는 여러지역을 잘 돌아다니고 구경할 수 있었으며 미팅포인트 또한 잘 찾아갔다.
처음은 언제나 그럿듯 14명의 캠퍼들이 모였음에도 집안 전체는 조용했고 자국의 캠퍼들 말고는 서로 대화가 거의없었다. 그렇게 첫 날인 토요일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날 또한 우리는 큰 방에 모여 앉아 있었을 뿐 실질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않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캠프장소를 꾸미고 규칙을 정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슬슬 침묵은 깨졌다. 결정적 계기는 일을 시작한 첫 날 저녁이였는데 역시 친구를 사귀귀엔 술이 최고였다. 나와 한국인 캠퍼는 맥주를 준비하여 분위기를 조성했고 외국인 친구들이 한명한명씩 같이 즐기며 이제 어색한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또한 우리 슈퍼 코리안들은 슬슬 우리의 진가를 보여주며 분위기를 주도하여 전체적인 캠프의 분위기를 첫 주부터 마지막 주 까지 이끌어주었다.
둘 째주 – 힘든일을 시작하다.
첫 주가 끝나고 둘 째주가 되자 슬슬 작업이 고도화 되었으며 작업속도 또한 높여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경험한 일이며 그 정도의 시련에 힘들어 할 사람들이 아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중간중간 작업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기위해 한국적인 게임을 가르쳐 주고 개그를 해주었으며 지속적인 장난을 걸어줌으로써 힘든 작업시간에도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또한 둘 쨰주 주말에는 캠프지역 인근 시내로 나가 쇼핑을 즐기고 프랑스와 접경지역이였기 때문에 인근 프랑스 지역을 놀러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그 지역의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호의를 베풀어 바비큐파티도 하는 등 열심히 일한 만큼의 대가를 보상받았다. 또한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째가 되자 모두가 친해졌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게임도 하고 대화도 즐기며 처음의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이제는 정이 들어버려 진짜 한국 친구처럼 대하게 되었다.
셋 째주 – 작업을 완료하고 이별을 하다.
이제 마지막 주가 되었다. 작업은 거의 막바지였고 삼 주 내내 동고동락을 했던 우리였기 때문에 이미 쌓일 만큼의 정은 거의 다 쌓여버렸다. 밥을 먹을때는 누가 어떤것과 곁들여 먹으며 누가 무엇이 필요한지 말을 안해도 알정도로 친해졌고 서로의 식습관 말투 등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우리에겐 사소한 갈등과 어떠한 불미스러운 점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서로 더 믿고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둘도 없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으며 두번다시 경험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완성하고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차차 헤어질 날이 되자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사진을 교환하고 각자가 가져온 선물과 자국의 전통음식을 서로에게 선물하며 이별을 준비했다. 작업을 완료한 당시는 그냥 일이 끝났다는 마음만 있었지만 그날 저녁 파티를 늦게까지 하며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서로가 이별하기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에 우리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이 되자 떠나는 시간은 모두가 달랐지만 처음으로 떠날 친구들을 배웅하기 위해 모두가 일어 났고 이별준비를 하며 인사를 할때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어 웃으며 인사할 수 밖에 없었다. 미리미리 한국으로 놀러오라고 말을 해놨었지만 마지막 이별인사할 때 다시한번 한국에 놀러오라고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정말이지 적어도 나에게는 이 워크캠프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였으며 앞으로도 살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중요한 경험이였기 때문에 이번 캠프의 친구들에게 더욱더 애정이 가며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 워크캠프에 대하여.
나와 한국인 형은 영어가 서툴렀지만 다른 친구들이 이해해주며 가르쳐주고 노력하면서 대화에 큰 지장은 없게 되었고 나중에는 간단한 단어로도 모든게 설명될 만큼 굉장히 가까워졌다. 그렇게 3주 동안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여행과 여가를 즐기며 서로에게 정이 쌓여갔고 모두가 하나가 되었으며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를 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번 캠프가 최고였으며 어떤 불화나 갈등, 범죄가 없는 최고의 워크캠프였다고 했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안전했던 캠프였다. 본인은 처음 워크캠프에 참여했기 때문에 다른 워크캠프의 분위기를 모르겠지만 정말 최고라고 생각이 되며 처음 걱정했던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졌고 정이 들어 떠나는 날에는 무척이나 아쉬웠고 오히려 내가 영어를 더 잘했더라면 더더욱 즐거웠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서로가 자기네 나라에 놀러 오라고 하는 등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캠프의 끝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최고로 소중한 경험 이였고 앞으로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많이 남아있는 대학생활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큰 영향을 줄 것 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준비가 미흡했던 2012년 나의 첫 워크캠프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큰 만족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으며 다음에 또 참가하게 된다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처음 참가했던 워크캠프보다 더 활발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생애 첫 워크캠프는 이미 끝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서로 다른점은 많지만 그것을 서로가 인정하며 이해하고 배우려는 모습은 잊을 수 없으며 비 유럽인으로서 유럽인들 사이에서 3주 동안 지내며 우리가 다른 것은 생김새와 문화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느낄 수 있고 많이 배우고 많이 느낄수 있었던 굉장히 좋았던 경험이다. 지금도 워크캠프를 참가 할까 말까 고민하는 친구들이나 워크캠프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살면서 한번쯤은 꼭 해봐야 할 일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워크캠프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소중한 경험 이였다.
첫 째주 – 비행기를 타다.
해외라고는 아니 비행기라고는 제주도 갈 때 한 번밖에 타보지 못한 촌놈으로써 해외에 나간다는 자체는 설레임 그 자체였다. 부푼 기대와 달리 워캠 및 여행을 준비한 것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막상 출국을 하려고 하니 설레임 보다는 걱정이 더욱 커졌기 때문에 가족은 물론 나 자신도 엄청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긴 시간 비행을 하여 유럽에 도착했다. 영어는 물론 유럽지역의 언어를 거의 못하는 나로써는 안내표지판 및 지도에 의존할 수 밖에없었지만 유럽 또한 사람사는 곳 아니던가, 나는 적응기간 하루를 제외하고는 여러지역을 잘 돌아다니고 구경할 수 있었으며 미팅포인트 또한 잘 찾아갔다.
처음은 언제나 그럿듯 14명의 캠퍼들이 모였음에도 집안 전체는 조용했고 자국의 캠퍼들 말고는 서로 대화가 거의없었다. 그렇게 첫 날인 토요일은 조용히 지나갔다. 다음날 또한 우리는 큰 방에 모여 앉아 있었을 뿐 실질적인 대화는 거의 하지않고 침묵하고 있었지만 캠프장소를 꾸미고 규칙을 정하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슬슬 침묵은 깨졌다. 결정적 계기는 일을 시작한 첫 날 저녁이였는데 역시 친구를 사귀귀엔 술이 최고였다. 나와 한국인 캠퍼는 맥주를 준비하여 분위기를 조성했고 외국인 친구들이 한명한명씩 같이 즐기며 이제 어색한 분위기는 거의 사라졌다. 또한 우리 슈퍼 코리안들은 슬슬 우리의 진가를 보여주며 분위기를 주도하여 전체적인 캠프의 분위기를 첫 주부터 마지막 주 까지 이끌어주었다.
둘 째주 – 힘든일을 시작하다.
첫 주가 끝나고 둘 째주가 되자 슬슬 작업이 고도화 되었으며 작업속도 또한 높여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하는 동안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군대를 다녀온 우리 한국인들은 모두 경험한 일이며 그 정도의 시련에 힘들어 할 사람들이 아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중간중간 작업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어 주기위해 한국적인 게임을 가르쳐 주고 개그를 해주었으며 지속적인 장난을 걸어줌으로써 힘든 작업시간에도 모두가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또한 둘 쨰주 주말에는 캠프지역 인근 시내로 나가 쇼핑을 즐기고 프랑스와 접경지역이였기 때문에 인근 프랑스 지역을 놀러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며 그 지역의 나랏일 하시는 분들이 호의를 베풀어 바비큐파티도 하는 등 열심히 일한 만큼의 대가를 보상받았다. 또한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째가 되자 모두가 친해졌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즐겁게 게임도 하고 대화도 즐기며 처음의 어색함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이제는 정이 들어버려 진짜 한국 친구처럼 대하게 되었다.
셋 째주 – 작업을 완료하고 이별을 하다.
이제 마지막 주가 되었다. 작업은 거의 막바지였고 삼 주 내내 동고동락을 했던 우리였기 때문에 이미 쌓일 만큼의 정은 거의 다 쌓여버렸다. 밥을 먹을때는 누가 어떤것과 곁들여 먹으며 누가 무엇이 필요한지 말을 안해도 알정도로 친해졌고 서로의 식습관 말투 등을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한 우리에겐 사소한 갈등과 어떠한 불미스러운 점도 없었기 때문에 서로서로 더 믿고 친해질 수 있었다. 우리는 둘도 없는 새로운 친구가 생겼으며 두번다시 경험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완성하고 좋은 경험을 했기 때문에 차차 헤어질 날이 되자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주고받고 페이스북 친구를 맺고 사진을 교환하고 각자가 가져온 선물과 자국의 전통음식을 서로에게 선물하며 이별을 준비했다. 작업을 완료한 당시는 그냥 일이 끝났다는 마음만 있었지만 그날 저녁 파티를 늦게까지 하며 게임도 하고 대화도 하며 늦게까지 잠을 자지 못했다. 서로가 이별하기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에 우리는 잠을 잘 수 없었다. 드디어 떠나는 날이 되자 떠나는 시간은 모두가 달랐지만 처음으로 떠날 친구들을 배웅하기 위해 모두가 일어 났고 이별준비를 하며 인사를 할때는 정말이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난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어 웃으며 인사할 수 밖에 없었다. 미리미리 한국으로 놀러오라고 말을 해놨었지만 마지막 이별인사할 때 다시한번 한국에 놀러오라고 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정말이지 적어도 나에게는 이 워크캠프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신기하고 색다른 경험이였으며 앞으로도 살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중요한 경험이였기 때문에 이번 캠프의 친구들에게 더욱더 애정이 가며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 워크캠프에 대하여.
나와 한국인 형은 영어가 서툴렀지만 다른 친구들이 이해해주며 가르쳐주고 노력하면서 대화에 큰 지장은 없게 되었고 나중에는 간단한 단어로도 모든게 설명될 만큼 굉장히 가까워졌다. 그렇게 3주 동안 평일엔 일을 하고 주말엔 여행과 여가를 즐기며 서로에게 정이 쌓여갔고 모두가 하나가 되었으며 다른 워크캠프에 참가를 했던 대부분의 친구들은 이번 캠프가 최고였으며 어떤 불화나 갈등, 범죄가 없는 최고의 워크캠프였다고 했을 정도로 재미있었고 안전했던 캠프였다. 본인은 처음 워크캠프에 참여했기 때문에 다른 워크캠프의 분위기를 모르겠지만 정말 최고라고 생각이 되며 처음 걱정했던 마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졌고 정이 들어 떠나는 날에는 무척이나 아쉬웠고 오히려 내가 영어를 더 잘했더라면 더더욱 즐거웠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서로가 자기네 나라에 놀러 오라고 하는 등 짧으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캠프의 끝은 정말이지 내 인생에서 최고로 소중한 경험 이였고 앞으로도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 많이 남아있는 대학생활 뿐만 아니라 인생에도 큰 영향을 줄 것 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준비가 미흡했던 2012년 나의 첫 워크캠프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큰 만족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으며 다음에 또 참가하게 된다면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처음 참가했던 워크캠프보다 더 활발하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지금부터 노력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생애 첫 워크캠프는 이미 끝났지만 그 여운은 아직도 남아 있으며 서로 다른점은 많지만 그것을 서로가 인정하며 이해하고 배우려는 모습은 잊을 수 없으며 비 유럽인으로서 유럽인들 사이에서 3주 동안 지내며 우리가 다른 것은 생김새와 문화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느낄 수 있고 많이 배우고 많이 느낄수 있었던 굉장히 좋았던 경험이다. 지금도 워크캠프를 참가 할까 말까 고민하는 친구들이나 워크캠프에 대해 정보가 부족한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살면서 한번쯤은 꼭 해봐야 할 일이라고 추천하고 싶을 정도로 워크캠프는 나에게 많은 것을 준 소중한 경험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