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유학 생활, 워크캠프로 터닝 포인트

작성자 차은희
독일 IJGD 2100 · RENO 2012. 09 -

Off to Sites of Cultural Interes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조금은 무료한 독일 생활을 지내다가, 문득 세상 밖으로 더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 내가 독일에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그렇게 해서 내 유학생활을 180도 바꾸어 줄 ‘Turning Point’를 지인, 인터넷 등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이용하여 ‘워크캠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1지망으로 지원했던 베를린, Renovation을 테마로 하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워크캠프의 테마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는 워크캠프 참가 기회를 놓치지만 않는 게 나의 목표였다. 그게 분명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기 전에 나는 작업복, 침낭, 한국을 소개할 멋진 사진들, 한국 요리를 위한 양념 재료 등을 철저히 준비하고 베를린으로 향하는 기차에 힘차게 올랐다.
베를린에 도착한 나를 반갑게 맞아 준 사람은 캠프의 리더들과 일찍 도착한 몇몇 멤버들! 그들의 유창한 영어와 한국 사람들만큼 친절한 태도에 강한 첫 인상을 받고, 한 명씩 도착하는 멤버들에게 인사를 해주며 본격적인 캠프 생활을 시작했다. 한 바탕 이야기를 끝낸 뒤, 설레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숙소에 들어서...는 순간 설레던 마음이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는 사람이 한 번도 살지 않았던.. 살았던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분명 죄수들이었을 거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는 느낌을 주었다. 맨 시멘트 바닥위에 조금은 부실한 침대(?), 난방은 불가능, 샤워는 걸어서 3분 거리 공동 샤워장 이용.. 상황은 열악했으나 맨 바닥에 자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 된 우리의 일은, 나치 시대에 만들어진 큰 홀을 시민들이 의미 있게 이용할 수 있는 전시회장으로 탈바꿈 시키는 일 이었다. 그래서 주된 일은! 청소.. 청소.. 청소.. 오래 전에 지어진 건물이고 이제 와서야 레노베이션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백년 묵은 듯한 먼지, 거미줄, 검은 떼 등등 우리의 손을 거쳐야 할 것들이 많았다. 우리가 처음 보았던 모습이 이전의 캠프 참가자들이 어느 정도 손질을 해놨던 것이라니 믿을 수가 없었다. 사실 청소가 우리의 주된 작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첫, 둘째 날에는 정말 의욕적으로 누구 하나 쉬는 시간 갖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러나 일의 강도가 약하지만은 않았고 노력만큼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팀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기도 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서로 돕지 않으면 내 옆의 친구가 더 고생한다는 것을 모두가 유념하고 있었고, 가끔 일이 힘들어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자신이 맡은 일은 완벽하게 해냈다. 특히 일하는 중간 중간에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하고 때로는 격렬한 춤도 추고, 틈틈이 수다를 떨면서 일의 지루함을 덜어냈다.

<일하는 마지막 날!- 언제나 유쾌하고 성실한 터키 출신, 칸!>

며칠 동안의 청소 작업이 끝난 후 우리는 비로소 무언가를 세우고, 만드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전시장의 중앙 홀의 바닥을 더 높게 쌓고, 양 벽에는 며칠 뒤에 사람들에게 공개 될 전시물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는 전시물을 옮길 힘과 함께 옮기는 멤버와의 팀워크, 그리고 섬세한 못질 능력이 필요했다. 거창하게 표현해 봤지만 낙서를 지우고 거미줄을 제거하고 의자를 위 아래로 나르는 일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이 작업과 우리가 묵는 숙소를 청소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워크’가 끝이 났다. 우리가 땀 흘린 작업장이 멋진 전시회장으로 환골탈태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보람 있고 자랑스러웠다. 그러나 워크캠프의 대미는 워크가 아니라 그 뒤에 숨겨진 바로 이것! 이었다.
열심히 일한 자, 놀아라! 지시되어진 일만 끝내면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무엇을 하든 마음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고된 일도 견딜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내가 머물렀던 베를린은 캠프 기간 2주 동안 내내 돌아다녀도 다 볼 수 없는 곳이었기에, 우리는 조를 짜서 산책을 나가거나 수영장을 가거나 쇼핑을 하거나 박물관을 돌아보며 알찬 시간들을 보냈다. 마음 맞는 멤버들끼리 낮 시간을 보내면서도 밤에는 모두 모여 색다른 클럽이나 바, 터키 찻집에서 새벽을 맞이하였다. 특히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두 함께 했던 것. 이를 테면 잔디밭에 앉거나 누워 게임을 하고 수다를 떨거나, 야외 콘서트에 가서 미친 듯이 뛰고 따라 불렀던 기억들이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거의 대부분의 멤버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했지만, 못하는 친구들도 소통의 문제없이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였다. 일례로, 우리 캠프에는 영어에 좀 서툴러 수줍어하던 일본인 친구가 있었는데, 처음엔 그룹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였으나 나중엔 인기가 가장 많은 멤버가 되었다. 왜냐면 그는 참으로 남을 잘 배려하고 친절했는데, 이것이 그의 서투른 영어발음과 시너지를 일으켜 참 순수해 보였고 우리는 결국 그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간이 갈수록 영어로 말하는 것에 자신감을 찾은 듯 보였다. 고로, 영어나 그곳에서 필요로 하는 언어에 자신이 없다면, 정답은 바로 워크캠프에 참여하는 것! 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나도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 오긴 했지만 외국인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던 터라 캠프 생활에서 물론 실력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것은 곧 실력의 향상을 의미했다.

<베를린의 레게 콘서트! 끝내줬던 밤!>

열심히 일한 자, 놀아라? 먹고 놀아라! 앞서 워크캠프의 대미를 노는 것이라 했는데, 다시 정확히 말하자면 먹고, 노는 것! 이다. 나는 평소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생각해 왔고, 게다가 일생일대의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할 수 있는 로또 같은 기회를 대충 준비해서 놓치기 싫었다. 내가 준비해간 불고기 소스, 고추장 외에도 베를린에 아시아 마트가 흔하다는 이점을 한껏 활용하여 쌀, 부침개 가루, 참기름, 간장, 부추 등을 추가로 구입하였다. 2인 1조가 되어 요리를 하게 되는 데 주 1회 한 번씩 순서가 돌아간다. 나는 캠프에서 만난 반가운 한국 친구와 함께 첫 날 점심은 샐러드 뷔페, 저녁은 불고기와 볶음밥, 그 다음 차례 점심은 치킨샐러드, 몬테크리스토(토스트의 일종. 한국 패밀리 레스토랑의 레시피를 착안하여 캠프 내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음), 저녁은 수프, 부침개와 막걸리를 준비하였다. 보통 메인 요리가 제공되는 저녁 식사는 4~5시간이 걸렸다(15인분 분량). 낑낑대며 음식을 준비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한 멤버는 “왜 너네는 그렇게 복잡한 요리를 해!”라고 했고, 우리는 한국음식이 원래 다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우수하니까! 요리에 설거지까지 끝내면 정말 기운이 다 빠졌지만 맛있게 먹어주는 멤버들을 보며 먹지 않아도 배부른 엄마의 심정을 느꼈다. 그리고 한국음식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14명의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맛을 보여줬다는 것은 정말 뿌듯했고, 이 보람은 모든 워크캠프 참가자들이 꼭 한 번 느껴봤으면 좋겠다. 물론 러시아, 이탈리아, 폴란드, 체코, 일본, 독일의 음식을 조금씩 맛 봤던 황홀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참고로 이 글이 워크캠프 참가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보여 질지도 모른 다는 생각에 한 마디를 더 붙여보면, 일하고 놀고, 먹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건강관리가 최우선이라는 것을 염두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는 초반에 체력을 잘 유지하다가 환절기에 들어선 날씨 탓인지 감기에 걸려 몸이 안 좋은 상태에 작업하다 미처 보지 못한 벌에 손가락을 쏘여 캠프 종료 전 이틀 동안 몸져 누워있었다. 누구를 원망할 수도 나를 버리고 놀러 간다고 섭섭해 할 수도 없었다. 일상에서도 그렇듯,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여러 종류의 약들을 상비하고 캠프기관에서 요구하는 모든 준비물들을 잘 챙기기를 바란다. 다른 모든 걱정들은 버리고 워크 캠프 신청 꾸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