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Deetz, 독일 토박이도 모르는 곳에서
Deetz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Deetz?”
“Yes, Deetz. ^^”
“Where is Deetz? I’ve never heard about there. Hahaha”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내 기차표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지금껏 독일에 살아왔지만, Deetz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렇지 않아도 홀로 환승을 2번이나 해야되어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독일 토박이도 모르는 외지로 가는 건가 싶어서 더 걱정이 되었다.
장장 4시간을 달려 도착!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애가 캐리어를 끌고 동시에 내렸다. 보자마자 ‘아! 워크캠퍼구나!’ 느낌이 왔다. 그러는 찰나에 멀리서 할아버지가 뛰어오더니 나에게 A4용지를 보여줬다.
‘Welcome to Deetz Work camp!’
반가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내 느낌대로 그 여자애는 나와 3주를 같이 보낼 세르비아에서 온 마리나였다.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4명의 캠퍼가 도착해있었다. 터키에서 온 에란, 러시아에서 온 비에라, 이탈리아에서 온 파비오, 스페인에서 온 빼요. 나보다 불과 몇 시간 일찍 도착했을 텐데 벌써 다들 친해져 있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것도 용기 낸 건데, 조금만 더 용기내자’ 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나도 그들과 동화될 수 있었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저녁이 되어 모든 캠퍼가 모이게 되었고,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친해지기 위해서 다양한 게임을 했다. 그렇게 워크캠프의 첫 날이 저물어갔다.
Work Work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아이들 체험 농장 및 마을 곳곳이었다. 농장은 우리가 묵는 숙소 옆에 위치하여 고양이, 닭, 토끼, 돼지, 말 등이 살고 있었고, 감자와 토마토를 키우는 밭도 있었다. 우리는 이 워크캠프의 매니저인 울리에게 설명을 듣고,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각자 자전거를 배정 받아 마을에 있는 당근 밭에 가서 잡초 뽑는 것이 우리의 첫 임무! 잡초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잡초가 당근보다 더 키도 크고 더 무성했다. 유럽의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정말 오랜만에 노동이란 걸 해보았다. “Pause~”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말이다. “휴식~” 햇살이 너무 뜨겁기 때문인지 일하는 중간중간 자주 쉬었다. 친구들이랑 나는 일 하다가 힘들 때쯤 함께 일하는 농부 아저씨께 틈만 나면 “Pause? Pause?” 물었다. 일하면 쉬고 싶은 마음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일하는 첫 날 요리 팀은 스페인 친구들이었다. 요리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나라 흰 쌀 죽에 토마토 케찹을 뿌려 비벼먹는 요리였다. 건더기나 다른 반찬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난 뒤여서 맛있게 먹었다. 평소 맛 집 탐방이나 식도락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매일 다른 나라의 새로운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 것이 워크캠프의 자랑 중 자랑!
Asian Cooking day
절친한 친구가 된 중국에서 온 동갑내기 챠오랑 요리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불고기 소스를 준비해갔지만, 동네 슈퍼마켓에서 소고기를 구하지 못해서 중국요리와 내가 가져간 호떡믹스를 함께 내놓기로 했다. 밥을 짓는데 밥솥도 없거니와 16인분의 밥을 지으려니 아득했다. 챠오와 시행착오 끝에 약간 딱딱한 밥이 완성되었다. 아시아 요리인 만큼 포크대신 군데군데 젓가락도 넣고, 테이블에 태극기도 꽂아놨다. 일을 마치고 온 친구들이 먹기 시작했을 때 맛을 어떻게 생각할까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호떡은 인기 만점! 달달한 맛과 계피 맛의 조화가 좋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어떻게 만드냐고, 자기 나라 돌아가서 만들어 먹고 싶다고 했다. 정말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Gloomy day
여느 때처럼 오후 일까지 마치고 나랑 챠오랑 main building에 wifi를 즐기러 갔다. 부모님이랑 전화를 하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내가 혼자 가보겠다고 해서 온 유럽이지만, 내 마음속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숨어있었나 보다.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데, 챠오가 보고 말았다. 마음 따뜻한 챠오는 말없이 옆에 있어주다가 내가 좀 눈물을 그치자 이해한다면서 위로해주었다.
정말이지 국경과 언어는 사람 사이에 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눈빛으로 얘기할 수 있고,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We are young
우리들이 부엌에서 항상 틀어놓는 팝송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수 Fun의 We are young이라는 곡이었다.
그래! 우리는 젊었다. 오전, 오후 일을 마치고 나면 피곤할 법도 한데, 밤이 되면 팔팔해서 party tonight!을 외쳤다. 한번은 다같이 수영장에 가겠다고 비포장 도로 2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힘들 법도한데 우리는 수영장에서도 열심히 놀았다. 그러고 다시 돌아올 때도 20km 자전거 여행! 한국에선 생각도 못했을 거리였을 텐데, 풍경이 멋있어서 그랬는지, 친구들과 함께여서 그랬는지, 기분 좋았던 여행 중 하나였다. ‘tonight~ We are young~’
What happened in Berlin
친구들과 다같이 1박2일로 놀러 간 베를린. 나는 모두 함께 관광을 하는 줄 알았는데, 캠프에 오기 전 베를린을 여행했던 친구들이 있어서 팀을 나누어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앨리와 함께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갔다. 나와 취미도 비슷하고, 함께 있으면 꼭 한국 친구와 같이 있는 느낌이 드는 앨리. 길도 척척 잘 찾고, 입맛도 비슷해서 정말 유쾌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밤에는 클럽에 가려고 꽃단장을 하고 나왔는데, 몇몇 친구들이 미성년자라서 퇴짜를 맞았다. 친구들은 다른 클럽을 찾으러 가자고 했지만, 그 때가 새벽이여서 나는 피곤 할대로 피곤한 상태라 챠오랑 이반이랑 나랑은 유스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하는 UBahn 운행이 끊긴 것. 우리는 당황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러 명에게 물어봤는데, 모두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직접 지도도 함께 봐주고, 정보를 알아다 주겠다며 다른 곳에 물어봐주기도 했다. 이 때 독일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자리잡았고 정말 감동받았다. 챠오가 대안을 세워서 이반에게 설명을 했는데, 이반은 잘 듣지도 않고 자꾸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행인이 알려준 방법이 챠오가 생각한 대안과 같은 방법이었고, 이반은 그 때서야 그 방법으로 가자고 하였다. 챠오는 왜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냐며 화를 냈고, 이반은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했다. 나는 그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 챠오와 이반은 심각했지만, 나는 왠지 웃겼다. 정말 기억에 남을 추억이 생겼다는 것? 어찌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새벽 3시에 유스호스텔로 도착했다. 잊을 수 없는 베를린에서의 밤이다.
Good bye and see you someday
처음 도착했을 때 3주가 끝나긴 할까 싶었는데,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서 마지막 날이 되었다.
기차 시간표에 따라 조를 나누어서 떠났다. 처음 나가는 친구들을 다같이 배웅해주는데 앨리가 헤어지는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따라서 눈물이 흘렀다. 한 명씩 포옹을 하고 막연하지만 다시 만날 다음을 기약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3번 째 조였다. 한 두 명씩 사람이 떠나자 바글바글하고 웃음소리와 얘기하는 소리로 가득 찼던 집이 휑 하게 느껴졌다. 내가 떠나는 차례. 기차역까지 가는 차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는데 들판과 나무들,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눈물이 났다. 이제 다시 언제 이런 그림 같은 풍경에서 소중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자전거를 타고, 밤에 호숫가에 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그 때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넓으면 넓고 좁다 하면 좁은 이 세계에서 workcamp의 인연으로 만난 16명의 친구들. 이제는 다시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겠지. 나는 가끔 Deetz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다. Deetz라는 작은 마을이 내 마음 한 켠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보고서를 쓰고 있는 지금, 다시 친구들이 보고 싶은 밤이다.
“Yes, Deetz. ^^”
“Where is Deetz? I’ve never heard about there. Hahaha”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어떤 남자가 내 기차표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지금껏 독일에 살아왔지만, Deetz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그렇지 않아도 홀로 환승을 2번이나 해야되어서 바짝 긴장하고 있었는데, 독일 토박이도 모르는 외지로 가는 건가 싶어서 더 걱정이 되었다.
장장 4시간을 달려 도착! 두리번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어떤 여자애가 캐리어를 끌고 동시에 내렸다. 보자마자 ‘아! 워크캠퍼구나!’ 느낌이 왔다. 그러는 찰나에 멀리서 할아버지가 뛰어오더니 나에게 A4용지를 보여줬다.
‘Welcome to Deetz Work camp!’
반가움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순간이었다. 내 느낌대로 그 여자애는 나와 3주를 같이 보낼 세르비아에서 온 마리나였다. 할아버지의 차를 타고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4명의 캠퍼가 도착해있었다. 터키에서 온 에란, 러시아에서 온 비에라, 이탈리아에서 온 파비오, 스페인에서 온 빼요. 나보다 불과 몇 시간 일찍 도착했을 텐데 벌써 다들 친해져 있었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인 나는 ‘외국인 친구들을 잘 사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것도 용기 낸 건데, 조금만 더 용기내자’ 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끼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나도 그들과 동화될 수 있었고,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저녁이 되어 모든 캠퍼가 모이게 되었고, 서로의 이름을 외우고 친해지기 위해서 다양한 게임을 했다. 그렇게 워크캠프의 첫 날이 저물어갔다.
Work Work
우리가 일하는 곳은 아이들 체험 농장 및 마을 곳곳이었다. 농장은 우리가 묵는 숙소 옆에 위치하여 고양이, 닭, 토끼, 돼지, 말 등이 살고 있었고, 감자와 토마토를 키우는 밭도 있었다. 우리는 이 워크캠프의 매니저인 울리에게 설명을 듣고,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각자 자전거를 배정 받아 마을에 있는 당근 밭에 가서 잡초 뽑는 것이 우리의 첫 임무! 잡초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잡초가 당근보다 더 키도 크고 더 무성했다. 유럽의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정말 오랜만에 노동이란 걸 해보았다. “Pause~”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배운 말이다. “휴식~” 햇살이 너무 뜨겁기 때문인지 일하는 중간중간 자주 쉬었다. 친구들이랑 나는 일 하다가 힘들 때쯤 함께 일하는 농부 아저씨께 틈만 나면 “Pause? Pause?” 물었다. 일하면 쉬고 싶은 마음은 만국 공통인 것 같다. 일하는 첫 날 요리 팀은 스페인 친구들이었다. 요리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우리나라 흰 쌀 죽에 토마토 케찹을 뿌려 비벼먹는 요리였다. 건더기나 다른 반찬이 없어서 아쉬웠지만, 열심히 일을 하고 난 뒤여서 맛있게 먹었다. 평소 맛 집 탐방이나 식도락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매일 다른 나라의 새로운 요리를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이 것이 워크캠프의 자랑 중 자랑!
Asian Cooking day
절친한 친구가 된 중국에서 온 동갑내기 챠오랑 요리를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불고기 소스를 준비해갔지만, 동네 슈퍼마켓에서 소고기를 구하지 못해서 중국요리와 내가 가져간 호떡믹스를 함께 내놓기로 했다. 밥을 짓는데 밥솥도 없거니와 16인분의 밥을 지으려니 아득했다. 챠오와 시행착오 끝에 약간 딱딱한 밥이 완성되었다. 아시아 요리인 만큼 포크대신 군데군데 젓가락도 넣고, 테이블에 태극기도 꽂아놨다. 일을 마치고 온 친구들이 먹기 시작했을 때 맛을 어떻게 생각할까 은근히 긴장이 되었다. 호떡은 인기 만점! 달달한 맛과 계피 맛의 조화가 좋았던 것 같다. 친구들이 어떻게 만드냐고, 자기 나라 돌아가서 만들어 먹고 싶다고 했다. 정말 뿌듯했던 순간이었다.
Gloomy day
여느 때처럼 오후 일까지 마치고 나랑 챠오랑 main building에 wifi를 즐기러 갔다. 부모님이랑 전화를 하는데 왜 갑자기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내가 혼자 가보겠다고 해서 온 유럽이지만, 내 마음속에 두려움과 초조함이 숨어있었나 보다. 친구들에게도, 부모님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데, 챠오가 보고 말았다. 마음 따뜻한 챠오는 말없이 옆에 있어주다가 내가 좀 눈물을 그치자 이해한다면서 위로해주었다.
정말이지 국경과 언어는 사람 사이에 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눈빛으로 얘기할 수 있고,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
We are young
우리들이 부엌에서 항상 틀어놓는 팝송들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가 가수 Fun의 We are young이라는 곡이었다.
그래! 우리는 젊었다. 오전, 오후 일을 마치고 나면 피곤할 법도 한데, 밤이 되면 팔팔해서 party tonight!을 외쳤다. 한번은 다같이 수영장에 가겠다고 비포장 도로 20km를 자전거를 타고 달려갔다. 힘들 법도한데 우리는 수영장에서도 열심히 놀았다. 그러고 다시 돌아올 때도 20km 자전거 여행! 한국에선 생각도 못했을 거리였을 텐데, 풍경이 멋있어서 그랬는지, 친구들과 함께여서 그랬는지, 기분 좋았던 여행 중 하나였다. ‘tonight~ We are young~’
What happened in Berlin
친구들과 다같이 1박2일로 놀러 간 베를린. 나는 모두 함께 관광을 하는 줄 알았는데, 캠프에 오기 전 베를린을 여행했던 친구들이 있어서 팀을 나누어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앨리와 함께 베를린 장벽을 보러 갔다. 나와 취미도 비슷하고, 함께 있으면 꼭 한국 친구와 같이 있는 느낌이 드는 앨리. 길도 척척 잘 찾고, 입맛도 비슷해서 정말 유쾌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밤에는 클럽에 가려고 꽃단장을 하고 나왔는데, 몇몇 친구들이 미성년자라서 퇴짜를 맞았다. 친구들은 다른 클럽을 찾으러 가자고 했지만, 그 때가 새벽이여서 나는 피곤 할대로 피곤한 상태라 챠오랑 이반이랑 나랑은 유스호스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타야하는 UBahn 운행이 끊긴 것. 우리는 당황했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여러 명에게 물어봤는데, 모두 정말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직접 지도도 함께 봐주고, 정보를 알아다 주겠다며 다른 곳에 물어봐주기도 했다. 이 때 독일에 대한 좋은 인상이 자리잡았고 정말 감동받았다. 챠오가 대안을 세워서 이반에게 설명을 했는데, 이반은 잘 듣지도 않고 자꾸 사람들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행인이 알려준 방법이 챠오가 생각한 대안과 같은 방법이었고, 이반은 그 때서야 그 방법으로 가자고 하였다. 챠오는 왜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냐며 화를 냈고, 이반은 미안하다고 계속 사과했다. 나는 그 가운데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당시 챠오와 이반은 심각했지만, 나는 왠지 웃겼다. 정말 기억에 남을 추억이 생겼다는 것? 어찌되었든 우여곡절 끝에 새벽 3시에 유스호스텔로 도착했다. 잊을 수 없는 베를린에서의 밤이다.
Good bye and see you someday
처음 도착했을 때 3주가 끝나긴 할까 싶었는데, 어쨌든 시간은 흘러가서 마지막 날이 되었다.
기차 시간표에 따라 조를 나누어서 떠났다. 처음 나가는 친구들을 다같이 배웅해주는데 앨리가 헤어지는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따라서 눈물이 흘렀다. 한 명씩 포옹을 하고 막연하지만 다시 만날 다음을 기약하며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3번 째 조였다. 한 두 명씩 사람이 떠나자 바글바글하고 웃음소리와 얘기하는 소리로 가득 찼던 집이 휑 하게 느껴졌다. 내가 떠나는 차례. 기차역까지 가는 차를 타고 바깥 풍경을 보는데 들판과 나무들, 하늘이 어찌나 예쁘던지 눈물이 났다. 이제 다시 언제 이런 그림 같은 풍경에서 소중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자전거를 타고, 밤에 호숫가에 갈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정말 그 때의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넓으면 넓고 좁다 하면 좁은 이 세계에서 workcamp의 인연으로 만난 16명의 친구들. 이제는 다시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보내고 있겠지. 나는 가끔 Deetz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다. Deetz라는 작은 마을이 내 마음 한 켠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처럼, 친구들에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보고서를 쓰고 있는 지금, 다시 친구들이 보고 싶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