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잔지바르, 우정으로 채운 아프리카 한 달
Cultural Exposu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우연히 탄자니아 친구를 알게 되면서 탄자니아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그리고 급하게 탄자니아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아프리카로 워크 캠프를 간다고 이야기 하니까 친구 한 명이 같이 가자며 곧바로 신청 해서 한달 동안 같이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같이 여행 하면 사이가 멀어진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이 친구가 없었다면 워크 캠프 동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의지했다.
인포싯에 나와있는 대로 미팅 장소에 하루 일찍 도착해서 미팅 장소도 먼저 가보고 워크캠프 시작 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다레살람 공항에 하루 일찍 도착했다. 우리 비행기가 다레살람 공항에 새벽 3시 도착이라 첫날부터 공항에서 침낭 꺼내서 노숙을 했다. 다레살람 공항은 내가 알던 공항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오래된 시골 학교 또는 교회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노숙을 할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었지만 새벽 3시에 나가서 갈 곳도 없고 겁도 나서 몇 개 없는 의자를 친구랑 둘이서 점령하고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면서 가방을 손에 꼭 쥐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돼서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 짐 찾는 곳에서 문하나 통과하면 바로 밖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미니미 공항. 택시를 타고 예약해놓은 호텔로 갔다. 호텔이 너무 넓고 깨끗해서 마음이 놓였다.
미팅 포인트를 확인 하고 미리 준비해간 달러를 탄자니아 실링으로 바꾸고 슈퍼 마켓에 들렸다. 아프리카라서 물가도 쌀 줄 알았는데 로션, 과자, 초콜렛 등 수입 브랜드는 우리나라랑 값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1.5배 가까이 비쌌다.
다음날, 드디어 워크캠프가 시작하는 날이다. 미팅포인트를 가는 도중에 친구 가방에 있던 디지털카메라를 도둑 맞아서 경찰서 가서 신고 하고 정신 없었다. 나중에 아프리카 친구가 말하길 잔지바르로 다레살람 항구 주변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소매치기가 빈번하다고 한다. 한바탕 소란을 마치고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UVIKIUTA 다레살람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참가했던 캠프는 나를 포함해서 외국인 참가자가 6명 밖에 안됐는데 전부 여자였다. 독일인 4명 한국인 2명. 다양한 국가의 많은 사람들을 기대 했었는데 인원이 너무 적고 국적도 두 나라 밖에 안돼서 조금 실망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인원이 적었던 만큼 모두가 가족처럼 친해질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UVIKIUTA 사무실은 화장실도 건물 밖에 있고, 씻는 곳도 건물 밖에 있고 밤이 되면 전기도 안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한달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인포싯에 침대 시트를 갖고 오라고 해서 무작정 침낭을 가져갔는데 침낭보다는 아주 얇은 이불이나 침대 커버를 갖고 가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침낭은 새벽녘에 덥긴 좋았지만 잠이 들기 전까지 덮고 있긴 너무 더웠다.
UVIKIUTA 사무실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교육을 받고 본격적인 캠프 장소로 갔다. 배타고 도착한 잔지바르의 마웅가니는 새파란 하늘에 곧게 뻗은 야자수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모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 줄 정도로 사람들도 우호적이고 첫인상이 너무 좋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우리의 캠프 하우스! 생각보다 너무 넓고 깨끗하고 정전이 자주 되긴 하지만 불도 잘 들어오고 특히나 화장실이 너무 넓고 깨끗했다. 그리고 ‘에바’라고 밥을 해주는 친구가 따로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금 에바의 밥이 그리울 정도로 한국입맛에 잘 맞고 너무 맛있었다.
우리 워크캠프 주제는 CULTURAL EXPOSURE 이라고 해서 주로 현지의 문화를 배우는 것 이었다.
총 3주 동안의 워크 캠프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첫째 주는, 적응하느라 굉장히 힘이 들었고, 둘째주는 일정이 많고 바빠서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바삐 지나갔다. 그리고 셋째 주는 마지막 주라서 그런지 아쉬움에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간 것처럼 느껴졌다.
워크캠프 장소에서 달라달라라는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있는 스톤타운이라는 시내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첫째 주는 이것에 적응 하는데 많이 힘이 들었다. 오전 일정이 끝나면 점심 먹기 전 까지 한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 그리고 점심 먹고 나서 또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그리고 오후 일정이 끝나면 저녁 먹기 전까지의 두 세시간의 여유 시간. 저녁 먹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두 세시간 정도의 여유시간. 처음에는 여유시간에 새로운 아이들과 친해지고 웃고 떠들기 바빴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하고나니 할 이야기도 없어지고 낮에 자면 저녁에 잠이 안 와서 낮에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둘째 주가 지나면서부터 이 시간들이 재미있어 졌다.
둘째 주는 3일 동안 근처 초등학교의 교실 보수 공사를 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워크캠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다. 특히 학교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동네 마을청년들이 모두 우리의 캠프 하우스로 모여 들었는데 나이또래도 비슷하고 서로의 언어도 가르쳐 주면서 부쩍 친해졌다. 저녁을 먹기 전 후의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스와힐리어를 배우기도 하고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잔지바르는 90%이상이 무슬림이라 탄자니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더 평화롭고 범죄도 적고 사람들이 우호적이다. 무슬림이기 때문에 여자들의 외출이 제한적이라 여자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잔지바르는 사람들도, 환경도 너무나 완벽한 마을이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망고나무와 코코넛 나무, 스타 푸르츠 같은 과일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고, 주말에는 돌고래 사파리, 향신료 투어 등 해변과 숲을 모두 갈 수 있었다. 특히나 해변의 백사장은 모래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고왔다.
둘째 주부터는 매일 저녁 동네 청년들이 놀러 올 시간이 기다려 지고 같이 대화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탄자니아 참가자들을 비롯해서, 독일 참가자들, 동네 청년들과 격 없는 친구처럼 친해져서 시간이 더 빨리 갔다. 캠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정말 너무 순수하고 정이 많았다.
우리에게 헤나와 염색하는 방법, 머리 땋기, 바구니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시던 동네 어르신들은 유쾌하고 정도 많으셔서 먹을 것을 해 주시기도 하고, 우리나라 시골 어르신 들과 똑 같은 느낌 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캠프하우스에 찾아와서 인사를 해주셨는데 이분들과 헤어진다는 게 너무 슬펐다.
마웅가니는 물론 우리나라만큼 시설이 잘되어 있진 않지만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었고,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라는 아프리카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 끝없는 욕심과 경쟁이 있는 곳에서만 지내다가 평화롭고 여유로운 곳에 가게 되어서 목표를 잃은 배처럼 방황하기도 했지만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친구들을 얻은 게 너무 행복하다. 만약 워크캠프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아직 흑인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을 만난다면 먼저 스와힐리어로 말을 걸고 싶을 정도로 친근해 졌다. 역시 피부 색과 문화는 친구가 되는데 중요치 않았다.
너무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마웅가니,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
인포싯에 나와있는 대로 미팅 장소에 하루 일찍 도착해서 미팅 장소도 먼저 가보고 워크캠프 시작 전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다레살람 공항에 하루 일찍 도착했다. 우리 비행기가 다레살람 공항에 새벽 3시 도착이라 첫날부터 공항에서 침낭 꺼내서 노숙을 했다. 다레살람 공항은 내가 알던 공항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오래된 시골 학교 또는 교회 같은 느낌이랄까, 사실 노숙을 할만한 마땅한 장소도 없었지만 새벽 3시에 나가서 갈 곳도 없고 겁도 나서 몇 개 없는 의자를 친구랑 둘이서 점령하고 해가 뜰 때까지 기다리면서 가방을 손에 꼭 쥐고 잠이 들었다.
아침이 돼서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 짐 찾는 곳에서 문하나 통과하면 바로 밖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미니미 공항. 택시를 타고 예약해놓은 호텔로 갔다. 호텔이 너무 넓고 깨끗해서 마음이 놓였다.
미팅 포인트를 확인 하고 미리 준비해간 달러를 탄자니아 실링으로 바꾸고 슈퍼 마켓에 들렸다. 아프리카라서 물가도 쌀 줄 알았는데 로션, 과자, 초콜렛 등 수입 브랜드는 우리나라랑 값이 비슷하거나 오히려 1.5배 가까이 비쌌다.
다음날, 드디어 워크캠프가 시작하는 날이다. 미팅포인트를 가는 도중에 친구 가방에 있던 디지털카메라를 도둑 맞아서 경찰서 가서 신고 하고 정신 없었다. 나중에 아프리카 친구가 말하길 잔지바르로 다레살람 항구 주변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아서 소매치기가 빈번하다고 한다. 한바탕 소란을 마치고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UVIKIUTA 다레살람 사무실로 향했다.
내가 참가했던 캠프는 나를 포함해서 외국인 참가자가 6명 밖에 안됐는데 전부 여자였다. 독일인 4명 한국인 2명. 다양한 국가의 많은 사람들을 기대 했었는데 인원이 너무 적고 국적도 두 나라 밖에 안돼서 조금 실망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인원이 적었던 만큼 모두가 가족처럼 친해질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UVIKIUTA 사무실은 화장실도 건물 밖에 있고, 씻는 곳도 건물 밖에 있고 밤이 되면 전기도 안 들어왔다. 이런 곳에서 한달 가까이 지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견딜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리고 우리는 인포싯에 침대 시트를 갖고 오라고 해서 무작정 침낭을 가져갔는데 침낭보다는 아주 얇은 이불이나 침대 커버를 갖고 가면 더 좋았을 뻔 했다. 침낭은 새벽녘에 덥긴 좋았지만 잠이 들기 전까지 덮고 있긴 너무 더웠다.
UVIKIUTA 사무실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교육을 받고 본격적인 캠프 장소로 갔다. 배타고 도착한 잔지바르의 마웅가니는 새파란 하늘에 곧게 뻗은 야자수들이 너무 아름다웠다. 지나가는 낯선 사람들 모두가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 줄 정도로 사람들도 우호적이고 첫인상이 너무 좋은 마을이었다.
그리고 도착한 우리의 캠프 하우스! 생각보다 너무 넓고 깨끗하고 정전이 자주 되긴 하지만 불도 잘 들어오고 특히나 화장실이 너무 넓고 깨끗했다. 그리고 ‘에바’라고 밥을 해주는 친구가 따로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온 지금 에바의 밥이 그리울 정도로 한국입맛에 잘 맞고 너무 맛있었다.
우리 워크캠프 주제는 CULTURAL EXPOSURE 이라고 해서 주로 현지의 문화를 배우는 것 이었다.
총 3주 동안의 워크 캠프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첫째 주는, 적응하느라 굉장히 힘이 들었고, 둘째주는 일정이 많고 바빠서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바삐 지나갔다. 그리고 셋째 주는 마지막 주라서 그런지 아쉬움에 시간이 굉장히 빨리 간 것처럼 느껴졌다.
워크캠프 장소에서 달라달라라는 버스로 30분 정도 가면 있는 스톤타운이라는 시내를 제외하고는 인터넷이 없었다. 그런데 하루 종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첫째 주는 이것에 적응 하는데 많이 힘이 들었다. 오전 일정이 끝나면 점심 먹기 전 까지 한 시간 정도의 여유시간, 그리고 점심 먹고 나서 또 한 시간 반 정도의 시간, 그리고 오후 일정이 끝나면 저녁 먹기 전까지의 두 세시간의 여유 시간. 저녁 먹고 나면 잠들기 전까지 두 세시간 정도의 여유시간. 처음에는 여유시간에 새로운 아이들과 친해지고 웃고 떠들기 바빴다. 하지만 이것도 하루 이틀하고나니 할 이야기도 없어지고 낮에 자면 저녁에 잠이 안 와서 낮에 잠도 못 자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둘째 주가 지나면서부터 이 시간들이 재미있어 졌다.
둘째 주는 3일 동안 근처 초등학교의 교실 보수 공사를 했는데 몸은 힘들었지만 워크캠프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다. 특히 학교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너무 예뻤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나면 동네 마을청년들이 모두 우리의 캠프 하우스로 모여 들었는데 나이또래도 비슷하고 서로의 언어도 가르쳐 주면서 부쩍 친해졌다. 저녁을 먹기 전 후의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스와힐리어를 배우기도 하고 한국어를 가르쳐 주기도 했다.
잔지바르는 90%이상이 무슬림이라 탄자니아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더 평화롭고 범죄도 적고 사람들이 우호적이다. 무슬림이기 때문에 여자들의 외출이 제한적이라 여자아이들과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지만 잔지바르는 사람들도, 환경도 너무나 완벽한 마을이었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망고나무와 코코넛 나무, 스타 푸르츠 같은 과일을 마음껏 따먹을 수 있고, 주말에는 돌고래 사파리, 향신료 투어 등 해변과 숲을 모두 갈 수 있었다. 특히나 해변의 백사장은 모래 알갱이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정말 고왔다.
둘째 주부터는 매일 저녁 동네 청년들이 놀러 올 시간이 기다려 지고 같이 대화하면서 서로에 대해서,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알아가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그리고 마지막 주에는 탄자니아 참가자들을 비롯해서, 독일 참가자들, 동네 청년들과 격 없는 친구처럼 친해져서 시간이 더 빨리 갔다. 캠프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정말 너무 순수하고 정이 많았다.
우리에게 헤나와 염색하는 방법, 머리 땋기, 바구니 만드는 방법을 알려 주시던 동네 어르신들은 유쾌하고 정도 많으셔서 먹을 것을 해 주시기도 하고, 우리나라 시골 어르신 들과 똑 같은 느낌 이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 날에는 모두가 캠프하우스에 찾아와서 인사를 해주셨는데 이분들과 헤어진다는 게 너무 슬펐다.
마웅가니는 물론 우리나라만큼 시설이 잘되어 있진 않지만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많은 것들이 갖춰져 있었고, ‘폴레폴레(천천히 천천히)’라는 아프리카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 끝없는 욕심과 경쟁이 있는 곳에서만 지내다가 평화롭고 여유로운 곳에 가게 되어서 목표를 잃은 배처럼 방황하기도 했지만 작은 것에 감사하고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친구들을 얻은 게 너무 행복하다. 만약 워크캠프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아직 흑인에 대한 색안경을 끼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을 만난다면 먼저 스와힐리어로 말을 걸고 싶을 정도로 친근해 졌다. 역시 피부 색과 문화는 친구가 되는데 중요치 않았다.
너무 값진 경험을 하게 해준 마웅가니, 꼭 다시 한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