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멕시코, 설렘과 걱정 사이 특별한 여름
The Siege of Cuautla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3학년2학기, 어쩌면 마지막이 될 것 같은 방학이란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뭐라도 하고 싶었다.
항상 꿈꿔왔던 이상을 꿈꾸던 찰나에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난 여름방학때 한국 내에서 개최되는 국제관련캠프봉사를 꾸준히 다녀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직접 해외에 나가서 봉사해보고 싶다는 싶다는 갈망이 컸다. 이런 추억 하나하나 쌓여서 내 삶의 원동력이 된 다는걸 또한 난 알고 있었다.
다른 선진국보단 저 멀리 있는 뭔가 있을 것 같은 멕시코를 선택했다. 뭐가 날 이끌었지?
처음 멕시코를 도착했을 때 설렘 반 걱정 반 이었다. 치안문제라던지 언어의문제등 많은 것들이 방해가 되었지만 그건 내 모험심을 멈추기엔 불가능했다. 다음날 미팅포인트로 물어물어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엔 머리 색깔, 눈동자, 언어 등 모두가 다른 사람들과 한 팀이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남녀 구분을 하여 방을 사용하였다. 사실 제일 아쉬운 부분이였다. 힘든만큼 뭔가 안맞을수록 기억에 남는데 숙소가 너무 좋아 버리는 바람에.. 하루만에 가까워질수 있었던 관계를 2틀만에 했다는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숙소 도착 후 식사를 마치고, 일정이 시작되었다. 처음 간 곳은 cuautla의 옛날 역사, 우리가 봉사활동을 주로 하게 될 장소를 탐방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역사 이야기 및 필요한 설명을 들으며 역사를 보았다. 역에서 가장 중요한 기차가 있었는데, 아주 오래 되보여 움직이는지 물어봤더니 움직인다고 했다. 이 곳에서 2주 동안 화단 꾸미기, 돌 나르기, 돌 부수기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땅파기, 기차 모형물을 올리기 위한 실제와 같은 간이 레일 만들기, 피티병과 종이로 만든 기념 동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날씨는 덥다 하지만 일교차가 조금 큰 관계로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했지만 오후에는 햇빛이 따가워 일하는 데 조금 힘든 부분으로 느낄수도 있었지만 한국은 겨울인 관계로 난 푸른나무들과 따가운햇살이라도 이 햇살이 나에겐 너무 행복한 하루하루를 선물해주었다. 돌 나르기랑 부수기는 정말 힘든 작업이 였는데 그 힘든 작업 뒤에 잠깐의 푸른 나무 밑에서의 휴식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행복한 일주일이 지나고 2주째에는 호텔에서 나와서 드디어 방갈로라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는 남녀혼숙을 했다 먹기도 같이 먹고 자기도 같이 자고 씻기도 같은 화장실에서 씻고? 확실히 팀워크가 확연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놀기도 했다. 난 형과 불고기를 가져갔는데 퐌타스틱하다는 평을 받았다. 우린 노르웨이, 멕시코, 미국, 한국으로 구성되어있어서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다 빵 종류의 음식들이 많이 준비 되었다. 사실 아침마다 빵을 먹기엔 내 뻑뻑한 입으론 참 힘들었다. 그래도 그것 또한 즐거움이란 걸 알고 있었을 뿐더러 이때아니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란걸 알았기에 즐거웠다. 그리고 멕시코에서는 매주 주말은 무조건 클럽을 가야한다는 불문율같은게 있다고 내친구 루루가 말해줬는데, 현지에서 일하는 알베르토 및 호텔에서 묵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같이 클럽도 가고 사진도 찍고, 내가 춤을 많이 좋아해서 나의 춤으로 멕시코 사람들과 소통을 했다. 그리고 방갈로 주인이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주었는데 거기에서. 마리오, 안드레, 모우리스 이들은 친구였으나 나이는 다 달랐다. 안드레는 서른이 넘었지만 나를 친구라 부른다 난 고작 23살인데….. 외국과한국의 큰 차이라하면 바로 이런점이 아닐까 싶다.
봉사 2주차로 넘어가면서 너무너무 재밌는 나날인데 그때부턴 하루하루가 가슴이 아팠다. 좀 더 정을 나누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헤어지기 싫고…… 하루하루가 너무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인 금요일 밤에 2주간의 봉사를 와준 우리에게 작은 행사가 열렸다. 이 때 우리가 만든 모형을 전시하고, 간단한 음식과 기타 연주, 좋은 사람들과 봉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땐 너무 슬퍼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cuautla에서의 마지막날 밤에는 모두 함께 클럽에서 다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클럽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난 진짜 안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는건 어쩔수 없었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욘세노래가 그렇게 슬픈 노래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난다.
마지막 주말을 이용해 우리 멤버 외 방갈로 친구들, 그리고 센터관련 친구들 다 같이 테포슬란이라는 산 꼭대기에 지어진 아즈텍요소를 볼수 있는 문명적 건물을 보러 갔다.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테포슬란을 마지막으로 우리 멕시코 시티로 이동 cuautla의 사람들과 헤어지고 계획된 여행을 위해 그곳을 떠났다. 하나하나 다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나와 형. 그렇게 멕시코를 떠났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모든 걸 느낄수 있었다. 철학에 관심이 많은 난 항상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항상 갈구하던 해답을 바로 멕시코, 해외자원봉사를 통해 난 진짜 그 행복이란 단어의 본질을 보았다. 그곳에서 만든 추억, 절대 절대로 평생 잊지 못한다. 다음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때 장기해외자원봉사를 투자해 내 젊음을 세계에 전달하고 싶다.
항상 꿈꿔왔던 이상을 꿈꾸던 찰나에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난 여름방학때 한국 내에서 개최되는 국제관련캠프봉사를 꾸준히 다녀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직접 해외에 나가서 봉사해보고 싶다는 싶다는 갈망이 컸다. 이런 추억 하나하나 쌓여서 내 삶의 원동력이 된 다는걸 또한 난 알고 있었다.
다른 선진국보단 저 멀리 있는 뭔가 있을 것 같은 멕시코를 선택했다. 뭐가 날 이끌었지?
처음 멕시코를 도착했을 때 설렘 반 걱정 반 이었다. 치안문제라던지 언어의문제등 많은 것들이 방해가 되었지만 그건 내 모험심을 멈추기엔 불가능했다. 다음날 미팅포인트로 물어물어 도착하게 되었다. 그곳엔 머리 색깔, 눈동자, 언어 등 모두가 다른 사람들과 한 팀이 되는 순간이었다.
처음 일주일은 호텔?에서 묵게 되었는데, 남녀 구분을 하여 방을 사용하였다. 사실 제일 아쉬운 부분이였다. 힘든만큼 뭔가 안맞을수록 기억에 남는데 숙소가 너무 좋아 버리는 바람에.. 하루만에 가까워질수 있었던 관계를 2틀만에 했다는건 지금 생각해도 너무 아쉽다. 숙소 도착 후 식사를 마치고, 일정이 시작되었다. 처음 간 곳은 cuautla의 옛날 역사, 우리가 봉사활동을 주로 하게 될 장소를 탐방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역사 이야기 및 필요한 설명을 들으며 역사를 보았다. 역에서 가장 중요한 기차가 있었는데, 아주 오래 되보여 움직이는지 물어봤더니 움직인다고 했다. 이 곳에서 2주 동안 화단 꾸미기, 돌 나르기, 돌 부수기 삽과 곡괭이를 이용해 땅파기, 기차 모형물을 올리기 위한 실제와 같은 간이 레일 만들기, 피티병과 종이로 만든 기념 동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멕시코의 날씨는 덥다 하지만 일교차가 조금 큰 관계로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했지만 오후에는 햇빛이 따가워 일하는 데 조금 힘든 부분으로 느낄수도 있었지만 한국은 겨울인 관계로 난 푸른나무들과 따가운햇살이라도 이 햇살이 나에겐 너무 행복한 하루하루를 선물해주었다. 돌 나르기랑 부수기는 정말 힘든 작업이 였는데 그 힘든 작업 뒤에 잠깐의 푸른 나무 밑에서의 휴식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었다.
행복한 일주일이 지나고 2주째에는 호텔에서 나와서 드디어 방갈로라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이때는 남녀혼숙을 했다 먹기도 같이 먹고 자기도 같이 자고 씻기도 같은 화장실에서 씻고? 확실히 팀워크가 확연히 높아지기 시작했다. 우리끼리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놀기도 했다. 난 형과 불고기를 가져갔는데 퐌타스틱하다는 평을 받았다. 우린 노르웨이, 멕시코, 미국, 한국으로 구성되어있어서 우리나라를 제외하곤 다 빵 종류의 음식들이 많이 준비 되었다. 사실 아침마다 빵을 먹기엔 내 뻑뻑한 입으론 참 힘들었다. 그래도 그것 또한 즐거움이란 걸 알고 있었을 뿐더러 이때아니면 절대 경험하지 못할 소중한 추억이란걸 알았기에 즐거웠다. 그리고 멕시코에서는 매주 주말은 무조건 클럽을 가야한다는 불문율같은게 있다고 내친구 루루가 말해줬는데, 현지에서 일하는 알베르토 및 호텔에서 묵고 있던 사람들과 함께 같이 클럽도 가고 사진도 찍고, 내가 춤을 많이 좋아해서 나의 춤으로 멕시코 사람들과 소통을 했다. 그리고 방갈로 주인이 우리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주었는데 거기에서. 마리오, 안드레, 모우리스 이들은 친구였으나 나이는 다 달랐다. 안드레는 서른이 넘었지만 나를 친구라 부른다 난 고작 23살인데….. 외국과한국의 큰 차이라하면 바로 이런점이 아닐까 싶다.
봉사 2주차로 넘어가면서 너무너무 재밌는 나날인데 그때부턴 하루하루가 가슴이 아팠다. 좀 더 정을 나누고 싶고 소통하고 싶고 얘기하고 싶고 헤어지기 싫고…… 하루하루가 너무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마지막 일정인 금요일 밤에 2주간의 봉사를 와준 우리에게 작은 행사가 열렸다. 이 때 우리가 만든 모형을 전시하고, 간단한 음식과 기타 연주, 좋은 사람들과 봉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땐 너무 슬퍼서 가슴이 먹먹했다. 그리고 cuautla에서의 마지막날 밤에는 모두 함께 클럽에서 다같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는데, 클럽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난 진짜 안울려고 했는데 눈물이 나는건 어쩔수 없었다. 아직도 눈에 선하다. 비욘세노래가 그렇게 슬픈 노래일지는 상상도 못했다. 지금 생각해도 눈물난다.
마지막 주말을 이용해 우리 멤버 외 방갈로 친구들, 그리고 센터관련 친구들 다 같이 테포슬란이라는 산 꼭대기에 지어진 아즈텍요소를 볼수 있는 문명적 건물을 보러 갔다. 한국의 산과는 전혀 다른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테포슬란을 마지막으로 우리 멕시코 시티로 이동 cuautla의 사람들과 헤어지고 계획된 여행을 위해 그곳을 떠났다. 하나하나 다 헤어지고 마지막으로 남은 나와 형. 그렇게 멕시코를 떠났다.
한국에서 느끼지 못한 모든 걸 느낄수 있었다. 철학에 관심이 많은 난 항상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항상 갈구하던 해답을 바로 멕시코, 해외자원봉사를 통해 난 진짜 그 행복이란 단어의 본질을 보았다. 그곳에서 만든 추억, 절대 절대로 평생 잊지 못한다. 다음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때 장기해외자원봉사를 투자해 내 젊음을 세계에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