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몽골, 이름만으로 설렜던 나의 여름

작성자 이종은
몽골 MCE/16 · KIDS/EDU 2012. 09 - 2012. 10 몽골 울란바타르

School-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알게 된 경로를 얘기하자면, 이러하다. 난 그저 봉사활동을 자주 하고 싶은 평범한 여대생이었고, 우리나라는 봉사활동마저 줄을 서서 기다리고 면접을 통해 뽑히는 실정이었다.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당시, 나는 이런 어려움을 그 곳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토로하였고 그 때 사귄 프랑스 친구가 가르쳐 준 것이 바로 워크캠프였다. 경비를 부담해야 하는 것이 흠이라 하면 흠이지만,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 영어로만 대화하며 봉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날 사로잡았다. 1년 가까이 스페인에서 작성해 온 '한국 가면 할 일 리스트'에 당장 워크캠프를 적어넣었다. 몽골은 그 나라의 이름만으로도 매력이 폴폴 풍기는 곳이었다. 중국 바로 위에,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와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지만, 몽골에 대해 아는 것이 많이 없었다. 그리고 늘 보고 싶어 하던 사막을 볼 기회도 있었으니, 다짜고짜 신청해서 가게 되었다.
사실 나는 봉사를 떠나기 3일 전까지 스페인어 자격증 시험과 토익 시험을 한 달에 한 번씩 치면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시험이 끝나고 하루 푹 쉬고 다음 날 가방을 싸고 그 다음 날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걱정이 되었다. 추운 나라에서 감기에 걸려 앓아눕진 않을까? 픽업을 잘 받을 수 있을까? 등등. 울란바타르에 위치한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춥다"였다. 가장 두툼한 잠바를 꺼내가서 입었지만 그 속을 바람이 살을 에듯 자꾸만 파고들었다. 나를 픽업해준 바타르는 아주 유쾌하고,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가장 좋아하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어설프지만 따라 부르는 호쾌한 사람이었다. 내게 '아저씨'로 불러달라지 말라는 말에, "그럼 '사나이'라고 해 줄게!" 라며 웃었다. 바타르 덕분에 그 때 공항 근처의 을씨년스런 풍경이며 거침없던 비포장도로도 내게 걱정을 안겨주진 못했다. 추운 날씨라 그런지 9월 말인데도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데코가 가득했고, 덩달아 크리스마스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몽골에서의 워크캠프는 내게 좋은 일 연속이었다. 모든 것에 감사하게 하고 그래서 항상 웃었으며 그 웃음이 더 좋은 일을 가져왔다. 우리가 머무르게 된 숙소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굉장히 신식이었다. 단점이라면 화장실이 1개고 인터넷이 안 된다는 것이었지만, 그게 대수랴. 같은 자원봉사자들로는 아일랜드에서 온 70대의 정정한 헬렌, 벨기에에서 온 말괄량이 셰린, 마찬가지로 같은 벨기에에서 왔지만 셰린과 다르게 불어를 쓰는 제이와 파리지앵 아이린, 영국 영어를 썼던 홍콩의 티파니, 대만에서 온 소박하고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했던 나이링, 니르바나... 모두 좋은 사람들 뿐이었다. 덕분에 많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 그들과 국제 경제, 외교, 남북한 등 다양한 분야에 관해 얘기하며 내가 부족한 부분을 깨달을 수 있어 그들에 감사했고, 또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워크캠프에 속으로 감사하기도 했다. 북아일랜드와 대만 등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저 영국, 중국과 같거나 비슷한 나라라고 알고 있거나 한 나라에 3가지 공용언어가 있는 줄도 몰랐던 벨기에의 속사정까지. 지역감정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란 사실과, 한국과 달리 주의 자치권이 강해서 오는 문제들도 알 수 있었다.
봉사활동의 주 현장이었던 몽골의 제 31 고등학교에서도 좋은 일 연속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고등학생들은 전세계 어디서나 Kids라기 보다는 말썽꾸러기 청소년들에 속한다. 그저 짓궂기만 하고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먹서먹하고, 굳이 영어를 공부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솔직히 그 첫 시간, 너무나 실망했었다. 하지만 '아누'라는 특별한 한 학생 때문에 정신을 번쩍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한국인인 나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하고, 내가 알지도 못하는 K-POP의 가수들과 드라마들을 알고 있었고 한국어를 혼자 독학해오고 있었다. 그 아이가 조그마한 연습장에 깨알같이 적으며 연습한 자음, 모음들을 보고 스페인어를 대학에서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는 어안이 벙벙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렇게 열심히 스페인어를 공부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는지. 스페인의 문화와 역사에 저렇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었는지. 이 단 한 아이를 위해서라도 난 열심히 2주 동안 봉사 정신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겠다고 내 자신을 채찍질했다. 하지만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다른 아이들을 향한 내 앙금은 녹아내렸다. 그들 역시 나와 똑같이 낯을 가렸고 쑥쓰러워 했을 뿐이었던 거다. 학생들은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들을 반가워했다. 내가 좋다는 사람들이 싫을 리가 만무하다. 바로 세 달 전까지 스페인에서 지내며(항상은 아니지만) 받았던 인종차별이 오버랩되면서 더욱 몽골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다른 자원봉사자들은 딱딱한 영어보다는 재미있는 영어로 다가가자는 취지에서, 보드 게임들 중 하나인 할리갈리 게임을 응용한 영어 단어 외우기 게임, 3~4명씩 조를 짜 학교 내의 보물찾기를 하거나 미션을 클리어하는 등의 게임을 고안해냈고, 이를 통해서 학생들과 친해졌다. 자원이 매우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세숫대야를 이용한 '옛 한국의 아낙네 Style; 손 안 대고 머리로만 물건 운반하기' 게임과, 공기놀이로 숫자를 외우는 등의 게임을 고안했고, 우릴 지켜보던 초등학생들도 다가와 추운 날씨에도 손을 호호 불어가며 함께 놀았고, 이 날은 봉사기간 2주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몽골에서 난 운 복권을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모든 운이 몰아서 한꺼번에 찾아왔다. 8월에 친 스페인어 중급 시험 통과, 9월에 친 토익의 고득점 모두 몽골에서 확인했고, 30주년 개교기념일 행사까지 겹쳐 다른 관광객들은 돈을 주고 본다던 몽골의 전통 악기 공연과 샤먼의 퍼포먼스들, 끼 있는 학생들의 노래, 연주 실력과 본교 출신의 몽골에서 유명한 팝페라 가수의 공연까지 모두 공짜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강남 스타일을 리믹스한 4인조의 비트박스 공연까지. 시간은 길었지만 허리도 아픈 줄 모르고 푹 빠져들었었다.
몽골 워크캠프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는 단 0%도 없다. 막학기는 다가오고, 난 아직도 부족한 것 같고, 내 꿈도 내 자신도 모를 때 일종의 도피처 같이 선택한 것이 몽골 워크캠프였다. 거기서 자원봉사자 친구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며 자신감을 회복하고 내 진로를 담담히 맞설 용기를 배웠다. 내 꿈은 평생 인생과 싸우며 알아내야 할 숙제라는 걸, 이번 기회를 통해 배울 수 있었고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다른 많은 이들도 이 말을 듣고 용기를 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