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산토리니, 꿈을 찾아 떠난 여름

작성자 정화림
그리스 C.i.A 04 · ENVI/RENO 2012. 09 산토리니

30th Alliance Anniversary CAMP in Akrotir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내 힘으로 유럽 배낭 여행을 하고자 휴학한 일 년. 유럽 여행 계획을 시작하기 전. 워크캠프 일정부터 체크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봉사 활동을 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라, 영어나 좀 배우고 저렴한 생활비로 외국에서 좀 살아보겠다는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러던 마침 내가 꿈꾸던 산토리니에서 하는 워크캠프를 찾았고, 혹여나 누구에게 뺏길까 재빨리 신청서를 제출하고 참가비를 입금했다. 여행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선 여수 엑스포에서 운영요원으로써 일을 하였다 물론 힘든 나날이었지만 여행과 산토리니와 꿈꾸던 유럽 여행만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벌었다.
엑스포가 끝나고 일주일 만에 출국을 했다. 항공권을 절약하기 위해서 산토리니와 가까운 터키로 IN해서 터키를 20일 정도 여행 한 후, 터키 보드룸에서 페리를 타고 산토리니로 넘어갔다. 페리가 새벽에 도착하는 바람에 워크캠프 코디네이터가 마련해 준 숙소에서 하루 밤을 지내고, 다음 날 워크캠프 장소로 향했다. 워크캠프 장소에서는 3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먼저 도착해 나를 맞아 주었다. 낮선 장소에서의 새로운 시작. 캠프리더와 조원들과 인사를 하고 방 배정을 받았다. 어색함을 풀어주려는 캠프리더의 유머가 나를 웃게했다. 나를 제외한 유일한 한국인인 수진언니와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수진 언니와는 한국에서 네이버 카폐를 통해 알게 되어 미리 연락을 했었기 때문에 그다지 어색하진 않았다.
한명 두명 참가자들이 도착하고 마침내 16명의 참가자 들과 2명의 캠프리더 1명의 워크캠프 코디네이터가 한자리에 모였다. 어색한 자기 소개가 끝나고 리더가 준비한 게임으로 어색함을 풀었다. 마음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졌다. 쟝 클로드 라는 영어는 잘 못하지만 자신감 넘치는 프랑스인 할아버지. 덩치가 산만한 세르비아인 코스타. 페리에서 나를 열심히 찾아준 레이나. 베트남과 필리핀 혼혈이지만 아테네에 살고있다는 베바. 곱슬머리에 미소가 천사같은 이탈리아인 마르코와 리엑션이 과한 이탈리안 프란체스코 아저씨. 장난기 많은 철없는 이탈리안 꼬맹이 조르디. 같은 화장실을 쉐어하게 된 섹시한 독일인 크리스티나와 크리스틴. 쿨하고 든든한 마르타. 말은 전혀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통하는 상냥한 독일 소녀 사만다. 아직도 속을 모르겠는 약간은 이상한 독일인 레인하드 뒤늦게 합류한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아르헨티나에서 온 올가. 쿨하지만 의외로 여린 나와 홈팀을 같이한 스페인 언니 아나까지.
화산폭발로 인해 만들어진 이 산토리니에서 고대 도시가 발견되어 발굴 작업을 했고 그 곳에 박물관을 만들었는데, 박물관으로 통하는 길이 온갖 잡초로 인해 지나 갈 수 없게 되어 그 길을 다시 만들어야 했는데, 그 작업을 우리 워크캠프가 맡게 되었다. 둘째 날, 캠프 리더가 그 길을 먼저 선보였는데…..눈 앞이 깜깜해졌다. 온갖 가시나무와 이름 모를 잡초들이 길을 모조리 뒤덮고 있어 지나가기 조차 힘들었다.
일을 시작하는 첫날. 첫 날은 박물관 근처의 잡초를 제거했다. 땡 볕이여서 선크림으로 범벅을 하고 모래바람이 불어 선글라스를 착용한 체 작업을 했다. 둘째 날부터는 본격적으로 길을 뚫는 작업을 헀다. 지역 주민들 몇 명이 힘을 합쳐 도와주었다. 아침 여덞시부터 12시까지 하루에 4시간 작업하였다. 점심과 저녁은 홈팀을 배정하여 하루에 두명 씩 일을 가지 않고 간식을 만들고 주방과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식사 당번을 하였다.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4시간을 겨우 버틸 정도였는데 어떤날은 오후에도 일을 하게 되어 체력이 소진되었었는데 너무 서럽고 힘들어서 펑펑 운날도 있었다. 내 딴에는 얘들이 열심히 하니까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체력안배도 안하고 무작정 일을 했는데 끝나갈 무렵엔 내 몸이 버틸 수가 없었나 보다. 몸살이 나고 너무 힘들었었다. 창피해서 화장실 가서 울었었는데 캠프리더가 조용히 와서 아시아 얘들과 서양 얘들은 기본 체력이 다르다며 어떻게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이 싸워서 이길 수가 있냐며 이건 그냥 봉사활동일 뿐이니까 할 수 있는 만큼만 일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부터는 길트는 작업 마무리는 아이들에게 맡겨놓고 마무리 작업인 표지판 만들기 작업을 같이 했다. 나무를 다듬고 페인트 칠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박물관 표지판을 만들면서 산토리니에서 우리 워크캠프 맴버들이 온 나라까지의 거리를 표시한 표지판 작업도 했다. 태극기를 그리고 내 이름을 적을 땐 가슴이 조금 뭉클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자식을 낳고 같이 여행을 오게 된다면 꼭 산토리니에 와서 엄마가 여기서 워크캠프를 했었다고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말하리라.
일이 끝난 후에 점심을 먹고, 휴식 시간을 조금 갖고 엑티버티를 했다. 주로 그 지역 학교에 가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선셋도 보러가고, 박물관도 갔다.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고 근처 해수욕장도 가고, 이야 마을과 피라 마을 관광도 하고, 보트도 타고 재밌는 여행을 했다.
홈팀을 맡았을 때는 저녁으로 불고기를 했다. 한국에서 작정하고 가져간 소스가 약간 모자라서 간장을 사서 다시 양념을 했다. 얼추 비슷했다. 얘들이 먹고 떡실신을 했다. 요리 솜씨가 훌륭하다며 안아주고 결혼하자며 프로포즈 하는 과한 장난까지 했다. 뿌듯했다.
워크캠프를 하는 도중에는 지겨워서 빨리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유럽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 왜 이렇게 산토리니가 그리운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그 모든 순간 순간이 그립다. 같이 엑스포에서 일했던 아이들에게 추천했었는데 갔다온 아이들 모두 만족스러워 했다. 한국가서도 유럽 여행간다는 후배가 있으면 꼭 추천해 주고 싶은 나를 더욱 잘 알게 해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