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특별한 3주
DISCOVER THE VOLCANOES IN THE EIFEL REG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3개월의 배낭여행을 계획하던 중에, 우연히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워크캠프의 취지보다는, 3주간 캠프참가비용이 가난한 배낭여행객인 저에게 더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3주간의 캠프를 포함해 3개월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온 저에게, 워크캠프에서의 시간은 올해 제가 보내온 시간 중에서 가장 즐겁고, 값진 추억이 되었습니다.
처음 일주일은 다들 서먹서먹했습니다. 독일에서 온 캠프리더 니콜라스와 루카스, 독일 깍쟁이 제닌, 스페인에서 온 귀염둥이 이작, 체코 미녀 클라라, 조지아에서 온 왕눈이 니노와 은근히 개그감 쩌는 레반, 벨라루스에서 온 개그코드 남다른 우리의 분위기 메이커 세르게이, 미국에서 온 우리의 딕셔너리 사만다, 그리고 의지의 한국전도사 혜연이와 나까지 11명. 국적도 문화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우리들이 처음부터 친해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3명의 쿠킹크루와, 8명의 워킹크루로 나눠 하루 6-7시간씩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저희는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Stadtkyll의 환경미화원인가 싶을 정도의 하드워킹은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책로 만들기, 공원정비, 휴화산인근의 호수 정비.. 워킹크루들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6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쿠킹크루들이 자국의 음식을 준비하고 워킹크루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맛보는 유럽의 음식은 짜기도 하고, 향이 강해 먹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치켜들고 delicous를 외치는 센스를 발휘하곤 했지요.
혜연이와 저, 캠프리더 니콜라스가 쿠킹크루였던 날,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야채를 다듬던 저의 top of finger가 사라졌고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피 칠갑이 된 제 손가락을 보고 사색이 된 니콜라스와 병원에 갔지만 다행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파상균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붕대만 감는 간단한 치료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걱정할까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응급실까지 가게 된 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캠프리더가 처음인 니콜라스와 루카스를 보며 리더쉽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이 일을 계기로 최고의 캠프리더캠프리더가 되었답니다. 저는 그 후 2주간 워킹크루와 쿠킹크루에서 제외되었고, 일하러가는 워킹크루들에게 손가락을 치켜들며 you’re the best를 외치며 장난도 치고 격려도 했답니다.
하루에 주어진 양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world food를 먹고 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희는 미팅 룸에 다 같이 모여 게임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 어디로 여행을 갈지 혹은 특별한 행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할지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면 캠프파이어 앞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야식과 독일 맥주를 밤새 느끼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행복한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3주가 너무 길어서 2주차쯤 됐을 때에는 이제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쾌활한 세르게이의 조지아 친구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농담에 욱하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이 다 나아갈 때쯤 워킹크루로 일하러 갔더니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쉬고 있는 모습에, 왜 아무런 규율도 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돈 받고 일하는 거 아니잖아. 대충 일해” 라고 말하면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크캠프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굳이 공용어인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친구가 되기 위한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한 미소만으로도 우리는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유럽이라는 대륙으로 다시 워크캠프를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못합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국내든, 아시아에서든 다시 한 번 참가해 보고 싶습니다. 혹시나 참여를 망설이는 친구들,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친구들에게 적극 추적합니다. 살면서 한번쯤 경험해 볼만한 충분히 값진 경험이니까요.
처음 일주일은 다들 서먹서먹했습니다. 독일에서 온 캠프리더 니콜라스와 루카스, 독일 깍쟁이 제닌, 스페인에서 온 귀염둥이 이작, 체코 미녀 클라라, 조지아에서 온 왕눈이 니노와 은근히 개그감 쩌는 레반, 벨라루스에서 온 개그코드 남다른 우리의 분위기 메이커 세르게이, 미국에서 온 우리의 딕셔너리 사만다, 그리고 의지의 한국전도사 혜연이와 나까지 11명. 국적도 문화도 나이도 성별도 다른 우리들이 처음부터 친해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3명의 쿠킹크루와, 8명의 워킹크루로 나눠 하루 6-7시간씩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저희는 금세 친구가 되었습니다.
Stadtkyll의 환경미화원인가 싶을 정도의 하드워킹은 우리를 더 돈독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책로 만들기, 공원정비, 휴화산인근의 호수 정비.. 워킹크루들이 하루에 평균적으로 6시간의 노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쿠킹크루들이 자국의 음식을 준비하고 워킹크루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처음 맛보는 유럽의 음식은 짜기도 하고, 향이 강해 먹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치켜들고 delicous를 외치는 센스를 발휘하곤 했지요.
혜연이와 저, 캠프리더 니콜라스가 쿠킹크루였던 날,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볶음밥을 만들기 위해 야채를 다듬던 저의 top of finger가 사라졌고 병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피 칠갑이 된 제 손가락을 보고 사색이 된 니콜라스와 병원에 갔지만 다행히 심각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파상균 백신을 맞았기 때문에 붕대만 감는 간단한 치료를 받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걱정할까봐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타국에서 응급실까지 가게 된 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캠프리더가 처음인 니콜라스와 루카스를 보며 리더쉽이 없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저에게는 이 일을 계기로 최고의 캠프리더캠프리더가 되었답니다. 저는 그 후 2주간 워킹크루와 쿠킹크루에서 제외되었고, 일하러가는 워킹크루들에게 손가락을 치켜들며 you’re the best를 외치며 장난도 치고 격려도 했답니다.
하루에 주어진 양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world food를 먹고 나면 자유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저희는 미팅 룸에 다 같이 모여 게임을 하기도 하고, 주말에 어디로 여행을 갈지 혹은 특별한 행사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할지 회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밤이 되면 캠프파이어 앞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야식과 독일 맥주를 밤새 느끼기도 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너무 행복한 추억이지만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3주가 너무 길어서 2주차쯤 됐을 때에는 이제 여기서 나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쾌활한 세르게이의 조지아 친구들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농담에 욱하기도 했습니다. 손가락이 다 나아갈 때쯤 워킹크루로 일하러 갔더니 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쉬고 있는 모습에, 왜 아무런 규율도 정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우리 돈 받고 일하는 거 아니잖아. 대충 일해” 라고 말하면서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모습에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워크캠프는 문화적 차이를 이해하는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나와 같은 생각을 할 수가 있을까요. 그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건 서로 친구가 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하지만 굳이 공용어인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친구가 되기 위한 장벽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한 미소만으로도 우리는 친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유럽이라는 대륙으로 다시 워크캠프를 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못합니다.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국내든, 아시아에서든 다시 한 번 참가해 보고 싶습니다. 혹시나 참여를 망설이는 친구들, 유럽 배낭여행을 계획하는 친구들에게 적극 추적합니다. 살면서 한번쯤 경험해 볼만한 충분히 값진 경험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