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반게로게, 미지의 섬에서 만난 인연

작성자 우영주
독일 IJGD 2223 · ENVI 2012. 07 - 2012. 08 Wangerooge island, Germany

SUN, BEACH AND WAVES - NATURE PRESERVATION AT WA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How can I get to Wangerooge island?"
"What?"
"I want to go to Wangerooge."
"Pardon?"
"-_-"
'왕거루지, 왕거루게? 완거루즈? 왕거루즈? 왕거루그?' 되뇌는 나를 보며 독일인여자의 웃음이 빵 터졌다.
현지인들이 못 알아 들은 이유가 있었다. ‘반게로게’라 발음한다. 포털 사이트를 뒤져도 반게로게에 대한 정보는 몇 개 나오지 않는다. 그런 섬이 있다는 정도만 있을 뿐, 여행 후기 하나 찾을 수 없다. 그만큼 우리에겐 미지의 섬이라는 말이다.
기차역에서 만난 멤버들의 첫인상은 매우 친근했다. 서양인들 여러 명에게 그렇게 둘러싸인 건 처음인데도 편한 느낌이었다. 숙소에 도착해보니 먼저 도착했던 멤버들이 이미 6인실에 각자 자리를 잡고 짐을 넣어 놓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나와 한국인 동생, 그리고 한국인 오빠와 터키 남자 멤버 2명이 마지막 방에 들어갔다. 선착순 결정에 약간 기분이 상했다. ㅠ_ㅠ 게다가 동양인만 방을 따로 쓰는 느낌이 들어 더 서운했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고 그 다음 날이 될수록 가장 재미있는 방이 되었다. 유일한 남녀혼방이라 그런지 분위기도 서로 놀리느라 아옹다옹 귀여운 분위기였다. 밤에 잠에 들 때마다 한국 발음 ‘굿나잇’과 터키 발음 ‘꾼나잇’ 서로 인사를 하다가 터키멤버 알프가 한국어로 ‘굿나잇’을 뭐라고 하냐고 물어보았다. 2주 내내 알프 놀리는 재미가 쏠쏠했던 건 이 때가 최고였을 것이다. ‘repeat after me, YE-BBEUN-AH’ 약 2주 간 ‘잘자’ 대신에 ‘예쁜아’ 소리 실컷 듣고 왔다. 한국인 오빠는 그럴 때마다 터키 남자애들을 측은한 눈으로 봤지만 절대 말해주지는 않더라.
가끔 답답해서 한국인끼리 한국 말로 뭐라 뭐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불라불라’라며 따라 했다. 알아듣게 영어로 하라는 의미다. 가장 중요한 예의인 것 같다. 역지사지로 이탈리아어나 독일어로 이야기하면 소외감을 느꼈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다들 배려해줘서 더듬더듬 영어로 의사소통 했는데, 생각보다 영어를 참 잘해서 당황했다. 모국어도 아닌데 너무도 잘하더라. 영어 공부는 우리가 제일 많이 했을 텐데, 내가 영어를 못하는 게 아니라 한국 영어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
우리는 하루 중에 아침 7시 반에 아침을 먹고 8시 정도에 일을 하러 나간다. 반게로게 섬의 경우 구름 몇 점 붓으로 찍은 것처럼 하늘이 맑다. 자외선이 매우 강렬해서 오후 시간대를 피하기 위해 일찍 활동했다. 우리의 봉사활동은 반게로게의 환경을 해롭게 만드는 해로운 식물인 ‘포테이토로즈’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생각보다 뿌리가 굵고 길게, 그리고 깊게 자라서 제거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삽을 들고 콩콩 찍어 내리다가 발을 헛디디기도 하고 잠옷 바지를 입고 다니다가 벌에 쏘이기도, 가시에 긁혀 피가 나기도 했다. 삼삼오오 팀을 짜서 함께 뿌리를 캐냈는데, 가끔 너무 힘들어서 깊게 파고들어간 뿌리를 캐기 위해 땅을 파고 파다가 지쳐서 아직 땅 속에 남은 뿌리를 무시하고 절단해버린 적도 있다. ^^; 그래도 우리에겐 다음 날이 있었다. 그렇게 해 봤자 다음 날 다시 파게 될 운명... 정말 쓰러질 정도로 고강도의 작업이었다. 굵고 짧게 4시간 작업 이후엔 사랑스러운 여가시간이 기다렸다. 점심을 먹은 뒤 씨에스타(스페인의 낮잠 문화)를 즐기기도, 숙소 앞 해변가에서 놀기도 했다. 정말 낙원이 따로 없었다. 그곳의 숙소는 청결했고, 음식은 항상 2그릇을 외칠 정도로 맛이 있었다. 이틀 정도를 빼고는 항상 맑음, 그곳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 비록 지역신문이었지만, 반게로게를 찾은 글로벌 봉사활동 그룹으로 소개되었다. 독일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다들 비슷한 반응이었다. ‘왜 거기로 봉사활동을 가?’, ‘거기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 등의 질문이 이어졌었다. 나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실제 와보니 이런 활동을 할 젊은이들이 없었다. 한국의 제주도 같은 존재인데, 거의 대부분이 은퇴를 하고 노후를 보내는 낙원 같은 섬이기에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활동을 하면서 중간에 많이 힘들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그보다 훨씬 더 큰 인정과 국경을 초월한 우정을 얻었으니 버는 장사이지 않았나 싶다. ^^
지금 생각하면 아쉽고 후회되는 점도 있다. 캠프리더 여자(이하 여반장)를 속으로 좋아하지 않았던 것. 캠프에 적응하고 조화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수백 번을 했었다. 그러나 일정 문제로 여반장과 약간 맞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미리미리 그 날 어떤 일정에 참여할 것이고 오후나 저녁 몇 시 정도에 숙소에서 나갈 예정이니 준비를 해두라는 말을 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 캠프 리더들은 미리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고, 갑자기 ‘10분 후에 숙소 앞으로 나와라. 우리는 마을 일정에 나갈 것이다’라고 통보할 뿐이었다. 그것이 독일 방식이었는지, 그 리더 두 명이 그랬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는 그것이 매우 불만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식으로 부를 것을 대비해 내가 미리미리 준비해 놨으면 되는 것이다. 모든 준비를 다 해놓고 잠을 자거나 놀아도 되는 거였는데, 나도 유치하게 여반장을 속으로 미워했던 것 같다. 여반장도 재깍 나오지 않는 내가 분명 답답했을 것이다.
하나가 기분이 상하니 여럿을 짚으며 생각하게 되었다. 여반장이 눈에 확연히 드러나게 편애를 하는 느낌도 들었고, 어떤 장난을 쳐도 재미가 없었다. 사실 나 말고도 거의 대부분의 멤버들도 리더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했었는데, 이것도 후회되는 부분이다. 사실 스물일곱 살 한국인 오빠를 제외하면 내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았는데 달리 생각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2주 동안이었지만 참 많이 깨닫고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마 너무 행복했던 시간이었기에 정말 사소한 것 하나를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2주간 나는 시골의 느낌도 받았고, 말이 뛰어 노는 초원도 바라보았고, 주인과 함께 해변을 뛰노는 개를 보았다. 반게로게 섬이 독일인 사이에 가족 관광지로 알려진 지라 독일 어린이들도 참 많이 만났다. 저녁마다 독일 맥주로 목을 적시며 한국의 술 게임도 전수해주고, 각 나라의 오락도 배웠다. 집에 갈 때쯤엔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눈물도 나왔고, 유치한 이유로 어색했던 여반장과도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앞으로 나의 다짐은 ‘그 시간 일 분 일 초를 완전히 누릴 것’이다. 14일의 선물 같던 시간을 일체 나의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13.5일 정도는 오랫동안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새로운 땅에서 소수로 존재하는 느낌을 받았던 것(나쁘지 않았다.)과 한국 피자 집 아저씨 같았던 독일 피자 집 아저씨.
뜨겁게 땅을 파고, 따뜻하게 웃을 수 있었던 그날, 반게로게의 날씨는 맑았다.
지금 내 머리 속 반게로게의 날씨는 해 쨍쨍, 이상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