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멕시코, 용기 하나로 시작된 한 달
Casa Gandhi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새로운 경험
오래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워크캠프. 하지만 그냥 알고만 있을 정도였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런데 방학이 다가올 무렵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떠남이 좀 더 의미있는 시간과 경험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크캠프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여러 나라 중에서 막연하고 잘 몰랐던 멕시코를 무작정 선택을 했다. 남미는 내 주위에서 가본 사람이 없을뿐더러 예전부터 남미라고 하면 정말 열정적인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이 없었기도 했고 정말 멋진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난관은 자금이었다. 다행히 목돈이 생길일이 있어서 자금의 반 정도는 마련이 되었지만 남미까지 가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쌌다. 미리 알아봤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감도 들었다. 다행히 그나마 저렴한 비행기표를 찾았고 비행기표가 조금은 큰 돈이다보니 여행계획까지 함께 세워서 총 한달의 시간으로 잡았다. 하지만 두 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캠프 인원이 부족하여 더 먼 지역에서 하는 다른 캠프로 옮겨질 것 같은데, 계속 진행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속은 남미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차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멕시코로 출발하게 되었다. 영어실력도 거의 없고 해외 경험도 처음인 나에게는 설렘보단 조금은 막연하고 두려운 감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정도의 개인여행을 마치고 멕시코시티에서 13시간이라는 조금은 먼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하여 미팅포인트에 도착하였다. 멤버들이 다 모여보니 13명이었고 멕시코,프랑스,독일,일본,포르투갈,영국,핀란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이 있었다. 나와 함께 온 한국인 형 외에도 한국인 두명이 더 온다고 했지만 결국 오진 않았고 13명으로 캠프를 진행하게 되었다. 숙소는 네다섯명 정도씩 나누어 호스텔에서 자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녀가 섞어서 방을 써야한다는 점이 조금 걸리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서로 친해져서 이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일과는 아침8시에 아침밥을 먹고 바로 일하는 장소로 출발한다. 1시정도까지 일을 하고 난 후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관광지를 여행하거나 단체활동을 하였다. 첫째주는 캠프의 이름대로 casa gandhi(간디의 집)에서 일을 하였다. 이 곳은 간디라는 아이가 사는 일반 가정집이지만 동네에 있는 아이들을 모아 영어를 가르치고, 밭을 가꾸고, 동물도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여러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밭가꾸기, 토끼 집 보수작업, 닭장만들기, 벽에 페인트 칠 하기 등을 하였다. 나는 닭장을 만들고 우물을 파는 작업을 하였다. 너무 더워서 살이 타고 일이 끝나고 나면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매일 일을 할 때 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며 힘을 내었다. 또한 목요일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식을 제공해주고 같이 음악을 즐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행복한 시간들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둘째 주에는 다른 가정집을 방문하여 밭을 가꾸어주고 토끼 우리를 보수하는 등 여러 일들을 하였다. 그 외의 오후 시간과 여가시간에는 박물관, 식물원, 계곡, 인디언마을 등 여러 관광지와 지역의 특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하였고 살사댄스와 집시들의 음악을 즐기기도 하였다. 멕시코 사람들은 풍족하지 못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정말 다들 순수하고 표정에 행복을 담고 있었다. 또한 음악을 즐기고 자기가 하고싶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각박한 우리나라 사회가 비교가 되었다. 이런게 정말 행복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영어실력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부끄럽지만 캠프인원 중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였다. 캠프의 일정을 설명할 때에도 제대로 듣지 못하여 다시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한 하고 싶은 얘기도 못하고 먼저 말을 걸어주는 다른 캠퍼들에게 답변도 잘 못해주어서 캠프 초반에는 상심이 컸었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무작정 뛰어들었고 다행히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어느 곳이든 자신감을 가지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영어를 못하면 단체 생활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지장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영어의 필요성을 뼈져리게 느낀 경험이다. 나와 함께 했던 멤버들 대다수가 영어는 기본이고 스페인어도 유창하였고 3,4개 언어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캠프를 가기전에는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의 필요성이 와닿지 않았지만 한 장소에 여러 나라사람들이 모여 생활을 해보면서 영어는 필수라는 것을 몸소 체험을 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아무쪼록 길 것만 같았던 2주라는 시간은 물 흐르듯이 금방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어 한두명씩 뿔뿔히 흩어졌다. 영어가 부족해서 내 마음을 담아서 작별 인사를 말하진 못했지만 우리의 표정은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음 여행을 위하여 하루 먼저 떠났다. 뒤돌아오는 내내 내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남았고, 그들과 2주라는 시간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내게는 마치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과의 이별처럼 느껴졌다. 내가 또 언제 그들을 만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내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내가 멕시코에 남겨놓은 흔적들보다 더욱이 오래 남을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오래전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워크캠프. 하지만 그냥 알고만 있을 정도였지 가봐야겠다고 생각해보진 않았다. 그런데 방학이 다가올 무렵 문득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떠남이 좀 더 의미있는 시간과 경험들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워크캠프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고 여러 나라 중에서 막연하고 잘 몰랐던 멕시코를 무작정 선택을 했다. 남미는 내 주위에서 가본 사람이 없을뿐더러 예전부터 남미라고 하면 정말 열정적인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이 없었기도 했고 정말 멋진 선택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 난관은 자금이었다. 다행히 목돈이 생길일이 있어서 자금의 반 정도는 마련이 되었지만 남미까지 가는 비행기표가 너무 비쌌다. 미리 알아봤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감도 들었다. 다행히 그나마 저렴한 비행기표를 찾았고 비행기표가 조금은 큰 돈이다보니 여행계획까지 함께 세워서 총 한달의 시간으로 잡았다. 하지만 두 번째 시련이 다가왔다. 캠프 인원이 부족하여 더 먼 지역에서 하는 다른 캠프로 옮겨질 것 같은데, 계속 진행할 것인지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이미 내 마음속은 남미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차있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멕시코로 출발하게 되었다. 영어실력도 거의 없고 해외 경험도 처음인 나에게는 설렘보단 조금은 막연하고 두려운 감정이 많았지만 그래도 자신감을 갖고 부딪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정도의 개인여행을 마치고 멕시코시티에서 13시간이라는 조금은 먼 산크리스토발에 도착하여 미팅포인트에 도착하였다. 멤버들이 다 모여보니 13명이었고 멕시코,프랑스,독일,일본,포르투갈,영국,핀란드 이렇게 다양한 국적이 있었다. 나와 함께 온 한국인 형 외에도 한국인 두명이 더 온다고 했지만 결국 오진 않았고 13명으로 캠프를 진행하게 되었다. 숙소는 네다섯명 정도씩 나누어 호스텔에서 자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녀가 섞어서 방을 써야한다는 점이 조금 걸리기도 하였지만 나중에는 서로 친해져서 이점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의 일과는 아침8시에 아침밥을 먹고 바로 일하는 장소로 출발한다. 1시정도까지 일을 하고 난 후 다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관광지를 여행하거나 단체활동을 하였다. 첫째주는 캠프의 이름대로 casa gandhi(간디의 집)에서 일을 하였다. 이 곳은 간디라는 아이가 사는 일반 가정집이지만 동네에 있는 아이들을 모아 영어를 가르치고, 밭을 가꾸고, 동물도 기르면서 아이들에게 여러 경험을 제공하는 공간이다. 우리는 각자 역할을 분담하여 밭가꾸기, 토끼 집 보수작업, 닭장만들기, 벽에 페인트 칠 하기 등을 하였다. 나는 닭장을 만들고 우물을 파는 작업을 하였다. 너무 더워서 살이 타고 일이 끝나고 나면 온 몸이 흙투성이가 되었지만 매일 일을 할 때 마다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완성되어가는 것을 보며 힘을 내었다. 또한 목요일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만든 음식을 제공해주고 같이 음악을 즐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행복한 시간들은 영원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둘째 주에는 다른 가정집을 방문하여 밭을 가꾸어주고 토끼 우리를 보수하는 등 여러 일들을 하였다. 그 외의 오후 시간과 여가시간에는 박물관, 식물원, 계곡, 인디언마을 등 여러 관광지와 지역의 특성을 느낄 수 있는 장소를 방문하였고 살사댄스와 집시들의 음악을 즐기기도 하였다. 멕시코 사람들은 풍족하지 못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정말 다들 순수하고 표정에 행복을 담고 있었다. 또한 음악을 즐기고 자기가 하고싶은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각박한 우리나라 사회가 비교가 되었다. 이런게 정말 행복이지 않을까 싶었다.
나는 영어실력이 거의 없는 편이어서 부끄럽지만 캠프인원 중에서 영어를 가장 못하였다. 캠프의 일정을 설명할 때에도 제대로 듣지 못하여 다시 물어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또한 하고 싶은 얘기도 못하고 먼저 말을 걸어주는 다른 캠퍼들에게 답변도 잘 못해주어서 캠프 초반에는 상심이 컸었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무작정 뛰어들었고 다행히 이렇게 무사히 돌아와서 어느 곳이든 자신감을 가지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영어를 못하면 단체 생활이기 때문에 커뮤니케이션에 지장이 있다는 것도 느꼈다. 영어의 필요성을 뼈져리게 느낀 경험이다. 나와 함께 했던 멤버들 대다수가 영어는 기본이고 스페인어도 유창하였고 3,4개 언어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 캠프를 가기전에는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의 필요성이 와닿지 않았지만 한 장소에 여러 나라사람들이 모여 생활을 해보면서 영어는 필수라는 것을 몸소 체험을 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아무쪼록 길 것만 같았던 2주라는 시간은 물 흐르듯이 금방 흘러갔고 우리는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되어 한두명씩 뿔뿔히 흩어졌다. 영어가 부족해서 내 마음을 담아서 작별 인사를 말하진 못했지만 우리의 표정은 인종과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사람과 사람의 마음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우리는 다음 여행을 위하여 하루 먼저 떠났다. 뒤돌아오는 내내 내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남았고, 그들과 2주라는 시간밖에 보내지 않았지만 내게는 마치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과의 이별처럼 느껴졌다. 내가 또 언제 그들을 만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내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며, 내가 멕시코에 남겨놓은 흔적들보다 더욱이 오래 남을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