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멕시코, 봉사와 낭만이 함께 춤춘다 산 크리스토발, 꿈

작성자 김은지
멕시코 NAT18 · EDU/DISA 2012. 05 멕시코 San cristobal de las casas

Angels of love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약 1년 반 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국제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참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처음 들어보는 프로그램이라 “그게 뭔데?” 라는 말로 되물었다. 되돌아온 대답은 바로 ‘해외봉사활동’ 이었다. 평소에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 한국에서도 서울 내에서 하는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학기 중에 자주 참여해왔었던 터고, 기회가 생기면 꼭 해외봉사활동을 가봐야지 하고 생각해 왔던 터라 그의 대답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비자와 금전 등의 문제로 그 당시에 해외봉사활동을 가는 건 불가능 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나는 미국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다. 파견학교에서 4개월 동안의 학기가 끝이 날 때 즈음, 워크캠프 홈페이지를 통해 유럽, 미국, 남미 등지의 워크캠프 프로그램이 열린다는 공지를 보게 되었다. 공지를 보는 즉시, 나는 이 때다! 싶어 바로 가고 싶은 나라와, 그 나라에 있는 프로그램의 정보를 꼼꼼히 읽어보며 자기소개서를 준비했다.
그렇게 선택한 나라는 멕시코. 합격통지를 받자마자 바로 항공권, 숙박정보 등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그렇게 교환학생의 학기가 끝나고 미국에서 며칠 여행을 한 뒤에 5월 12일. 뉴욕에서 멕시코행 비행기를 탔다.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항공권을 4월 초 쯤에 왕복 230불 정도의 항공권을 구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뉴욕에서 새벽비행기를 타서 5월 13일 오후에 멕시코시티공항에 도착하였다. 1년 내내 더운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멕시코라 내리자마자 습하고 더운 공기를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마야문명이 잘 발달되어 있는 매력적인 나라임을 알았기 때문에 멕시코 땅을 밟는 순간 너무 설렜고 흥분되어 있었다. 앞으로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는 꿈에도 모른 채.(ㅋㅋ). 그리고 그 때 나에게는 미국달러만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환전소에 가서 멕시코의 화폐인 페소로 환전을 했다. 내가 신청한 프로그램에 내야 하는 참가비(2950페소)를 포함해서 나머지 필요한 돈을 대충 계산해서 5000페소, 한화로 약 40만원 정도 환전을 하였다. 하지만 멕시코에 오기 전 인터넷으로 알아 본 멕시코는 치안이 안 좋은 나라로 유명한 나라였다. 어떤 블로거의 말에 의하면, 공항에는 소매치기가 여기저기에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너무 어리버리 한 티를 내지 말고, 돈은 꼭 가져갈 수 없는 곳에 숨겨 놓고, 너무 화려한 복장은 삼가하라는 글을 보았기 때문에 전날 공항에서 밤을 새로 6시간 가량 비행을 하고 왔기 때문에 복장 자체는 의도치 않게 후줄근했고, 돈은 환전하자마자 화장실로 가서 옷 안에, 속옷 안에 숨겨놓고 나왔다. 그리고 최대한 표정은 환하게, 어리버리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정말 많이 노력했다.
정말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사실 이 때부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멕시코로 워크캠프를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멕시코에서는 동양인을 매우 신기한 인종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은 물론,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무서웠기 때문에 무서움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리고 스페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갔기 때문에 지하철역은 어떻게 가는지, 택시타는 곳은 어떻게 가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멕시코 사람들은 우리나라처럼 영어를 제2의 언어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영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리스닝이 가능한 사람은 찾아보기가 너무 어려웠다. 어렵게 어렵게 터미널로 향하는 지하철 역을 찾을 수 있었다. 워크캠프 프로그램이 열리는 치아파스 주에 있는 산크리스토발까지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먼저 터미널을 제대로 찾아가는 게 급선무였다. 하지만 4개월 간의 교환학생을 하면서 생긴 짐도 너무 많아서 제대로 걸어가는 것 조차 힘들었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함에 달아 있었다. 그렇게 지하철역에서 토큰(3페소, 한화 약 200원)를 끊고 터미널로 향했다. 멕시코는 지하철요금도 싸고 시스템 자체가 잘 되어 있다고 알고 갔기 때문에 나름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1년 내내 더운 나라임에 비해 지하철 안은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었다. 정말 찜통이였다. 대신 지하철안에 창문이 있어 지하에 통하는 바람으로 더위를 피하곤 했다.
그렇게 멕시코 타포(TAPO)터미널에 도착. 타포는 남동쪽에 있는 도시로 향하는 버스를 탈 수 있는 터미널이다. 버스는 등급에 따라 버스가 나뉘어져 있다. 1등급 버스인 ADO gl, ADO와 2등급 버스인 OCC등의 버스가 있다. 사실 미국에서 미리 1등급 ADO 버스표를 인터넷으로 예매했었는데 브라우저 오류 때문에 한화 8만원 가량의 돈을 통째로 날렸었다. 서비스업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몇 번을 전화를 하고 이메일을 보내도 우리의 말은 들어 주지 않았고, 결국 그렇게 돈을 날려버렸다. 다시 한화 7만원 가량을 주고 표를 끊고 OCC버스를 타고 14시간을 이동하여 산 크리스토발에 도착하였다. 멕시코자체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지만 산크리스토발은 더욱더 고도가 높았고 가는 길도 험난했기 때문에 가는 동안 귀가 계속 멍멍하고 속도 안 좋았었다. 14일이 봉사활동 시작일이었기 때문에 하루는 미팅포인트 근처에서 하루 묵었다. 산 크리스토발은 복잡한 수도인 멕시코시티와는 너무나 다른 느낌의 곳이었다. 모든 건물들이 파스텔 톤의 색깔로 칠해져 있었고, 주로 가톨릭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이기 때문에 곳곳에 특이한 구조의 까떼드랄(성당)도 많았다. 그리고 마을 곳곳에는 직접 손으로 만든 가방, 액세서리, 옷 등등을 파는 시장이 있었다. 치아파스 주 안에서도 너무나 가난한 나라였기 때문에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안타까운 광경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렇게 14일. 워크캠프 시작 첫 날이 되었다. 미팅 포인트로 가서 다른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이탈리아, 스페인 등의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 곳에서 또 다른 한국인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곳에 있는 유럽의 친구들은 영어를 거의 쓰지 못했다. 모두 에스파뇰을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끔은 소외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프로그램은 한국인 3명과 멕시코인 1명밖에 구성이 안됐었다. 그렇게 타니아라는 멕시코 친구 1명이 우리 프로그램의 리더가 되었다. 다른 프로그램 참가자들과의 간단한 인사와 식사를 마친 후에 우리가 2주간 묵게 될 숙소로 향했다. 우리는 이탈리아에서 온 나디아 아주머니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 곳에는 나디아 아주머니 부부와 이탈리아 친구들 2명과 아저씨1분이 함께 머물고 있었다. 그리고 이틑째 날은 멕시코의 어버이 날이었기 때문에 그 다음날부터 프로그램이 시작되기로 되있었다. 리더와 함께 다른 한국인이 참여하고 있는 재규어의 프로그램이 행해지고 있는 곳으로 가서 페트병과 빈병을 이용해 집짓는 일을 함께 도우며 일을 했다. 그리고 16일부터 본격적으로 우리의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숙소에서 걸어서 약 20분 가량 떨어져 있는 Angels of love의 기관으로 갔다. 그 곳에는 우리와 함께 2주간 활동 할 장애아 친구들이 있었고, 먼저 참여 하고 있던 이탈리아 친구들 2명이 있었다. 간단한 스페인어 인사를 하고 나서 장애아 친구들이 공부하고 그림 그리는 활동 등을 옆에서 알려주며 도와주었다. 스페인어를 전혀 하지 못해서 장애아 친구들을 돕는데 어려움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알려주고 싶고, 가르쳐 주고 싶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몸짓으로만 알려주게 되고 답답한 부분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오전엔 장애아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점심을 먹고난 후에는 건물 바깥에 있는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는 일에 참여했다. 산을 깎아 지른 곳에 건물만 떡하니 있었기 때문에 외관을 꾸미는 게 급선무였다. 건물 테두리를 따라 나무도 심고, 물도 주고, 거름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삽과 여러 기구를 이용해 텃밭을 정리하고 나서 거름을 주는 일을 했다. 나중에 아이들이 이 곳에 채소, 야채 등을 심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었다. 장애아 친구들은 우리에게 너무 친절하고 호의적이었다. 인종이 달라서 꺼려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가 오면 항상 반겨주고, 언어는 비록 통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이 우리에게 느끼는 감정과 우리가 그들에게 느끼는 감정은 똑같음을 느낄 수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모든 의사소통이 가능했기에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느끼는지를 우리는 다 알 수 있었다. 그들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리더 타니아와 함께 숙소에서 요리를 해먹기도 하고, 우리나라 음식 재료를 미처 챙겨가지 못해서 비록 전통음식은 아니지만 숙소에 있는 분들께 샌드위치와 계란말이를 만들어 대접하기도 했고, 이탈리아 친구들이 만들어준 파스타도 먹기도 했다. 저녁에는 항상 타니아와 함께 소깔로 근처로 나가서 기념품 구경도 하고, 야시장구경도 하고, 카떼드랄도 가보고, 산크리스토발에서 예쁘고 유명하다는 곳은 다 다녀본 것 같다. 한번은 주말 밤에 산크리스토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유럽친구들과 함께 술도 마시고, 같이 춤도 추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리더 타니아의 현지 친구들과 함께 근처에 있는 수미데로 캐년에도 놀러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2주간의 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마을 곳곳이 그림이고 동화 같은 곳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모든 게 생생하다. 그렇게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주의 시간을 보내고 그동안 너무 많이 정들었던 장애아 친구들과 리더, 숙소에서 같이 지냈던 친구들과 다음에 꼭 다시 만나기를 기약하고 헤어지게 되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멕시코시티로 다시 이동하기 전에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끝나는 날 새벽, 친구들과 함께 마야문명의 유적지가 있는 빨렌께를 갔다가 그 곳에서 다시 ADO버스를 타고 약 12시간을 이동하여 다시 멕시코시티로 갔다. 시티에서 약 5일 간 여행을 하고 그렇게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산 크리스토발에서의 경험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주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처음엔 멕시코를 선택한 것 자체가 너무 배짱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멕시코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후회했었을 것 같다. 언제 내가 멕시코에 와서 봉사활동을 해볼 수 있을까. 이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한 것 자체가 너무 영광이고 감사하다. 많은 친구들을 알 수 있게 되어서 너무 좋았고, 문화는 다르지만 인간적인 소통은 가능했기에, 나는 결코 산 크리스토발에서의 기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