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페루, 낯선 땅에서 찾은 용기

작성자 최지혜
페루 PS13 · KIDS/SOCI 2012. 02 페루 Ayacucho

Peru Children I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7일. 드디어 워크캠프가 열릴 페루에 도착하다!
오랜 비행과 시차 적응에 익숙지 않은 나는 너무 피곤했지만, 대한민국 반대편에 있는
나라, 페루에 도착했다는 설렘으로 피곤함 따위는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한가지 신기한 점이 있었다면, 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기내 있던 승객들이 모두들 환호성과
박수를 치는 것이 아닌가. 덩달아 나도 함께 박수를 치며 옆 승객과 아쉬운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그렇게 호스텔 픽업기사아저씨가 나와주셔서 미라플로레스까지 안전하게 도착. 2월 1일에 열릴 워크캠프까지는 아직 나흘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미라플로레스와 센트로를 돌아다니며 정말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었던 것 같다. 철저하게 혼자, 유창하지 못한 스페인어와 함께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그렇게 나흘을 즐겁게 보냈다.
워크캠프 시작 날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으니 슬슬 가볼 준비를 해볼까?
페루에 오기 전에 리더에게서 받은 인포싯에서는 워크캠프 개최지까지 Cruz del sur를 타고 오는 게,
돈이 좀 들긴 하지만 매우 안전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호스텔 주인아주머니께 부탁해서 안전하게 1월 31일 밤 9시 버스를 예약했다. 가는 데 8시간이 걸리니 개최지 Ayacucho까지 제 시간 안에 충분히 갈 수 있었다. Mira Flores에서 Ayacucho까지 가는 Cruz del sur 버스 터미널에서 짐을 부치고 여권확인도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한 외국인에 페루에서 영어를 쓰는 나를 유심히 보더니 “혹시 워크캠프 하러 Ayacucho 가는 거에요?”라고 물어왔다. 스페인어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영어를 쓰는 그 친구(이하 마리아)를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첫째는 마리아가 스페인어에 능통하니 난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됨이요, 둘째는 워크캠프를 함께 할 친구를 벌써부터 만나니 앞으로의 친구들도 기대가 되었음이다.
Cruz del sur는 말 그대로 초특급 고급 버스였다. 비행기만 아니었지 화장실도 있고 샌드위치도 주고 영화도 상영하고, 왜 리더가 이 버스를 추천했는지 알 것 같았다.
드디어 약 아홉 시간의 긴 버스를 타고 안데스를 넘어 Ayacucho에 도착!
마리아와 내가 Meeting Point까지 갔을 때에는 이미 여섯 명의 캠퍼들이 도착해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돼서 이십 일 동안 우리가 씻고 먹고 잘 곳, 우리의 숙소로 출발했다
모두들 택시를 타고 갔는데,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빅뱅의’ 하루하루를’ 틀어주는 게 아닌 가. 아 …한류여. 정녕 예까지 정복했단 말인가.
난 사실 빅뱅이나 비스트 등 가수에는 관심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YG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로 인해 내가 한 마디라도 현지인들에게 건넬 수 있고, 함께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자 리더가 문을 열어주었고, 시간이 지날 수록 점점 캠퍼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총 우리는 열 두 명이었는데 미국 두 명, 독일 세 명, 벨기에 두 명, 한국 두 명, 프랑스,일본, 멕시코 각각 한 명씩 이었다.
캠프가 시작된 2월 1일. 모두가 먼 길을 달려오느라 피곤해 보였고, 오늘 하루는 Free time이라며 푹 쉬라는 리더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띄고 각자 샤워를 하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다음날, 우리가 캠프기간 동안 하루를 함께 보낼 아이들을 만나러 URPI로 출발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육원이니 약간 분위기가 우중충하고 아이들도 소심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URPI의 문이 열리고 난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amigo~하며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게 아닌가! Hola! 하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자, 그들 역시 아이들이 지닌 특유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띠며 내게 안겼다. 어쩜 그렇게도 밝고 예쁠 까. 내 상상 속의 아이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게다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어색한 한국말로 ”하루하루~!”하는 것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너희까지 알고 있었구나! 그래서 바로 난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신기하다는 듯이 아이들은 나를 쳐다봤고 내 입 모양을 보며 우물우물 빅뱅-하루하루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리고 한국 드라마 꽃보다 남자 ost도 알고 있었다. 그 노래는 내가 학창시절에 참 좋아하던 노래였는데 아이들이 원하니 역시 내가 또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불러주었다. 그때 나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국적이 다른 사람끼리 하나가 될 수 있는 방법에는 언어만이 있는 게 아니라, 함께 즐기고 배울 수 있는 노래가 있다는 걸 말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빠른 속도로 친해지고 URPI에서 축구도 하고 배구도 하고 시간을 보냈다. 숙소에 와서는 각 나라별로 URPI에서 아이들에게 알려줄 놀이들을 날짜 별로 정하기도 했다. 우리는 제기차기와 꼬리잡기를 준비했다. 나중에 이 제기차기는 하도 아이들이 제기를 가지고 놀아서 제기가 터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게 재미있어하는 것을 보니, 한국놀이가 아이들에게 안 맞으면 어쩌나 괸한 걱정을 했던 것 같다.
숙소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을 해결해야 했기에, 팀을 나눠서 Cooking day를 정했다. 아직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으니 같은 나라끼리 팀을 하는 게 어떠냐는 말에 우리는 흔쾌히 동의했고, 나는 한국인 오빠와 같은 팀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라면 하나 잘 못 끓이는 내가.. 이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니..그것도 한끼가 아니라 하루의 모든 식사를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맛을 보여주고 말리라!. 메뉴는 불고기다!
아침에는 원래 가볍게 토스트나 우유, 시리얼을 먹기 때문에 점심에 특식을 내놓기로 했다. 그들이 URPI로 떠나고 숙소에 남은 우리는 점심을 위한 재료를 사러 시장에 갔다. 불고기가 등심으로 쓰인 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렇게 고기와 여러 필요한 야채들을 사고 집에 와서 본격적으로 고기를 손질했다.
고기 손질은 힘들기 때문에 오빠가 맡았고, 나는 야채 손질을 했다.
다행히도 저번 한국인 캠퍼가 냉장고에 불고기 소스를 두고 갔기에, 우리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스를 꺼냈다. 구세주 소스여..! 과연 우리는 성공했을까? 역시, 성공이었다. 정말 거짓말 안하고 모두들 싹싹 비웠다. 음하하 아시겠소? 이것이 한국의 맛이오.
워크캠프는 각국에서 모이니 이런 것이 좋은 것 같다. 내가 언제 또 벨기에의 음식과 멕시코의 음식, 미국, 독일, 일본의 전통음식을 먹을 기회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한국의 음식을 그들의 기억 속에 인상 깊게 남겨 주고 싶어 더 열심히 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말이 되면 우리는 여행을 가곤 했다. 근처 언덕 같은 높은 지대도 가보고, 또 다섯 시간을 차를 타고 떠나기도 했다. 가는 길에 정말 그림 같은 풍경들도 지나치면서 내려서 사진도 찍고 가고.. 난 워크캠프에 봉사활동만 할 줄 알았더니 그렇게 뜻 깊은 여행도 하고 왔다. 주말이 기다려지는 것도 그 이유였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다.
항상 저녁을 마치고 나면 모두들 이야기시간을 가진다. 그러면 술도 자연스럽게 넘어 가게 되고 술 게임도 하고, 그 순간을 기억하려 어느 누가 카메라를 들면 모두들 웃는 모습으로 포즈를 취하곤 했다.
내가 센트로에서 카메라만 잃어버리지 않았어도 그들의 사진을 더 많이 담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휴,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담아가면 그 뿐인 것을. 걱정하지 말자.
우리에게 또 하나의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Ayacucho의 Festival! 와.. 축제가 열리는 것을 보기만 해도 행운인데 우리는 축제에 참가하기 까지 했다. 지역축제에서 전통 의상을 입고 춤을 추기로 한 것. 축제를 준비하러 우리는 URPI를 끝내고 5일 동안 저녁 한 시간씩 현지인들과 모여 춤연습을 하고 헤어졌다. 드디어 18일 당일이 되었고, 전통 치마와 망토를 두르고 들뜬 우리는 축제 현장으로 모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큰 축제였다. 모두가 거리에 나와서 춤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다. 우리 팀 역시 춤을 추면서 거리를 거닐었고, 구경하는 사람들은 외국인이 전통 춤을 추고 있으니 신기하기도 하면서, 기특하기도 했는지 내게 “치나 치나~” 연거푸 외쳐댔다. 나는 “노노~꼬레아~”라고 하면서 한국을 말했고, 그 중 여러 명은 내게 사진을 같이 찍자고 다가오기도 했다. 내 뒤에서 춤을 추었던 벨기에 친구와 프랑스 친구는 내게 “넌 페루의 스타구나 !”, ”아마 페루사람들 사진 속엔 모두 네가 있을 거야”라고 내게 웃으며 말했다.
첫 해외여행에 이러한 좋은 경험을 하니 난 당연히 Open mind! 누구든지 내게 다가오세요 ~.
축제이니 모두가 술을 즐기기 때문에 거리의 사람들은 춤추는 우리에게 맥주를 건네기도 하고, 보드카를 주기도 한다. 아 한국에서는 이러한 축제를 경험한 적이 없던 터라 난 정말 무지 매우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춤을 추면서 ‘아 이제는 사람들과 매일 저녁 만나서 연습할 기회도 없겠구나. 이것이 끝이겠구나. 내일이면 워크캠프가 끝나겠구나’하는 슬픈 생각에 오늘 하루가 흐르지 않고 그저 이 시간만 지속 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렇게 5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우리의 행렬은 끝이 났다.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수고했다고 포옹을 하는데, 울컥하는 느낌이랄까. 어디서 또 이런 좋은 경험을 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그렇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고 마지막 밤을 축하하자는 의미에서 클럽에 가기로 했다.
피곤했던 사람들은 숙소에 남기로 했고,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클럽으로 출발. 가서 끝내주게 놀고 왔다.
끝 아쉬움을 날려버리려 모두가 신나게 웃고 떠들고 흥을 돋우기 위해 술도 마시고..
마지막이라는 것을 모두가 의식하고 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 만났던 날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렇게 숙소로 돌아왔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식탁에 모여 앉아 리더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해줘서 고맙고, 또 여러분들에게 즐거운 여행이 기다리고 있길 바란다고.
다음날 일찍 떠날 사람들은 미리 작별인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도 일찍 잠자리에 든 리더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쪽지와 함께 뺏지를 남기고 잠을 청했다.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전에 나는, 사실 봉사활동에만 의미를 둔 캠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봉사활동에도 그 의의가 있지만,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여 서로 이야기를 하고 함께 떠나고 그렇게 생활을 하면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내가 그 사실을 늦게 깨달은 걸까.
국적이 서로 다르고 자라온 환경도 철저하게 다르고, 서로의 모국어를 알아듣지는 못해도, 눈빛을 마주보며 함께 웃고, 익숙지 않은 일을 함께 겪고, 그 안에서 공통점을 찾아가고 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나는 이제야 비로소 성장한 것 같았다.
스무 살. 처음 한국을 벗어나, 페루라는 낯선 곳에 도착해서 그 안에서 만나는 수십 수백 가지의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어렵게 맺은 인연들.
그 소중한 인연들이 내 인생에 있어서 분명 큰 교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