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터키, 낯선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다
Aya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캠프를 떠나기 전에는 단순히 지난 날 다녀온 유럽여행을 다시 한 번 갔다 온다는 정도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터키에 도착하고 내가 맞닥뜨린 캠프는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설레일 정도로 벅찬 일들의 연속이었다. 한국에서의 이름 이솜이 그리고 터키에서 얻은 나의 새로운 이름 파묵… 단 2주간의 내게 펼쳐진 동화 같은 이야기를 풀어볼까한다.
미리 뽑아간 인포싯 하나로 찾아 떠난 미팅포인트.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그간 여행다니면서 지도 한 장으로 잘 찾아다녔는데 gsm사무소는 일반건물에 있어서인지 여기가 어딘지조차 헷갈렸다. 비슷비슷한 거리를 헤메이다 말을 건네주던 터키사람의 도움으로 꼭꼭 숨어있던 미팅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에 속속들이 도착하는 다른 캠퍼들의 말에 따르면 다들 찾기가 어려워서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찾거나 못 참고 5분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서 거절당하기 수차례 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더운 여름날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미팅포인트를 찾아갔던 것이 덥고 힘들기만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렵게 찾은 미팅포인트도 추억이 되어있다. 약속시간이 지나자 또다른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큰 전지에 쓴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고 봉고차에 실려 1시간 남짓에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스페인친구들이 이미 짐을 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려깊은 리더의 방배정으로 모두 각기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데면데면하지만 설렘으로 가득찬 첫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숙소 내 위치한 거실에 우리는 누가 말한 듯이 모여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이탈리아 소녀들까지 18명의 캠퍼들이 그 작은 거실에 다닥다닥 붙어앉아서 챙겨 온 과자들을 풀어서 얘기를 나누었다. 뒤이어 리더가 미리 마련해 놓은 icebreaker 게임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만났을 때 자기소개를 한다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주로 비신체적인 게임을 하는데 캠프에서는 주로 활동적이고 약간의 스킨십이 있는 게임들이었다. 손을 잡고 팔짱끼면서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고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하고싶다고 생각했던 게임들까지 너무나도 다양해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줄 모를 정도였다. 캠프의 시작일이 주말이어서 아직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과 어떻게 주말을 보내려나 싶었는데 내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주말이었던 것이 다행일 정도로 즐거웠다.
봉사활동의 시작, 내가 선택한 캠프는 construction이 주제인데 어떤 것을 하게될까? 봉사활동 장소는 차로 5분정도의 거리였다. 미팅포인트에서부터 타고 온 바로 그 봉고차! 그 작디작은 봉고차 안에 캠퍼 18명이 둥지 속의 아기 새처럼 실려서 이동했다. 우리가 할 작업은 오래된 건물의 벽화작업이었다. 건물의 벽화작업은 터키 전통주거처럼 색을 칠하는 작업이었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아니라 터키에서 하는 노쇠한 건물 벽화작업이라 그런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우선은 뒤죽박죽 제멋대로 솟구친 주변 땅을 정리하고 쓰레기부터 주워나갔다. 한국과 날씨나 기후는 비슷하지만 자외선은 훨씬 강렬한 곳에서 땅고르기 작업을 하니 현기증이 일어 어질어질했다. 그럴때마다 인심좋은 주변 터키사람들이 하나 둘 신선한 과일을 가져왔다. 어른 머리만한 수박 두 통, 신기하게 생긴 하얀 열매 등등 타지에서 온 우리들을 기꺼이 환영해주는 것만 같아서 힘이 솟았다. 한 분은 동양에서 온 작은 소녀에게 관심가져주고 터키의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한국에서의 내 이름을 물어보셨다. 한국에서의 내이름은 목화솜에 쓰이는 ‘솜’이 들어가서 겨울에 태어난 아이니만큼 솜처럼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라고 지었다고 말하니 터키에서는 솜을 파묵이라고 한다며 파묵이라는 이름을 선물해주셨다. 그떄 터키의 유명한 관광명소 파묵이 솜처럼 하얀 석회석으로 되어있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터키의 햇빛은 날로 뜨거워졌다. 당시 한국에서는 35도를 육박하는 열대야에 시달린다고 뉴스기사가 쏟아졌다고 하는데 터키의 기온은 무려 40도! 자외선도 너무 강해서 선글라스를 끼거나 그늘에 숨어있지않으면 작업하기 힘들었다. 땡볕에서의 페인트 칠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땀이 줄줄줄 비오 듯 흐르고 등뒤로는 터키의 햇빛이 나를 노릇노릇 구워댔다. 그래서 내 등짝은 햇빛에 노출되서 까맣게 탄 왼쪽, 그늘에 가려져 타지않은 오른쪽 이렇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처럼 반반 탔다. 이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내 등을 보면서 웃으면서 구경하기 바빴다. 어쩐지 한쪽 등만 후끈하더라니…
뜨거운 날씨에, 높아서 크레인을 동원할 정도로 힘겨운 벽화작업이었는데도 웃음을 잃지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마다 휴식시간과 친구들끼리 하는 장난 그리고 봉사활동 후에 기다리고있는 프로그램들이 아니었나 싶다. 벽화작업후에는 온 몸에 묻은 페인트를 그대로 수영장이고 농장이고 신나게 놀러다녔다. 저녁 후에는 거실에 모여앉아서 보드게임이나 맥주나 음료수 한잔 놓고 게임을 했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가 되어서 지겨울 만하면 새로운 게임을 제시하는 통에 하루 5~6시간 일을 했음에도 노느라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씻으러 방문을 나서는데 전 날 다녀온 농장에서 가져온 오이와 토마토가 방문에 줄 서있고 신발 한 짝이 사라졌다. 모든 신발이 한 짝만 종적을 감추었다. 캠퍼 모두는 누가 한짓이냐고 의심하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자신의 신발을 찾으러 이리저리 어슬렁 거렸다. 그러다 문득 숙소 출입구 문을 여는 순간! 뜨억… 문 앞에 있는 난관과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있는 각기다른 신발들을 보니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한시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터키에서의 나날들. 아침과 낮에는 봉사활동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음악틀어놓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길게만 느껴지고 어색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어떤 재밌는 상황이 나에게 펼쳐질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총 9개국에서 온 18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새로운 땅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함께 같은 것을 그려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않는다. 헤어지는 날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다시는 이 18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두 번 다시 모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서로다른 생김새이지만 우리의 눈동자에서는 모두 하나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쉬움’ 짧았던 2주였지만 하루가 1년처럼 길고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힘겹게 내뱉은 한 단어, 손짓 하나에도 마음이 통하는 것이 워크캠프가 가진 국제교류의 참 맛이 아닐까 한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교감과 서로에 대한 마음이었다. 영어로 말하기에 힘겨워하던 내게 괜찮다면 천천히 말하고 일단 내뱉어보라고 격려해주던 친구들. 언제나 내게 아름답다고 속삭여주던 친구들 아마 내 평생 들을 아름답다는 말을 단 2주간에 압축해서 마음껏 들은 것 같다.
아직도 난 이 2주간의 일들이 꿈에서 일어난 일일까 꿈이라면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14일 하루하루가 보석같이 소중하다. 지금생각해도 스스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 질만큼 의욕 넘치고 준비성 철저한 리더와 친구들끼리 캠프를 지원한 사람이 많았음에도 모두 함께 어울리고 빠진사람이 있나 챙기는 세심함을 보여주던 캠퍼들까지… 자기네 나라사람끼리 동양인끼리 어울린다는 소문이 무색할만큼 너나없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고민상담도하고 같이 농담도 치면서 지낼 수 있던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 내 인생 전체에서보면 한 점에 불과한 2주간의 나날이지만 그 2주가 내게 준 것은 서로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해하지않고 왜곡하지않으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마음, 세상을 보는 눈을 준 것은 앞으로 내가 가지고 갈 내 일생에서 항상 같이 함께할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다.
미리 뽑아간 인포싯 하나로 찾아 떠난 미팅포인트.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하고야 말았다. 그간 여행다니면서 지도 한 장으로 잘 찾아다녔는데 gsm사무소는 일반건물에 있어서인지 여기가 어딘지조차 헷갈렸다. 비슷비슷한 거리를 헤메이다 말을 건네주던 터키사람의 도움으로 꼭꼭 숨어있던 미팅포인트에 도착할 수 있었다. 후에 속속들이 도착하는 다른 캠퍼들의 말에 따르면 다들 찾기가 어려워서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한참을 돌아다니다 찾거나 못 참고 5분거리에서 택시를 잡아타서 거절당하기 수차례 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더운 여름날 무거운 캐리어를 이끌고 미팅포인트를 찾아갔던 것이 덥고 힘들기만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어렵게 찾은 미팅포인트도 추억이 되어있다. 약속시간이 지나자 또다른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큰 전지에 쓴 피켓을 들고 사람들을 찾으러 다니고 봉고차에 실려 1시간 남짓에 떨어진 곳에 위치한 우리의 숙소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스페인친구들이 이미 짐을 풀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배려깊은 리더의 방배정으로 모두 각기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룸메이트를 맞이할 수 있었다. 데면데면하지만 설렘으로 가득찬 첫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 숙소 내 위치한 거실에 우리는 누가 말한 듯이 모여들었다. 뒤늦게 도착한 이탈리아 소녀들까지 18명의 캠퍼들이 그 작은 거실에 다닥다닥 붙어앉아서 챙겨 온 과자들을 풀어서 얘기를 나누었다. 뒤이어 리더가 미리 마련해 놓은 icebreaker 게임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만났을 때 자기소개를 한다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주로 비신체적인 게임을 하는데 캠프에서는 주로 활동적이고 약간의 스킨십이 있는 게임들이었다. 손을 잡고 팔짱끼면서 자연스럽게 웃고 떠들고 텔레비전에서 보면서 하고싶다고 생각했던 게임들까지 너무나도 다양해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 줄 모를 정도였다. 캠프의 시작일이 주말이어서 아직 친하지도 않은 아이들과 어떻게 주말을 보내려나 싶었는데 내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주말이었던 것이 다행일 정도로 즐거웠다.
봉사활동의 시작, 내가 선택한 캠프는 construction이 주제인데 어떤 것을 하게될까? 봉사활동 장소는 차로 5분정도의 거리였다. 미팅포인트에서부터 타고 온 바로 그 봉고차! 그 작디작은 봉고차 안에 캠퍼 18명이 둥지 속의 아기 새처럼 실려서 이동했다. 우리가 할 작업은 오래된 건물의 벽화작업이었다. 건물의 벽화작업은 터키 전통주거처럼 색을 칠하는 작업이었다. 단순히 예쁜 그림이아니라 터키에서 하는 노쇠한 건물 벽화작업이라 그런지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우선은 뒤죽박죽 제멋대로 솟구친 주변 땅을 정리하고 쓰레기부터 주워나갔다. 한국과 날씨나 기후는 비슷하지만 자외선은 훨씬 강렬한 곳에서 땅고르기 작업을 하니 현기증이 일어 어질어질했다. 그럴때마다 인심좋은 주변 터키사람들이 하나 둘 신선한 과일을 가져왔다. 어른 머리만한 수박 두 통, 신기하게 생긴 하얀 열매 등등 타지에서 온 우리들을 기꺼이 환영해주는 것만 같아서 힘이 솟았다. 한 분은 동양에서 온 작은 소녀에게 관심가져주고 터키의 이름을 지어주겠다고 한국에서의 내 이름을 물어보셨다. 한국에서의 내이름은 목화솜에 쓰이는 ‘솜’이 들어가서 겨울에 태어난 아이니만큼 솜처럼 모두를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 되라고 지었다고 말하니 터키에서는 솜을 파묵이라고 한다며 파묵이라는 이름을 선물해주셨다. 그떄 터키의 유명한 관광명소 파묵이 솜처럼 하얀 석회석으로 되어있어서 그렇게 불린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하루가 지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터키의 햇빛은 날로 뜨거워졌다. 당시 한국에서는 35도를 육박하는 열대야에 시달린다고 뉴스기사가 쏟아졌다고 하는데 터키의 기온은 무려 40도! 자외선도 너무 강해서 선글라스를 끼거나 그늘에 숨어있지않으면 작업하기 힘들었다. 땡볕에서의 페인트 칠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땀이 줄줄줄 비오 듯 흐르고 등뒤로는 터키의 햇빛이 나를 노릇노릇 구워댔다. 그래서 내 등짝은 햇빛에 노출되서 까맣게 탄 왼쪽, 그늘에 가려져 타지않은 오른쪽 이렇게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치킨처럼 반반 탔다. 이 모습을 본 친구들은 내 등을 보면서 웃으면서 구경하기 바빴다. 어쩐지 한쪽 등만 후끈하더라니…
뜨거운 날씨에, 높아서 크레인을 동원할 정도로 힘겨운 벽화작업이었는데도 웃음을 잃지않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마다 휴식시간과 친구들끼리 하는 장난 그리고 봉사활동 후에 기다리고있는 프로그램들이 아니었나 싶다. 벽화작업후에는 온 몸에 묻은 페인트를 그대로 수영장이고 농장이고 신나게 놀러다녔다. 저녁 후에는 거실에 모여앉아서 보드게임이나 맥주나 음료수 한잔 놓고 게임을 했다. 그 많은 인원이 하나가 되어서 지겨울 만하면 새로운 게임을 제시하는 통에 하루 5~6시간 일을 했음에도 노느라 자정을 넘기기 일쑤였다.
하루는 아침에 일어나 씻으러 방문을 나서는데 전 날 다녀온 농장에서 가져온 오이와 토마토가 방문에 줄 서있고 신발 한 짝이 사라졌다. 모든 신발이 한 짝만 종적을 감추었다. 캠퍼 모두는 누가 한짓이냐고 의심하면서 퉁퉁 부은 얼굴로 자신의 신발을 찾으러 이리저리 어슬렁 거렸다. 그러다 문득 숙소 출입구 문을 여는 순간! 뜨억… 문 앞에 있는 난관과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려있는 각기다른 신발들을 보니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한시도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터키에서의 나날들. 아침과 낮에는 봉사활동하고 밤에는 친구들과 음악틀어놓고 춤추고 노래하면서 길게만 느껴지고 어색하기만 하던 사람들이 친구가 되어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어떤 재밌는 상황이 나에게 펼쳐질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총 9개국에서 온 18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새로운 땅에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인가 함께 같은 것을 그려냈다는 것이 아직도 믿기지않는다. 헤어지는 날 이렇게 헤어지고 나면 이제 다시는 이 18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두 번 다시 모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울컥했다. 서로다른 생김새이지만 우리의 눈동자에서는 모두 하나의 마음을 말하고 있었다. ‘아쉬움’ 짧았던 2주였지만 하루가 1년처럼 길고 많은 추억을 안겨주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힘겹게 내뱉은 한 단어, 손짓 하나에도 마음이 통하는 것이 워크캠프가 가진 국제교류의 참 맛이 아닐까 한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교감과 서로에 대한 마음이었다. 영어로 말하기에 힘겨워하던 내게 괜찮다면 천천히 말하고 일단 내뱉어보라고 격려해주던 친구들. 언제나 내게 아름답다고 속삭여주던 친구들 아마 내 평생 들을 아름답다는 말을 단 2주간에 압축해서 마음껏 들은 것 같다.
아직도 난 이 2주간의 일들이 꿈에서 일어난 일일까 꿈이라면 깨어나기 싫을 정도로 14일 하루하루가 보석같이 소중하다. 지금생각해도 스스로 참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여겨 질만큼 의욕 넘치고 준비성 철저한 리더와 친구들끼리 캠프를 지원한 사람이 많았음에도 모두 함께 어울리고 빠진사람이 있나 챙기는 세심함을 보여주던 캠퍼들까지… 자기네 나라사람끼리 동양인끼리 어울린다는 소문이 무색할만큼 너나없이 속마음을 털어놓고 고민상담도하고 같이 농담도 치면서 지낼 수 있던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내게 큰 재산이 되었다. 내 인생 전체에서보면 한 점에 불과한 2주간의 나날이지만 그 2주가 내게 준 것은 서로 각기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해하지않고 왜곡하지않으면서 서로를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고 이해하는 마음, 세상을 보는 눈을 준 것은 앞으로 내가 가지고 갈 내 일생에서 항상 같이 함께할 동반자가 되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