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보르도, 땀으로 이룬 우정 3주

작성자 전영은
프랑스 CONC 001 · ENVI/RENO 2012. 07 프랑스_보르도

COMMUNITY OF ARTOLIE DISTRI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잊지못할 경험을 하고 온 프랑스에서 3주간의 워크캠프. 프랑스에 도착하여 미팅포인트인 보르도역에 도착하기까지 영어 실력도 좋지 않고 미팅포인트까지 가는 방법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던 터라 어려움이 많았다. 결국 함께간 친구와 나는 미팅시간보다 3시간이 늦었고 한국과 프랑스의 워캠 관계자들의 도움으로 어렵게 워캠 리더와 통화를 하여 10시가 넘어서야 워캠 베이스캠프로 출발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이렇게 일정이 꼬이게 되어 불안감이 커졌다. 다음날 우리는 워캠 장소로가서 앞으로 3주동안 우리가 하게될 일과 그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고 숙소로 돌아와 새학기를 시작하듯이 각자의 소개를 하면서 본격적인 워크캠프가 시작되었다. 워크캠프에서 하게된 일이 우리의 생각보다 매우 힘들고 어렵고(우리가 하게된 일은 RENO/CONC 보르도의 오래된 한 농장의 식물들을 제거하고 돌과 흙들을 옮기는 작업으로 거의 중노동 수준이였다) 의사소통도 잘 안되고 아직 적응이 안된터라 처음 일주일동안은 정말 적응하기에도 급급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 내가 이곳에 왜 있는거지 할 정도로 처음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워크캠프 참여자들끼리 친해지기 위하여 일이 끝나면 항상하였던 레크레이션 시간도 처음엔 정말 오지말았으면 하는 시간이였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일하는 것도 아무말도 안하고 일만 하는 것이아니라 예를들면 핸드폰으로 노래를 틀어놓고 함께아는 팝송이 나오면 참가자들은 같이 춤을 추기도했고 장난도 치면서 즐기면서 일을 하게 되었고, 레크레이션 시간에도 이제 친해진 워캠 친구들과 함께 노는 시간이 되어있었다. 워캠에서 재밌었던일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중 정말 재미있었고 뿌듯(?)했던 일이라면, 우리는 그 곳에 있는동안 팀을 짜서 점심과 저녁을 준비하게 되었는데 나와 친구는 미리 한국에서 불고기소스와 김을 준비해 갔던 터라 외국 친구들에게 김밥과 불고기를 해 주었고 친구들의 반응은 정말 최고였다. 평소에 정말 적은 양의 밥을 먹던 러시아 친구들도 우리가 김밥을 만들 때 옆에와서 꽁다리를 먹을 정도, 한 외국 친구가 불고기 양념을 남기니까 이걸 왜 남기냐며 거기에 밥을 비벼먹는 정도였다. 우리의 김밥은 그 후로 마을사람들과 파티를할 때, 다른 워캠에서 우리 숙소로 파티 초대 했을때도 정말 50줄 이상은 싼 것 같다.(이후의 김은 리더들에게 부탁해서 어렵게 구했다) 이렇게 우리의 음식문화를 외국 친구들이 너무 좋아해주어서 정말 뿌듯하고 기뻤다. 그리고 우리는 숙소에 큰종이에 각자 나라의 말을 쭉 적었고 그 중에서도 친구들은 한글에 가장 관심을 주었다.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너희가 쓰는 한글은 정말 아름답다고 말해주며 칭찬도 해주었고 시간이 지나 우리의 식사시간에는 모든 친구들이 "Water please" 대신 “물~ 부탁합니다.”를 쓸 정도였다. 우리는 평일에는 일을하고 주말에는 다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나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갔다. 정말 기억에 남는 곳이 미듐필라라는 보르도의 유명한 해변가였는데 해변에 도착하고나니 바다는 안보이고 산만한 모래더미가 눈앞에 펼쳐져서 우리는 모두 당황했다. 리더들은 이 모래사막을 건너면 바다가 나온다고했고 우리는 정말 힘들게 그 모래로 만들어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바다를 가자고 했더니 왜 산을 데려 왔냐고 우스게 소리를 하면서 정상에 올라가니 저멀리 해변이 보였다. 우리는 정상에올라 자리를 잡고 아침에 각자 싸온 샌드위치를 먹으며 사진도 찍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우리는 가끔 다른 워크캠프 참여자와 교류도 하였는데 그 곳에서 다른 한국인 참가자를 만나서 서로의 워캠에 대해서 공유도하고 각자 워캠의 외국 친구들을 소개시켜주며 정말 이제는 같은 워캠 친구들과 가족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워크캠프를 하면서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위에 말했듯이 우리는 점심,저녁도 우리가 준비하고 주말에 여행을 가게 되면서 생긴 문제는 돈에 관한것이였다. 솔직히 이런 곳에 와서 돈 때문에 트러블이 일어날 줄 몰랐는데 밤에 텐트로 가기전에 항상 회의를 했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매번 회의의 주제는 돈이 되었다. 그런 얘기를 할때마다 너무 불편했다. 리더들이 없을 때 우리는 혁명을 일으키자며 종이에 맘에 안드는 것을 적어 우리끼리 발표를 하며 장난을 치기도했지만 어찌보면 마지막이 돼서는 흐지부지하고 좀 찝찝하기 그 혁명들은 수그러 들었던 것 같다. 이렇게 좀 불만도 많고 트러블도 많아 불만이였던 우리들도 워크캠프가 일주일 정도 남았을땐 하루하루 “아 이제 우리가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라는 말을 많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떨어져있어도 연락할 수 있도록 연락처와 페이스북같은 SNS주소를 공유하였다. 정말 처음엔 빨리 가기만 바랬던 시간들이 하루하루가 소중한 시간으로 느껴졌다. 나와 친구는 마지막날 밤이 오기 전까지 몇일동안 자유시간에 동네의 벤치에 가서 몰래 한국의 인사동에서 사간 부채와 여러 가지 선물들을 워캠 친구들 한명한명의 개성을 생각하며 선물 봉투와 편지를 만들었고(아마 다른 외국친구들도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마지막 날밤 우리는 파티를 하며 (스페인 커플의 제안으로 우리는 POST BOX 라는 상자에 서로에게 편지를 썼고 밤마다 그 상자에들어 있는 쪽지를 읽으며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마지막 POST BOX 시간을 가졌고 마지막이라 정말 평소엔 없던 장문의 쪽지들이 있었고 읽는사람도 듣는사람도 모두 슬픔에 잠겼었다. POST BOX 시간이 끝나고 나와 내친구는 그 선물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친구들이 감동 받은 모습을 보며 뿌듯해 했다. 예상은 했었지만 우리는 그 전날밤과 헤어지는날 정말 과히 눈물의 바다를 만들었다. 기차시간이 모두달라 숙소에서 한명 한명 떠나보낼때마다 우리는 한명씩 포옹과 작별의 인사를 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표정은 숨길 수 없이 어두웠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자며 스페인 커플이 결혼하게되면 모두 스페인으로 모이기로 그리고 터키 러시아 체코 그리고 마지막은 한국으로 여행을가자며 우리의 마지막 시간을 보냈다. 장차 3주라는 시간에 걸쳐 우리는 정말 가족같은 느낌을 받게 되었고 그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친구들이 없을 것 같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SNS에 워크캠프 그룹을 만들어 각자 자기의 일상생활도 올리고 워크캠프동안 찍었던 사진도 간간히 올리며 연락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