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미주리, 폐허에서 찾은 희망
ST. LOUIS, MISSOUR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초반에 일을 시작할 때는 일이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어서 빨리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면 그렇게 힘든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에 더 좋은 추억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미주리에서의 첫 일주일은 생각보다 힘들었습니다. 우리가 머물었던 곳은 올드 타운이란 미주리의 오래된 마을이었는데, 사람들이 도시근교로 떠나면서 버리고 간 집이 굉장히 많고, 그로 인해 버려진 가구들, 벽이 무너진 집들, 교회, 건물들이 곳곳에 흩어져있는, 말그대로 폐허로 변해버린 곳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마을에는 이 곳을 떠나지 못하는 저소득층가정과, 비록 폐허가 되어버린 마을이지만 오래되고 전통있는 이 곳을 재건하고 보살피기 위해 몇 년을 사비를 들여 집을 다시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울려서 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했던 일은 이러한 폐허가 된 건물들을 재건하기 위해 폐기물들을 정리하고 정원, 공원, 도로를 정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겁을 먹었던 것과 달리, 일 그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정말로 괴롭혔던건 찜질방과도 같은 습기차고 찌는듯이 녹는 더운 날씨였습니다. 세인트 루이스는 내륙지방으로서 우리가 봉사활동을 했던 팔월말에서 구월초는 한여름으로 야외에서 일했던 첫주에는 평균기온이 37도, 정말 더운날은 39도를 육박하는, 게다가 습기까지 많은 날씨였습니다. 정말 봉사활동 기간 내내 제일 힘들었던 점을 뽑으라면 날씨라고 할 정도로 가만히 서있어도 찜질방에 온 것 같은, 한국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서운 날씨였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이 힘들었던지, 무슨 이유에선지 무려 단지 하루가 지나서 일본인 여학생 2명이 포기를 하고 귀국하고, 그 일주일 후에 독일인 남학생이 다시 중도포기, 그리고 터키학생, 캐나다 아이까지 3주를 마처 채우지 못하고 귀국을 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있었기에 남아있는 멤버들은 마치 서바이벌게임을 하듯이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농담하며 친밀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홈스테이 가정에 샤워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10명 남짓의 봉사자들이 샤워실앞에 각자 목욕용품을 줄세워서 차례를 지켜가며 샤워를 하고, 혹여나 누군가 새치기를 하려하면 장난스러운 폭동이 벌어졌던 것이 당시엔 땀 흘리고 샤워를 못해 괴로웠지만, 지금은 웃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로 인해 동네가 말끔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은 보람있었습니다. 또한,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와 매주 각 가정에서 돌아가면서 준비하여 초대해주었던 저녁은 다양한 미국 가정음식을 맛볼 수 있는, 우리 봉사자들이 하루 중 제일 고대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전, 오후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는 각 국에서온 봉사자들과 바, 클럽, 하우스파티, 야구장 등등을 다니며 끈끈한 친목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 봉사자들이 21살이거나 그 이하여서 정말 지치지도 않고 매일매일 음주가무파티를 했는데, 제 인생에 언제 이렇게 매일매일 놀아볼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주민들과 교류하고 또 봉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고비도 많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러한 고비가 있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이 더 보람되고 아직까지도 함께했던 친구들과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뙤양볕에서 잡초뽑기, 삽질 등 일은 다소 힘들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상쇄될 정도로 저는 워크캠프를 통해 제 인생에서 다시 경험하기 힘든 좋은 경험을 정말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처음에 겁을 먹었던 것과 달리, 일 그 자체는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정말로 괴롭혔던건 찜질방과도 같은 습기차고 찌는듯이 녹는 더운 날씨였습니다. 세인트 루이스는 내륙지방으로서 우리가 봉사활동을 했던 팔월말에서 구월초는 한여름으로 야외에서 일했던 첫주에는 평균기온이 37도, 정말 더운날은 39도를 육박하는, 게다가 습기까지 많은 날씨였습니다. 정말 봉사활동 기간 내내 제일 힘들었던 점을 뽑으라면 날씨라고 할 정도로 가만히 서있어도 찜질방에 온 것 같은, 한국에서는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무서운 날씨였습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일이 힘들었던지, 무슨 이유에선지 무려 단지 하루가 지나서 일본인 여학생 2명이 포기를 하고 귀국하고, 그 일주일 후에 독일인 남학생이 다시 중도포기, 그리고 터키학생, 캐나다 아이까지 3주를 마처 채우지 못하고 귀국을 하는 일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있었기에 남아있는 멤버들은 마치 서바이벌게임을 하듯이 누가 더 오래 버티나 농담하며 친밀해 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홈스테이 가정에 샤워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10명 남짓의 봉사자들이 샤워실앞에 각자 목욕용품을 줄세워서 차례를 지켜가며 샤워를 하고, 혹여나 누군가 새치기를 하려하면 장난스러운 폭동이 벌어졌던 것이 당시엔 땀 흘리고 샤워를 못해 괴로웠지만, 지금은 웃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로 인해 동네가 말끔해지고 깨끗해지는 것은 보람있었습니다. 또한,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와 매주 각 가정에서 돌아가면서 준비하여 초대해주었던 저녁은 다양한 미국 가정음식을 맛볼 수 있는, 우리 봉사자들이 하루 중 제일 고대했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오전, 오후에는 열심히 일을 하고, 맛있는 저녁을 먹은 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는 각 국에서온 봉사자들과 바, 클럽, 하우스파티, 야구장 등등을 다니며 끈끈한 친목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전 봉사자들이 21살이거나 그 이하여서 정말 지치지도 않고 매일매일 음주가무파티를 했는데, 제 인생에 언제 이렇게 매일매일 놀아볼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주민들과 교류하고 또 봉사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중간 중간 고비도 많고,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러한 고비가 있었기 때문에 봉사활동이 더 보람되고 아직까지도 함께했던 친구들과 연락을 할 정도로 친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뙤양볕에서 잡초뽑기, 삽질 등 일은 다소 힘들었지만, 이런 모든 것들이 상쇄될 정도로 저는 워크캠프를 통해 제 인생에서 다시 경험하기 힘든 좋은 경험을 정말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