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곳에서 시작된 우정, 봉사
BLACK CAST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이번 년도에 들어 봉사활동에 관심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했고 그러던 중 학교홈페이지에 워크캠프라는 해외봉사 모집 공고문을 발견했다. 다른 나라에 가서 여러 나라의 외국인들과 함께하는 봉사활동이 이색적이고 흥미로웠다. 혼자 가는 것은 두려움이 있었기에 이 캠프를 추천하면 바로 승낙할 것 같고, 같이 있으면 가장 마음이 편한 친구에게 소개를 한 후 우리는 같이 가게 되었다.
남들은 비행기표와 계획을 미리 세우고도 남았을 때쯤 우리는 일주일 전부터 계획세우기에 들어갔다. 워크캠프 국가를 정했을 당시 외국에 대한 정보가 없기도 했으며 별로 관심도 없었기에 생각 없이 정했다. 우리가 갈 나라는 직항편이 없어서 근처 나라인 체코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후부터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유럽은 기차로도 서로 다른 나라를 이동할 수 있었기에 기차를 이용해서 슬로바키아를 가기로 정했다. 숙박과 예매와 교통편, 루트, 지도 등이 담겨있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을 때보단 이렇게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적어보니 마음이 처음보다는 편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탑승 했을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타국으로 전쟁터에 가는 기분이었고 12시간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생각해보니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읽을 수 없는 언어를 보며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두려웠었다. 사실 나는 외국인이 무서워서 학교 영어회화 수업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아서 찾아가기 위해서는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여행영어 책을 간간히 보며 질문을 했고, 처음엔 쉬운 대답조차 들리지 않았다. 점점 말을 걸다 보니 비록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능숙한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미팅날짜 전날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고, 다음날 미팅장소로 찾아갔다. 인포싯에 버스 시간과 갈아타야 하는 장소도 써 있었지만 MHD 라고 써 져있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무슨 뜻인지 몰랐고 나중에 되어서야 버스터미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버스에 탑승했을 때 이젠 모든 길을 다 찾은 것 같아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탑승한 버스 안에는 캠프 참가자처럼 보이는 아시아인과 큰 백 팩을 메고 있는 서양인이 보였다. 우리는 속으로 같은 참가자인 것 같다는 추축을 했고 다음 갈아탈 버스가 같은 것을 알고서 확신했다.
이제 그들만 따라가면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인지 버스에서 마음 놓고 푹 잤던 것 같다. 도착 한 후 두 명의 리더와 우리 외에 3명의 참가자들이 버스에 함께 타고 있었다. 일단은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외국인들은 처음 만나면 낯을 가리는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은 다들 말이 없었다. 캠프장소에 도착했을 때 먼저 온 참가자들이 있었다. 다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편하게 누워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이가 너무나 좋아 보였다.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서 게임을 하며 서로의 이름을 익히고 낯선 분위기를 없앴다. 참가자들 모두 서로 배려해 주고 친해지려고 말을 거는 모습을 보니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우린 영어로 원만한 대화를 할 수 없었고 그들끼리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질 뻔도 했지만 참았다. 영어를 못해도 괜찮은 척, 밝은 척, 자신감 넘치는 척을 하며 항상 웃으며 다녔다. 텐트 안에서 친구와 같이 있을 땐 온 갖가지 걱정거리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매일매일 느꼈지만 친구가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우리와 같은 텐트를 사용하는 타이완친구 메기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우리가 맞지 않는 문법을 사용해서 영어로 말해도 이해하고 알아들었다. 말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너무나 기뻤고 즐거웠다. 비록 메기도 외국인이었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땐 메기가 쉬운 언어로 통역해주었다. 점차 지나자 다른 참가자들도 우리를 배려해서 쉽게 말해주었고 장난도 많이 치며 친해졌다.
봉사활동 내용은 그 마을에 있는 성을 재건축하는 일이었다. 40분간 가파른 산을 올라가면 돌들이 쌓여 있고 초기 단계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성을 쌓았던 흙 속에 옛날에 쓰이던 도자기와 동물의 뼈가 묻혀 있었기에 호미로 흠 짓을 내서는 안 되었다. 빗자루로 먼지를 털 듯이 돌들을 정성스럽게 쓸어주었다. 또 흙을 옮기거나 돌덩어리를 옮기거나 땅을 파거나 등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업들을 했다. 처음에 이 일을 하고서 친구와 나는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다고 느꼈다. 진심으로 도망칠까 생각도 했었지만 한국인들은 일하다가 포기하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나서 한국을 망신시키는 것 같아 참고 또 참으며 묵묵히 일을 했다. 괜찮은지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말은 I’m ok. 밖에 할 수 없었고 웃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친구와 둘이 근처에 있을 땐 한국어로 힘들어 죽겠다는 등 서로의 심정을 마음껏 공유했다. 친구와 힘들 때, 말하고 싶을 때 한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한 나라의 언어의 소중함을 느꼈다. 2시간 정도 일을 하고서 1시간의 간식시간이 있었다. 일 한 후의 간식시간은 꿀 같은 시간이었다. 지겹다던 샌드위치도 그 때만큼은 너무나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참가자들과도 간간히 이야기나 농담을 주고 받는 시간도 즐거웠다. 아무 말 없이 일만 했다면 신체적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포기했을 것 같다.
캠프에서는 각자 자기나라 요리와 문화 소개를 하는 날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날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무슨 요리를 할지, 어떻게 포스터를 꾸미고 무엇을 소개할지 고민했다. 쌀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가게에서는 쌀이 팔았고 오랜만에 쌀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우리가 더 기뻤다. 점심은 감자전, 호박전, 비빔밥을 했고, 저녁은 주먹볶음밥, 불고기를 요리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맛있고 남김없이 먹어준 것 같았다. 너무 뿌듯했고 한국음식은 맛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프레젠테이션은 한국에서 준비해갔던 한국문화자료들을 가져가서 직접 보여주었다. 7개국의 음식을 한 자리에서 먹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되어서 나도 조금은 외국에 대한 정보가 생긴 것 같아 뿌듯했다.
주말은 ‘열심히 일 한 자, 떠나라!’ 라는 말처럼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여 그곳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다녔다. 춥지 않은 잠자리와, 새로운 음식, 새로운 풍경, 인터넷 사용,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 등 한국에서 평소에 당연한 누림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슬로바키아의 문화와 장소를 관광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노는 것도 피곤했지만 즐거웠다.
솔직히 나에게 워크캠프는 버거웠다. 가장 부족했던 것은 영어실력이었다. 리더와 참가자들이 말하는 내용의 70% 정도는 이해하지 못했고 추측으로만 이해하고, 수동적으로 따라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의사를 말할 때도 있었지만 듣기능력이 부족했다. 하루하루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남은 날을 세었다. 같이 있으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잊은 체 푹 빠져 놀았지만 틈틈이 생각이 났고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다는 영어실력을 늘리고서 다시 워크캠프에 참가하여 능동적으로, 캠프를 끝내기 아쉽다고 느낄 정도로 참여해 보고 싶다. 나의 힘을 사용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물론 뿌듯한 일이었지만 개개인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서 외국인들과 같이 지냈던 것은 물론,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했고 소중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며 세계는 참 넓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워크캠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많이 참여하여, 편견을 갖고 있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모두 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2주간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함께였기에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었던 친구 ‘황그림’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남들은 비행기표와 계획을 미리 세우고도 남았을 때쯤 우리는 일주일 전부터 계획세우기에 들어갔다. 워크캠프 국가를 정했을 당시 외국에 대한 정보가 없기도 했으며 별로 관심도 없었기에 생각 없이 정했다. 우리가 갈 나라는 직항편이 없어서 근처 나라인 체코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 후부터 어떻게 찾아갈 것인지 계획을 세웠다. 유럽은 기차로도 서로 다른 나라를 이동할 수 있었기에 기차를 이용해서 슬로바키아를 가기로 정했다. 숙박과 예매와 교통편, 루트, 지도 등이 담겨있는 계획서를 만들었다.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을 때보단 이렇게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워 적어보니 마음이 처음보다는 편했다.
하지만 비행기에 탑승 했을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타국으로 전쟁터에 가는 기분이었고 12시간의 거리가 가깝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두려웠는지 생각해보니 영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 읽을 수 없는 언어를 보며 길을 찾아가야 한다는 점이 두려웠었다. 사실 나는 외국인이 무서워서 학교 영어회화 수업조차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살아서 찾아가기 위해서는 말을 걸 수밖에 없었다. 여행영어 책을 간간히 보며 질문을 했고, 처음엔 쉬운 대답조차 들리지 않았다. 점점 말을 걸다 보니 비록 모든 것을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능숙한 대화를 할 수는 없었지만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었다.
미팅날짜 전날 브라티슬라바에 도착했고, 다음날 미팅장소로 찾아갔다. 인포싯에 버스 시간과 갈아타야 하는 장소도 써 있었지만 MHD 라고 써 져있는 단어를 알지 못했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무슨 뜻인지 몰랐고 나중에 되어서야 버스터미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첫 번째 버스에 탑승했을 때 이젠 모든 길을 다 찾은 것 같아 너무나 안심이 되었다. 탑승한 버스 안에는 캠프 참가자처럼 보이는 아시아인과 큰 백 팩을 메고 있는 서양인이 보였다. 우리는 속으로 같은 참가자인 것 같다는 추축을 했고 다음 갈아탈 버스가 같은 것을 알고서 확신했다.
이제 그들만 따라가면 될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인지 버스에서 마음 놓고 푹 잤던 것 같다. 도착 한 후 두 명의 리더와 우리 외에 3명의 참가자들이 버스에 함께 타고 있었다. 일단은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외국인들은 처음 만나면 낯을 가리는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처음은 다들 말이 없었다. 캠프장소에 도착했을 때 먼저 온 참가자들이 있었다. 다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편하게 누워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사이가 너무나 좋아 보였다. 자기소개 시간을 갖고서 게임을 하며 서로의 이름을 익히고 낯선 분위기를 없앴다. 참가자들 모두 서로 배려해 주고 친해지려고 말을 거는 모습을 보니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우린 영어로 원만한 대화를 할 수 없었고 그들끼리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을 때마다 인상이 찌푸려질 뻔도 했지만 참았다. 영어를 못해도 괜찮은 척, 밝은 척, 자신감 넘치는 척을 하며 항상 웃으며 다녔다. 텐트 안에서 친구와 같이 있을 땐 온 갖가지 걱정거리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눴다. 매일매일 느꼈지만 친구가 같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정말 다행이라고 느꼈다. 우리와 같은 텐트를 사용하는 타이완친구 메기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좋아했다. 우리가 맞지 않는 문법을 사용해서 영어로 말해도 이해하고 알아들었다. 말이 통하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너무나 기뻤고 즐거웠다. 비록 메기도 외국인이었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을 땐 메기가 쉬운 언어로 통역해주었다. 점차 지나자 다른 참가자들도 우리를 배려해서 쉽게 말해주었고 장난도 많이 치며 친해졌다.
봉사활동 내용은 그 마을에 있는 성을 재건축하는 일이었다. 40분간 가파른 산을 올라가면 돌들이 쌓여 있고 초기 단계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성을 쌓았던 흙 속에 옛날에 쓰이던 도자기와 동물의 뼈가 묻혀 있었기에 호미로 흠 짓을 내서는 안 되었다. 빗자루로 먼지를 털 듯이 돌들을 정성스럽게 쓸어주었다. 또 흙을 옮기거나 돌덩어리를 옮기거나 땅을 파거나 등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업들을 했다. 처음에 이 일을 하고서 친구와 나는 너무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다고 느꼈다. 진심으로 도망칠까 생각도 했었지만 한국인들은 일하다가 포기하고 도망갔다는 소문이 나서 한국을 망신시키는 것 같아 참고 또 참으며 묵묵히 일을 했다. 괜찮은지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말은 I’m ok. 밖에 할 수 없었고 웃는 일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친구와 둘이 근처에 있을 땐 한국어로 힘들어 죽겠다는 등 서로의 심정을 마음껏 공유했다. 친구와 힘들 때, 말하고 싶을 때 한국어를 사용할 때마다 한 나라의 언어의 소중함을 느꼈다. 2시간 정도 일을 하고서 1시간의 간식시간이 있었다. 일 한 후의 간식시간은 꿀 같은 시간이었다. 지겹다던 샌드위치도 그 때만큼은 너무나 맛있는 샌드위치였다. 참가자들과도 간간히 이야기나 농담을 주고 받는 시간도 즐거웠다. 아무 말 없이 일만 했다면 신체적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포기했을 것 같다.
캠프에서는 각자 자기나라 요리와 문화 소개를 하는 날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날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무슨 요리를 할지, 어떻게 포스터를 꾸미고 무엇을 소개할지 고민했다. 쌀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가게에서는 쌀이 팔았고 오랜만에 쌀밥을 먹을 생각을 하니 우리가 더 기뻤다. 점심은 감자전, 호박전, 비빔밥을 했고, 저녁은 주먹볶음밥, 불고기를 요리했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우리가 만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맛있고 남김없이 먹어준 것 같았다. 너무 뿌듯했고 한국음식은 맛있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아 자랑스러웠다. 프레젠테이션은 한국에서 준비해갔던 한국문화자료들을 가져가서 직접 보여주었다. 7개국의 음식을 한 자리에서 먹어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들의 문화에 대해 알게 되어서 나도 조금은 외국에 대한 정보가 생긴 것 같아 뿌듯했다.
주말은 ‘열심히 일 한 자, 떠나라!’ 라는 말처럼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여 그곳에서 숙박하며 관광을 다녔다. 춥지 않은 잠자리와, 새로운 음식, 새로운 풍경, 인터넷 사용, 깨끗하고 넓은 화장실 등 한국에서 평소에 당연한 누림이었지만 그날만큼은 너무 소중하고 행복했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며 슬로바키아의 문화와 장소를 관광하며 단체 사진을 찍었다. 노는 것도 피곤했지만 즐거웠다.
솔직히 나에게 워크캠프는 버거웠다. 가장 부족했던 것은 영어실력이었다. 리더와 참가자들이 말하는 내용의 70% 정도는 이해하지 못했고 추측으로만 이해하고, 수동적으로 따라다니기만 했던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의사를 말할 때도 있었지만 듣기능력이 부족했다. 하루하루 아침을 맞이할 때마다 남은 날을 세었다. 같이 있으면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잊은 체 푹 빠져 놀았지만 틈틈이 생각이 났고 지치기도 했다. 그래도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보다는 영어실력을 늘리고서 다시 워크캠프에 참가하여 능동적으로, 캠프를 끝내기 아쉽다고 느낄 정도로 참여해 보고 싶다. 나의 힘을 사용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물론 뿌듯한 일이었지만 개개인을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내가 태어나서 외국인들과 같이 지냈던 것은 물론, 많은 대화를 나눴던 것은 처음이었기에 신기했고 소중했다. 비슷하게 생겼지만 서로 다른 곳에서 다른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며 세계는 참 넓고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워크캠프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많이 참여하여, 편견을 갖고 있던 문화에 대한 인식이 사라지고 모두 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2주간 서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함께였기에 타국에서의 외로움을 채울 수 있었던 친구 ‘황그림’에게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