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멕시코, 동화 속 과나후아또 2주
Festival Vive Disen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멕시코. 유럽이나 미국과는 달리 내가 그곳에 갈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렇기에 멕시코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 더욱 설렜다. 원래 예술을 좋아하던 나라서, 그곳에서 열리는 디자인 축제는 어떤 것일지 기대됐다. 초급수준이라도 스페인어를 공부해놓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멕시코에 도착해서 VIMEX 사무실에서 미팅을 갖고, 과나후아또로 이동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우리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만난 과나후아또는 동화 속 중세의 마을 같았다. 이런 곳에서 2주를 지낸다니! 마음이 들떴다. 그러나 우리가 숙소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문제와 직면해야했다.
VIMEX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축제의 호스트는 우리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까지도 우리가 온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이 12명이나 된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좁디 좁은 6인실 도미토리를 우리 숙소로 준비해놓았다. 짐을 풀 곳도 없는 그 방에서 우리 모두가 2주를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하루만 참고, 내일 해결해보자 라고 하며 즐겁게 작은 방 안에서 친밀함을 다져갔다. 그러나 그 하루만, 하루만이 며칠을 계속되었고, 호스트는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기 일수였다.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매일 밤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대책회의만을 하며 3일정도를 보내고, 드디어 호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호스트는 방은 더 해줄 수 없으니 알아서 방을 찾던지 아니면 유스호스텔 로비 바닥을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곳은 거리의 개가 들어와 자는 곳이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된 음식도 먹지 못했다. 장을 본거라곤 또띠아와 치즈, 그리고 샌드위치 햄이 전부였다. 다들 불만이 극에 달했고, 결국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은 워크캠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친구들 중 2명은 후에 축제기간동안 캠프로 돌아오긴 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그렇게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캠프리더도 워크캠프가 처음인 어린 친구였고, 이 상황을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해 허덕거렸다. 우리 모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악의 캠프 상황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도 호스트와 일하는 일정을 잡을 수 있었고, 음식은 식사준비조가 짜여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떠났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사먹기로 되었다. 숙식비로 사용된다던 우리의 현지 참가비는 어디로 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VIMEX에도 항의해보았지만, 계속 대답을 회피하며 책임을 축제 호스트에게로 떠넘기려 할 뿐이었다. 그래도 남은 친구들끼리 각자 나라의 음식을 돌아가며 준비해 대접하고, 자기 나라 음식을 파는 맛있는 현지 식당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의 글자를 배우고, 놀이 문화를 배우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또, 다른 워크캠프에 비해 자유시간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크지 않은 과나후아또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 속에 있었지만, 다들 멕시코를 지긋지긋해 했지만, 아름다운 과나후아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우리의 상황과는 정 반대로 너무 화창하고 아름다운 그 도시를 보면 괜시리 더 슬퍼지기도 했다.
마침내 3일간의 축제가 다가왔다. 축제기간 동안에는 우리 팀뿐만 아니라 과나후아또 대학에 다니는 우리 또래의 멕시코 친구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 우리팀끼리만 지내다가 멕시코 현지의 젊은 친구들과 만나는 것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축제기간 동안에도 호스트가 축제의 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우리는 세부 계획을 알 수 없어 일을 하는데에 약간 혼란스럽고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한 디자이너도 만나고 멕시코의 디자인 경향을 볼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어떤 후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최악의 워크캠프였지만, 이 캠프를 통해서 나는 ‘내려놓음’과 ‘인내심’ 그리고 ‘소통’을 배울 수 있었다. 일 그 자체보다도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문제적인 상황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나는 조급증을 버리고 구질구질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아내고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이어지던 장시간의 회의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웠던 도시 과나후아또와 2주의 시간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행복하다.
VIMEX의 무책임한 행동으로 축제의 호스트는 우리가 도착하기 일주일 전까지도 우리가 온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 팀이 12명이나 된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좁디 좁은 6인실 도미토리를 우리 숙소로 준비해놓았다. 짐을 풀 곳도 없는 그 방에서 우리 모두가 2주를 지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하루만 참고, 내일 해결해보자 라고 하며 즐겁게 작은 방 안에서 친밀함을 다져갔다. 그러나 그 하루만, 하루만이 며칠을 계속되었고, 호스트는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기 일수였다.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 채 매일 밤마다 답이 나오지 않는 대책회의만을 하며 3일정도를 보내고, 드디어 호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호스트는 방은 더 해줄 수 없으니 알아서 방을 찾던지 아니면 유스호스텔 로비 바닥을 쓸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그곳은 거리의 개가 들어와 자는 곳이었다. 그 때까지 우리는 제대로된 음식도 먹지 못했다. 장을 본거라곤 또띠아와 치즈, 그리고 샌드위치 햄이 전부였다. 다들 불만이 극에 달했고, 결국 스페인과 프랑스에서 온 친구들은 워크캠프를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친구들 중 2명은 후에 축제기간동안 캠프로 돌아오긴 했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그렇게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다. 캠프리더도 워크캠프가 처음인 어린 친구였고, 이 상황을 제대로 끌고 나가지 못해 허덕거렸다. 우리 모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최악의 캠프 상황에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래도 호스트와 일하는 일정을 잡을 수 있었고, 음식은 식사준비조가 짜여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떠났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사먹기로 되었다. 숙식비로 사용된다던 우리의 현지 참가비는 어디로 갔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VIMEX에도 항의해보았지만, 계속 대답을 회피하며 책임을 축제 호스트에게로 떠넘기려 할 뿐이었다. 그래도 남은 친구들끼리 각자 나라의 음식을 돌아가며 준비해 대접하고, 자기 나라 음식을 파는 맛있는 현지 식당에 데려가기도 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의 글자를 배우고, 놀이 문화를 배우며 신기해하고 즐거워했다. 또, 다른 워크캠프에 비해 자유시간이 많은 편이었기 때문에 크지 않은 과나후아또의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 속에 있었지만, 다들 멕시코를 지긋지긋해 했지만, 아름다운 과나후아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로는 우리의 상황과는 정 반대로 너무 화창하고 아름다운 그 도시를 보면 괜시리 더 슬퍼지기도 했다.
마침내 3일간의 축제가 다가왔다. 축제기간 동안에는 우리 팀뿐만 아니라 과나후아또 대학에 다니는 우리 또래의 멕시코 친구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왔다. 우리팀끼리만 지내다가 멕시코 현지의 젊은 친구들과 만나는 것은 흥미롭고 즐거운 일이었다. 축제기간 동안에도 호스트가 축제의 큰 그림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우리는 세부 계획을 알 수 없어 일을 하는데에 약간 혼란스럽고 아쉽기도 했다. 하지만 유명한 디자이너도 만나고 멕시코의 디자인 경향을 볼 수 있어 좋은 경험이었다.
어떤 후기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최악의 워크캠프였지만, 이 캠프를 통해서 나는 ‘내려놓음’과 ‘인내심’ 그리고 ‘소통’을 배울 수 있었다. 일 그 자체보다도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가진 문제적인 상황들을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나는 조급증을 버리고 구질구질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참아내고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매일 밤 이어지던 장시간의 회의를 통해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 아름다웠던 도시 과나후아또와 2주의 시간 동안 함께 울고 웃었던 친구들을 떠올리면 지금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