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빅, 낯선 설렘과의 첫 만남

작성자 정유희
아이슬란드 SEEDS 003 · ENVI/ ART 2012. 03 레이캬빅

Photography & Work in Reykjaví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우선 이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 출국 전에 난 아이슬란드에서 두 개의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아이슬란드라는 그다지 친숙하지 않았던 나라에서 한 달 가량을 보내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대부분이 그러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이슬란드라는 나라 이름처럼 차가울 것 같은, 화산 폭발로 응석꾸러기취급 받은 나라.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그 이상, 이하의 정보력도 없었던 나는 내 전공, 언론정보와 연계시켜, 이 낯선 나라에서 photography와 관련된 워크캠프 두 개를 신청했다. 처음 발 디딘 케플라빅 공항. 숨통까지 얼릴듯한 차가운 공기를 기대했던 나를 실망시킨 생각보다 따뜻한 대기가 날 안심시켰다. 공항에서 도심까지 이동할 수 있는 버스티켓을 구매했다. 왕복으로 구매하면 할인을 받을 수도 있고, 돌아오는 날짜나 시간은 정해져 있는 근처 호스텔이나, 미팅 포인트에서 자기가 고를 수 있다. 아직 한국도 추운 3월이었기 때문에, 아니 어쩌면 한국에서 추위에 혹독하게 훈련된 덕분에, 난 아이슬란드의 추위에는 그렇게 힘들어하진 않았다. 버스를 타고 도심으로 이동하는 내내 보이는 새하얀 풍경들이 해외여행이 처음인 나를 매혹적으로 유혹했고, 나는 여독으로 피곤한 와중에도 감탄사를 금치 못하며 바깥 풍경에 한참이나 반응했다. 도착한 그 날 눈이 정말 많이 내렸다. 친절한 버스 기사님 덕분에 미팅포인트이자 숙소가 될 곳에 도착했다. 나와 머리색깔도 눈동자 색깔도 피부색깔도 다르다는 외국인들만 있는 곳에 문을 두드리기까지 떨리는 심장을 어떻게 주체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긴장한 탓일까, 문이 열림과 동시에 실내의 따뜻한 공기와 함께 몸이 녹아 내리는 기분이었다. 자신들을 각자 소개하며 날 반갑게 맞이한다. 외국의 실내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화장실이 어떤지 아무것도 몰랐던 나에게는 처음 동물원에 간 아이처럼 마냥 들뜨고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긴장과 흥분이 가시지 않은 채로 난 프랑스 내 팀의 리더를 만났다. 그녀는 나에게 내가 신청한 워크캠프는 이름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활동이라고 설명하며, 똑 같은 내용 두 개를 하는 것 보다, 지금 진행되려고 하는 패션 페스티발로 하나 바꿀 생각이 없냐고 물어봤고, 나는 이것도 기회다 싶어서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우리 팀은 덴마크에서 온 밀레나, 체코에서 온 크리스티나, 호주에서 온 조, 프랑스에서 온 실리아(리더)까지 이렇게 다섯명으로 구성되었다. 내 첫 번째 워크캠프의 사랑스러운 팀원들과 함께 우리는 패션 페스티발을 주최하는 사무실로 가서 간단한 미팅을 가진 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모델 에이전시인 ELITE가 주축이 되어 진행되는 레이캬빅 패션 페스티발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활동이 ELITE의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나는 처음에 사진과 관련된 활동을 생각하고 왔기 때문에, 이 워크캠프에 대한 내용은 제대로 숙지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들은 무대 전반 연출에 대한 부분, 홈페이지 관리, 홍보 부분 등 몇 가지로 우리 활동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능숙하지 못했던 영어 때문에 나와 크리스티나는 자발적으로 연출을 원했다. 밀레나와 조는 사무실 홍보와, 홈페이지 전반적인 업무를 맡게 되었다. 연출은 무대의 장식을 만들고, 손님들을 위한 구디백을 만드는 작업,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무대 장식은 울(WOOL)로 제작 되었는데, 일정한 길이로 울을 잘라서 마지막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내가 원래 지원한 캠프는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일조하고자 맡겨진 일을 묵묵히 해내었다. 가끔은 너무 지루하기도 했고, 사무실에서 일하는 다른 팀원들과 많은 시간 함께 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연출 담당의 다른 아이슬란드 봉사자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도 있었기 때문에 위로가 되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주축이 되는 ELITE의 총괄담당들의 지시가 너무 비조직적이고 비효율적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워크캠프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온 패션에 종사하는 담당자, 네덜란드에서 온 인턴들도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하는 작업이 대부분 마무리가 되면서 패션 페스티발이 열릴 레이캬빅의 아름다운 건물 하르파로 우리의 주 활동지가 옮겨졌다. 이 곳에서 우리의 불만은 폭발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일을 담당하는 기획부라 그동안의 부조리도 참고 이해하며 견뎌왔었다. 자신들을 도우려는 봉사자들의 기분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던 태도에 우리 팀원들은 매우 불만이 많았지만, 이 또한 견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고 버텼다. 무대의자를 줄과 열에 맞춰 몇 백 개를 정렬하고 청소를 했다. 모델들이 나오는 순서를 알기 쉽도록 벽에 모델들의 프로필 사진을 붙여야 했는데, 높은 곳에서부터 붙여야 했기 때문에 키가 큰 실리아가 올라가 붙이기 쉽게 우리가 사진을 전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이면 끝날 것을 너무 경황이 없었는지 디자이너의 순서를 잘못 가르쳐 주어 이 일을 세 번이나 떼고 붙이고 번복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비효율은 상상을 초월했지만, 아이슬란드라는 곳에서의 특별한 경험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분노와 실망으로 시간을 낭비하기에는 하르파의 아름다운 건물이 주는 영감이 아까웠다.
하르파는 항구도시인 레이캬빅에서 유명한 건물이다.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정도로 생각하면 된다고 한다. 건물의 디자인이 굉장히 아름다운데, 건물의 외관은 유리로 지어졌다. 건물 밖에서 봐도 웅장한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로 이루어진 벽들의 우아함이 실로 굉장하다. 건물 안도 굉장히 쾌적하다. 그래서 하르파에서 일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 우리다. 패션 페스티발에 참가하는 모델들에 둘러싸여 있으니 그 기분이 오묘했다. 난 평소에 이쪽에는 문외한인데다가, 패션쇼라고 하는 것에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어서, 패션쇼의 정신 없는 광경을 보니 패션 종사자들의 땀과 노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가장 뿌듯했던 부분은, 우리가 그렇게 고생해서 작업했던 울 장식이 무대의 중앙에 올라갔을 때였다. 그 때만큼은 다른 생각 없이 그냥 뿌듯하고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게스트들이 입장하기 시작했고, 화려한 패션쇼의 막이 올랐다.
이주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단순노동이 주 업무였지만, 숙소에서 알게 된 소중한 내 친구들과의 교감, 밤마다 부엌에 둘러 앉아 수다를 떨고, 노래를 듣고 춤을 추며 쌓인 유대감은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처음 가 본 여행에서 너무나 좋은 사람들만 만난 덕택에 난 행복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같이 일하면서 같이 힘들어 하면서 언어를 초월한 공감능력을 얻을 수 있었다. 동양에서 온 생김새도 다르고 문화도 너무나 다른 나에게 살갑게 반갑게 따뜻하게 대해준 그들에게 난 조금의 이질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 첫 째 워크캠프가 끝나면서 나의 팀원들은 비행기 일정에 맞춰 자국으로 돌아갔다. 하나 둘 씩 떠나는 모습을 보니 슬프지만,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이 날 조금은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난 또 새로운 만남을 준비해야 했다. 나의 두 번째 워크 캠프가 시작된 것이다. 그렇게 첫 번째 워크캠프의 아련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멤버들이 미팅포인트에 하나 둘 씩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