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두 번째 워크캠프의 마법
Reykjavík: Easter Photo Marath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첫 번째 꿈만 같던 워크캠프가 끝난 뒤 나는 약간의 무기력함과 함께 새로 온 두 번째 워크캠프 참가자들을 맞이하였다. 초반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은 탓일까. 헤어짐이 날 무력하게 만든 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워크캠프의 리더는 러시아에서 온 나탈리, 영국에서 온 피터 이렇게 두 명이었다. 벨기에에서 온 돈기와 니나, 이탈리아에서 온 안젤리카, 미국에서 온 하츠, 스페인에서 온 아이나, 태국에서 온 위, 러시아에서 온 케이트, 우크라이나에서 온 또 다른 나탈리, 독일에서 온, 소피아, 요한나 자매, 마리아나 등 15명 정도가 되는 대 식구가 만들어졌다. 또한 17살 18살 정도의 어린 소녀들이 4명이나 되었고, 삼십 대의 참가자도 있었다. 나의 첫 번째 워크 캠프 기간 동안 지낸 레이캬빅 시내와 가까운 베스트루가따의 숙소는 수용인원이 열명 남짓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내에서 조금은 떨어진 숙소로 이동해야 했다. 그 곳은 보타닉 정원 가운데에 있는 사랑스런 숙소였다. 인원이 많다 보니, 서로의 이름을 외우는 것도 힘이 들었고, 의사소통이 산발적으로 이루어졌다. 독일에서 많은 인원이 와서인지,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끼리 자연스레 더 어울리게 되는 듯 했다. 처음에는 그들의 눈빛이 마냥 호의적 이진 않은 것 같아, 조금은 꺼리게 된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는 나의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된 오해였지만, 독일 사람들의 첫 인상 평판이 안 좋은 까닭에도 기인하는 것 같다. 사진과 관련하여 자신이 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갖는 것이 이 워크캠프의 목표였다. 우리는 사진에 관련하여 관심이 많은 사람부터, 아이슬란드에 호기심을 갖고 온 사람, 문화교류에 중점을 두고 온 사람 등 다양한 목적과 관심을 가지고 만났다.
우선 인원이 많다 보니, 조를 나누어 식사 담당 조와 설거지 조 등 각자 할 일을 분담하였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자기가 속한 조원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그 동안 서먹했던 분위기는 점점 따뜻한 공기로 변해갔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야기 꽃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런 저런 얘기, 상대방 나라에 대해 궁금한 점 등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서로를 알아가기 바빴다. 포토마라톤이라는 우리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꽤 충분했기에, 지역 사회를 위해 공동묘지에서 봉사활동도 참여했다. 외국 공동묘지는 처음 보았다. 변덕스러운 아이슬란드 날씨 덕에 꽁꽁 껴입은 두꺼운 잠바도 낙엽을 쓸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치우는 동안에는 불필요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솔선수범했고, 누구도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서로 웃으며, 대화하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청소를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낙엽을 쓰는 동안에 옷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공동묘지 사무실에 있는 작업복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멜빵바지나 장화 같은 작업에 필요한 것들이 색깔도 크기도 제 각각이어서 옷을 갈아 입은 서로를 보며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고 사진도 찍으며 추억으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의 본래의 목표로 돌아가, 사진 전시회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했다. 아이슬란드라는 이름부터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풍기는 나라에서 우리가 여기 모인 목적과 부합하는 주제가 무엇일까? 서로 많은 의견을 내 놓았다. 아이슬란드의 건물들을 자연과 연관시켜서 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사진에 담아 전시하면 어떨까, 아이슬란드에 있는 자연친화적인 기업들과 관련 있는 일들을 소개하는 전시회는 어떨까 하며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모두 같이 고뇌했다. 그러다가 끝이 없는 회의에 지친 우리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한 줄로 요약하여 전시회의 주제를 투표에 부쳤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우리 전시회의 주제는 “Grey in Green” 이었다. 현대 문명, 기술, 인간의 이기심이 이미 자연의 의도와는 다른 길로 걷고 있다. 물론 대다수는 심각성을 인지하여 자연보호, 환경보호라고 외치고 있지만, 허상일 뿐 실질적인 행동은 극히 미미하다. 우리는 사진을 통하여 이러한 세태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회색이라는 문명의 심볼과 자연의 심볼인 녹색. 이 두 색깔이 공존하는 그 모습을 사진 안에 담고자 했다. 그렇게 주제가 정해지고, 우리는 날짜를 정해 각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제는 참 참신하고, 좋았는데 막상 숙소 밖을 나와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대상을 찾으려니 아득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녹색을 보기란 참 힘든 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를 하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참 열심히 찍으러 돌아다닌 것 같다.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들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일까? 사건이 발생했다. 돈기라고 벨기에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온 케이트와 불화가 불거진 것이다. 돈기의 말로는 케이트가 자신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으며, 자신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근 며칠 새에 돈기의 상냥한 얼굴 대신 근심 가득한 얼굴을 봐서 걱정이 되었다. 돈기는 모두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모두가 널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며, 위로했지만, 이미 모두에게 등 돌린 후에 내 말은 무용지물인 듯 했다. 난 그렇게 돈기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보러 갔다. 그 쪽에는 예술가의 집이 있었는데, 정말 특이하고 기괴한 모양의 물건들이 가득했다. 모두 재활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도 컸고, 한참을 보다 보니, 따로 있을 때는 보잘것없이 보이는 쓰레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탈바꿈 되어있었다. 변덕스러운 아이슬란드의 날씨가 그 날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이로운 하늘을 보여준 날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인상 깊게 남은 것 같다. 그렇게 신나게 돈기와 사진 촬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돈기가 소리를 질렀다. 인내심의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모두가 너무 놀랐고 나와 워크캠프 종료일까지 꾹 참기로 한 약속을 어긴 돈기가 너무 미웠다. 처음에는 29살이나 된 성인이 어리광을 부리는 듯 했는데,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니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힘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15명의 참가자는 이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워크캠프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정이 날 때 까지 돈기는 잠시 주위의 호스텔에서 머물러야 했다. 안 그래도 쓸쓸할 돈기를 혼자 보내기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위로도 하며, 화도 내며 돈기의 옆을 지켰다. 그 동안 나머지 참가자들은 돈기의 향후 거처에 대한 투표와 회의를 진행했다. 결과는 폭력을 행사한 참가자와는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난 나이가 어린 참가자도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불합리한 처사에 조금은 화가 났다. 케이트의 과실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채, 그녀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그런 행동을 하기 전까지의 돈기의 고충은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화가 났다. 결국 돈기는 나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정말 좋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날 리더 피터와 돈기와 나는 시티호스텔로 가는 길에 모두가 보고 싶어 하던 오로라를 보게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 했다. 모두가 아이슬란드에서 녹색의 띠를 상공에서 보고 싶어 했지만, 9월부터 3월이 보기 좋은 기간이고, 잘 보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가야 했었기 때문에, 도심에서 보는 오로라는 너무나 경이로웠다. 그토록 기다렸던 오로라를 맘껏 즐길 수 없는 맘이 불편한 때에 봐야하는 심경이 착잡했다. 모두함께 즐길 수 있고, 모두가 웃으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이라 더 아쉬웠다.
결국 돈기는 시내에 있는 호스텔로 거처를 옮겼고, 그렇게 우리는 계속 우리의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전시회 날이 다가왔고, 심사 숙고 끝에 각자의 사진 한 장씩을 제출했고, 리더들은 인화하여 전시회 준비를 시작했다.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사진을 걸고 난 후에 한달 동안 전시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거리에서 하는 전시회 같은 것을 기대했었는데, 조금은 기대에 어긋났다. 하지만 예쁜 카페 이층에 우리 참가자들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조금은 행복하기도 했다. 결국 불화가 있긴 했지만, 돈기도 우리의 팀원이었기 때문에, 리더에게 부탁하여 전시회에 초대하였다. 서로 어색하게, 또 서로 반갑게 맞이하여 그 속에서 우린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전시회에 걸릴 사진을 다 걸고 정리가 끝나니 아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마음에 허무하기도, 찝찝하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무언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어떤 조직 속에 속하여 공동의 목표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이 너무 짜릿하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이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교류했기 때문인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처음 왔을 때 아이슬란드는 온 세상이 하얬다. 내 마음이 꽁꽁 얼었던 것 처럼. 아이슬란드는 한달 동안 머물다 간 내가 떠나는 날에는 내 마음을 녹였듯, 끝이 없는 녹색으로 작별인사를 해 주었다.
우선 인원이 많다 보니, 조를 나누어 식사 담당 조와 설거지 조 등 각자 할 일을 분담하였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자기가 속한 조원들과 함께 식사 준비를 하고, 설거지를 하며 그 동안 서먹했던 분위기는 점점 따뜻한 공기로 변해갔다. 밥을 먹으면서도 이야기 꽃이 끊이질 않았는데, 이런 저런 얘기, 상대방 나라에 대해 궁금한 점 등 서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서로를 알아가기 바빴다. 포토마라톤이라는 우리의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에 앞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꽤 충분했기에, 지역 사회를 위해 공동묘지에서 봉사활동도 참여했다. 외국 공동묘지는 처음 보았다. 변덕스러운 아이슬란드 날씨 덕에 꽁꽁 껴입은 두꺼운 잠바도 낙엽을 쓸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치우는 동안에는 불필요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솔선수범했고, 누구도 잔꾀를 부리지 않았다. 서로 웃으며, 대화하며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청소를 재미있게 했던 것 같다. 낙엽을 쓰는 동안에 옷이 더러워지기 때문에 공동묘지 사무실에 있는 작업복으로 갈아 입어야 했다. 멜빵바지나 장화 같은 작업에 필요한 것들이 색깔도 크기도 제 각각이어서 옷을 갈아 입은 서로를 보며 어울리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고 사진도 찍으며 추억으로 만들었다.
이제 우리의 본래의 목표로 돌아가, 사진 전시회의 주제를 정하기 위해 회의를 했다. 아이슬란드라는 이름부터 자연친화적인 느낌을 풍기는 나라에서 우리가 여기 모인 목적과 부합하는 주제가 무엇일까? 서로 많은 의견을 내 놓았다. 아이슬란드의 건물들을 자연과 연관시켜서 해석해 보는 건 어떨까, 우리가 자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사진에 담아 전시하면 어떨까, 아이슬란드에 있는 자연친화적인 기업들과 관련 있는 일들을 소개하는 전시회는 어떨까 하며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모두 같이 고뇌했다. 그러다가 끝이 없는 회의에 지친 우리들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한 줄로 요약하여 전시회의 주제를 투표에 부쳤다. 그렇게 해서 선정된 우리 전시회의 주제는 “Grey in Green” 이었다. 현대 문명, 기술, 인간의 이기심이 이미 자연의 의도와는 다른 길로 걷고 있다. 물론 대다수는 심각성을 인지하여 자연보호, 환경보호라고 외치고 있지만, 허상일 뿐 실질적인 행동은 극히 미미하다. 우리는 사진을 통하여 이러한 세태를 상징적으로 말하고 싶었다. 회색이라는 문명의 심볼과 자연의 심볼인 녹색. 이 두 색깔이 공존하는 그 모습을 사진 안에 담고자 했다. 그렇게 주제가 정해지고, 우리는 날짜를 정해 각자의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주제는 참 참신하고, 좋았는데 막상 숙소 밖을 나와 정처 없이 돌아다니며 대상을 찾으려니 아득했다. 아이슬란드에서 녹색을 보기란 참 힘든 일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를 하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도 교환하고, 참 열심히 찍으러 돌아다닌 것 같다.
이렇게 평화로운 나날들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서 일까? 사건이 발생했다. 돈기라고 벨기에에서 온 친구가 있었는데, 러시아에서 온 케이트와 불화가 불거진 것이다. 돈기의 말로는 케이트가 자신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으며, 자신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근 며칠 새에 돈기의 상냥한 얼굴 대신 근심 가득한 얼굴을 봐서 걱정이 되었다. 돈기는 모두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모두가 널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며, 위로했지만, 이미 모두에게 등 돌린 후에 내 말은 무용지물인 듯 했다. 난 그렇게 돈기의 기분을 풀어 주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해변을 보러 갔다. 그 쪽에는 예술가의 집이 있었는데, 정말 특이하고 기괴한 모양의 물건들이 가득했다. 모두 재활용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생각보다 규모도 컸고, 한참을 보다 보니, 따로 있을 때는 보잘것없이 보이는 쓰레기들이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탈바꿈 되어있었다. 변덕스러운 아이슬란드의 날씨가 그 날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경이로운 하늘을 보여준 날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인상 깊게 남은 것 같다. 그렇게 신나게 돈기와 사진 촬영을 하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갑자기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돈기가 소리를 질렀다. 인내심의 끈을 놓아버린 것 같았다. 모두가 너무 놀랐고 나와 워크캠프 종료일까지 꾹 참기로 한 약속을 어긴 돈기가 너무 미웠다. 처음에는 29살이나 된 성인이 어리광을 부리는 듯 했는데,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니 당사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힘든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15명의 참가자는 이런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계속 워크캠프 활동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정이 날 때 까지 돈기는 잠시 주위의 호스텔에서 머물러야 했다. 안 그래도 쓸쓸할 돈기를 혼자 보내기 마음이 불편했던 나는 위로도 하며, 화도 내며 돈기의 옆을 지켰다. 그 동안 나머지 참가자들은 돈기의 향후 거처에 대한 투표와 회의를 진행했다. 결과는 폭력을 행사한 참가자와는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난 나이가 어린 참가자도 있었기에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불합리한 처사에 조금은 화가 났다. 케이트의 과실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은 채, 그녀는 피해자라고만 생각하는 것이 그런 행동을 하기 전까지의 돈기의 고충은 조금도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화가 났다. 결국 돈기는 나가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정말 좋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날 리더 피터와 돈기와 나는 시티호스텔로 가는 길에 모두가 보고 싶어 하던 오로라를 보게 되었다. 정말 아이러니 했다. 모두가 아이슬란드에서 녹색의 띠를 상공에서 보고 싶어 했지만, 9월부터 3월이 보기 좋은 기간이고, 잘 보기 위해서는 북쪽으로 가야 했었기 때문에, 도심에서 보는 오로라는 너무나 경이로웠다. 그토록 기다렸던 오로라를 맘껏 즐길 수 없는 맘이 불편한 때에 봐야하는 심경이 착잡했다. 모두함께 즐길 수 있고, 모두가 웃으며 시간을 보낼 것이라 생각했던 그 순간이라 더 아쉬웠다.
결국 돈기는 시내에 있는 호스텔로 거처를 옮겼고, 그렇게 우리는 계속 우리의 주제에 맞는 사진을 찍기 위해 움직였다. 그렇게 전시회 날이 다가왔고, 심사 숙고 끝에 각자의 사진 한 장씩을 제출했고, 리더들은 인화하여 전시회 준비를 시작했다. 시내에 있는 카페에서 전시회를 가졌는데, 우리가 사진을 걸고 난 후에 한달 동안 전시될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거리에서 하는 전시회 같은 것을 기대했었는데, 조금은 기대에 어긋났다. 하지만 예쁜 카페 이층에 우리 참가자들의 사진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조금은 행복하기도 했다. 결국 불화가 있긴 했지만, 돈기도 우리의 팀원이었기 때문에, 리더에게 부탁하여 전시회에 초대하였다. 서로 어색하게, 또 서로 반갑게 맞이하여 그 속에서 우린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전시회에 걸릴 사진을 다 걸고 정리가 끝나니 아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마음에 허무하기도, 찝찝하기도 했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지닌 무언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고, 어떤 조직 속에 속하여 공동의 목표로 무언가를 해낸다는 것이 너무 짜릿하다는 것도 알 수 있는 기회였다. 우리는 이주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교류했기 때문인지,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처음 왔을 때 아이슬란드는 온 세상이 하얬다. 내 마음이 꽁꽁 얼었던 것 처럼. 아이슬란드는 한달 동안 머물다 간 내가 떠나는 날에는 내 마음을 녹였듯, 끝이 없는 녹색으로 작별인사를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