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에서 찾은 특별한 3주, 나를 만나다 불어와 함께

작성자 김아영
프랑스 CONC 063 · RENO 2012. 06 Bains-sur-oust

BAINS SUR OUST 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3주 동안 정말로 특별하고 소중한 경험을 했다. 휴학을 하고 가을학기에 복학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휴학을 알차게 마무리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친한 프랑스어 선생님께서 예전에 다녀오셨던 워크 캠프를 소개해 주셨다. 저는 그 날 바로 워크 캠프에 대해 알아보았다. 불어교육과여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에 관심이 많아 프랑스로 신청서를 보냈다. 3주 동안 워크캠프를 하는 저의 목표는 문화 체험 그리고 노동을 하는 것이었다. 프랑스를 공부하는 입장으로 3주 동안 프랑스에서 지내면서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싶었다. 또한 개인적인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자 하는 생각도 있었다.
12시간 비행을 하고 바로 파리에서 흐동으로 3시간 기차를 타고 도착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워크 캠프 사람들을 만났다. 혜진언니, 혜정언니, 재은언니 그리고 저로 한국인이 총 4명이었다. 다른 캠프에 비해서 한국인이 많은 편이었다. 캐나다 퀘백에서 온 줄리와 앤드류, 러시아에서 온 갈리나, 슬로베니아에서 온 단짝 주즈카와 페트라, 그리고 이번 워크캠프 리더 들인 프랑스인인 요한과 클라란스로 총 11명으로 이뤄졌다.
다음 날부터 일을 시작했다. 시청 옆에 있는 벽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벽이 꽤나 높았다. 삐끼삐끼라고 불리는 작업을 하루 종일 했다. 대못과 망치로 돌 사이사이의 오래된 시멘트를 정리해 주는 작업이었다. 오랫동안 망치와 대못을 들고 두드려 되니, 팔도 쑤시고 어깨도 아팠다. 하지만 아직은 첫 날이어서 그런지 신기함 반 피곤함 반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하는 노동이어서 그런지 나는 옆에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기도 하고, 혼자 노래도 흥얼거리며 돌을 깼다. 주말을 포함해서 거짐 5일정도 그 벽에서 일을 하였다. 하지만 이 5일정도에는 2시 쯤에 작업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자유시간을 보냈다. 일은 오직 삐끼삐끼만 하는 단순한 작업이여서 조금은 지루한 면도 있었다. 브러쉬를 마지막으로 그 벽을 다 마쳤을 때는, 깔끔해진 벽의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다음으로는 공동묘지 옆에 있는 벽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이 벽은 그 전과는 달리 삐끼삐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쌓여있는 위에 부분의 돌들을 해체하고, 그 돌을 다른 돌들과 다시 쌓고, 그 돌들 사이에 시멘트반죽을 채워넣고, 다 완성한 돌들 위로 반반하게 모양을 맞춰서 벽을 완성하는 것이었다. 사실 말이 보수이지 거의 헌 벽을 허물고 새 벽을 만드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벽을 작업하는 것이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역시 일이 힘들어서이다. 다른 보수 관련 워크캠프에 참여해 보지 않아서 비교는 못해보지만, 체력적으로는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 지역이 날씨가 꽤나 궂기 때문에, 비가 자주 내린다. 그래서 비가 와도 우비를 입고 계속 작업을 해야 했다. 리더를 제외하고든, 남자가 한 명이었기 때문에, 남자고 여자고 일을 열심히 해야만 하루 작업량을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항상 일의 분배에서 문제가 생겼다. 몇몇 여자아이들이 리더들과 더욱 친밀해져서 일을 할 때 조금씩 꾀를 부리는 것이 점점 커지더니 나중에는 보란 듯이 일을 안하거나, 쉬운 일만 골라한다던가, 작업장을 빠져나갈 구실을 만드는 등 서로 얼굴 구길 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보이지 않는 긴장감과 신경전이 있었다. 일의 차원에서 가장 아쉬운 것은, 이런 일이 조금 심각하게 번지기 전에 용기를 내서 문제점을 제기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생활리더가 많은 외부활동을 준비해서 인근 주변을 체험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슬로바키아 주즈카란 친구는 하이킹을 워낙 좋아해서, 항상 하이킹을 가자고 했다. 하이킹은 주변 인근 강가 근처 산으로 갔다. 넓은 보리밭에 새소리를 들으면서 나무그늘 아래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걸으면서 주말 오후를 보내기도 했다. 생활리더는 더 좋은 풍경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해서 올라가기도 했다. 비가 자주 오는 지역이라 산이 질퍽했지만 끝까지 올라가보니, 탁 트인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아기자기한 시골 집들을 보면서, 나중에 저렇게 집을 짓고 저렇게 여유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을 서로 이야기하며 왔다.
마을 근처에 있는 목장에도 견학을 갔다. 목장 주인이 직접 우유가 되는 과정거치는 장소들과 소들을 보여주었다. 또한 그 곳에서 만든 우유를 마셔볼 기회 있었다. 의외로 외국인 친구들 중에 우유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외국 아이들은 모두 우유를 잘 마시는 줄 알았기 때문에 놀랐다. 나에게도 이러한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문화의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직접 겪어보면서 그 고정관념을 깨기 시작하였다.
또 어느 날은 우리가 빌려서 쓰고 있는 축구장의 주인 격인 동네 축구클럽의 80주년 행사에 초대를 받았다. 바로 종합 체육관 옆이어서 가까웠다. 그 곳에서는 많은 동네 주민들이 뜰 곳곳에서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또 하나의 문화적 차이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노인정은 많은 분들이 화투를 치고 계시거나 가만히 앉아계시지만, 이곳에서의 노인 분들은 다들 몸을 사용하는 간단한 스포츠게임을 즐기고 계셨다. 우리도 그 곳에서 게임을 구경하고, 밖에서 이야기를 우리끼리 이야기를 나누다가 추워서(정말 저녁에는 겨울 옷 필수입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큰 강당에 테이블이 세팅이 소소하지만 귀엽게 되어있었다. 그 곳에서 프랑스식 뷔페를 먹었다. 밥을 사용한 요리, 다양한 고기, 파스타, 푸아그라 등등 다양한 프랑스 음식을 한 자리에서 맛 볼 수 있었다. 와인도 마셨고, 입가심으로는 다양한 치즈와 케익들이 나왔다. 그 곳에서 맛 본 eclaire라는 커피맛 빵을 맛보고는 , 정말 그 빵을 너무 좋아하게 되어서 그 빵을 만드는 동네 빵집을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이렇게 좋은 경험인 뷔페에 뒤따른 대가는 바로 2시간 동안 똑 같은 음으로만 연주를 하는 할아버지 밴드의 음악을 들어야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노래조차도 그립다.
Bains-sur-oust라는 작은 동네에는 꽤나 멋진 교회가 있었다. 하루 종일 15분 마다 교회 종을 울린다. 노트르담 드 빠리의 꽈지모도가 생각나는 교회였다. 항상 교회 안에 들어가보고 싶었는데, 교회 앞을 지날 때마다 문이 닫혀있어서 아쉬웠다. 그러나 어느 날에는 Bains-sur-oust 에 있는 작은 예배당(chapelle)들과 역사적인 장소를 둘러볼 것이라고 리더가 말을 했다. 처음으로 간 교회는 바로 우리 동네의 (작은 동네에서 지내다 보면, 우리 동네라고 하게 되더라구요. 그만큼 편했고, ) 교회였다. 동네 주민 분께서 직접 가이드도 해주셨다. 언제 지었고, 교회 안에 있는 성스런 표시에 관해서도, 세례를 받는 곳, 고해성사하는 곳, 부자 사람들의 무덤, 그리고 건축물의 구조 때문에 위험해서 한 동안 보수 공사를 했다는 것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또한 특별허가로 저희는 종탑까지 걸어서(^0^) 그 좁고 어두컴컴한 계단을 올라갈 수 있었다. 한 가득한 흰 거미줄과 비둘기 배설물들 그리고 먼지들을 뚫으면서 옛날 수도승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경험은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세세하게 교회 안을 둘러보는 것은 처음이어서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교회의 지붕 바로 아래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또 차를 타고 프랑스가 여러 부족 단위였을 때, Bretagne의 왕이 전쟁을 치뤄서 승리를 거둔 곳에도 가봤다. 도로가 옆에 있어서, 자칫하면 그냥 지나갈 수 있는 곳에서도 Bretagne의 역사의 시작점을 들을 수 있었고, 불어 말고도 Bretagne 지방만의 언어가 있다는 것도 알았고, 직접 그 언어를 보기도 했다. 워크캠프가 아니었으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다른 아지가지하고 귀여운 예배당들도 구경했다. 같은 예배당이어도, 각각의 예배당만의 특색있는 그림체와 스테인드글라스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오전 중의 노동으로 몸은 많이 지쳤지만, 좁은 숲길을 작은 자동차로 달리면서 노래를 들으며 달리는 기분은 매우 신선하고 좋았다.
우리 워크캠프에 자주 오는 동네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동네 락 밴드의 일렉트로닉 기타리스트셨다. 그 분께서 동네 음악 축제 때 밴드 공연이 있으니 꼭 오라고 초대해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저녁에 교회 앞 광장에 나갔다. 아코디언을 연주하시는 할아버지들 공연 차 앞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춤추고 있고, 동네 사람들은 맥주 한잔씩 들고 어슬렁 다니고 있었다. 춤을 좋아하는 요한과 페트라는 연주에 맞춰서 길거리에서 열정적으로 춤을 추었다. 많은 동네 사람들이 쳐다보았지만, 아랑곳 않고 춤을 추는 패트라와 요한을 보니, 참 유러피안 답다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가 공연하는 곳으로 이동해서 (이동이라 봤자, 바로 옆 골목이지만) 할아버지네 밴드를 기다렸다. 공연 전에 들뜬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와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는 할아버지에게서 이 분이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걸 보니 나도 덩달아서 기분이 좋았다. 비록 할아버지들로 뭉친 락 밴드였지만 공연 분위기와 실력만큼은 어느 밴드에게도 뒤쳐지지 않았다. 특히 저는 거지몰골을 하고 있는 젬베 연주자에게 푹 빠졌었는데, 공연 내내 할아버지보다는 젬베 연주자만 쳐다보았다. 공연이 끝나고 나중에는 펍 옆에서 혼자 서있는 연주자에게 가서 악수도 청해서 악수도 했다! 우리 워크캠프 아이들은 제일 앞 테이블에서 신나게 음악에 맞춰 놀았다. 가끔은 바지가 다 내려가서 엉덩이를 훤히 내보이고 다니는 동네 청년들이(나중에 Redon에서도 마주쳤다. 아마 이 동네가 아니라 Redon에 사는 젊은이였던 것 같습니다. ) 말도 건내고 요한과 같이 춤도 췄지만, 술에 많이 취해있었고, 그리 예절 바르지도 않아서 아이들 모두 꺼렸다.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축제이지만 꽤나 멋졌고 즐거웠다.
그 기타할아버지랑은 들판도 같이 놀러갔다. 할아버지의 자동차와 중간에 합류한 알렉스라는 친구의 차를 가지고 인근 들판으로 갔었다. 그 들판에 올라서니 프랑스 시골의 전경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오면서 보았던, 너무나 예쁜 시골 들판에 나의 두 발로 올라서서 한껏 부는 바람을 받으면서 걸으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장면 안에 들어와있는 듯 했다. 들 꽃들과 마구 난 풀들을 헤치면서 걸었다. 그리고 곳곳에 있는 고인돌 유적들을 살펴보기도 했고, 아찔한 절벽이 있는 곳에서 쉬면서 사진도 찍었다. 날씨가 화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소소하고 Bretagne다웠던 나들이었다.
또 제대로 된 하이킹으로는 걸어서 Redon까지 갔던 것이다. 총 다섯 시간 정도 걸었다. 샌드위치 재료를 싸서 손에는 뉴뗄라와 마요네즈 그리고 바게트 다발을 들고 길을 나섰다. 아름다운 길을 보여주고 싶었던 리더들은 빙~돌아서 Redon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였고, 덕분에 좋은 풍경은 많이 보았다. 길을 가다가 보는 프랑스 시골의 집을 보면서 내가 나중에 짓고 싶은 집들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주인과 함께 산책 나온 강아지(엄밀히 말하면 개다. 그것도 엄청나게 큰 개)와 인사도하고(물론 주인과 몇 마디 나눈게 다지만,) 작은 운하를 따라서 걸으면서 요트를 타고 산책하는 노부부를 보기도 하고, 길가에 피어있는 양귀비 꽃을 보기도 하고, 큰 걱정거리 없이 맘껏, 실컷 걸었다. 다 걷고 목적지인 Redon에 도착을 하고서는 Grande rue 를 걸으면서 전통 주택양식 설명을 듣기도 하고, 또 교회도 들어가 보았다. 우리가 머무는 Bains-sur-oust 보다 조금 더 큰 동네로 조금 더 활기가 돌았다. 지친 몸을 이끌어 우리는 카페로 갔다. 테라스에서 몸을 편하게 맡길 수 있는 큰 의자에 앉아 볕 아래에서 맥주나 콜라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웨이터와 손님의 싸움도 구경도 하면서 카페에서 여유롭게 오후를 보냈다. 계속 누워만 있다가 몸이 간지러워서 일어나서 혜진 언니와 같이 안의 골목으로 들어가보았다. 배가 고파서 들어간 빵집에서 우린 한국인 빵집 주인을 만났다! 아주머니도 이 시골에 살면서 한국인을 만난 것은 처음이라고 너무 반갑게 , 살갑게 맞이해 주셨다. 게다가 빵까지 공짜로 주셨고, 우리는 다음에 Redon에 다시 오게 된다면 꼭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정말로 워크캠프 마지막 날에 Redon역에서 기차를 타는 데 기차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 라면과 소주 그리고 고추장을 들고 아주머니를 다시 찾아 뵈었다. 아주머니는 너무나도 좋아하셨고, la Rochelle 떠나는 나에게는 지인이 그곳에 머문다고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명함도 주셨다. 여행의 묘미란, 항상 뜻밖에 있는 것 같다. 작은 만남이지만 그 뜻밖이란 점 때문에 더 기쁘고 기억에 남았다.
Bains-sur-oust에는 학교가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어린 아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총 두 번 갔는데, 처음에는 외국인 어린이들을 볼 생각을 하니 조금은 두려웠다. 하지만 그 두려움도 잠시, 아이들이 모두 너무 귀여웠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아이들도 나중에는 같이 블록도 쌓고 업혀달라고 떼쓰기도 하면서 친해졌다. 태극기의 파란색과 빨간색을 거꾸로 그린 아이, 음양의 조화를 벌써 깨닫고, 검은색과 흰색으로 색칠한 아이, 조용하게 옆에서 부끄러워하면서 있던 아이, “전쟁이다!”를 외쳐대면서 나무블럭을 던지는 아이부터 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두번 째로 학교에 갔었을 때는, 조금 더 큰 아이들을 만났다. 그 때는 수업의 일환으로 참여했었다. 아이들이 준비한 질문에 대답을 하는 형식이었는데, 나는 아이들이 “정말로 개를 잡아먹나요?”라는 질문이 나올 까봐 어떻게 대답을 잘 해줄까 걱정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한국은 얼마나 크냐, 얼마나 머냐, 인구가 몇이냐 등 꽤나 수적인 질문만을 해줘서 난처할 뻔 했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_여기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도 개고기를 먹냐는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는데, 은근히 기분도 나쁘면서 대답을 어떻게 해줘야 할 지 곤란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농담으로 ‘앙트레로 치와와, 본 음식으로는 리트리버, 디저트로는 시츄를 먹죠’라고 넘기기도 했지만, 가끔 그 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있어서 오히려 더 해명을 해야 할 때도 있었다. 어쨌든, 사범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으로서, 여기서 프랑스 아이들과 함께 수업도 했던 것은 나에겐 색다르고 좋은 경험이었다. 아이들이 자기들의 영어 시간 때 같이 와서 수업을 해주면 안되겠냐고 물었을 때 너무 귀여웠다. 또 쉬는 시간에 공놀이도 같이 하자고 하면서 말도 많이 걸고, 종이와 펜을 가지고 와서 한글로 자기 이름을 써달라고 하는 여자아이들을 보니 살갑게 대해주는 아이들이 너무 고마웠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유로 경기가 있었던 날 저녁에 우리는 간혹 엽서와 전화카드를 사러 갔던 동네 슈퍼 겸 빵집에 갔다. 항상 말투가 너무 멋있었던 주인이었는데, 어느 날은 기타할아버지가 그 주인이 게이라고 말해 주었는데, 그 상황이 꼭 마치 일급 비밀을 전달해주는 모습이셔서 내가 그 이야기에 놀라는 척을 안하면 할아버지가 꽤나 실망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별로 놀랄 일도 아니었지만 정말 깜짝 놀라는 척을 해주었다. 그리고 다음에 나는 파리에서 게이 페스티벌을 보면서 다시 기타 할아버지를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여기 계신다면 얼마나 놀라실까 하고. 어찌되었든, 우리는 바에서 설치된 작은 스크린에 맥주(Redon을 다녀온 후로 항상 맥주는 모나코를 시켰다.)를 마시면서 경기를 관람했다. 술에 꽤 취한 듯한, 그리고 자기 조국인 프랑스를 너무나 싫어하는 듯한 청년이 뒤에서 “에스빠-뇰!”을 쉴세 없이 외쳤다. 하여간 재미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 청년의 바람대로 프랑스는 경기에서 졌고 우리는 특별히 누군가를 응원한 것이 아니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텐트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가 일을 하는 곳이 시청과 공동묘지 사이여서 지나가는 주민들을 많이 보기도 했고, 가끔은 결혼식도 볼 수 있었다. 단정한 원피스에 예쁜 꽃을 든 할머니들이 공동묘지에 가는 것은 정말 자주 봤다. 주말이면 가족들이 다들 와서 꽃을 놓고 가는 등 나에게는 조금 생소한 문화였고, 참 아름다운 생활 습관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책에서 보거나 학교에서 들었던 결혼 문화를 직접 보는 것도 너무 신기했다. 한국과는 조금 다른 소박한 결혼 문화를 보면서, 한국의 결혼 문화도 다시금 생각 할 수 있는 기회였다.
1박 2일로 인근 도시로 놀러 갔다. 오후에 Renne에 도착해서 유명한 대학로에서 리더들의 친구들을 바에서 만나서 맥주를 한 잔 하고, 케밥도 먹고, 어둑해지자 저녁의 투어를 보여주겠다면서 밤거리의 Renne을 구경했다. 골목 구석구석도 돌아다니면서 , 멋진 오페라 공연을 하는 곳, 저녁 조명이 멋있는 시청 그리고 오래된 역사를 지닌 문을 돌아다니다가 역시 Bretagne 답게 비가 쏟아졌다. 소나기를 피하느라 건물 밑에서 비를 피했다. 그 건물의 기둥이 마치 로마 신전 기둥 처럼 웅장했다. 테라스에 있는 빨간 꽃들, 돌 바닥에 떨어지는 빗방울과 그 바닥을 비추는 전봇대는 아직도 그림처럼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서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다가 바에 들어가서 버스 막차 시간까지 요한의 마술카드를 구경하면서 놀았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요한의 집으로 가서 잤다. 다음날 일찍 집을 출발해서 우리는 중세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Dinan으로 갔다. 반지의 제왕의 세트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높은 다리와 건물들은 정말로 시간 이동을 한 듯 했다. 도시를 둘러싼 큰 성들도 구경하고, 마침 장이 서서 시장도 구경했다. 오르막 내리막 길이 유독 심한 동네여서 구경하는데 힘이 들었지만, 아기자기한 가게들과 전통 건물들을 자세하게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디낭은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는지, 프랑스인 관광객도 많았고,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비가 많이 와서 시장에서 빵과 발라먹는 고기, 그리고 사과를 사고 디낭에 있는 요한의 집에 가서 먹었다. 간단하지만 참 맛있었다. 그리고 자유시간을 한 시간 정도 가졌다. 다른 아이들을 사고 싶은 물건을 샀고, 언니들과 나는 팔찌를 함께 맞췄다. 개인적으로 팔찌는 참 좋은 기념품 같다. 여행하면서 팔찌를 종종 샀는데, 샀던 곳을 항상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을 몸에 지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겐 매우 소소하게 이야기가 담겨있는 매력적인 물건이다. 우리는 Dinan을 뒤로 한 체, St.Malo 로 향했다. 바다를 보러 간다는 말에, 한 번도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슬로바키아, 러시아 애들이 매우 들떴었다. 멋진 항구 도시에 도착함과 동시에 눈 앞에 펼쳐 진 것은 많은 배들이었다. 생말로를 둘러 싼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 또한 역시 많은 관광객들이 있었다. 우리는 성벽을 올라가 보았다. 날씨는 먹먹하고,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바다를 꼭 보고싶다는 아이들 덕분에 우리는 바람이 정말로 심하게 불어도 해변가로 나갔다. 하지만 가슴이 탁 트인다는 표현을 그 바람 덕분에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도 가끔 너무 습하고 더울 때면 St.Malo 의 세찬 바람을 맞으며 지평선을 향해 팔을 벌리고 싶다. 이 날은 6월 21일로, 프랑스 전역에서 음악 축제가 열리는 날이었기 때문에,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Renne의 대학로로 다시 가기로 했다. 그 전날 과는 다르게 길거리 곳곳에서 음악을 연주하거나, 연주하면서 퍼포먼스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 찼었고, 분위기는 들떠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카페에 계속 앉아있었고, 너무 지루했던 나는 혜진 언니와 잠깐 걷고 온다며 자리를 떴다. 신나는 길거리 분위기에 취해서 골목 너무 깊숙이 들어갔을까, 분위기는 조금 언더의 분위기로 흘러갔다. 디제이들이 길거리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었고, 술에 취한 젊은이들도 많았다. 더 걸어 들어가다가 그만 가봐야겠다는 생각에, 제자리로 돌아오니 모두들 우리를 찾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너무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다른 때면 몰라도, 축제 때여서 술 취한 사람들도 많고 불어도 못하는 동양 여자애 둘이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찾으러 다녔던 것이다. 다시 우리는 바들이 많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비도 오고 사람들도 많아서 사람들이 어디고 가득했다. 자리를 찾기 힘들어서 골목에 서있는데, 한 바 앞에서 할아버지들이 신나는 재즈를 연주했고, 그 노래 소리에 끌려서 길가로 나온 남녀들이 짝지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오직 그 현재에 충실하며 행복하게 춤을 추는 사람들이 너무 멋졌다. 엄마와 같이 춤을 추는 여자아이,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는 연인들, 부부처럼 보이는 사람들… 이렇게 길거리에서 음악을 맘껏 들으면서 그 행복함을 몸으로 표현 할 수 있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워크캠프가 거의 끝나갈 즈음에 우리는 처음 우리를 초대해서 반겨줬던 마을 분들을 초대했다. 각 나라의 음식을 작게 만들어서 같이 맛 볼 수 있는 작은 뷔페형식이었다. 우리는 부침개와, 주먹밥을 만들었다. 사람들이 고추장이 들어간 주먹밥을 정말로 좋아했다. 와인과 샴페인 그리고 케익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는 정말 우리나라보다 초대 문화가 더 익숙한 듯 했다.
인생을 참 퍽퍽하지 않고 유들유들하게 사는 듯 했다. 나도 이런 사람들과 생활하다 보니 조금은 여유로운 삶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여유롭게 살면서 즐기는 것이 단순히 열심히 앞만 보며 달리는 것보다 삶의 질을 더 높일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마지막 날을 아쉬워하며 그 전날에 우리는 근처 바다로 나갔다.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나가니 조용한 바닷가와 작은 모래 사장이 있었다. 조용한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이 소소한 일상이 정말로 그리울 거라는 아쉬움이 들어 조금은 씁쓸했다. 우리는 바닷가가 보이는 레스토랑에 가서 샐러드와 맥주를 시켜서 아쉬움을 달랬다. 좋은 사람들과 헤어진다는 것은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혜정언니와 재은언니는 재은 언니가 미국에 가기 전에 한국에서 보기로 했고(정말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벽에 시멘트를 메우면서 외쳤던 한신포차의 닭발에 소주를 한국에서 먹으니 그 기분 또한 새롭고, 좋았다. ), 혜진언니는 12월에 한국에 들어오면 그 때 보기로 약속하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이렇게 어딜 나가거나 초대되는 경우가 아니면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배드민턴을 치거나, 요한의 카드마술을 구경하거나, 가지고 온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이야기를 하거나, 아니면 정말로 아무 일도 안하고 앉아있었다. 가끔은 동네에 있는 l’espace des jeunes에 가서 탁구나, 포켓볼 그리고 미니풋볼을 할 수 있었다. 또 저녁에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면서 놀기도 하고, 우리나라 마피아 게임과 비슷한 게임을 하기도 했고, 각 나라에서 가지고 온 술을 맛보면서 놀기도 했다. 어느 날은 데낄라를 마시는데, 소금과 라임으로 같이 마시는 데낄라는 처음이었다. 데낄라를 마시고서 비빔면을 끓였는데, 프랑스 친구도 맛있어했다.
평소에는 물을 사러 혹은 과자를 사러 슈퍼에 가고, 좋아하는 빵 집에도 가고, 하릴없이 동네를 걷기도 하고, wifi를 하러 도서관 문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기도 하던 3주가 금방 가버렸다.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이렇게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다양한 사람들과 하루종일 같이지내는 환경은 정말로 많은 것을 알려준다. 그 가르침을 받아드리는 것은 순전히 나의 역량으로, 가끔은 힘들기도 하고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결국은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의 마음과 여유, 그리고 배려가 생겼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이번 경험은 정말로 나에게 뜻 깊었다. 아름다운 자연과 순수한 노동 그리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보낸 3주는 평생 잊지 못 할 귀중한 보물이 되었다. 나는 워크캠프를 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사람에게,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떠나라고.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기회의 장을 제공해주는 IWO기관에 깊게 감사하고 있다.
기회가 다시 된다면 또 다시 참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