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두려움 반, 설렘 반, 프랑스 워크캠프
LE MEU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인터넷에서 읽은 사람들의 후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각각 다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외국에서 일도 하며 그 지방사람들처럼 살아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다. 그런 황홀한 기대를 안고서 신청했지만 출국날짜가 다가올수록 걱정이 되었다. 기차를 타고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프랑스어 할 줄 모르는데, 내 부족한 영어로 소통이나 할 수 있을까? 바뀐 잠자리나 음식은 적응할 수 있을까? 갑자기 아프기라도 하면? 크고 작은 걱정이 머리를 짓누르고 스스로를 의심하고, 급기야 떠나기 전날에는 비행기 티켓을 취소하고 집에 있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나는 변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물론 유럽에 와서는 집생각은 많이 나지 않았지만, 아마 떠나기 전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 어떤 새로운 걸 맞닥들인다는 생각에 두려웠던 것 같다.
-첫 날, 첫 만남
런던과 파리에서 몇일 자유롭게 여행한 후, 인포싯에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Le Meux로 가는 열차를 탔다. 국철같은 느낌의 열차나, 열차를 타기 전 스스로 각인을 해야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나에겐 모두 새롭고 낯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드디어 종착역 도착. 역으로 나오니 이미 나와 같은 캠프에 온 것 같은 몇 명의 내또래 아이들이 보였다.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3주동안 우리의 Technical Leader가 될 Francois와 인사를 하고 그의 차를 타고 캠프사이트로 향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캠프사이트에는 이미 거의 모든 캠퍼들이 모여있었다. 리더인 프랑스인 Jean, 카탈란인 Mariona, 터키인인 아티제, 우마이, 불라, 딜란, 모스크바에서 온 야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엘준과 아제르, 그리고 Le Meux 지방 아이들인 쿠엔틴, 티보, 뱅상, 제레미, 오헬리, 레미가 캠퍼였다. 아무래도 서먹서먹했던 첫날에는 시청으로 가서 우리를 환영해주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와인이나 주전부리들을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Le Meux가 속한 Compiegne 지방의 사진집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work
Le Meux에 있는 마을 교회를 수리하는 것이 우리 워크캠프의 목적이었다. 교회 외부가 아닌, 교회 바깥 부분을 맡았다. 교회 외벽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돌과 돌 사이의 낡은 콘크리트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새로운 콘크리트로 메우는 작업이었다. 글로 보면 간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세시간동안 무거운 망치를 들고 콘크리트를 벗겨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모든 부분-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새 콘크리트를 만들어, 물을 뿌려 콘크리트를 메우는 작업 과정-에 관여했다. 너무 어렵거나 까다로운 부분은 technical leader나 leader가 맡아서 해주었다. 첫주에는 비를 맞으면서 일을 했지만 둘째, 셋째주에는 따가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일을 해야 했다. 일 자체보다도, 일하러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일하기 전 준비과정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있어 우리는 한시간이나 한시간 반동안 아무일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어야 하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였다.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역사가 있는 교회가 보존되는데 내가 작은 부분이라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일터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날씨
프랑스 남부 도시들처럼 쨍쨍하고 맑은 날을 기대했던 우리들은 첫 주 내내 비가 오다가, 어쩌다 잠깐 그치고 마는 날씨에 질려버리기도 했다.(장난스럽지만 Le Meux의 날씨를 원망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까지 만들었었다!!) 우리는 이렇게 비가 잔뜩 오는 날씨에 일을 해야 했지만, 2년 전 이곳에서 열린 캠프때에는 오히려 너무 더워서 캠퍼들이 고생했다고 했다. 올해만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캠프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다른 캠프의 캠퍼들도 마찬가지로 추위를 많이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밤에는 실내에서 침낭안에서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드에 긴 청바지를 입고 잠들었었다. 파리 근교나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캠프에 참가한다면 반드시 따뜻한 옷을 챙기길 바란다. 우리캠프에 경우엔 짧은 바지와 수영복은 쓸모가 없었다.
-숙소
야외활동이 거의 불가능했고, 땅이 질척거렸기 때문에 숙소는 유도장 안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되었다. 비 오는 시기가 지나면 유도장 뒤쪽 잔디에 텐트를 쳐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텐트를 치게 된 것은 캠프 끝나기 열흘 정도 남았을 때 였기 때문에 텐트보다 유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원래 떠날때부터 숙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주로 사용한 유도장은 생각보다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여자 남자 탈의실이 분리되어 두-세칸 짜리 샤워실도 있었으며, 짐을 두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화장실도 유도장 안에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커다란 유도장 안에서 모든 캠퍼들이 침낭을 펼쳐 잠자고, 내가 하는일을 캠퍼들이 다 알 수있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는 어려웠지만, 시설만 보고 말하자면 만족스러웠다.
-역할 분담
첫 주에는 어떤 식으로 캠프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룰을 정했다. 기본적으로는 cooking team과 dishing team, cleaning team을 나누어서 매일 각각 팀별 세명이 일을 맡았다. 아침은 동네에 있는 단 하나뿐인 빵집에서 사 오고, 시리얼과 우유, 커피등과 곁들어 간단하게 해결했다. 점심 저녁은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다. 일이 끝날쯤이면 모두 배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점심, 저녁팀은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한시간 정도 먼저 떠나 음식 준비를 했다. 식재료나 캠프에 필요한 각종 소도구등은 일주일에 한번 큰 할인매장에 가서 쇼핑을 하고, 주중에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한번 할인매장을 더 가거나 동네에 작은 슈퍼에서 물건을 샀다.
-time table
8:00 기상, 아침식사
9:00 일터로 떠나기, dishing-cleaning team은 남아서 일을 한 뒤 working site에 합류.
9:30-13:00 일
12:00 cooking team은 먼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떠남
13:00-15:00 점심 & 설거지, 자유시간
15:00-18:00 일
17:00 cooking team
18:00- 저녁, 자유시간
-자유시간, 여가활동
캠프에 있는 동안 우리는 물론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독립기념일에는 마을 잔치에 가서 함께 감자튀김과 소세지를 먹고, 춤을 추었다. 또 다른 마을 축제 때에는 봉을 타고 올라가거나, 눈을 감고 물건을 찾는 게임 등등을 하며 조그마한 경품을 가져가기도 했다. 와인-치즈 시음회, 마을에서 만들어준 저녁 식사로 프랑스 음식을 많이 먹어보았다. 또 주위 지방의 다른 캠프들과 합류하여 한국인 캠퍼들도 만나고, 바비큐를 구워먹고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마지막 주에는 파리로 가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하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이 배려해주어 색다른 경험들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캠퍼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함께 볼링을 치러 갔던 것, 깜깜한 밤에 유도장 앞에 터에서 미친 듯이 폴카를 춘 것, dining tent에서 불을 끄고 춤을 춘 것,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서 샌드위치를 먹은 것, 상대가 알 듯 모를 듯 은근히 진행됐던 ㅋㅋ killer game, 각국의 욕설(?)과 노래를 배운 것, 저녁을 먹은 뒤 사람한명 지나다니지 않는 고요한 마을을 산책한 것, 함께 존레논의 노래 imagine을 부른 것... 지금 돌아보면 그저 르뮤의 그림같은 풍경을 마주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이렇게나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떠올리면 막연하게 행복해지는 추억이 생긴 것이 너무나 좋다.
-아쉬웠던 점.
우리 캠프는 드라마가 많았다. 파견기관의 오류로 한 국가에서만 4명이 캠프에 왔고, 아제르바이잔 친구 두명은 600유로를 도둑맞았고, 도중에 떠난 캠퍼들도 있었고, 서로 울거나 갈등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각자 모일때는 모르겠지만, 식사 테이블 안에서는 터키어가 통하는 여섯명과, 프랑스어로 소통하는 7-8명이 서로 자기들의 언어로 소통을 했기 때문에 러시아, 스페인, 한국에서 온 우리는 상대적으로 대화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있었다. 회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캠퍼들이 한번에 다 모이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 개선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프랑스 현지 아이들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고, 테크니컬 리더는 영어를 아예 하지 못했다. 때문에 생활리더는 영어와 프랑스어 둘다 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리더는 터키어를 쓰는 친구들에게 영어를 쓰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여러 가지 갈등은 솔직히 말하자면, 일에 대한 경우가 많았다. 캠프에 온 궁극적인 목표를 기술 배우기로 잡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캠프가 아니라 워크 캠프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생활이 스스로에게 힘들어질수가 있다. 하루의 반이 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식사 준비, 청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익숙한가, 무보수로 일을 하는 것이 보람될 수 있는가, 같은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숙고하고 워크캠프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을 사람들, 캠퍼들.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에 삼주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웃음을 띄고 있는 사람들. 쉬는 시간에는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매일 반복되는 요리시간마저 파티로 만드는 밝은 에너지의 친구들. 온 나라도, 전공도, 언어도 다르지만 마음은 다들 착하고 밝았다. 먼저 이야기를 붙여주고, 언어가 서로 잘 통하지는 않지만 그저 눈만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캠프가 끝나고 삼일 정도는 파리에서 다시 만나 함께 여행도 했다.
특히 마을 사람들과 프랑스 현지 친구들은 캠퍼이긴 하지만, 현지 사람들과 프랑스 생활에 눈이 밝아 최대한 우리의 편의를 봐주도록 노력해줬다. 아주머니들은 쿠키와 누텔라 빵같은 것을 준비해 주시기도 했고, 일 때문에 금방 더러워진 옷들도 대신 가져다가 빨래해 주시기까지 했다. 거의 매주 크고 작은 파티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프랑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식으로 마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알수 있었다. 2년 전에는 마을에 있는 소수의 인종차별자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완벽히 호의적인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캠퍼들에게 관심가져주고 다정히 이야기를 붙여주었다. 현지인들 집에 초대받은 경험은, 르뮤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기도 하다.
-첫 날, 첫 만남
런던과 파리에서 몇일 자유롭게 여행한 후, 인포싯에서 받은 정보를 토대로 Le Meux로 가는 열차를 탔다. 국철같은 느낌의 열차나, 열차를 타기 전 스스로 각인을 해야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나에겐 모두 새롭고 낯설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드디어 종착역 도착. 역으로 나오니 이미 나와 같은 캠프에 온 것 같은 몇 명의 내또래 아이들이 보였다.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에, 3주동안 우리의 Technical Leader가 될 Francois와 인사를 하고 그의 차를 타고 캠프사이트로 향했다.
차를 타고 도착한 캠프사이트에는 이미 거의 모든 캠퍼들이 모여있었다. 리더인 프랑스인 Jean, 카탈란인 Mariona, 터키인인 아티제, 우마이, 불라, 딜란, 모스크바에서 온 야나, 아제르바이잔에서 온 엘준과 아제르, 그리고 Le Meux 지방 아이들인 쿠엔틴, 티보, 뱅상, 제레미, 오헬리, 레미가 캠퍼였다. 아무래도 서먹서먹했던 첫날에는 시청으로 가서 우리를 환영해주는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사진을 찍고, 와인이나 주전부리들을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Le Meux가 속한 Compiegne 지방의 사진집을 선물로 받기도 했다.
-work
Le Meux에 있는 마을 교회를 수리하는 것이 우리 워크캠프의 목적이었다. 교회 외부가 아닌, 교회 바깥 부분을 맡았다. 교회 외벽은 돌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돌과 돌 사이의 낡은 콘크리트 부분을 제거하고 다시 새로운 콘크리트로 메우는 작업이었다. 글로 보면 간단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세시간동안 무거운 망치를 들고 콘크리트를 벗겨내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거의 모든 부분-콘크리트를 제거하고, 새 콘크리트를 만들어, 물을 뿌려 콘크리트를 메우는 작업 과정-에 관여했다. 너무 어렵거나 까다로운 부분은 technical leader나 leader가 맡아서 해주었다. 첫주에는 비를 맞으면서 일을 했지만 둘째, 셋째주에는 따가운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일을 해야 했다. 일 자체보다도, 일하러 교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일을 시작하지 못하고, 일하기 전 준비과정이 너무 길어지는 경우가 있어 우리는 한시간이나 한시간 반동안 아무일도 없이 멍하니 앉아있어야 하는 게 힘들게 느껴지는 부분 중 하나였다. 여러 가지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역사가 있는 교회가 보존되는데 내가 작은 부분이라도 무언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일터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날씨
프랑스 남부 도시들처럼 쨍쨍하고 맑은 날을 기대했던 우리들은 첫 주 내내 비가 오다가, 어쩌다 잠깐 그치고 마는 날씨에 질려버리기도 했다.(장난스럽지만 Le Meux의 날씨를 원망하는 가사를 담은 노래까지 만들었었다!!) 우리는 이렇게 비가 잔뜩 오는 날씨에 일을 해야 했지만, 2년 전 이곳에서 열린 캠프때에는 오히려 너무 더워서 캠퍼들이 고생했다고 했다. 올해만 그런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캠프 뿐만이 아니라, 주위에 다른 캠프의 캠퍼들도 마찬가지로 추위를 많이 느끼고 있었다. 실제로 밤에는 실내에서 침낭안에서 잠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후드에 긴 청바지를 입고 잠들었었다. 파리 근교나 프랑스 북부 지방에서 캠프에 참가한다면 반드시 따뜻한 옷을 챙기길 바란다. 우리캠프에 경우엔 짧은 바지와 수영복은 쓸모가 없었다.
-숙소
야외활동이 거의 불가능했고, 땅이 질척거렸기 때문에 숙소는 유도장 안에서 잠을 자는 것으로 되었다. 비 오는 시기가 지나면 유도장 뒤쪽 잔디에 텐트를 쳐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텐트를 치게 된 것은 캠프 끝나기 열흘 정도 남았을 때 였기 때문에 텐트보다 유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원래 떠날때부터 숙소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주로 사용한 유도장은 생각보다 좋은 편이었던 것 같다. 여자 남자 탈의실이 분리되어 두-세칸 짜리 샤워실도 있었으며, 짐을 두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화장실도 유도장 안에 있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커다란 유도장 안에서 모든 캠퍼들이 침낭을 펼쳐 잠자고, 내가 하는일을 캠퍼들이 다 알 수있었기 때문에 자기만의 공간을 갖기는 어려웠지만, 시설만 보고 말하자면 만족스러웠다.
-역할 분담
첫 주에는 어떤 식으로 캠프를 운영할 것인지에 대한 룰을 정했다. 기본적으로는 cooking team과 dishing team, cleaning team을 나누어서 매일 각각 팀별 세명이 일을 맡았다. 아침은 동네에 있는 단 하나뿐인 빵집에서 사 오고, 시리얼과 우유, 커피등과 곁들어 간단하게 해결했다. 점심 저녁은 돌아가면서 요리를 했다. 일이 끝날쯤이면 모두 배고픈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점심, 저녁팀은 일터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한시간 정도 먼저 떠나 음식 준비를 했다. 식재료나 캠프에 필요한 각종 소도구등은 일주일에 한번 큰 할인매장에 가서 쇼핑을 하고, 주중에 추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한번 할인매장을 더 가거나 동네에 작은 슈퍼에서 물건을 샀다.
-time table
8:00 기상, 아침식사
9:00 일터로 떠나기, dishing-cleaning team은 남아서 일을 한 뒤 working site에 합류.
9:30-13:00 일
12:00 cooking team은 먼저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떠남
13:00-15:00 점심 & 설거지, 자유시간
15:00-18:00 일
17:00 cooking team
18:00- 저녁, 자유시간
-자유시간, 여가활동
캠프에 있는 동안 우리는 물론 일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독립기념일에는 마을 잔치에 가서 함께 감자튀김과 소세지를 먹고, 춤을 추었다. 또 다른 마을 축제 때에는 봉을 타고 올라가거나, 눈을 감고 물건을 찾는 게임 등등을 하며 조그마한 경품을 가져가기도 했다. 와인-치즈 시음회, 마을에서 만들어준 저녁 식사로 프랑스 음식을 많이 먹어보았다. 또 주위 지방의 다른 캠프들과 합류하여 한국인 캠퍼들도 만나고, 바비큐를 구워먹고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마지막 주에는 파리로 가서 당일치기로 여행을 하기도 했고.
마을 사람들이 배려해주어 색다른 경험들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캠퍼들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었던 것 같다. 함께 볼링을 치러 갔던 것, 깜깜한 밤에 유도장 앞에 터에서 미친 듯이 폴카를 춘 것, dining tent에서 불을 끄고 춤을 춘 것, 에펠탑 아래 잔디밭에서 샌드위치를 먹은 것, 상대가 알 듯 모를 듯 은근히 진행됐던 ㅋㅋ killer game, 각국의 욕설(?)과 노래를 배운 것, 저녁을 먹은 뒤 사람한명 지나다니지 않는 고요한 마을을 산책한 것, 함께 존레논의 노래 imagine을 부른 것... 지금 돌아보면 그저 르뮤의 그림같은 풍경을 마주했다는 것 자체가, 그리고 이렇게나 착하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떠올리면 막연하게 행복해지는 추억이 생긴 것이 너무나 좋다.
-아쉬웠던 점.
우리 캠프는 드라마가 많았다. 파견기관의 오류로 한 국가에서만 4명이 캠프에 왔고, 아제르바이잔 친구 두명은 600유로를 도둑맞았고, 도중에 떠난 캠퍼들도 있었고, 서로 울거나 갈등이 있었던 적도 있었다.
실제로 각자 모일때는 모르겠지만, 식사 테이블 안에서는 터키어가 통하는 여섯명과, 프랑스어로 소통하는 7-8명이 서로 자기들의 언어로 소통을 했기 때문에 러시아, 스페인, 한국에서 온 우리는 상대적으로 대화에서 소외되는 경우도 있었다. 회의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모든 캠퍼들이 한번에 다 모이는 유일한 시간이었는데, 개선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 프랑스 현지 아이들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았고, 테크니컬 리더는 영어를 아예 하지 못했다. 때문에 생활리더는 영어와 프랑스어 둘다 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어를 쓰는 경우가 많았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리더는 터키어를 쓰는 친구들에게 영어를 쓰라고도 말할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
여러 가지 갈등은 솔직히 말하자면, 일에 대한 경우가 많았다. 캠프에 온 궁극적인 목표를 기술 배우기로 잡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캠프가 아니라 워크 캠프이기 때문에 일을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부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 생활이 스스로에게 힘들어질수가 있다. 하루의 반이 일을 하지는 않더라도 식사 준비, 청소 등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공동생활을 하는 것이 익숙한가, 무보수로 일을 하는 것이 보람될 수 있는가, 같은 것에 대해 기본적으로 숙고하고 워크캠프에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을 사람들, 캠퍼들.
사람들이 너무나 친절했기 때문에 삼주를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항상 웃음을 띄고 있는 사람들. 쉬는 시간에는 기타를 잡고 노래를 부르고, 매일 반복되는 요리시간마저 파티로 만드는 밝은 에너지의 친구들. 온 나라도, 전공도, 언어도 다르지만 마음은 다들 착하고 밝았다. 먼저 이야기를 붙여주고, 언어가 서로 잘 통하지는 않지만 그저 눈만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캠프가 끝나고 삼일 정도는 파리에서 다시 만나 함께 여행도 했다.
특히 마을 사람들과 프랑스 현지 친구들은 캠퍼이긴 하지만, 현지 사람들과 프랑스 생활에 눈이 밝아 최대한 우리의 편의를 봐주도록 노력해줬다. 아주머니들은 쿠키와 누텔라 빵같은 것을 준비해 주시기도 했고, 일 때문에 금방 더러워진 옷들도 대신 가져다가 빨래해 주시기까지 했다. 거의 매주 크고 작은 파티가 있어서 조금이나마 프랑스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먹는지, 어떤 식으로 마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지 알수 있었다. 2년 전에는 마을에 있는 소수의 인종차별자들과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고 했는데, 완벽히 호의적인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캠퍼들에게 관심가져주고 다정히 이야기를 붙여주었다. 현지인들 집에 초대받은 경험은, 르뮤에서 있었던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