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잊지 못할 3주, 나를 바꾼 워크캠프

작성자 이수민
프랑스 CONC 185 · RENO/ENVI 2012. 07 Sainte - Agnes

Sainte-Agn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절대 잊지 못할 3주의 기억. 지금까지의 나를 180도 바뀌게 만들어 준 3주의 경험.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게 해준 3주. 워크캠프는 지금 까지 보낸 많은 시간들 중 가장 알차고 재미있고 의미 있게 보낸 3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워크캠프 첫 날,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이 없어 Meeting point인 Brignoud역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힘들었다. 프랑스는 역 간에 autobus라는 것이 다니는데 이 버스 정류장에 가도 전광판에는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뜨지 않는 것이었다. 출발 2분 전에 겨우 우리버스가 전광판에 뜬 것을 보고 버스에 탑승했다. 알고 보니 프랑스는 이런 시스템이 굉장히 느리다고 한다.
Meeting point에 1시간 일찍 도착해서 할 게임이 없어 같이 간 친구와 공기를 꺼내 공기 게임을 했는데, 지나가던 프랑스인들이 신기하게 쳐다봤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어떤 할아버지가 오셔서 웃으며 말을 거셨다. 나는 프랑스어를 전혀 할 줄 몰라서 그냥 씨익- 웃어드렸다. 나중에 welcome party를 할 때 들었는데, 그 할아버지는 우리가 워크캠프활동을 했던 지역의 지역 주민으로 나에게 내 가방을 자신의 트렁크에 싣겠느냐고 물어봤던 것이었다. 프랑스어를 전혀 몰라서 생긴 에피소드였다.
차를 타고 산을 꼬불꼬불 올라가 우리가 활동할 지역에 도착했는데, 낡은 집에서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이 잘생긴 남자리더 Joseph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마냥 잘생겼기에 리더를 좋아했던 우리들. 그에게 큰 반전이 있을 것 이라고는 그 땐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워크캠프 기간 내내 그가 씻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매일 똑같은 옷을 입었으며, 암내가 심하게 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워크캠프활동을 했던 곳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Sainte-Agnes라는 지역이었는데, 산 속으로 해발 1000m정도 되는 곳이었던 것 같다. 낡은 집은 음식을 먹고, 회의하고, 씻는 곳으로만 사용되었고, workcamper들은 낡은 집 앞 잔디에 텐트를 치고 그 곳에서 생활했다.
우리 팀은 한국,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모로코에서 온 친구들로 구성되어있었다. 3주 동안 같이 생활하면서 각자의 나라의 문화를 알게 되었고 그 동안 가졌던 편견도 깨지기도 했다.
첫 주말, 정말 문화충격을 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첫 주말, 첫 점심을 나와 프랑스인인 Quentin과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이라 만들어 먹을 것이 딱히 생각이 나지 않아서 Quentin이 자기나라음식인 샐러드를 만들자고 제안한 것을 따르기로 했다. 열심히 토마토, 오이, 당근, 여러 가지 야채를 자르던 중 Quentin이 쌀을 꺼냈다. 난 순간 우리나라가 쌀로 밥을 만들어 먹는 나라인 것을 알고 배려해주기 위해 만드는 줄 알고 감동했다. 하지만, 밥을 열심히 하더니 밥에 너무 싱겁다며 소금을 막 넣더니 기껏 만든 밥을 냉장고에 넣는 것이다. 밥을 차게 해야 한단다. 갑자기 머스타드 소스와 오일을 섞더니 소스를 만들었다. 그 때까진 우리가 방금 까지 썬 채소와 과일에 뿌릴 소스 일 줄 알았다. 이제 준비가 다됐다며 샐러드를 만들자고 했다. 난 이미 다 만든 줄 알았는데 뭔 소리냐고 했다. 알고 보니 Quentin은 밥 샐러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차게 만든 밥을 꺼내더니 밥에 우리가 썬 과일과, 채소, 참치, 소스를 넣더니 마구 비비는 것이다. 말은 샐러드 완성이라고 하는데, 비주얼은 개밥........ 서양인들은 즐겨먹는 요리인 것 같았다. 다들 좋다고 먹고.......동양인인 나와 내 친구만 엄청 놀랬다. 그렇게 첫 날부터 우리는 놀라운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근처 농장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돌아오는 길에 리더인 Joseph이 말했다. 내 생각엔 다른 길이 빠를 것 같다고. 그 길은 분명 빨랐다. 그렇지만 그 길은 온통 진흙 밭이었고, 결국 우린 막다를 길에 다다랐고 개울을 건너야만 집으로 갈 수 있었다. 별로 깊지 않은 개울이었기에 우리는 좋은 경험이라고 껄껄 웃으며 해질녘 집으로 돌아갔다. 그 날이 산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의 시초였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날 어떤 일이 있을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다음날, Joseph이 Picnic을 하러 가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경치가 좋은 곳으로 소풍을 간다기에 기뻐했다. 각자 먹을 샌드위치와 마실 물을 싸서 출발했는데, Joseph이 그날도 또 외쳤다. 이 쪽 길이 더 빠를 것 같아! 어제는 분명 Joseph의 말대로 그 길이 빨랐었지만, 그 날은 아니었다. 중간에 길이 뚝. 끊겨버린 것이다. 리더들은 물론 우리도 다 당황했다. 그러자 리더들이 나무들이 우거진 숲 쪽으로 타고 올라가다 보면 산 길이 나오지 않을까 하고 얘기했다. 우리로서는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에 그 경사진 산을 두 발이 아닌 네발(?)로 기어 올라갔다. 한 6시쯤 되었을까, 아무리 올라가도 길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우크라이나 여자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겁을 먹은 것이다. 벨라루스 여자아이도 화가 났다. 리더와 잠깐 말다툼도 있었다. 체력은 점점 고갈되고 우리의 음식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다들 알게 모르게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러다 먼저 올라가고 있던 모로코에서 온 Rachid가 소리쳤다. “Oh my god! ROAD!!!!!!!” 그 말을 들은 순간, 우리 모두 부둥켜 않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힘차게 올라가 산 길을 찾았다. 정말 죽다 살아난 순간이었다. 이 날의 경험 후, Joseph은 절대 다른 길로 가지 않고 꼭 산길로만 산을 탔다^_^. 그렇지만 우리는 매주 산에서 길을 잃었다.
내가 참가했던 워크캠프의 테마는 RENO/ENVI 였기 때문에 보수 공사위주로 봉사활동을 했다. 우리가 사용했던 낡은 집의 문들의 페인트가 너무 벗겨져 있어서 페인트를 벗겨내고 다시 페인트를 칠하는 작업과 집 주변 울타리를 다시 칠하는 작업을 했다. 평소 페인트칠을 해야 한다 하면 그냥 페인트만 칠하면 될 줄 알았는데, 페인트를 다 벗겨내고 페인트를 바르는 표면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사포 질도 해야 하고 여러 가지 부수적인 작업이 많은 것을 보고 세상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서 하는 일 외에도 근처 초등학교에 가서 물을 주고 문에 페인트칠을 해주고, 울타리를 세워주기 위해서 살면서 절대 해본 적이 없는 삽질과 곡괭이 질을 했다. 보기엔 쉬워 보였던 일들이 직접 해보니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항상 여섯 시간 일할 때마다 중간에 항상 있었던 꿀맛 같았던 Break time!! 항상 빵, 초콜릿, 초코칩을 간식으로 먹었었는데 원래 군것질을 잘 하지 않던 내가 이러한 군것질거리들을 엄청 잘 먹게 되었다. 지금은 그 때 그렇게 힘들었던 일보다 모두와 함께했던 그 때 그 시간, 맛있는 간식을 먹으면서 느꼈던 꿀 맛 같은 휴식이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는 일을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1시 30분 까지 밖에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뒤로는 여가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그 여가시간엔 게임을 하거나, 대부분 파티에 가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그 중 기억이 가장 남는 것은 직접 빵을 만들어 본 일이다. 식품공학과 이긴 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거의 실험 쪽이라 이러한 제과제빵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Albert집에 가서 빵과 피자를 직접 만들어 화덕에 구웠는데, 이렇게 맛있는 빵과 피자를 먹어본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후에는 화가인 Joen할아버지와 같이 빵을 만들기도 했는데, 나에겐 모두 모두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 워크캠프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그 지역에 사시는 모든 주민 분들이었다.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우리를 너무 잘 대해 주셨다. 항상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물어오셨고, 낡은 집에서는 아예 인터넷을 쓸 수 없었기에 문제가 많았었는데 선뜻 자신의 집으로 와서 컴퓨터를 쓰라고 하시며, 오히려 자신의 컴퓨터가 너무 느려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Joen할아버지의 경우, 산에 갈 때 우리가 위험해질까 걱정되신다며 항상 동행해주셨다. 모두들 우리에게 넘치는 정을 주어서 마지막에 그 지역을 떠나는데 발길이 정말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 중에 하나였던 것 같다.
마지막 날, 나는 기념품으로 받은 티셔츠에 같이 활동을 했던 workcamper들에게 인사메시지를 써 넣어 달라고 했다. 편지를 써준 친구도 있었고, 선물이라며 자신의 나라 물건을 주 기도했다. 나도 준비한 한국 문양이 그려진 책갈피를 선물했다. 기차시간 때문에 먼저 출발했는데, ‘I have to go.....’이 말을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 때 서로 부둥켜안으면서 ‘I miss you. See you soon.’ 이 말을 계속 외쳤던 것 같다. 정말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함께했던 친구들이 너무나 보고 싶다. 이번 워크캠프는 정말 내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고, 내가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심어주었다. 무엇보다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친구들을 나에게 선물해줬고, 정말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값지고 소중했던 3주. 다시 한번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너무 행복한 시간을 나에게 선물한 워크캠프. 정말 최고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