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잊지 못할 여름의 기억
Nature & Culture in the South of Iceland (1:3)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와있는데 여름방학이 상상이상으로 매우 길었다. 그래서 뭔가 방학때 할 수 있는 의미있는 일이 없을까 하고 이것 저것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던중 아는 지인을 통해서 워크캠프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되었다. 외국에 나와있기 떄문에 그런지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은 한국에 있을 떄보다 더 쉬웠다. 워크캠프 리스트를 보다가 “아이슬란드”가 눈에 들어왔다. 유럽이지만 섬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하면서 많이 찾는 관광지는 아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워크캠프 확정이 나고서 비행기표를 구매하니 그제서야 워크캠프를 간다는 사실이 실감나고 설레였다. 한편으로는 미지의 나라를 간다는 느낌때문에 두렵기도 했다.
아이슬란드에 처음 도착했을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아이슬란드로 가기 바로전에 멕시코여행을 해서 그런지 추위는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미팅장소인 seeds숙소로 향했다. 미팅장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내가 하는 워크캠프에는 한국인이 나 혼자 뿐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이 커졌었지만 금방 다른 캠퍼들이랑 친해져서 두려움은 사라졌다. 유럽국가로 워크캠프를 가서 그런지 유럽 나라에서 온 캠퍼들이 많았다. 여러나라 사람들을 동시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워크캠프장소로 이동해 그날부터 우리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일은 농장일을 돕는 것이었다. 양과 소를 키우는 농장이였다. 아이슬란드 남쪽에 위치한 농장이였는데 정말 고요하고 다른사람들은 지나가다라도 만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3개조로 나눠서 일을 했다. 소를 돌보러가거나 양을 돌보러가거나 집청소를 하는 이렇게 3개로 일을 분배했다. 양을 돌보러가서는 전날 주었던 건초를 치워주고 먹이를 준뒤 새로운 건초를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출산을 돕거나 새끼양에게 우유를 주는 일도 하였다. 소를 돌보러 가서는 소똥을 치우고 소도 역시 전날 주었던 건초를 치우고 새로운 건초와 먹이들을 주는 일이 였다. 이러한 일들을 하고나서 집을 짓는 일을 돕거나 집을 꾸미는 일을 했다. 말로 설명하면 간단한 일들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매우 고된 일들이였다. 모든 일과가 끝나는 시간은 9시였다. 하루종일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였다.하지만 다행이도 우리는 일을 하는 중간중간 coffee break를 가졌다. 다같이 숙소에 모여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였다. 농장 주인께서는 이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항상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coffee break를 갖는 것이였다. 그래서 캠프가 끝날때 우리에게 저 단어는 마치 고유명사처럼 쓰여졌다.
일은 힘들었지만 2주동안의 생활에서 새로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지낸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였다. 워크캠프를 하며 한공동체안에 속하여서 서로 도우면서 같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밤새 잠을 안자면서 수다를 떨고 서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각자의 나라언어로 대화를 하고...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였다. 고된 일을 하면서 오히려 더 친해질수 있었던것 일지도 모른다. 2주동안 24시간 붙어지내면 친해진 친구들과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다는 것은 너무 큰 슬픔이였다. 그래서 우린 이메일을 교환하고 연락하면 지내기로 했다. 워크캠프를 다녀온지 2주가 지난 지금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메일을 주고 받고 있다.
아이슬란드에 처음 도착했을때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한기가 느껴졌다. 아이슬란드로 가기 바로전에 멕시코여행을 해서 그런지 추위는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미팅장소인 seeds숙소로 향했다. 미팅장소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내가 하는 워크캠프에는 한국인이 나 혼자 뿐이라는 사실에 두려움이 커졌었지만 금방 다른 캠퍼들이랑 친해져서 두려움은 사라졌다. 유럽국가로 워크캠프를 가서 그런지 유럽 나라에서 온 캠퍼들이 많았다. 여러나라 사람들을 동시에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는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워크캠프장소로 이동해 그날부터 우리는 일을 시작했다. 우리가 하는일은 농장일을 돕는 것이었다. 양과 소를 키우는 농장이였다. 아이슬란드 남쪽에 위치한 농장이였는데 정말 고요하고 다른사람들은 지나가다라도 만날 수 없는 그런 곳이었다. 매일 아침 우리는 3개조로 나눠서 일을 했다. 소를 돌보러가거나 양을 돌보러가거나 집청소를 하는 이렇게 3개로 일을 분배했다. 양을 돌보러가서는 전날 주었던 건초를 치워주고 먹이를 준뒤 새로운 건초를 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출산을 돕거나 새끼양에게 우유를 주는 일도 하였다. 소를 돌보러 가서는 소똥을 치우고 소도 역시 전날 주었던 건초를 치우고 새로운 건초와 먹이들을 주는 일이 였다. 이러한 일들을 하고나서 집을 짓는 일을 돕거나 집을 꾸미는 일을 했다. 말로 설명하면 간단한 일들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매우 고된 일들이였다. 모든 일과가 끝나는 시간은 9시였다. 하루종일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아니였다.하지만 다행이도 우리는 일을 하는 중간중간 coffee break를 가졌다. 다같이 숙소에 모여서 커피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였다. 농장 주인께서는 이시간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서 항상 빼먹지 않고 하는 것이 coffee break를 갖는 것이였다. 그래서 캠프가 끝날때 우리에게 저 단어는 마치 고유명사처럼 쓰여졌다.
일은 힘들었지만 2주동안의 생활에서 새로운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나서 함께 지낸다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였다. 워크캠프를 하며 한공동체안에 속하여서 서로 도우면서 같은 기억과 추억을 공유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밤새 잠을 안자면서 수다를 떨고 서로 무슨 의미인지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각자의 나라언어로 대화를 하고...잊지 못할 좋은 경험이였다. 고된 일을 하면서 오히려 더 친해질수 있었던것 일지도 모른다. 2주동안 24시간 붙어지내면 친해진 친구들과 앞으로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진다는 것은 너무 큰 슬픔이였다. 그래서 우린 이메일을 교환하고 연락하면 지내기로 했다. 워크캠프를 다녀온지 2주가 지난 지금 우리는 아직도 서로를 그리워하며 메일을 주고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