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꿈 너머 꿈을 보다

작성자 하재영
아이슬란드 SEEDS 019 · ENVI/ AGRI 2012. 05 - 2012. 06 Arnes, Westfjordur

Remote fjords - Where the road end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전세계가 하나의 이웃으로 비유되고 누구나 손쉽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여전히 멀기만 한 나라입니다. 아이슬란드를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스웨덴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항공비에 30만원, 도착해서 교통비에 20만원이 소모되었습니다. 그 아이슬란드의 봉사 프로그램 중에서도 저는 ‘외딴 피요르드’라는 프로그램을 겁 없이 선택했습니다. 가끔은 사리분별 하지 않고 부딪혀 보는 게 더 좋은 결과를 낳기도 하는데, 제 경우가 그런 경우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착했을 때엔 새벽 한시였고 이미 여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온도가 영하에 가까운 지점까지 떨어져 있었습니다. 반팔을 입은 저를 후회하면서 백야의 태양이 새벽 거리를 비추는 동안 작은 동화속 마을 같은,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있다는 수도 레이캬비크를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도시는 도시 어디에서나 보이는 날카로운 피오르드로 둘러싸여 있었고, 거대한 대자연 속에서 자신들을 조금이라도 드러내려는 양 도시의 집들은 저마다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경제위기 때문인지, 도착일이 평일이여서인지 그 유명하다는 아이슬란드의 밤문화도 자취를 찾을 수 없었고, 사람들은 커튼을 치고 오밤중의 햇살을 피해 잠을 청하는 중이었습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어 거리마다 구석구석 밝은데 사람들은 찾을 수 없는 기묘한 광경이 연출되었습니다. 그것이 제가 본 아이슬란드의 첫 인상이었습니다.
Seeds는 자체 숙박업소를 운영하고 여기에 워크캠프 참가자들이 모이게 됩니다. 도착 후 3일은 계획도 없었고 돈도 없었기 때문에 어딘가를 돌아다니기보다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면서 정보를 모으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여기서 알게 된 포인트는 캠프 호스트에 따라 난이도는 천차만별이며, 아이슬란드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엄청나게 많다는 점, 그리고 극도로 비싼 나라라는 점이었습니다. 사실 인터넷으로 물가를 확인하고 오는 것과 직접 만오천원짜리 편의점 샌드위치를 사들고 먹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워크캠프는 사실 아이슬란드 여행을 올 수 있는 가장 싼 방법 중 하나였고 많은 외국 친구들이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신청한 이유도 사실은 여행입니다.
출발하는 날이 되었고 멤버들과 인사를 한 뒤 자기소개를 하고 여정을 떠났습니다. 아이슬란드의 95%의 도로는 비포장이며 대부분이 상태조차 좋지 않습니다. 많은 비포장도로는 피요르드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도려내어 만든 해안도로이며 운전하기에도 상당히 위험합니다만 경치만큼은 엄청났습니다. 그리고 8시간을 운전하여 도착한 그곳은 세상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도로 중 하나인 B375번 도로가 끝나는 지점을 고작 20km 정도 남긴 지점이었습니다. 슈퍼마켓은 차로 4시간 걸려야 닿을 수 있는 그곳은 저희 캠프의 주제 그대로 세상 도로가 끝나는 곳, 그대로였습니다. 마을이라고 불리기에도 약간은 애매한 그곳 아르네스는 3개 가구 15명이 사는 곳이며 주위 근방 사람들은 모두 혈연관계에 있습니다. 모두가 200여년 전 정착한 한 아이슬란드인의 직계 후손이며 시간이 흐르며 어업을 위해 정착했던 사람들은 목축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할 일은 의외로 서로 연관성이 있는 일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시베리아에서 벌목된 목재는 뗏목으로 즉시 만들어져 하류로 보내지는데, 이들 중 극히 일부가 하류에서 수거되지 못하고 먼 바다로 보내집니다. 시베리아의 면적을 고려하면 1년 동안 상당히 많은 나무가 이런 식으로 북극해로 빠져나가는데, 해류상 그 종착점은 아이슬란드 북서해안이며, 수십 년간 쌓인 통나무는 지역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하지만 사막화가 진행중인 아이슬란드 입장에서는 소중한 목재자원이 되기도 합니다. 저희 봉사자들은 이 나무를 수거하여 지역 공동체를 위해 사용하고, 더불어 같이 떠내려온 쓰레기들을 수거하여 해안 정화 활동도 실시했습니다.
힘든 일을 하면 사람들이 돌아와 지쳐 잠들어버리기 때문에 교류의 기회가 줄어드는 편입니다. 저희 캠프는 호스트의 배려로 5시간에서 6시간 정도만 일했고, 이는 캠프의 정체성도 살리면서 멤버들간 교류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도 살리는 적절한 시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군대까지 다녀오고 국내에서 여러 번 비슷한 종류의 일을 해 본 저로서는 그다지 힘든 작업량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독일에서 온 두 여자아이와 스위스에서 온 아주머니는 약간 힘겨워 하셨는데, 이러한 부분은 다음 주가 되자 조금 나아졌습니다. 통나무가 사실상 모두 수거되면서 저희는 그 통나무를 이용해 낡고 녹슬어 환경을 파괴하는 나무펜스를 없애고 새로운 펜스를 설치하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여자들에게도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었던지 캠프 분위기는 계속 고조되었고, 우리는 음식을 나누고 상대국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농촌에는 쉬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고, 날씨에 따라 작업이 결정되고 휴일이 결정됩니다. 아이슬란드도 마찬가지여서 비오는 날은 작업하기 힘들기 때문에 평일이어도 작업을 쉬고 대신 해가 드는 일요일에 일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번은 이 지역 전통 중 하나인 아이더(북극오리)의 털을 채집하러 외딴 섬에 다녀온 일도 있었습니다. 일요일이 파도가 낮았고 저희는 일요일 종일 오리들 털을 채집하고 다음 날인 월요일에 쉬었습니다. 휴일 개념이 뚜렷한 서양인들이어서인지 일주일에 한번은 쉬어야 다음에 더 높은 효율로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당연시했습니다.
쉬는 날에는 여전히 녹지 않은 만년설을 보러 빙하 쪽으로 하이킹을 가기도 했고,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조류들의 서식지를 탐험하기도 했습니다. 강원도만한 면적에 고작 300명 정도가 살다 보니 모든 지역이 때묻지 않은 자연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았고, 가는 곳마다 탄성을 내지를만한 경치를 자랑했습니다. 마침 유로컵 시즌이라 함께 유로를 시청하기도 했고 세시간을 걸어야 나온다는 펍을 찾아 하이킹 아닌 하이킹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있었던 수많은 대화를 이곳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화들은 저희를 더욱 친밀하게 해 주었고, 교환학생 중에서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 – 외국인들과 진짜 친구가 된다는 감정을 저는 처음 경험하였습니다. 인사 몇번 하고 술 몇번 마시고 페이스북에 사진 조금 올린다고 친구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 심한 말일 테니까요.
마지막 날조차도 지나고, 레이캬비크에서 조금 시간을 보내던 우리들이 이별할 때의 그 감정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전화번호와 주소와 좋아하는 노래와 밴드와 꼭 읽어보아야 할 책, 그리고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해주고 싶은 말과 집주소까지 적어서 서로에게 말없이 교환했고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아쉬움이 남아야 좋은 여행이라고 누군가가 그랬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 다시 오겠다고, 그래서 못해본 것을 이루고 말겠다는 결심을 많은 사람들이 하며 돌아가지만, 저의 마음 속 한켠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두 번 갈아타고 버스를 10시간 타야 갈 수 있는 그곳에서 모든 멤버들과 재회할 수 있다고, 정녕 너는 그렇게 생각하냐고요. 힘들겠지만 저는 그걸 꿈꾸며 살아갑니다. 저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이었고, 하나의 주제를 이유로 세상의 끝에서 만난 8명의 사람들과 사랑스런 우리 호스트를 저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