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프리카, 두려움에서 설렘으로 케냐의 밤하늘 아래, 잊
NYABOSONGO BENA ACADEM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다녀온지 2달이 다 되어가고있는 지금 나는 아직도 케냐의 별이 빼곡히 박힌 밤하늘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번이 내 학생생활의 마지막 방학이라는 생각에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워크캠프 참가를 결정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문득 나이가 들고나면 힘들어서 가지 못할 곳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아프리카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막상 신청을 끝내놓고도 처음엔 질병이나 치안에 대한 걱정으로 밤새 잠을 설치기도 하고 테러 소식에 참가 취소를 할까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그때를 생각하며 종종 실소를 짓기도 한다.
처음 케냐를 도착했을 땐 검을 얼굴에 하얀 눈을 무서워했지만 워크캠프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 주는 케냐 봉사자들을 만난 후로 그런 두려움을 씻은 듯이 없앨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오리엔테이션 후 우리팀은 서케냐의 꾸리아라는 커뮤니티의 나바송고 벤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학교 근처로 가게 되었는데 처음엔 이름이 어려워 외우는데 우리 모두 애를 먹었었다. 목적지로 가던 도중엔 택시에 우리 팀 전체가 다 탑승하고 10개정도 되는 짐까지 다 싣는 택시를 보고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택시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을이 케냐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아주 옛날의 우리나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도착 후엔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잠잘 공간이 굉장히 조악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런데서 자라는 거야?’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모든 물을 사용하려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만 했고 음식을 만들 때는 매번 장작불을 피워서 요리를 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3주를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오프닝 세레모니를 열어준 후에 내가 편안함을 좇아서 온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왔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이었다. 사실 아프리카 하면 막연하게 더울 거라는 편견 때문에 두꺼운 옷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었는데 숙소마저 문과 창문과 달려있지 않은 곳이어서 밤마다 추위에 시달려야 했었다.
우리의 일은 벽돌을 만드는 것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벽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처음엔 일이 끝나고 나면 초죽음이 되어 바닥에 누워있곤 했었다. 하지만 일과가 끝난 후에 늘 가정방문이 있었기 때문에 방문한 가정에서 음식을 잔뜩 대접받아 배불리 먹고나면 어느새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케냐에 막 왔을 땐 입에 맞지 않았던 케냐 음식들(우갈리나 스쿠마 같은)을 일주일도 안돼서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케냐에 와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밝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이렇게 뛰놀면서 자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교실에 들어갔을 땐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쿠리아에 머무는 3주 동안 그 아이들이 나에게 보여준 친근함과 애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가슴 아팠던 것은 많은 케냐의 여자아이들이 여성할례라는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시술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또 죽어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할례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울컥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성할례에 대해 사람들에게 많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아프리카 인권에 좀 더 관심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린 소녀들이 겪기엔 너무 큰 상처와 고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좋았던 것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던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인들과 우리는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진심으로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이 워크캠프는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 팀엔 스페인, 독일, 케냐에서 온 봉사자들이 함께 했는데 지금 그들은 나의 형제 자매 같은 친구들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SNS나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근황을 묻곤한다. 그리고 서로의 나라의 놀러가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워크캠프는 사실 나의 생각과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단순한 여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문화를 교류할 수 있었고 마음으로 정을 나눈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또 편리한 생활에서 벗어나 생활해 봄으로써 많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늘 워크캠프에 참가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분명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처음 케냐를 도착했을 땐 검을 얼굴에 하얀 눈을 무서워했지만 워크캠프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마치 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처럼 친근하게 대해 주는 케냐 봉사자들을 만난 후로 그런 두려움을 씻은 듯이 없앨 수 있었다. 사무실에서 오리엔테이션 후 우리팀은 서케냐의 꾸리아라는 커뮤니티의 나바송고 벤 아카데미라는 이름의 학교 근처로 가게 되었는데 처음엔 이름이 어려워 외우는데 우리 모두 애를 먹었었다. 목적지로 가던 도중엔 택시에 우리 팀 전체가 다 탑승하고 10개정도 되는 짐까지 다 싣는 택시를 보고 놀랍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택시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마을이 케냐에 많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아주 옛날의 우리나라가 생각나기도 했다. 도착 후엔 더더욱 놀랄 수 밖에 없었는데, 우리가 잠잘 공간이 굉장히 조악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런데서 자라는 거야?’하는 생각에 화가 나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했다. 심지어 모든 물을 사용하려면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만 했고 음식을 만들 때는 매번 장작불을 피워서 요리를 해야 했다. 이런 곳에서 3주를 지낼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오프닝 세레모니를 열어준 후에 내가 편안함을 좇아서 온 것이 아니라 봉사하러 왔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이었다. 사실 아프리카 하면 막연하게 더울 거라는 편견 때문에 두꺼운 옷을 많이 가져오지 않았었는데 숙소마저 문과 창문과 달려있지 않은 곳이어서 밤마다 추위에 시달려야 했었다.
우리의 일은 벽돌을 만드는 것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는데 벽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많이 드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모두들 처음엔 일이 끝나고 나면 초죽음이 되어 바닥에 누워있곤 했었다. 하지만 일과가 끝난 후에 늘 가정방문이 있었기 때문에 방문한 가정에서 음식을 잔뜩 대접받아 배불리 먹고나면 어느새 기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덕분에 케냐에 막 왔을 땐 입에 맞지 않았던 케냐 음식들(우갈리나 스쿠마 같은)을 일주일도 안돼서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케냐에 와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것이었는데 밝게 뛰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도 이렇게 뛰놀면서 자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교실에 들어갔을 땐 적극적으로 이것저것 물어보는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가 없었다. 쿠리아에 머무는 3주 동안 그 아이들이 나에게 보여준 친근함과 애정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만 가슴 아팠던 것은 많은 케냐의 여자아이들이 여성할례라는 불합리하고 불법적인 시술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또 죽어나간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할례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면서 울컥하기도 여러 번이었다. 사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성할례에 대해 사람들에게 많이 이야기를 하고 다녔는데 개인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아프리카 인권에 좀 더 관심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린 소녀들이 겪기엔 너무 큰 상처와 고통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좋았던 것은 바로 친구들이었다. 여행을 많이 다녔던 나는 개인적으로 외국인들과 우리는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진심으로 친해지는 것은 불가능 하다고 늘 생각해왔었는데 이 워크캠프는 그런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우리 팀엔 스페인, 독일, 케냐에서 온 봉사자들이 함께 했는데 지금 그들은 나의 형제 자매 같은 친구들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SNS나 이메일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근황을 묻곤한다. 그리고 서로의 나라의 놀러가는 계획도 세우고 있다.
워크캠프는 사실 나의 생각과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단순한 여행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문화를 교류할 수 있었고 마음으로 정을 나눈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또 편리한 생활에서 벗어나 생활해 봄으로써 많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지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 늘 워크캠프에 참가해 보라고 권유하고 있다. 분명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