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네시아, 좌충우돌 첫 비행기 탑승기

작성자 엄명헌
인도네시아 DJ-WHV · HERI 2012. 07 인도네시아

Prambanan WHV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인도네시아를 떠나는 6월 28일 오우….잊을 없는 그 날. 정말 비행기 처음 탈 때부터 장난도 아니었다. 처음 비행기 타는 것도 아닌데, 정말 바보 같은 짓을……내가 왜 그랬지? 수하물을 부치고, 비행기 수속을 받고, 보안대를 지나는데, 이런…!!!!
내가 왜 이런 바보 같은 짓을….먹는 물도 버린다는 공항 검색대 앞에서, 검색하는 도중에 7가지의 튜브 및 엄청난 금지물품. 왜 이랬지? 다시 수속을 밟으러 가는데….이미 애들은 검색대를 지나, 면세점으로 가고 있는데….. 안 돼!!!!!!
온갖 욕을 퍼부으면 나는 다시 수속을 밟으러 다시 30분이라는 시간을 기다려 드디어 수하물을 싣었다. ㅋㅋ 하지만 내 폰은 애들의 전화 “형, 안 오세요?”, “어디까지 오셨어요?” 이런 리더라는게 잘한다. 애들은 벌써 비행기 수속 밟고 비행기 타러 가는데, ‘나는 뭐하고 있냐?’

“형, 어디세요? 저 공항철도 타고, 비행기 타는 데로 넘어왔어요.”

전속력으로 공항철도까지 뛰었다. ‘이런, 갓 뎀….운동해서 이런 데 써 먹을 줄은 몰랐네….’ 숨이 찰 때 마다, ‘으, 아까운 내 돈, 90만원이 하늘로 날아가지 않기를….’ 정말 죽을만큼 뛰었다. 저 멀리 가루다 항공의 출국 게이트가 보이고, 도착! “형, 역시 해병대는 다르네요.” ‘해병은, 무슨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정말 첫 날부터 버라이어티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다음에 비행기 타면,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정말 안 할 거야’

2.
드디어 비행기를 타고 인도네시아 도착. 밤은 어두워졌고, 우리는 머물 곳이 필요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아서,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일단은 우리는 예정대로 자카르타를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가기로 했다. 일단 콜벤을 두 대를 불러서, 7명이 기차역으로 향했다.
이런 왠 걸….족자역에 내린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런 족자역 호텔에 내리다니….!!! ‘도대체 족자역은 어디 있는 거야????’, ‘애들은 어디있고?’ 정말 국제 미아가 될 위험에, ‘어디야?, 여기?!’

우리는 계속 그냥 역 같이 생긴 것을 찾으며, 걷다가…..미아가 되는 위험은 면했다.

하지만 기차역에 도착하는 순간 두 번째 난간에 봉착. 자카르타로 가는 기차가 매진이 된 것이다. ‘도대체 우리 여기 왜 온거야?’ 우리는 결정을 해야 했다. 족자에 계속 있어야 할 지…...

그런 와중에 족자의 역의 랩퍼. 안내하는 랩퍼 아저씨를 만났다. 자기가 자카르타로 차 타고 데려가 주겠다고, 하지만 시간도 10시간이 걸렸고, 돈도 너무 많이 요구했다.

결국, 우리는 자카르타로 가는 것보다는 미리 족자에서 대해서 알기로 했다. 우리의 인도네시아의 첫날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3.
족자에서의 둘째 날, 추가적 예약을 할 수 없는 관계로 숙소를 옮겨야 했다. 족자 시내 한 가운데 있는 wisma gajah.

‘야, 이건 완전 인도네시아 스타일인데….’. ‘내 마음에 들어쒀, 야밤에 별이나 보면서 수영이나 해야 겠다.’

우리는 짐을 정리하고, 일단 배를 채우기 위해, 숙소 밖을 나갔다. 그렇게 한창 걷다가….’이런, 대박!!!!!’ ‘여기로 이마트가 있네.’ Super indo. 완전히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구나!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장소로 이 곳을 우리의 아지트로 정했다. ‘자주 들려야 겠구만….’ 우리의 아지트를 실컷 만끽 하고 난 뒤에 출구를 나왔을 때, 족자의 실세를 만났다. 정말 그 아저씨는 정말 대박. 그 아저씨는 우리를 족자의 대박 거리로 안내를 하였다. 우리는 그 아저씨는 그렇게 골목 깊은 곳의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인 와양을 만드는 거리도 데려다주고, 워터펠리스로도 안내를 해주고….그리고 족자 시내를 직접 발로 구경을 다 시켜주셨다. 그날 밤 우리는 또 그 대박 아저씨를 숙소 앞에서 만나서, 인도네시아 젊은이들의 모임의 장소로 데려가 주었다. 거기서 포켓볼과 알코올 있는 과일주스를 마셨다. ‘완전 브라보!’. 그렇게 둘째 날의 밤은 알코올 주스로 지나갔다.

4.
족자에서의 셋째 날, 우리는 아침을 먹고, 인도네시아의 푸른 바다를 보기 위해, parangtritis beach로 향했다.
하지만 가는 내내, ‘거리로는 그렇게 가까워 보이는데……. 멀미는 나는데, 왜 이렇게 멀어.’

2시간 정도 후 드디어 도착. 이야!!!!....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푸른 바다가 아니었다. 그냥 동해바다.

그래도 바다에 왔으니, 바다를 걸어야지. 그렇게 우리는 두 그룹으로 나누어, 거리를 걸었다. 하지만 적도에 있는 나라라서, 정말 멋있기는 하였다. 멋져!!! 저 푸른 하늘!!!

하지만 애들 몇 명이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어떡하지? 잊어버렸으면 어떡하지, 애들 국제 미아 되는 거 아니야?’ 나와 남은 애들은 두 그룹으로 나눠져서 찾아보았다. 저 멀리 해안 끝 까지 가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포기하고 차가 있던 장소로 왔는데, 애들이 거기 있었다.

‘야!~~, 우리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는 줄 알어?~~~~~’

화는 정말 많이 났지만, 천만 다행이었다. 정말 버라이어티한 여행이다.

이 버라이어티 쇼가 지나가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우리는 저녁으로 유명한 나시고랭 집에서 밥을 먹었다. 밥은 먹는 도중, 낯 익은 소리가 들렸다 ‘가라.~~~mr.simple~~~~.’ 아기가 그 노래를 들으면서 흥얼거렸다. 그 노래를 매일 듣는단다. 그 떼거리들이 여기에서 인기가 있다니, 정말 놀랬다. ‘역시 k-pop이란……’

그렇게 밥을 먹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허전했다.

‘밥을 배불리 먹었으니, 또 술을 안 먹으면 섭하지.’ 숙소 주위에 있는 락카페 집에서 칵테일을 마시면서, 인도네시아의 밤을 즐겼다. ‘정말 분위기는 밤이었어.’

족자의 밤은 또 이렇게 알코올로 지나갔다.(그리고 날이 가기 전에 음주수영.^^)

5.
다음 날 족자의 아침은 술탄페리스로 향했다. 술탄페리스도 현재의 술탄이 산다고 생각하니, 정말 특별하였다. 그리고 안에서 본 인도네시아 전통무용도 정말 신기했다. 신기한 것도 많고, 특이한 것도 많고…..
우리는 그렇게 술탄페리스를 본 다음, 워크캠프를 위한 미팅포인트로 향했다.

거기에는 reny가 마중 나와 있었다. ‘드디어, 워크캠프가 시작하였구나…..’

우리는 프로젝트 숙소에 도착하고, 일정을 짜고, 각자 소개를 하였다. 그런데 팀원 중 한 명이 도착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 누님 한 분이 일이 있어서, 늦게 참여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우리는 마을 어르신들과 회합(?)에 참석하였고, 그렇게 우리는 인도네시아 워크캠프를 시작했다.

6.
목요일에는 oshin 누님이 오셨고, 우리는 몇 일만에 인도네시아에 적응했다. 워크캠프 기간이 지날수록 한 명은 인도네시아 현지인이 되어가고 있고, 몇 명의 애들은 인도네시아 아이들과 놀아준다고, 기력이 빠진 애들도 속출했다.

자원봉사의 일이 힘이 들어서 힘이 빠지지 않았다. 애들하고 놀아주느라, 힘이 빠졌지.

그렇게 우리는 인도네시아에 점점 물들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친절함에 반하고, 아이들의 순수함에 반했다. 우리는 그것을 좋아했고, 시간이 멈췄으면 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나무도 심었고, 사원의 돌도 닦았고, 인도네시아 전통악기도 쳐 보았고, 한국음식을 해서 나눠먹었고….많은 것을 경험하며 서로에 대해서 점점 알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나누었다.

7.
밤마다 인도네시아 연극을 위한 준비와 한국문화 공연을 연습하였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게임도 하였다. 그리고 주말에는 food exchange를 위한 족자 시내를 갔다. 거기서 우리는 저녁도 먹고 인도네시아의 야경을 구경했다.

인도네시아의 밤은, 하늘의 별 때문에 정말 밝았고, 멀리 보이는 모스크의 불빛은 멋있었다. 우리는 집으로 가는 1톤 트럭에 앉아, 노래를 부르며 그 시간을 즐겼다. 시간이 가는 게 너무 아쉬웠다. 벌써 1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8.
주말이 지나고 우리가 연습한 연극과 한국문화를 보여줄 차례가 왔다. 정말 우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연습을 했다고 생각을 하였는데……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 같았다.

연극 연습에서 분홍공주가 되어서, 연습을 할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우리는 벌써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 위해 헤어짐을 준비하는 시간이 왔었다. 이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이 정말 좋았는데….

‘벌써 헤어짐이라니……’

그렇게 우리는 워크캠프가 끝나고, 몇 명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아픔을 슬퍼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시간을 잊지 못하고, 나는 다시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그 기억, 그 시간은 내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9.
우리는 이런 뜻 깊은 시간을 보내고, 다음 여행지인 발리로 향했다.

발리는 항상 미디어로만 통해서 보았기 때문에, 푸른 바다에 멋진 해변가……^^

하지만 실망이 이만 저만 아니었다. 발리는 정말 관광지였다. 물가도 정말 비싸고, 볼 거는 진짜 바다 밖에…..인도네시아의 전통이라는 것을 느낄 수 없었다. 그냥 만들어진 도시 같았다. 거리에는 인도네시아 인보다는 파란 눈의 외국인이 더 많았다.

우리는 그런 실망감을 느꼈지만, 발리를 제대로 만끽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마침 숙소도 바다에서 가깝고, 우리는 밥을 먹자마자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숙소 가까이의 kuta beach로 나왔다. 정말 재미있었다.

그 때 얼마나 애들이 물을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다.(물 속에 던진다고…..^^). 정말 재미있었다. 그렇게 바다에서 놀고도 우리는 숙소 수영장에서 수영을 했다. 나는 우리 팀원들 중에 그렇게 많은 수달이 있는 줄은 몰랐다.^^

수영의 피로를 풀기 위해, 저녁에 전신 마사지를 받았고, 그 좋은 컨디션으로 클럽에서 발리를 불태웠다.^^ 태어나서 그렇게 센 술을 마셔본 것 처음이지만, 춤을 춘다고 그 술기운도 금방 사라졌다.

그렇게 우리는 발리의 밤을 불태우고, 힘이 들어서 잤다.

10.
다음날은 발리를 본격적으로 즐겨보기 위해서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애들은 오토바이를 타지 못했고, 결국 나랑 민석이 둘만 타게 되었다. 태어나서 오토바이를 그렇게 오래 탔지만, 오토바이를 타면서 그렇게 많은 생각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진짜 이제는, 해외 어디를 가던지, 나는 어디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왜 체 게바라가 모토사이클을 탔는지 이해가 갔다. 삶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동안, 나머지 애들은 차를 빌려서, 몽키포레스트를 갔다가, 우붓시장으로 갔다. 나는 우붓시장에 도착하자마자 채 40분도 안 되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로 돌아오는데도, 정말 힘들었다. 인도네시아 교통이라는 것은 말로 못한다. 세상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처음봤다.

그 날 저녁은 우리 밤 늦게 서로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면서, 알코올로 밤을 보냈다.^^

11.
다음 날 우리는 발리의 마지막 날은 바다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발리 비치에 가서 해양 스포츠도 즐기고, 바다 속에 물고기에게도 밥을 주었다. 솔직히 바다 속에 물고기 밥 주는 것 보다, 수압 때문에 어지러웠던 것 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바다에서 우리는 실컷 놀고 난 뒤에, 밥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족자로 가는 새벽 비행기를 위해 편히 쉬었다.



12.
족자행 새벽 비행기를 타고, 새벽 아침에 우리는 다시 말리보로 거리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족자를 꿰고, 있는 우리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두 명은 족자의 박물관을 돌아보며, 틈새관광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말리보로 거리로 돌아온 다음, 점심을 먹고, 다시 족자 공항으로 향하여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