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3년의 로망을 이루다

작성자 이지현
아이슬란드 SEEDS 024 · CONS/ RENO 2012. 06 Kerlingarfjoll

The Highlands of Iceland - The Famous Kjölur Roa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는 작년 8월 25일. 4학년임에도 불구하고 1학기만을 남겨두고 너무도 행복하게 휴학계를 제출했다, 나의 휴학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지만, 워.크.캠.프.
이 4글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8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이다.
3년 전, 정말 친했던 친구 2녀석들이 포르투갈로 워크캠프를 다녀왔다. 나도 함께 하고싶었지만 너무나 힘든 학과 공부와 (물리치료학과) 성당 중 고등부 교사를 하고 있었기에 나에게 유럽여행을 한 달이나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못 가는 것을 당연시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그 두 친구들의 워크캠프 후기와 사진은 워크캠프를 나의 대학생활의 꼭 해봐야 될 가장 중요한 한가지로 만들어 버렸다.
그게 2학년 때 이니 내 워크캠프에 관한 로망은 3년간 지속되었다.
워낙 휴학이 어렵고 흔하지 않은 과 임에도 불구하고 크나큰 결심 후에 국가고시를 남겨둔 채,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홀연히 휴학계를 내버렸다. 그리고 나서 시작된 나의 휴학생활. 나의 휴학의 포커스는 모두 워크캠프였다. 워크캠프를 위해 돈을 벌었으며, 외국인 친구도 많이 사귀기 위해 영어회화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게 9개월을 보낸 뒤 나는 드디어 워크캠프에 참가 할 수 있었다.
사실 다른 유럽권에 참가하고 싶었기에 그 발표를 3월부터 계속 기다리다 지쳐, 그냥 제일 많이 나와있는 아이슬란드에 1,2,3 지망 모두 지원을 해 버렸다. 생각지도 못한 선택 이였다. 몇 주 뒤 1지망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고 너무 뛸 듯이 좋았다.
‘드디어 가는구나 워크캠프!’
서둘러 비행기표를 끊고 워크캠프 앞, 뒤로 여행계획도 짰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다른 유럽권 나라들에 비해 정보가 많이 부족한 편이라 많은 준비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대한 알아보려고 노력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준비를 하다보니 어느새 6월 6일. 내 출국날짜였다. 아이슬란드는 한국에서의 직항편이 없었기에 영국을 꼭 거쳐야 되서 캠프 시작일은 10일 이였지만 좀 넉넉하게 출발했다.
드디어 10일 아침. 그 전날 밤에 묶었던 숙소가 SEEDS 숙소였기 때문에 그곳이 meeting point 였다. 어색한 첫만남. 한국인이 1명 더 있었지만 그 친구와도 첫 만남이기에 완전 뻘줌한 상태로 차를 탔던 것이 기억난다. ^^
레이캬빅 수도에서 5시간을 차 타고 들어가보니.. 우악.. 여기가 어디야.. 정말.. 사진에서만 보던 그런 절경이였다. 산꼭대기에는 눈이 녹지 않았고 시냇물이 흐르고, 주위엔 숙소말고는 아무 건물도 없는.. 사실 이런 곳이 내가 있게 될 주최지라는 것도 모르고 있던 나이기에 너무 놀라웠으며, 여기서 도대체 우리가 무엇을 할지도 가늠할 수 없었다.
일단 짐을 풀고, 밥도먹고.. 숙소는 게스트하우스라 너무 시설도 좋고 잘 되어있었다. 밥도 역시 잘 나왔고.. ^^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던 것 같다.
둘째날 아침. 우리는 매번 아침마다 리더가 오늘 할 일을 말해주면 선착순으로 손을들어 결정 하였는데 첫날 나의 일은 digging(삽질) 이였다.
자원해서 한 것 이였지만 시작한지 30분만에 .. ‘어떻게 하지..하는 생각 뿐 이였다.’
언덕 위의 집으로 호수를 연결하기 위해 언덕의 땅을 파서 호수를 넣는 작업 이였다.
땅을 파는 것은 좋은데 땅을 파면 동시에 어디선가 날파리들이 몰려와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손수건과 모자, 썬글라스로 얼굴을 다 가린채 일을 해야만했다.
정말 digging을 하게되는 날이면 너무나도 힘이들어, 다들 말도 안한 채 일만하기도 했다. 또 주로 했던 일로는 painting 이였는데 이건 digging에 비해 너무도 쉬운 작업이였다. 그치만 옷을 버릴 것은 감안 하고 해야 했던 작업. 나는 옷에 페인트가 묻던말던, 지붕위에도 올라가 노래를 들으며 즐겁게 페인트칠을 했다. 열심히 일하다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한번 보면.. 캬~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를정도로 아름답고 평화로운 환경. 그자체였다. 몇일이 지나자 친구들과도 친해져 장난도 많이 치고 사진도 찍고, 또 첫번째주 있었던 international day는 각 나라의 음식을 해 주는 dinner party 였는데 이 시간이 제일 뜻 깊었던 시간이 아닌가 싶다. 다행히도 친구들이 우리 한국음식 (밥, 불고기, 라면, 깻잎, 소주)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어떤친구는 라면이 맵다며 빵에 라면을 넣어 싸먹기도 하고.. ^^
그렇게 일에 지쳐 피곤할 때면 친구들과 떠는 수다에 피로가 싹 가시고, 대 자연 앞에서 아무런 장비 없이 슬라이딩도 하고, 썰매도 타고,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을 2주동안 만들고 왔다. 비록 펍도 없고, activity라고는 hiking 밖에 할 수 없는 척박한 환경이였지만, 그랬기에 친구들과 얘기도 많이 할 수 있었고, 정말 고요~한 산속에 있는 요양원에 온 것 처럼 푹 쉴 수 있었다.
2주 동안 나에겐 stress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 그때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면 정말 꿈만 같다.
아주아주 행복한꿈을 꾸고 돌아온 것 같은기분.
그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든 아이슬란드만의 매력.
마지막 날 떠나기 전 다짐했던 것처럼 나는 언젠간 이 곳에 다시 올 것이다. 꼭.
지금의 벅차오르는 이 추억을 가슴에 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