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남부, 낯선 곳에서 시작된 우정
CABREROLL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7월 31일. 드디어 출국 날이다. 참가 전후에 여행할 생각으로 좀 더 일찍 출국했다.
미팅시간과 장소는 8월 3일 오후 6시 Faugeres라는 프랑스남부 작은 마을의 버스정류장이었다. 처음 infosheet을 받았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Paris> Beziers 라는 곳으로 TGV를 타고 간 후 Beziers에서 버스를 타고 Faugeres라는 마을로 가는 루트였다. 유럽여행이 처음인 내게는 환승이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한국인 참가자와 이틀 전에 연락이 되어서 Beziers 기차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버스출발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한 것 같다. 그리고 겨우 버스를 탔는데 누군가 ‘work camp??’하며 말을 걸었다. 버스엔 같은 캠프 참가자들 4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 뒤 50분가량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했다. 캠프리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차를 타고 드디어 숙소도착!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은 숙소였다. 자원 봉사자 전용으로 쓰는 숙소였는데 2층 건물이고 화장실, 샤워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분위기는 우리나라 시골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땅이 넓다 보니 집들도 군데 군데 있고 길가에 꽃이며 나무들도 많았다. 너무 여유롭고 평화로운 인상을 받아서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총 참가자는 러시아 2명, 스페인 2명, 프랑스 3명, 인도 1명, 세르비안 2명, 한국인 2명 그렇게 캠프리더를 포함한 12명이 한 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첫 날인 만큼 캠프리더들이 오븐에 구운 ‘라자니아’와 샐러드, 디저트를 준비해줘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와인이 유명한 지방인 만큼 지역와인과 맥주도 빠질 수 없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 좋은 일이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음식,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잠깐이었지만 그 마을이 너무 좋아질 것 같았다.
다음 날 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에 관한 계획을 듣고 일할 장소에 다같이 가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성벽과 오븐이 허물어진 곳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규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이 곳의 집이며 건물은 모두 자연 재료로 지어져 있어서 돌, 모래, 나무 등을 직접 운반해야만 했다. 집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당번 정하기, 그리고 각자의 특별한 식습관이나 못 먹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 등에 대해 말하면서 앞으로 음식 할 때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적어 놓았다.
한국에서 프랑스가 덥다고는 들었지만 햇빛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상상을 못했다. 햇빛에 가만히 있으면 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우리는 일하는 시간을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로 하기로 정했다. 기상은 새벽 6시반, 7시 반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1시 반까지 하루에 6시간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주말에는 근교에 놀러가기도 했으며 파티를 가지기도 했다, 그 외에 일이 마무리가 안될 때는 더 할때도 있고 날이 너무 더울 때는 이웃집의 풀장에 놀러 가기도 했다. 물론 그곳도 햇빛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잠깐의 더위를 식혀주기엔 충분했다. 온 지 3일째에 수영을 하러 간다고 했다. 일할 생각만 하고 수영복을 준비해오지 않은 나는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수영은 일상인 듯 했다. 여자들은 다들 비키니를 입었고 몸매가 좋던 나쁘던 우리나라처럼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피부가 하얀 편에 속해서 한국에서 여름을 지내도 그렇게 많이 안타는 편이었다. 조금 태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햇빛을 우리나라 강도로 생각하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왠걸, 피부가 타다 못해 상처같이 심하게 아프고 계속 열이 났었다. 그렇지만 어느 새 그 강한 햇빛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3주 동안 까맣게 탔고, 처음 도착했을 때 찍었던 사진 속의 나는 다른 사람 같이 피부 색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일터 옆집에 사시는 아주머니는 고생한다며, 우리에게 매일 커피를 제공해 주셨고, 마을의 주인 분은 우리 숙소에 지역와인을 갔다 주시기도 했으며, 마을 파티도 몇 차례 가졌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을에 유명한 기자는 우리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고 캠프 리더에게 인터뷰를 한 뒤 우리의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으며 얼마 뒤 신문에 실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일의 강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땡볕에 우리나라로 치자면 공사판에서 집을 짓는 것인데 그나마 장비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게 맨땅에 헤딩하기 식이었다. 거기다 몇몇 일을 열심히 안하는 사람 몫까지 더 해야 했다. 무거운 돌 나르는 것은 기본이고, 콘크리트 만들기, 벽돌 자르기 등등 모든 것은 수작업 이었다. 어쩔 때는 내가 여기에서 지금 왜 이렇게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너무 힘들 때도 많았다. 일이 끝나고 나면 옷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온갖 먼지와 모래를 뒤집어 썼고 얼굴은 몰론이며 몸은 땀 범벅이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면 빨래와 샤워는 꼭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일이 힘든 만큼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그만큼 우리는 돈독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기에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그 곳의 사람들, 그리고 그 마을의 분위기, 그 곳의 공기, 풍경, 모든 것이 좋았다. 동네를 걷다가 누군가를 마주 칠 때면 항상 친절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해주는 프랑스 마을 사람들. ‘봉쥬르-‘ 어느 새 나의 입에 붙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으로 인사를 하는 나는 마치 마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최고의 팀원이었으며, 최고의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나중에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워크캠프에 꼭 참가하고 싶다.
미팅시간과 장소는 8월 3일 오후 6시 Faugeres라는 프랑스남부 작은 마을의 버스정류장이었다. 처음 infosheet을 받았을 때는 걱정이 앞섰다. Paris> Beziers 라는 곳으로 TGV를 타고 간 후 Beziers에서 버스를 타고 Faugeres라는 마을로 가는 루트였다. 유럽여행이 처음인 내게는 환승이 걱정스러웠다.
다행히 한국인 참가자와 이틀 전에 연락이 되어서 Beziers 기차역에서 만나 같이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차가 지연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게 버스출발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한 것 같다. 그리고 겨우 버스를 탔는데 누군가 ‘work camp??’하며 말을 걸었다. 버스엔 같은 캠프 참가자들 4명이 먼저 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한 뒤 50분가량 버스를 타고 마을에 도착했다. 캠프리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들의 차를 타고 드디어 숙소도착!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좋은 숙소였다. 자원 봉사자 전용으로 쓰는 숙소였는데 2층 건물이고 화장실, 샤워실도 잘 갖춰져 있었다.
분위기는 우리나라 시골 마을과 비슷한 느낌이지만 땅이 넓다 보니 집들도 군데 군데 있고 길가에 꽃이며 나무들도 많았다. 너무 여유롭고 평화로운 인상을 받아서 마음이 편해지는 순간이었다.
총 참가자는 러시아 2명, 스페인 2명, 프랑스 3명, 인도 1명, 세르비안 2명, 한국인 2명 그렇게 캠프리더를 포함한 12명이 한 숙소에서 지내게 되었다. 첫 날인 만큼 캠프리더들이 오븐에 구운 ‘라자니아’와 샐러드, 디저트를 준비해줘서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물론 와인이 유명한 지방인 만큼 지역와인과 맥주도 빠질 수 없었다. 와인을 좋아하는 내게는 너무 좋은 일이었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사람들, 음식,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 잠깐이었지만 그 마을이 너무 좋아질 것 같았다.
다음 날 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에 관한 계획을 듣고 일할 장소에 다같이 가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힘든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성벽과 오븐이 허물어진 곳을 복원하는 작업이었는데 내가 상상했던 규모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이 곳의 집이며 건물은 모두 자연 재료로 지어져 있어서 돌, 모래, 나무 등을 직접 운반해야만 했다. 집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당번 정하기, 그리고 각자의 특별한 식습관이나 못 먹는 음식, 좋아하는 음식 등에 대해 말하면서 앞으로 음식 할 때에 참고할 수 있도록 적어 놓았다.
한국에서 프랑스가 덥다고는 들었지만 햇빛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상상을 못했다. 햇빛에 가만히 있으면 살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우리는 일하는 시간을 아침 일찍부터 오후까지로 하기로 정했다. 기상은 새벽 6시반, 7시 반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후1시 반까지 하루에 6시간의 일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주말에는 근교에 놀러가기도 했으며 파티를 가지기도 했다, 그 외에 일이 마무리가 안될 때는 더 할때도 있고 날이 너무 더울 때는 이웃집의 풀장에 놀러 가기도 했다. 물론 그곳도 햇빛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잠깐의 더위를 식혀주기엔 충분했다. 온 지 3일째에 수영을 하러 간다고 했다. 일할 생각만 하고 수영복을 준비해오지 않은 나는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다. 이 곳 사람들에게 수영은 일상인 듯 했다. 여자들은 다들 비키니를 입었고 몸매가 좋던 나쁘던 우리나라처럼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피부가 하얀 편에 속해서 한국에서 여름을 지내도 그렇게 많이 안타는 편이었다. 조금 태우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햇빛을 우리나라 강도로 생각하고 선크림을 바르지 않았었다.
그런데 왠걸, 피부가 타다 못해 상처같이 심하게 아프고 계속 열이 났었다. 그렇지만 어느 새 그 강한 햇빛에도 적응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3주 동안 까맣게 탔고, 처음 도착했을 때 찍었던 사진 속의 나는 다른 사람 같이 피부 색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매일 일을 하다 보니 점점 마을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일터 옆집에 사시는 아주머니는 고생한다며, 우리에게 매일 커피를 제공해 주셨고, 마을의 주인 분은 우리 숙소에 지역와인을 갔다 주시기도 했으며, 마을 파티도 몇 차례 가졌었다. 그리고 어느 날 마을에 유명한 기자는 우리를 취재하고 싶다고 했고 캠프 리더에게 인터뷰를 한 뒤 우리의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으며 얼마 뒤 신문에 실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일의 강도는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힘들었다. 땡볕에 우리나라로 치자면 공사판에서 집을 짓는 것인데 그나마 장비가 갖춰져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게 맨땅에 헤딩하기 식이었다. 거기다 몇몇 일을 열심히 안하는 사람 몫까지 더 해야 했다. 무거운 돌 나르는 것은 기본이고, 콘크리트 만들기, 벽돌 자르기 등등 모든 것은 수작업 이었다. 어쩔 때는 내가 여기에서 지금 왜 이렇게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일이 너무 힘들 때도 많았다. 일이 끝나고 나면 옷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고, 온갖 먼지와 모래를 뒤집어 썼고 얼굴은 몰론이며 몸은 땀 범벅이었다. 그래서 일이 끝나고 나면 빨래와 샤워는 꼭 해야 했다.
그렇지만 일이 힘든 만큼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며 그만큼 우리는 돈독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일이었기에 친절한 마을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그 곳의 사람들, 그리고 그 마을의 분위기, 그 곳의 공기, 풍경, 모든 것이 좋았다. 동네를 걷다가 누군가를 마주 칠 때면 항상 친절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해주는 프랑스 마을 사람들. ‘봉쥬르-‘ 어느 새 나의 입에 붙어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자연스럽게 포옹과 가벼운 입맞춤으로 인사를 하는 나는 마치 마을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우리는 최고의 팀원이었으며, 최고의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나중에 또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워크캠프에 꼭 참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