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인도네시아, 3년 꿈이 이루어진 곳
KEMUDO PROJE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I will never forget every moment in Indon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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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해외 자원봉사는 나의 소망이었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며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해외 자원 봉사단 파견에서 고배를 마시고 대학교 3학년이 되어 다시 도전을 했다. 그 결과 3년간의 노력이 나를 인도네시아에 머물게 만들었다.
모두들 인도네시아를 말하면 발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발리는 애초부터 나의 계획에 없었고,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출국 한달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걱정이 된 던 것은 혼자 떠나는 해외 여행이었다. 이때까지 다양한 나라를 다녀왔지만 그 때마다 친구들 꼬리만 붙잡고 따라가면 다 됐었는데 이제는 내 스스로 모든 걸 헤쳐나가야 한다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두려움을 뒤로 한 채 가기 전부터 현지 캠프 리더들과 연락하면서 인포싯에서 얻을 수 없는 현지 정보를 얻고 친목을 다졌다. 새로 만날 친구들 생각에 너무나도 설레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이지만 영어 단어 하나하나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번 듣지 못했지만 이렇게나 가까워 질 수 있는 사실이 놀라웠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 1월 11일 인천공항을 출국했다. 일정보다 빠른 출국에 나는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하여 사무실에서 하루를 묵고, 프로젝트 사이트로 이동을 하였다. 먼저 도착하여 나머지 팀원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우리 팀에는 미국인 2명, 한국인 4명, 인도네시아인 3명 이렇게 총 9명으로 구성 돼 있었다. 중간에 한국인 한 명이 취소하고, 이태리인 한 명이 프로젝트를 바꾸는 등 변동사항이 있었지만 작은 숫자로 우리는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첫 날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날부터 아이들을 가르칠 수업에 관한 회의를 시작했다. 영어로 이루어 지는 대화에 모두가 조금은 어색하고 걱정 했지만 하나하나 의견을 맞춰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우리의 첫 수업 주제는 영어! 아직 나도 미숙한 영어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니 걱정이 컸지만 원어민이 우리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교육과정을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무엇부터 가르쳐야 될 지 정말 막막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첫 순간은 시행착오를 겪는 법! 맨땅에 헤딩하듯 우리는 다음날 아침 상그라한 학교로 향했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조회 후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했다. 생각보다 교실의 상황은 열악했다. 아이들의 키에 맞지 않는 나무 책상에 교실 안도 어두컴컴했다. 후에 깨달은 거지만 대부분의 관공서나 집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필을 놓지 않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방과후엔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다시 와선 우리가 책장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일이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귀가하였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학교에서 방과후 업무가 없는 날엔 홈스테이 집까지 찾아와 우리를 보고 가곤 했다. 키에 맞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며 우리를 쫓아오는 모습이 그렇게 이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르쳐 주는 노래를 목청 것 따라 부르고, 가르쳐 준 게임을 해가 지도록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가슴이 따뜻해 졌다. 이렇게 해맑은 아이들에게 내가 2주 동안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 너무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가슴 아픈 한 가지는 아이들의 치아 상태와 비만 오면 개울이 형성되는 운동장이었다. 아직 위생 교육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의 치아가 대부분 상 해 있었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 교육도 중요하지만, 위생 교육과 학교의 배수 시설 및 교육 환경이 더욱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를 보며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았던 2주가 지나고 마지막 날 아이들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전통 무용을 보여주고, 선생님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작은 선물을 준비 해 주셨다. 얼마나 고맙던지 정말 상상도 못한 선물들 이었다. 봉사를 처음 할 때에는 맨날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것이 조금은 귀찮다고 느꼈는데, 그런 마음을 느꼈던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우리의 집을 학교로 옮길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인도네시아 스마랑에서 우리의 집을 학교 강당으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짜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물론 1, 2년 후엔 이 아이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생각 해 주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이들과 지내는 내내 아이들이 큰 사람이 되어 세계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대학교를 한국으로 오겠다는 리즈마의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아이, 드러머가 되고 싶은 아이 등 모두다 자기 꿈을 이루어 세계 무대에서 나와 다시 만나는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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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부터 해외 자원봉사는 나의 소망이었다. 한비야의 책을 읽으며 최악의 상황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교 해외 자원 봉사단 파견에서 고배를 마시고 대학교 3학년이 되어 다시 도전을 했다. 그 결과 3년간의 노력이 나를 인도네시아에 머물게 만들었다.
모두들 인도네시아를 말하면 발리를 떠올린다. 하지만 발리는 애초부터 나의 계획에 없었고, 순수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을 만날 생각에 출국 한달 전부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가장 걱정이 된 던 것은 혼자 떠나는 해외 여행이었다. 이때까지 다양한 나라를 다녀왔지만 그 때마다 친구들 꼬리만 붙잡고 따라가면 다 됐었는데 이제는 내 스스로 모든 걸 헤쳐나가야 한다니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두려움을 뒤로 한 채 가기 전부터 현지 캠프 리더들과 연락하면서 인포싯에서 얻을 수 없는 현지 정보를 얻고 친목을 다졌다. 새로 만날 친구들 생각에 너무나도 설레었다. 정확하지 않은 문장이지만 영어 단어 하나하나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고,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목소리 한번 듣지 못했지만 이렇게나 가까워 질 수 있는 사실이 놀라웠다.
만만의 준비를 하고 1월 11일 인천공항을 출국했다. 일정보다 빠른 출국에 나는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하루 전에 미리 도착하여 사무실에서 하루를 묵고, 프로젝트 사이트로 이동을 하였다. 먼저 도착하여 나머지 팀원들을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우리 팀에는 미국인 2명, 한국인 4명, 인도네시아인 3명 이렇게 총 9명으로 구성 돼 있었다. 중간에 한국인 한 명이 취소하고, 이태리인 한 명이 프로젝트를 바꾸는 등 변동사항이 있었지만 작은 숫자로 우리는 프로젝트를 완수했다.
첫 날 마을을 둘러보고 다음날부터 아이들을 가르칠 수업에 관한 회의를 시작했다. 영어로 이루어 지는 대화에 모두가 조금은 어색하고 걱정 했지만 하나하나 의견을 맞춰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우리의 첫 수업 주제는 영어! 아직 나도 미숙한 영어를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려니 걱정이 컸지만 원어민이 우리 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교육과정을 가진 인도네시아에서 무엇부터 가르쳐야 될 지 정말 막막했다. 하지만 모든 일의 첫 순간은 시행착오를 겪는 법! 맨땅에 헤딩하듯 우리는 다음날 아침 상그라한 학교로 향했다.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조회 후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눈 뒤 각자의 교실에 들어가 수업을 했다. 생각보다 교실의 상황은 열악했다. 아이들의 키에 맞지 않는 나무 책상에 교실 안도 어두컴컴했다. 후에 깨달은 거지만 대부분의 관공서나 집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 이렇게 열악한 환경에서도 연필을 놓지 않고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부끄러웠다.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한지 방과후엔 옷을 갈아입고 학교에 다시 와선 우리가 책장 만드는 것을 도와주고 일이 끝나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모두 귀가하였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학교에서 방과후 업무가 없는 날엔 홈스테이 집까지 찾아와 우리를 보고 가곤 했다. 키에 맞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며 우리를 쫓아오는 모습이 그렇게 이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가르쳐 주는 노래를 목청 것 따라 부르고, 가르쳐 준 게임을 해가 지도록 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나도 가슴이 따뜻해 졌다. 이렇게 해맑은 아이들에게 내가 2주 동안 가르침을 준다는 것이 너무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가슴 아픈 한 가지는 아이들의 치아 상태와 비만 오면 개울이 형성되는 운동장이었다. 아직 위생 교육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이들의 치아가 대부분 상 해 있었다. 사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적 교육도 중요하지만, 위생 교육과 학교의 배수 시설 및 교육 환경이 더욱 더 중요한 것 같다. 이를 보며 아직 나에게 할 일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았던 2주가 지나고 마지막 날 아이들은 우리를 위하여 준비한 전통 무용을 보여주고, 선생님들 또한 우리를 위하여 작은 선물을 준비 해 주셨다. 얼마나 고맙던지 정말 상상도 못한 선물들 이었다. 봉사를 처음 할 때에는 맨날 학교에 와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것이 조금은 귀찮다고 느꼈는데, 그런 마음을 느꼈던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아이들이 우리의 집을 학교로 옮길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인도네시아 스마랑에서 우리의 집을 학교 강당으로 옮기는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짜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다. 물론 1, 2년 후엔 이 아이들이 우리를 기억하고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를 생각 해 주는 모습이 가슴에 와 닿았다. 아이들과 지내는 내내 아이들이 큰 사람이 되어 세계 무대에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대학교를 한국으로 오겠다는 리즈마의 말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의사가 되고 싶은 아이, 선생님이 되고 싶은 아이, 드러머가 되고 싶은 아이 등 모두다 자기 꿈을 이루어 세계 무대에서 나와 다시 만나는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