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크로아티아, 20명 속 아시아인 1명의 도전
Una 201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지로 떠나는 길에 유럽에서 4개월 동안을 워크캠프로 보내다 온 친구가 공항까지 배웅을 해주며 여러 가지 조언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마음은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 찼고, 워크캠프지로 떠나기 전까지 약 3주 동안을 터키와 인근 국가들을 육로로 여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버스역에서 만난 우리 워크캠프의 전체 참가자 수는 20명. 그 중에 아시아인은 달랑 나 1명뿐이었다. 생김새도 너무 다르고, 언어도 너무 달랐다. 다른 참가자들은 서로 자기들의 언어를 가르쳐주고 배우며 즐거웠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발음과 단어들뿐이었다.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함이 엄습했다. 나는 2주 동안 잘 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워크캠프지로 가는 동안에는 잠시 동안 크로아티아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완전히 압도되어 말을 잃었었다. 도착한 곳은 폐교된 학교였고, 우리가 잘 교실에는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각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이름 외우기 게임부터 시작해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캠프리더와 매니저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 워크캠프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설명해주었고, 우리는 각자 워크캠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은 피드백 박스와 워크캠프에서 지켜야 할 룰이 적힌 포스터, 그리고 참가자들끼리 서로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회화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개개인의 영어실력은 천차만별, 특히나 이탈리아에서 온 리키는 영어에 매우 서툴렀지만 참가자들은 인내할 준비가 되어있는 멋진 이들이었고, 언어 때문에 종종 일을 하는데 실수가 있기도 했지만, 서로가 다시 설명해주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우리가 지낸 곳은 완벽한 환경이었지만, 다만 20명이 하나의 샤워실과 두 개의 화장실을 공유해야 했다. 샤워시간은 1인당 10분으로 제한되었고, 매일 누가 먼저 샤워를 할 것인가를 가지고 경쟁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한 상황들조차 우리는 재미있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멋진 팀이었다. 1등으로 샤워하게 된 이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꼴찌에게는 위로의 박수를. 접시와 숟가락이 부족해 늘 누군가는 빨리 밥을 먹고 자기 것을 설거지해 다른 이에게 양보해 주어야 했고, 영어가 서툰 이들에게는 우리가 할 일에 대해 누군가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런 속에서 우정이 쌓이고, 서로 간에 신뢰와 팀웍이 형성되어 갔다.
젊은이가 거의 없는, 전쟁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워크캠프지에서 동네 어르신들은 우리들의 생기어린 목소리,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덩달아 즐거워해주셨고, 종종 마을사람들은 맛있는 음식들을 집에서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마냥 관광자이기만 했다면 크로아티아는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운 발칸의 한 나라로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워크캠퍼였고,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과 눈물을 머금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그 아픔을 여러 가지 보수작업들을 통해 회복시키는데 힘을 보탬으로써 그 나라를 더욱 두텁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내게는 이런 방식의 이해의 경험은 무척이나 유용한 것이었다.
우리 캠프의 슬로건은 “ALL DAY ALL NIGHT”. 일은 매일 손에 물집이 잡히고, 가시에 찔리고 긁혀 지금도 내 몸엔 상처투성이일 정도로 힘들었지만, 밤이 늦도록 누구 하나 잠자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돌아와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전통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우리는 마지막 날, 5년 뒤 다시 만나자는 서약서를 만들었고, 모두가 그 곳에 사인을 했다. 이상하게 나는 그 서약서가 단순히 헤어지는 아쉬움에 만든 종이 한 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캠프지를 떠난 이후에도 페이스북에 우리 프로젝트 이름을 그대로 넣어 “UNA 2012”라는 공간을 다시 만들어 지금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는 일을 통한 보람과,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간의 이해, 춤과 음악, 게임을 통한 즐거움까지 짧은 2주 동안 너무 많은 감정과 기억들을 만들어냈다. 이제 대학 졸업반인 나는 다시 워크캠프에 참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워크캠프는 내게 다른 국가 출신의 친구들과 낯선 환경에서 어떤 의미 있는 여행을,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아련해지는 이 여름의 기억을 5년 뒤에 익숙한 얼굴들과 다시 조우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워크캠프지로 가는 동안에는 잠시 동안 크로아티아의 웅장한 아름다움에 완전히 압도되어 말을 잃었었다. 도착한 곳은 폐교된 학교였고, 우리가 잘 교실에는 매트리스가 깔려있었다. 각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이름 외우기 게임부터 시작해 거리감을 좁히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했다.
캠프리더와 매니저가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이 워크캠프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를 설명해주었고, 우리는 각자 워크캠프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을 이야기했다. 우리가 가장 먼저 만든 것은 피드백 박스와 워크캠프에서 지켜야 할 룰이 적힌 포스터, 그리고 참가자들끼리 서로의 언어를 배울 수 있는 회화표였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은 영어로 이루어졌고, 개개인의 영어실력은 천차만별, 특히나 이탈리아에서 온 리키는 영어에 매우 서툴렀지만 참가자들은 인내할 준비가 되어있는 멋진 이들이었고, 언어 때문에 종종 일을 하는데 실수가 있기도 했지만, 서로가 다시 설명해주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려 노력했다.
우리가 지낸 곳은 완벽한 환경이었지만, 다만 20명이 하나의 샤워실과 두 개의 화장실을 공유해야 했다. 샤워시간은 1인당 10분으로 제한되었고, 매일 누가 먼저 샤워를 할 것인가를 가지고 경쟁을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런 부족한 상황들조차 우리는 재미있는 시간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멋진 팀이었다. 1등으로 샤워하게 된 이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꼴찌에게는 위로의 박수를. 접시와 숟가락이 부족해 늘 누군가는 빨리 밥을 먹고 자기 것을 설거지해 다른 이에게 양보해 주어야 했고, 영어가 서툰 이들에게는 우리가 할 일에 대해 누군가가 다시 한번 설명해 주어야 했다. 그런 속에서 우정이 쌓이고, 서로 간에 신뢰와 팀웍이 형성되어 갔다.
젊은이가 거의 없는, 전쟁이 지나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워크캠프지에서 동네 어르신들은 우리들의 생기어린 목소리,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덩달아 즐거워해주셨고, 종종 마을사람들은 맛있는 음식들을 집에서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해주기도 했다. 마냥 관광자이기만 했다면 크로아티아는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운 발칸의 한 나라로만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워크캠퍼였고, 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과 눈물을 머금고 있는 마을 사람들과 그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그 아픔을 여러 가지 보수작업들을 통해 회복시키는데 힘을 보탬으로써 그 나라를 더욱 두텁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인류학을 공부하는 내게는 이런 방식의 이해의 경험은 무척이나 유용한 것이었다.
우리 캠프의 슬로건은 “ALL DAY ALL NIGHT”. 일은 매일 손에 물집이 잡히고, 가시에 찔리고 긁혀 지금도 내 몸엔 상처투성이일 정도로 힘들었지만, 밤이 늦도록 누구 하나 잠자는 법이 없었다. 우리는 돌아와 게임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전통 술을 마시고, 춤을 추며 놀았다.
우리는 마지막 날, 5년 뒤 다시 만나자는 서약서를 만들었고, 모두가 그 곳에 사인을 했다. 이상하게 나는 그 서약서가 단순히 헤어지는 아쉬움에 만든 종이 한 장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캠프지를 떠난 이후에도 페이스북에 우리 프로젝트 이름을 그대로 넣어 “UNA 2012”라는 공간을 다시 만들어 지금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는 일을 통한 보람과, 문화교류를 통한 상호간의 이해, 춤과 음악, 게임을 통한 즐거움까지 짧은 2주 동안 너무 많은 감정과 기억들을 만들어냈다. 이제 대학 졸업반인 나는 다시 워크캠프에 참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지만, 워크캠프는 내게 다른 국가 출신의 친구들과 낯선 환경에서 어떤 의미 있는 여행을,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이기에 더욱 아련해지는 이 여름의 기억을 5년 뒤에 익숙한 얼굴들과 다시 조우하여 이야기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