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로망을 현실로 만들다

작성자 이한서
아이슬란드 WF08 · ART/ENVI/RENO 2012. 07 Hvalfjorður

Farm life - nature, art and renovation in fjord of the whal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나도 해외봉사활동에 대한 로망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래서 이래저래 해외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찾아봤지만 마땅치 않았다. 그렇게 찾던 중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는데 일단, 한국인들로만 구성된 게 아니라 외국인들과 같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문화교류를 하고 친구를 사귈 수 있다는 점과 장기프로그램이 아니고 방학 중에 같다 올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워크캠프 전후에 내 일정대로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점에 끌려 신청을 하였다.. 처음 나가는 해외인 만큼 가보기 힘든 곳,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아이슬란드 프로그램을 선택했다. 사실 신청하기 전 아이슬란드에 대해서는 그저 화산폭발이 있었던 나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는 직항은 없기 때문에 환승, 경유를 해서 가야 했다. 영국, 덴마크, 독일 등에서 비행기를 운행한다. 7~8월이 성수기이기 때문에 비행기 값은 40~50만원 정도였다. 레이캬빅에 도착하고 공항을 나오는 순간 강하게 부는 바람에 얼른 가디건을 꺼내 입었다. 한국보다 온도가 낮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7월인데 많이 춥겠냐는 생각에 얇은 옷만 가지고 와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나마 독일에서 가디건이라도 사서 온 것이 다행이었다.

워크캠프의 참가인원은 10명 이었다. 캠프리더인 알릭과 시실, 러시아에서 온 케이트, 독일에서 온 스테판, 스페인에서 온 이라체, 프랑스에서 온 케미, 이탈리아에서 온 안토, 폴란드에서 온 마칰, 오스트리아에서 온 마리옹. 아시아권은 나 하나뿐이었지만 프랑스에서 온 케미와 시실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른 나라에서 왔다. 놀랐던 사실은 알릭과 시실이 실제로 커플이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스킨십을 많이 하길래 그저 외국이라서 스킨십이 자연스러운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정말 커플이었다. 문제는 리더 둘이 사귀면서 제대로 참가를 안 했다는 것이다. 시실은 일할 때는 안보일 때가 많고 둘이 저녁 식사를 끝나면 사라지기 일수였다. 요리를 하거나 설거지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자신들이 리더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한동안 진지하게 우리가 알고 있는 리더의 개념과 저들이 생각하는 리더가 다른 가에 대해 생각해볼 정도였다. 이점만 빼면 참가자들과

ART/ENVI/RENO가 우리의 주제였던 만큼 우리가 했던 일은 화이트하우스(WF기관) 맞은 편에 정원을 만드는 것과 100년 정도 된 집을 보수하는 일이었다. 정원을 만든다고 무거운 돌을 들어내고 처음 잔디도 깔아보았다. 집을 보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집을 페인트칠 하고 의자와 탁자를 만드는 등 다양한 작업을 했다. 주말에는 레이캬빅 시내에 나가서 쇼핑을 하기도 하고 차를 렌트하여 놀러다니기도 했다 (물론 시실과 알릭은 같이 가지 않았다)

일정은 굉장히 자유로운 편이었다. 보통 아침 10시 이후 알아서 기상하여 알아서 시리얼이나 샌드위치로 아침식사를 한다. 그리고 11시 쯤 차를 타고 일을 하러 간다. 점심은 각자 싸온 샌드위치로 해결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였고 샤워를 하거나 쉬는 등 자유시간 2시간을 가진 뒤 6시나 7시가 되면 3면 정도가 부엌으로 가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다른 캠프처럼 우리도 쿠킹팀을 정하기는 했지만 지켜지지는 않았다. 그날 그날 요리하고 싶은 사람이 부엌으로 가면 한두명이 도와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요리에 자신 없던 나는 옆에서 열심히 도와주기만 했다. 저녁 8시 쯤 식사를 하고 이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식사 후 맥주를 마시면서 이야기가 오갔다. 각 나라들의 노래를 틀기도 하고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한다. 공기놀이나 한글도 흥미로워 하나 가장 큰 관심사는 북한과 군대에 관한 것이었다. 김정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남자들은 군대를 무조건 가야하는가, 가면 얼마나 있다 오는가, 군대에 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통일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가 등 다양한 질문을 받았다.

가장 불편함을 겪었던 것은 일단 언어였다. 일단 어떻게든 되겠지 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는지 처음 만날 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Hi~ my name is LEE HANSEO 이 말만을 겨우 던진 채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다들 영어로 농담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에 비해 나의 영어 실력은 유치원보다도 못했을 것이다. 그 순간 가기 전에 어떤 사람이 올렸던 ‘만약 당신이 영어를 잘한다면 외국인 친구를 만들고 문화교류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영어를 못한다면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던 말이 현실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설마 워크캠프가 끝날 때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이들과 친해진 것은 사고를 자주 쳤기 때문이다. 고의는 아니지만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든다던가, 말 8마리에게 쫒긴 다던가, 캠프파이어를 할 때 주변을 연기로 가득차게 한다던가 등 민폐일 정도의 사고를 쳤는데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게 웃겼던 모양이다. 처음에 했던 걱정과는 다르게 영어를 못해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영어를 잘하면 쉽게 친해지기 좋았을 거고 영어 잘하는 사람들에게 워크캠프 가는 것을 추천해주고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워크캠프지만 정말 잊을 수 없었던 기억인 것은 분명하고 많은 추억을 만들어 왔다. 내가 워크캠프가 아니었으면 언제 아이슬란드라는 나라에 가보고 외국인 친구들과 2주 동안 동거동락 하면서 같이 일해볼까. 아이슬란드라는 대자연 속에서 생각하는 것도 많았고 배우는 것도 많았다. 말주변이 없어서 다 표현하지 못했지만 한번쯤은 꼭 해보기를 추천하는 워크캠프 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