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발리에서 만난, 국경 없는 삼형제
JIMBARAN PROJE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2년 7월 28일 토요일 인도네시아 현지 시각 오후 3시. 인도네시아 발리섬 덴파사르공항에서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인포싯상에 장소는 보이지 않아서 1시간정도 헤매다가 힘겹게 한국인 동료들을 발견해서 봉사활동에 어렵게 참여하게 되었다. 다른 외모, 다른 언어, 다른 관습을 가진 다른 봉사자들은 한국말이 익숙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문화충격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타이완 친구와 인도네시아 친구와 매우 친해치게 되고 우리는 삼형제가 되었다. 서로 대화도 잘 통하지 않고, 외모, 문화, 관습 전혀 달랐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가까워 지고 싶어졌고, 그 결과 우리는 2주간의 봉사 그 이후 현재 시점에서도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었다. 워크캠프내에 남자가 나를 포함한 3명뿐이었고, 남자리더와 인도네시아 남자 한명과 본인뿐이었기 때문에 남자로서 책임감이 어느정도 막중했던 것 같다. 학교 기숙사에서 주는 인도네시아 음식은 정말 나랑은 안맞아서 너무 힘들었었다. 전혀 음식에 손을 못댈정도 였기 때문에 몸무게가 6KG는 빠진 것 같다. 주말에 발리섬을 여행하는 것 때문에 처음부터 의견충돌이 잦았고, 전혀 계획도 되지 않은 상태였고, 인도네시아 리더가 주관도 뚜렷하지 않고 리더십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주관자가 똑바로 균형과 조화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벽돌은 무너지며 주말간에 여행은 세팀으로 나뉘게 되었다. 나 또한 이렇게 균형과 조화를 못이루며 대충 그날 환경과 기분에 맞추어서 행행동하는 것 내키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사람들이 그래도 발리섬에 대해서 어느정도 지식과 정보가 있기에 인도네시아리더팀을 따라 가기로 했었다. 역시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고, 나에게 워캠간의 주말은 최고였던것 같다. 다양한 문화와 경치 그리고 음식을 경험할수 있었고, 평생 잊을수 없는 행복한 추억이다. 한국인 여자 두명친구가 있었는데 인도네시아 리더들과 충돌이 잦았고, 또 리더와 한국인여자와 서로 문화적 차이가 가장 컸던 점도 있었다. 중간에서 충돌완화를 위해 노력하려고도 했고, 한국인여자편에 최대한 서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발리섬의 경치와 쇼핑 및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리더들과 싸우며 서로 의견만 주장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매일 발리섬의 최고 유흥지인 쿠타에 간다고 우기던것도 기억이 나고, 쿠타에 있는 클럽에 가서 외국인들과 춤추며 술먹고 놀던것도 기억이 난다. 오전에는 학생들을 가르키는 교육봉사였는데 사실상 교육에 목적을 둔 것 같지 않았다. 학교 자체가 학생들의 교육보다는 적응에 조금은 초점을 더 맞춘 것 같았다. 사회적응이라기 보다는 학생들 인생 각자에 적응이라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학생들은 매우 착하고 친절하였으며 재밌었던 것 같다. 내가 아이들에게 교육을 가르키고 가는 것 같지는 않다. 세계속에서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의 발리섬에 청각장애인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만나서 나는 세상을 배웠고, 소중함이라는 것을 배웠다. 나는 정말로 한국에서 몸 건강히 태어나서 지금 이 아이들을 가르키고 있을수 있다는것에 감사함을 느꼈고, 이 아이들 역시 우리를 만나기 위위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우리들과의 만남은 필연적이라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2주간의 추억이었고, 평생 잊을수 없을 것 같다. 지금 한국에서의 나의 인생을 바꿀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또 솔직히 말하면 발리의 물가는 굉장히 쌌다. 그렇기에 인도네시아리더들 입장에서는 우리를 보는 시선이 곱지 못했던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각자의 문화와 화폐적 가치의 차이가 있기에 이를 부정적으로 보던 인도네시아인들의 유치함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나는 군대를 다녀와서 성숙한 입장에서 24살의 리더는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 같았고, 그 역시 나에게 의지하며 고민을 털어 놓고, 도움을 요청하며, 마지막까지 나에게 미안함을 표현했었다. 리더가 힘들어 했던 것은 나 역시 이해 할수 있다. 만약 내가 리더였다면 봉사자들에게 자유를 주대 봉사자로서의 역할책임을 매우 강조하였을 것이다. 즉 할 것은 하고 해라 라는 식의 행동을 보였을 것인데 리더는 그 점을 어필하지 못했던 것 같다. 행복한 2주간의 추억, 지금 당장이라도 볼수만 있다면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은 나의 동료들. 언젠간 볼 수 있을 것이다.